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탈취해간 아프리카 다호메이 왕국의 미술품 26점을 반환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호메이(2024) 봤는데 반환 기념 포럼에서 나온 우리가 미술품을 오직 외교만으로 되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짠 식민주의 사고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라는 의견이 인상적
궁의 황색 바닥은 일단 재료부터가 고급임. 첫째 재료 한지. 궁의 바닥은 한지를 깔지만 평범한 한겹 한지가 아니라 서너겹을 겹쳐만든 삼합지 혹은 사합지가 쓰임. 이것도 그냥 까는게 아니라 바닥에 밀풀을 먹여 단단히 밀착시킴. 이 한지 장판은 조선시대엔 전주가 유명했지만, 🥲
🚹 한강, 배재고 사태에 “그냥 지나가면 안 돼…혐오 극복 더 깊게 다뤄야”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56)이 최근 배재고 야구부의 5·18 비하 사건과 관련해 “이런 중요한 사건이 나타났을 때 충격과 놀라움 속에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더불어 세계 전반에 만연해 있는 “혐오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라고도 말했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방문 중인 한강은 15일(현지시각) 현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와 같이 밝혔다.
한강은 이어 “만약 (배재고)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 것이라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잘 포착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며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 친구들도 이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뭘 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로서 어떻게 하다가 우리는 이렇게 실패를 하게 됐나’ 이런 고민도 하고,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초 기자의 질문엔 ‘우리 사회 대응이 다소 과하지 않았느냐’는 취지가 담겼는데, 한강은 “우리가 이 문제를 좀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회를 밝힌 것이다.
관련하여 덧붙인 “충격이 또 다른 충격을 덮고, 그다음 충격이 이전 충격을 덮어서 이렇게 쓸려가 버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답변은 스타벅스의 5·18 비하 마케팅에 이어 극우 정치인들의 조롱 행위, 배재고 사태 등이 얽혀 서로가 서로를 희석하고, 사태의 본질보다 현상만 부각되거나 그마저도 상투화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들린다.
기사의 매 단락이 놀랍고 재밌음ㅠㅠ
“1년에서 2년 동안 좁은 닭장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폐닭들이 이제 밭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흙 목욕을 하며 농장의 성실한 일꾼으로 지내고 있다.”
농장주 "처음 데려올 때부터 닭들이 죽을 때까지 여기에서 살다가 죽으면 이곳에 묻히도록 할 생각이었다"
내맘대로 선정한 2026 인문교양대상 ㅎㅎ
아쉴 음벰베 <죽음정치>
루시 이스트호프 <먼지가 가라앉은 뒤>
디디 에리봉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이라영 <쇳돌>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를 사회로 연결짓는 텍스트를 좋아함.. 모아보니까 다 그런 식으로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해서 높은 것은 백두산으로 끝나는 이상한 노래 내지는 장난스러운 시 비슷한 것을 아마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18세기 조선에서 활동한 유한준의 "자저"에 실린 "언기(諺記)"에는 이런 이야기가 거리에 떠돌고 있다고 돼 있습니다.
배재고 야구부 더그아웃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가 합창으로 터져나왔다. 광주제일고와의 청룡기 경기, 6대 2로 배재고가 앞서던 8회초였다. 5.18을 농담거리 삼는 구호가 광주의 청소년들 면전에 쏟아졌다.
그때 광주일고 선수들은 “광주의 함성” 노래를 불렀다. 5.18 광주항쟁에 대한 너무나도 명백한 모욕과 조롱에, 광주의 학생들이 광주의 노래로 응수했다.
광주일고 야구부는 80년 5월 학살의 현장에 있던 팀이다. 진압군이 총칼을 들이댔던, 야구를 알던 장교가 선동열의 아버지 말을 들어준 덕에 부원들이 학살을 면했던, 그 학교 야구부다. 그래서 함성의 무게가 다르다. 기죽지 않고 맞서 싸워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배재고는 광주일고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같은 광주에 있는 동성고, 진흥고에도 같은 짓을 했다. 충암고 1학년들도 같은 짓을 했다는 증언이 올라오는 중이다. 광주 학교만 타겟으로 골랐다. 알고 한 거고, 과시하기 위해서 한 거다. 지역에 대한 명백한 혐오선동이고, 파시즘의 전조다.
