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대전 노천시장에서 납치된 7살 소년
이정원 씨가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76년 대전에 있는 한 노천시장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대전에 있던 성실보육원으로 보내졌고,
나중에는 서울 근교의 상록 고아원으로 옮겨졌습니다.
1976년 12월 13일
한 미국인 남성이 고아원에서 저를 서울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두 달 뒤인 1977년 2월 23일 입양 서류가 작성되었고 한 달 후 입양 절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제 친가족은 대전 근교 외딴 산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제 친어머니는 장사를 하기 위해 저를 노천시장에 데려오셨고 저는 그곳에서 납치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친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1976년 당시 대전 근교에서 7살 남자아이를 잃어버린 가족을 알고 계시거나 관련 이야기를 들은 적 있으신 분이 있다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작은 제보 하나가 가족을 찾는 큰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부디 널리 공유 부탁드립니다.
#가족찾기 #실종아동 #미아찾기 #대전 #1976년 #이정원
[87년 경남 6월항쟁의 기록]
6월 18일은 국민운동본부가 선포한 ‘최루탄 추방의 날’이었다. 그날까지 경남도내에서도 최루탄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마산에서만 황선윤(27·농업), 이종명(창신고 3), 왕세근(29·노동자), 박영주(29·출판업 YoungJoo Park) 등 4명의 최루탄 부상자가 국민운동본부에 의해 집계돼 있었다.
이에 따라 경남대와 창원대·경상대생들이 교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투석시위를 벌였고, 특히 경남대 앞에서는 이날 오후 5시 30분 경찰이 학생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심한 구타를 자행했다.
https://t.co/zEfFa3OISv
"역겹고 구역질" 아파트 주민 갑질에 미화원 사과문... 누리꾼들 공분
-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미화원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함.
- 입주민 A씨는 SNS에 “미화 직원과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면 냄새 때문에 역겹고 구역질 난다”는 내용의 민원을 올림.
■미화원 팀장의 사과문
- 최근 날씨가 더워지면서 미화원들의 땀 냄새 때문에 민원이 들어왔다.
- 미화원과 엘리베이터 동승을 금지하고, 위생 관리와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
- 다만 “미화원들은 더운 날 배정된 구역을 청소하며 속옷이 땀에 젖도록 열심히 일한다. 냄새가 안 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라며 미화원들의 노동 환경을 설명하고, 입주민의 이해를 호소.
더운 날 열심히 일하는 미화원의 땀 냄새를 문제 삼은 입주민의 민원에 미화원 팀장이 사과문을 썼지만, 오히려 입주민의 무례한 태도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있는 상황.
중고등학생 키우는 부모님들께서는 애들, 특히 남자애들 자전거 사주실 때 돈만 쥐어주지 마시고 업체를 방문해 함께 자전거를 골라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브레이크가 달렸나 안 달렸나를 꼭 확인해 주세요. 뭔 소린가 싶으시겠지만 브레이크 없이 다리 힘으로만 멈춰야 하는 자전거가 있습니다. 그런 물건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판매하는 업자들도 있고요. 아이들이 그걸 타고 도로에서 묘기를 부리다 머리가 깨져서 신고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크게 다치거나 죽는 일도 많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건강검진 중 발견된 돌기 하나, 어린애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사과 한 조각, 그리고 겨우 자전거 한 대.
월드컵 틀어준 교사들 색출한 교장에게
성명문 낸 고등학생 ㄷ ㄷ
제발 월드컵 정도는 좀 틀어줬음 좋겠어요..
2시간 공부 안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게 아닙니다.
저도 월드컵 때 교실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응원한 기억이
아직도 가장 좋았던 추억 중 하나 임!!!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87년 경남 6월항쟁의 기록] 투쟁 거점, 마산에서 진주로 확산
광장은 투쟁열기로 마치 해방구를 방불케 했다. 시민들의 호응과 지지도 높았다. 당시 경남신문 기자의 취재메모에도 ‘진주, 시민들이 옆에서 먹을 것 사주며 격려’라고 적혀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지금도 옛 진주시청(현 진주시청소년수련관) 앞에 있는 ‘노가네충무김밥’ 주인 아주머니도 그런 시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더울 때여서 학생들이 목이 말라 하길래 그랬을 뿐”이라며 “옆에 화랑다방 주인 여자도 참 잘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6월 15일 진주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과 시민들. 경남신문 이영환 사진부장이 당시 신문에 실리지 못한 이 사진을 필름상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김주완에게 제공한 것 중 하나이다.
https://t.co/74sQduBtTJ
1987년 6월 15~17일 진주지역 대학생들의 시위와 고속도로 점거, 가스차 탈취는 14일 서울 명동성당 농성 중단으로 소강상태였던 항쟁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되었다. 이는 부산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워싱턴포스트>와 <타임> 등 외신에도 크게 보도됐다.
#6월민주항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