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오로지 열쇠에만 처박아둔 채, 까치발까지 들고 내게 바짝 밀착해 닿을랑 말랑 낑낑대는 꼴이 존나 하찮고 병신 같아서 픽픽 실소가 터졌다. 그런데 훅 좁혀진 거리 탓에 네게서 끼쳐오는 묘하게 달큰한 체향에, 나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팍 구겼다. 씨발, 사내새끼한테서 무슨 냄새가...*
*그리고 내 어깨에 닿았던, 다급하고 파르르 떨리던 작은 손길. 그 찰나의 접촉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나는 높이 쳐들고 있던 팔을 아주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짤랑, 하고 경쾌하게 울리던 열쇠 소리가 멎자 주변 공기가 단숨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닿았네?
*내 기분은 유쾌함에서 점차 좆같음으로 수직 하강 중이었다. 네가 감히 내 몸에 닿아서? 아니. 씨발. 내 앞에서 바들바들 떨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다급하게 눈치를 살피는 그 하얀 낯짝이... 미치게 내 신경을 긁어대서 묘하게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기 때문이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나는 쥐고 있던 열쇠를 바지 주머니에 쑥 쑤셔 넣고, 아주 잠시 타이밍을 쟀다. 이 건방진 쥐새끼를 어떻게 짓밟아줄까. 두 손을 꾹 말아 쥐고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는 널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기를 한 3초. 이내 나는 비죽 새어 나오려던 웃음을 싸늘하게 지워내며 네게로 한 걸음, 아주 느릿하고 위압적으로 다가갔다.*
*네가 겁에 질려 흠칫 뒷걸음질을 치려던 찰나, 나는 방금 전 내 어깨를 짚었던 네 손목을 커다란 손으로 콱 낚아채어 뼈가 으스러져라 꽉 틀어쥐었다.*
"아윽...!"
*네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나는 너를 그대로 뒤쪽 벤치를 향해 거칠게 밀쳐버렸다. 쾅-! 하고 네 얇은 등이 벤치 모서리에 부딪혔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네 몸은 그대로 흙바닥으로 미끄러져 꼴사납게 주저앉았다.*
*나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며 날 올려다보는 네 코앞에 바짝 쪼그려 앉았다.*
근데 어쩌지, 세이. 난 네 변명이나 의도 따위 좆도 안 궁금하고 결과만 보는 성격이라.
*나는 여유롭게 손을 뻗어, 네 콧등 위에서 꼴사납게 달그락거리는 자물쇠를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자, 네가 룰을 깼으니 자비로운 기회는 끝났어. 아까 내가 줬던 선택지들, 내 발밑에 무릎을 꿇거나 개새끼처럼 짖으라던 거. 이젠 그거 다 합쳐도 모자랄 판인데.
*나는 얼어붙은 네 뺨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툭 치며,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다정하게 눈을 휘어 접어 웃어 보였다.*
벌이 늘었어, 쥐새끼야. 어떻게 갚을래? 응?
*겁을 잔뜩 집어먹어 바들바들 떨면서도, 끝내 지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해대는 꼬라지. 내가 친절하게 던져준 선택지는 깡그리 무시하고 얄팍한 반항처럼 툭 내뱉는 저 건방진 부탁과, 내 손아귀 안에서 속절없이 떨리는 얕은 숨결이... 씨발, 자꾸만 내 안의 좆같은 가학심을 미친 듯이 부추기고 있었다.*
우리 쥐새끼가 뵈는 게 없더니 학습 능력까지 좆창이 났구나.
*어떻게 요리를 해줄까, 아주 잠시 달콤한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하얗고 말랑한 뺨을 자비 없이 후려쳐서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만들고 싶었다. 명분은 차고 넘쳤으니까. 주인이 제시한 어떤 옵션에도 따르지 않고 같잖은 똥고집을 부린 죄. 그 얄팍한 반항기를 완벽하게 꺾어놓기 위해, 그야말로 '교육' 차원에서 제대로 손찌검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턱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내리치는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네 부드러운 뺨을 아주 느릿하고 진득하게 쓰다듬어 내렸다. 아, 진짜. 자꾸 내 인내심 브레이크를 고장 나게 만들잖아, 네가.*
*나는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미련 없이 툭 거두고, 상체를 뒤로 물리며 굽혔던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작은 은빛 열쇠를 꺼내 네 눈앞에서 짤랑, 흔들어 보였다. 네 흐릿한 시선이 본능적으로 열쇠를 향하자, 나는 그대로 팔을 내 정수리 위로 높게 뻗어 올렸다. 널 내려다보는 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직접 가져가서, 네 손으로 직접 풀어 봐.
*나는 눈을 가늘게 접어 웃으며 나른하게 덧붙였다.*
대신, 네 손끝 하나라도 내 몸에 스치기만 하면... 그때는 일이 아주 좆같이 커질 거야. 알다시피 난 남자새끼가 내 몸에 손대는건 싫거든. 할 수 있겠어?
*쾅-!*
*고막을 때리는 파열음과 함께, 내 눈앞에서 기숙사 현관문이 매정하게 닫혀버렸다. 방금 전까지 내 등짝과 가슴팍에 꽂히던 매서운 손맛에 욱신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나는 굳게 닫힌 문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씨발, 손 존나 맵네.