그런데 이 배재고 학생들이 어디서 배웠겠나? 우리가 만든 사회에서 배웠다. 일베를 폐쇄하지도 못했고, 차별금지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했고, 지역 비하 하나 제재하지 못했다. 역사왜곡 금지법이 있어도 5.18을 농담거리로 만드는 어른들과 정치인들을 막지 못했다. 스타벅스가 5월 18일에 '탱크데이' 이벤트를 열어도 정용진의 사과와, 역사교육 쇼 한 번으로 끝났다. 그 한 달 뒤 고등학생들이 야구장에서 '탱크데이'를 외쳤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영 일베’가 되어버린 청소년들이 공개된 자리에서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건 철없는 실수가 아니다. 또래에게, 그리고 ‘올드 일베’에게 인증하는 계산된 과시 행동이다. 그리고 그 과시에 철저한 응징으로 응수해야 한다.
대책은 세 갈래여야 한다.
첫째, 가해 학생과 코칭스태프, 학교에 대한 엄정한 징계다. 야구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주의"로 끝내선 안 된다. 동성고·진흥고·충암고 건까지 전수 조사해야 한다. 한 학교의 사과문 한 장으로 봉합될 일이 아니다.
둘째, 이 청소년들에게 혐오선동을 가르친 일베 생태계 자체에 대한 응징이다. 7월 7일 시행되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의 5.18 왜곡 조항을 적극 적용해야 한다. 또한, 일베 폐쇄 논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셋째, 우리가 그동안 여러 이유로 미뤄온 법안들의 제정이다. 차별금지법, 혐오표현 처벌법, 역사왜곡 금지법의 실효성 강화를 이뤄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그 법들이 왜 필요했는지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증명했다.
광주의 아이들이 '광주의 함성'으로 답했다. 정치가 답할 차례다.
The End of Solitude
(아래 원문 발췌)
현대인의 자아는 무엇을 원하는가?
카메라는 유명인 문화를 만들어냈고, 컴퓨터는 연결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 두 기술이 융합되면서, 즉 광대역 인터넷이 웹을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전환시키고,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가 상호 연결의 그물을 점점 더 넓게 펼쳐 나가면서 이 두 문화는 공통된 충동을 드러내고 있다.
유명세와 연결성은 모두 ‘알려지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자아’가 원하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어 하고, 연결되기를 바란다. 즉, 눈에 띄고 싶어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보임’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도 실재하는 존재가 된다. 현대인의 가장 큰 공포는 익명성이다. 라이오넬 트릴링의 말이 옳다면, 낭만주의에서 자아의 토대가 되었던 속성이 ‘진실성sincerity’이었고, 모더니즘에서는 ‘진정성authenticity’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가시성visibility’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로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가며, 그런 삶에서 사라지는 것은 고독이다. 기술은 우리의 사생활과 집중력을 빼앗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도 앗아가고 있다.
가시성은 우리의 자존감을 지탱해 주며, 진정한 유대감을 대신하는, 두 단계나 떨어진 대안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로움을 느끼기는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텔레비전은 할 일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배울 필요성을 없애버림으로써 그 시간을 즐기는 법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상태를 오히려 두려운 것으로 만들고, 그런 예감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지루해지는 것을 두렵게 만든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켠다. (이제 폰으로 바뀌었다.)
지루함은 자극을 갈구하는 시장을 창출한다. 때문에 소비 사회는 우리에 지루함을 조건지우려 한다.
지루함이 TV 세대의 대표적인 감정이라면, 외로움은 웹 세대의 대표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 능력, 즉 한가함을 누릴 능력을 잃었다. 그들은 혼자 있는 능력, 즉 고독을 누릴 능력을 잃었다.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한 마음을 믿지 않는다.
소통은 자기 자신이나 친한 지인보다는 세상의 대중을 대상으로, 언어적 표현보다는 시각적 표현을 통해, 서사적·분석적 방식보다는 공연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모든 면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 깊이에 대한 감각과, 그 깊이를 숨겨두는 것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고독이 우리로 하여금 자아의 온전함을 지킬 뿐만 아니라 탐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사회와 거리를 두는 것은 사회를 넘어서는 사고를 시작하는 것이다. 에머슨은 고독에 대해 “천재에게 고독은 엄격한 친구”라고 말했다. “자신의 종족에게 영감을 주고 이끌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동행하는 것, 그들의 의견이 만들어낸 일상적이고 낡은 멍에 속에서 생활하고, 숨 쉬고, 읽고, 쓰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지적·도덕적 합의의 흐름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특히 청년기에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고 에머슨은 덧붙였다.
에머슨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별도의 방과 난로”, 즉 고독을 누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하다고 믿었다. 물론 오늘날 대학들은 학생들이 자해 행위를 저지르거나,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품을까 봐 그들이 혼자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개인적이든 사회적, 예술적, 철학적, 과학적, 도덕적이든 진정한 탁월함은 고독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성자와 시인은 가장 공적이고 보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적 생활을 추구한다.”라고 에머슨은 말했다.
고독은 쉽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도 아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고독은 언제나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이었다.
