다 내려놓고 싶었다.
열심히 살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버텨내는 과정에서
아내를 만나고
그러다 두 아들이 태어났다.
다 털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다시 열심히 사는 중에
비트코인을 재발견한다.
그것은 나를
정말 다른 사람으로,
얽매이지 않고
다시 살고싶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완료!
비트코인을 모으면서
감사한 일은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
나는 마라톤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단기적 성과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만나고
장기적 안목, 기다림 인내를 배운다.
급하지 않개 매일 배우고 깨닫고
그힘으로 살아간다.
이제 다음은 하프다!
내가 개별 주식 대신 비트코인에 내 자본을 던진 3가지 이유
투자의 대가들이 쓴 수많은 명저를 읽고 개별 주식과 기업을 공부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하나였다. "나는 특정 기업과 경영진의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속하지 않은 산업의 전문가가 될 수도 없고, 매일 쏟아지는 기업의 이슈를 추적하며 내 큰돈을 맡길 만큼의 확신을 갖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개별 비즈니스 모델에 베팅하는 대신,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거대한 방향성'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비트코인을 선택한 이유이며, 그 근저에는 다음 3가지 명확한 철학이 있다.
1. 절대적 희소성이 주는 압도적인 평온함
자본주의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가진 자산의 가치가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 희석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화폐를 찍어낼 때마다 내 지갑 속의 돈은 녹아내린다.
주식 역시 마찬가지다. 유상증자나 분할 상장 등으로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총발행량이 2,100만 개로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다. 그 누구도 임의로 발행량을 늘려 내 자산의 파이를 빼앗아 갈 수 없다. 복잡한 가치 평가나 거시 경제의 변동성을 매번 계산할 필요 없이, 이 '절대적 희소성' 하나만으로도 내 자본을 묻어둘 가치는 충분하다.
2. 나는 '사람'의 선의와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일반 주식회사 투자의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는 결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비전을 가진 훌륭한 기업이라도, CEO가 치명적인 오판을 하거나 경영진의 횡령, 분식회계 같은 도덕적 결함이 발생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인위적인 통제나 사람의 판단이 개입되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오류와 탐욕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반면 비트코인에는 CEO도, 이사회도, 배당금을 줄여 자신의 성과급을 챙기는 임원도 없다. 오직 수학과 암호학, 그리고 코드로 짜여진 투명한 네트워크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나약함이나 부정이 개입할 틈이 없는 무결점의 시스템. 이것이 내가 사람의 약속보다 블록체인의 코드를 더 신뢰하는 이유다.
3. 마차에서 자동차로: 더 강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향한 진화
인류의 역사는 항상 더 강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기술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이동 수단이 바뀌었을 때, 그것은 누군가 억지로 강요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저 자동차가 압도적으로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세상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간 것뿐이다.
화폐와 자산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무겁고 분할이 어려운 금괴나, 정부의 입김에 따라 가치가 널뛰는 종이돈(마차)에서, 국경을 초월해 빛의 속도로 이동하며 가치를 완벽하게 보존하는 디지털 자산(자동차)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필연이다.
결론
비트코인 투자는 매일 차트를 보며 쫓기듯 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저 이 자산이 디지털 세상의 '금'으로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희망찬 미래를 약속했다가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수많은 프로젝트들 사이에서, 아무런 영업도 약속도 하지 않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단순함. 나는 이 흔들림 없는 방향성에 내 자본과 시간을 태운다.
X를 하면서
나는 지극히 개인사인
러닝을 기록하고
비트코인 모으기를 계속하고 남기고 있다.
여기에는
비상식적 이야기도 많지만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갈망하는 분들도 많은 듯 하다.
플랫폼은 계속 바뀌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각 개인이 열망, 일상을 공유하고
누구나 소통하고 싶어한다는것
나도 달리고 싶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늘 이유를 물었다.
왜?
늘 이 why때문에
바로 행동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why를 뺐다.
좋은 것이라면!?
그냥 하는 거다.
이제 나는 달리고 싶은 사람에서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비트코인도 그러하다.
좋은 것이면 그냥 모은다.
내가 왜 굳이?
점차 세상은
‘굳이’가 점령해가는 듯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굳이’가 나를 돋보이게,
나의 강점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안다.
굳이 왜 배려를?
굳이 왜 먼저?
굳이 왜 내가?
굳이 왜 그걸?
나는?
굳이 비트코인을 모으고
굳이 더운 날 러닝을 한다.
굳이 내 사람들을 더 챙긴다
알트를 비트로 옮긴지
꽤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는
꽤 큰 손절에 마음이 아팠던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니
참 잘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배우고 달리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 후에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