*나는 머쓱해진 손으로 뒷목을 벅벅 긁적였다. 쪽팔림과 허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변명할 틈도 없이 개 끌려 나오듯 쫓겨난 내 꼴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어이 헛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아니, 대체 왜 하필 그 타이밍에 도배지 쪼가리를 밟고 미끄러지냐고. 그리고 왜 하필 주머니에서 그게 톡 튀어나와서 사람을 단숨에 발정 난 변태 새끼로 만드냐고. 운도 지지리도 없지, 씨발.*
*기껏 땀 뻘뻘 흘리면서 그 개노가다를 뛰어줬건만, 시원한 펩시 제로 한 모금은커녕 입술 근처에도 못 가보고 쫓겨났다.*
하... 어차피 이렇게 미친 변태 새끼 취급받고 쫓겨날 줄 알았으면...
*나는 아쉬운 입맛을 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까 서랍장 열었을 때 그 핑크색 레이스 속옷이나 하나 슬쩍 훔쳐서 나올걸. 존나 아깝게, 씨발~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화를 내며 씩씩거리던 세레나의 발그스름한 얼굴이 떠올라 자꾸만 실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화내는 꼴도 예뻐서 큰일이네, 진짜.*
*나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으로 굳게 닫힌 방문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터덜터덜 복도를 걸어 나갔다.*
그래, 난 펩시 제로. 존나 시원한 걸로 부탁해.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나는 마지막 도배지 자락까지 말끔하게 밀어붙인 뒤에야 스패출러를 내려놓았다. 하아... 끝났다. 뻐근한 목을 좌우로 꺾으며 우두둑 소리를 내고,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한구석에 몰아둔 가구들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제자리에 둬야 할 텐데, 기왕 땀 흘린 김에 마저 옮겨놓을까.*
*어슬렁거리며 서랍장 쪽으로 다가가던 찰나, 덜 닫힌 서랍 틈새로 살짝 삐져나온 얇고 실키한 핑크색 천 조각이 시선을 훅 잡아끌었다. ...어라?*
*나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아주 바람직한 광경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빙고. 속옷 칸이네.*
호오... 우리 여왕님 취향 확인 완료.
*하얀색, 검은색, 연한 핑크에 베이지... 생각보다 레이스가 잔뜩 달린 화려한 취향들을 죽 훑어보며 나는 실없이 픽 실소를 흘렸다. 이 난장판 속에 하나쯤 슬쩍 주머니에 쑤셔 넣어도 절대 모를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씨발, 내가 아무리 그래도 진짜 발정 난 개새끼도 아니고. 나는 아쉬운 입맛을 쩝 다시며 얌전히 서랍을 밀어 닫았다.*
*무거운 옷장과 서랍장을 대강 원래 있던 자리로 낑낑대며 밀어 넣고 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거울 앞에 서서 땀에 젖은 앞머리를 까뒤집으며 대충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때쯤, 복도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 내 펩시 왔...
*반가운 마음에 성큼성큼 네 쪽으로 다가가던 순간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풀 묻은 도배지 쪼가리와 신문지를 잘못 밟은 발이 그대로 쫙 미끄러졌다. 볼품없이 허우적대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지만, 얄궂게도 그 반동 탓에 내 바지 주머니에 얌전히 들어있던 무언가가 허공으로 톡- 튀어나왔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안착한 건, '작고 납작한 정사각형 모양의 포장지'였다.*
...오.
*바닥에 나뒹구는 매끈한 비닐 포장지. 그리고 그 위로 정확히 꽂히는 세레나의 시선. 순식간에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으며, 숨 막히는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 진짜 뼈 부러진 것 같다고!
*나는 과장되게 정강이를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내며 널 흘겨보았다. 주니어 때만 해도 내 가벼운 플러팅 한 번에 귀 끝까지 붉히며 어쩔 줄 모르던 새침한 고양이였는데. 이젠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사람 정강이를 냅다 까버리는 게 아주 다 큰 암사자가 따로 없다.*
네네. 분부대로 합죠, 여왕님.
*나는 대충 앓는 소리를 갈무리하고 도배 풀통과 솔을 집어 들었다. 사람 부르면 기껏해야 몇 푼 안 할 텐데, 굳이 제 손으로 사서 고생하는 이 피곤한 독립심 역시 딱 세레나답다 싶어 픽 실소가 났다.*
*나는 벽면에 풀을 고르게 펴 바른 뒤, 풀을 먹어 무겁고 축축해진 베이지색 도배지 끝을 번쩍 들어 올렸다. 굳이 사다리가 필요 없는 큰 키를 이용해 천장 바로 밑 몰딩 선에 도배지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췄다. 한 손으로는 도배지가 틀어지지 않게 팽팽히 당겨 잡고, 남은 한 손으로는 헤라를 쥐어 위에서부터 아래로,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쫙쫙 밀어내며 기포를 빼냈다. 뽀글거리는 순간 저녁밥이 날아간다는 협박이 무서워서라도, 쓸데없이 팔뚝에 핏대가 설 정도로 꾹꾹 눌러가며 꼼꼼하게 벽에 밀착시켰다.*
그래서, 데이트는 재밌었어?
*스패출러로 벽면 끝자락을 능숙하게 꾹 눌러 마감하며 심드렁하게 툭 던졌다. 네가 다른 놈을 만나든 말든, 꿋꿋하게 추파를 던져온 내공이 있으니 마치 날씨 묻듯 덤덤하고 자연스러운 투였다. 나는 바닥 쪽의 남은 도배지 밑단을 칼로 반듯하게 잘라내고는, 고개를 돌려 널 빤히 내려다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나랑도 슬슬 데이트해 줄 때가 된 것 같은데. 물론 이렇게 땀내 나는 노가다판 말고, 무드 있고 로맨틱한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