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신앙, 헬스케어, IT트렌드 등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나눔을 통해 더 나은 나,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I am interested in faith, healthcare, IT trend. I hope twit-sharing to make me and us better.
물론 여권신장(女權伸張)은 외국인선교사가 학교를 세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 여성들이 학교를 다닌 거 자체가 그전엔 거의 없던 일이니까.
그리고, 일제가 여성에서 선거권을 준 건 아니잖아 ㅎ 만약 기여한 바가 있다면 상세히 설명해 주길 바래.
삼일운동 때 죽은 조선인 수와 일본 경찰 수를 비교하면 어디가 더 많을까?
나도 현재 한국 내 한국사에 의문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너의 포스팅이 흥미로웠는지도 몰라.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시킨 점 분명 있다고 봐. 조선의 식자들이 일본 유학을 했고, 일본을 통해 근대화에 대해 배웠을 거야. 현재꺼지도 한국의 많은 학술언어는 일본에서 수입한 거지. 얼마 전 한국 문화훈장을 받은 윤동주 시인도 도시샤(同志社)대학을 다녔지.
한국에 증오를 갖고 한국인이 다 잘못됐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야. 한국을 까는 건 좋은데, 정직하게 사실에 입각하여 까길 바란다.
그건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배재학당, 이화학당은 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입니다. 연세대학교도 연희전문대와 세브란스병원 앞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학교명이고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하였죠.
기독교 사상에 입각하여 남녀평등 개념이 조선에도 도입되었고, 삼일만세운동의 상당한 참여자가 이때 교육을 받은 분들입니다. 유관순 열사도 그 중 한 명이었고요.
한국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영국은 1649년 찰스 1세가 처형되고 왕당파와 의회파가 격하게 맞붙은 끝에, 1689년 명예혁명으로 의회 중심 정치의 토대를 놓음. 프랑스도 1789년 대혁명 이후 100년 가까이 정치적 혼란을 겪음.
한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는 꽤 됐지만, 지금은 그 민주주의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함.
요즘 MZ세대의 발언권이 세진 것도 어떻게 보면 긍정적임.
제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군이 태평양 섬들에서 전투할 때 일본군이 극렬히 저항하여 미국에 대량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처음엔 미군이 일본 본토 상륙 작전을 검토하였으나 인명희생이 너무나 커질 것을 우려하여 다른 방법을 찾은 것이라 합니다.
일종의 극약처방이죠.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사회는 언제나 정의와 사랑을 원해 오지 않았을까.
기독교인을 비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봉사에 가장 많이 힘써 온 곳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다.
다만 사회정의를 말하는 일에는 교회가 소극적이라는 인상이 있다. 그건 교회가 할 일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은 거 같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의 탐욕에 분노해 성전을 정화하셨고, 바리새인의 위선을 지적하셨다. 안식일 논쟁에서는 율법(법)의 참된 정신을 말씀하셨다.
세리와 창기, 외국인, 아이들을 향한 그릇된 시선도 바로잡으셨다. 그러면서도 단죄에만 머물지 않고 용서하셨다.
정의와 사랑.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Our culture rightly longs for justice.
The gospel asks a deeper question: What do we do when we're the ones in need of mercy?
At the cross, God's justice and His grace meet. The gospel offers not only justice, but the hope of redemption.
—Michael Keller
https://t.co/EvZIBEIiwf
알렉스 보통의 《불안》 중 속물근성에 대하여.
속물의 정의: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 하는 사람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능력주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 덕분에 다수가 자신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수백 년 동안 부동의 계급 제도 내에 억눌려 있던 재능 있고 똑똑한 개인들이 이제 전체적으로 평평한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재능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알렉스 보통은 《불안》에서 과거보다 잘 사는 현대인이 왜 불안을 느끼는지, 다른 말로 하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지 설명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현대사회의 1) 높아진 기대, 2) 능력주의 때문이란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높아진 기대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발전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