빈둥거리며 자신의 영혼을 초대하는 것을 선호하고, 남들과는 다른 리듬에 맞춰 걷는 젊은이들-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이 바로 그 예외일 것이다.
문화의 흐름을 되돌릴 힘은 누구에게도 없다. 자신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정도는 언제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인기가 없어도 괜찮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고독에 대해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것이 그리 예의 바른 행동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로는 고독이 길러내는 ‘이중성’, 즉 한 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삶을 관찰하는 능력이 우리를 동료들에게 다소 불쾌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교제를 피하는 데 내재된 불쾌감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는 친근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하루 세 번, 식사 시간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의 문자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친근함-가벼운 미소, 예의 바른 관심, 가식적인 초대-을 핵심 미덕으로 삼아 왔다. 우정은 우리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친근함은 보편적이다.
'사교적인gregarious'이라는 단어가 '무리의 일원'을 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소로는 자기 내면의 평정을 지키는 것이 몇몇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이웃들을 불편하게 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다. 고독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홀로 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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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불감증에 빠진 나라
영혼이 병든 줄도 모르는 사회를 깨어나게 하려면
(아래 원문 발췌)
일론 머스크가 세계 최초의 1조 달러 갑부가 되자 사람들은 그 규모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다. 가장 쉬운 환산은 이거다. 그의 자산은 일반 미국 가정의 500만 배가 넘는다.
플라톤은 저서 <법률>에서 번영하는 공화국에서는 누구라도 재산이 가장 가난한 시민보다 4배가 넘으면 초과분을 나라에 기부해야 한다고 썼다. 현대 사회가 부의 불평등에 얼마나 둔감해졌는지 보여준다
플라톤이 나고 자란 아테네는 한때 빈부 격차로 인해 분열 직전까지 갔던 곳이었다. 도시를 구한 영웅이 입법자 솔론이었다. 그는 부자들의 반발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빚을 모두 탕감해 줬다.
플라톤이 젊을 때도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는 중에 계급을 기반으로 한 내전을 세 차례나 연이어 겪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 상대로 일으킨 과두제 혁명이 있었고, 뒤이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상대로 일으킨 민주제 혁명이 있었으며, 그 후 또 다른 과두제 혁명이 뒤따랐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불평등을 성찰하며, 빈부 격차가 심한 국가는 국가라 할 수 없으며, 차라리 “가난한 자들의 국가와 부자들의 국가라는 별개의 두 국가가 같은 땅에 살면서 끊임없이 서로 모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이 볼 때 불평등의 근원은 그리스인들이 ‘플레오넥시아pleonexia’라고 부른 영혼의 병, 즉 끝없는 탐욕이었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 상태를 물이 새는 주전자에 비유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주전자는 더 많은 물을 요구할 뿐이다.
어떤 이들에겐 돈에 대한 욕구가 자기 필요를 충족시키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어떤 이들은 무한하다. 플라톤은 이런 만족을 모르는 영혼들을 욕망에 지배당하는 노예에 비유했다.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인류 전체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감정보다 훨씬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정의롭고 선하며 고귀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진리보다 자신의 욕망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이 부유해진 사람이 동시에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플라톤은 썼다.
플라톤의 우려는 이미 10조 달러를 넘보는 머스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는 공감 능력을 “서구 문명의 근본적인 약점”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초부유층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우려를 확증했다. 그는 이른바 ‘정부 효율성 부서’를 통해 미국 국제개발처USAID 프로그램을, 그가 신나서 표현한 것처럼 ‘목재 분쇄기에 집어넣어’ 버렸고 그로 인해 약 60만 명의 사망에 기여했다. 이런 참상은 부에 상한선을 두지 않기로 선택한 사회에서는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일찌감치 플라톤은 불평등이 심한 곳에서는 ‘4대 1의 비율’ 같은 이상적인 해결책이 실행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입법자들과 시민들이 체념해 손을 놓고 있게 하진 않았다.
그는 시민들(‘공정 의식’이 있는 소수 부자를 포함)에게 과도한 부를 가진 자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사회를 평준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진정한 빈곤이란 “재산의 감소가 아니라 탐욕의 증가에 있다”고 역설했다.
극단적인 탐욕의 해악을 가르쳐야만 비로소 사회는 번영하는 공화국에 필수적인 부의 건전한 균형을 회복하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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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 안썩고 잘 나온건 그냥 세조 이후로 무덤을 만들 때 삼물이라 하여 황토, 숯 혹은 모래, 석회를 섞은 것으로 관을 덮어버렸기에..
비가 오거나 하여 물이 닿으면 석회가 굳으며 발열하고 그 결과 일종의 밀봉된 콘크리트 안이 고온멸균되는 일이 일어나 조상님 통조림이 되어버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