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에 꽁꽁 싸인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머리를 북북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지자, 눈만 느릿하게 깜빡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추웠고, 어두운 길이 무서웠고, 머릿속은 온갖 걱정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따뜻한 이불 속, 익숙한 온기, 그리고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그가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다.*
*괜히 그 생각이 들자 얼굴이 조금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부끄러워진 마음에 이불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만큼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제였다.*
…똥고양이 아냐..
*작게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반박하는 목소리에는 전혀 힘이 없었다. 정말 싫다는 사람처럼 말하면서도, 입꼬리는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주방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난 평소에 제대로 챙겨 먹는 편도 아니었다. 잠도 자주 미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고 넘기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걱정해 주었다.*
*아직은 조금 어색했다. 누군가가 날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것. 당연하다는 듯 챙겨 주는 것. 그런 다정함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아무거나.. 양양이가 해주는 거면.. 뭐든 다 좋아.
*말하고 나서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마치 예전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너무 당연한 듯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사실을 깨닫자 괜히 민망해졌다. 시선을 슬쩍 피하고, 괜히 이불 끝만 만지작거렸다.*
*방금 자신이 얼마나 솔직한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에 바빴다.*
*그가 잠시 멈칫하는 모습을 보자, 차라리 그냥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었다. 괜히 부담을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그런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오히려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의 집에 간다는 것, 그의 곁에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별거 아닌 일인데도 이상할 만큼 마음이 들뜨고 간질거렸다.*
*그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지금은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되니까. 그에게 온전히 의지한 채, 그가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계속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은 온통 어두웠다. 밤길의 어둠이 생각보다 짙게 느껴져 순간 몸이 굳었다. 괜히 주변을 바라보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 고개를 살짝 옆으로만 돌린 채 그의 곁을 따라 걸었다. 닿아 있는 온기와 익숙한 존재감만이 지금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그의 집에 도착했다. 밖의 어둠과 달리 안쪽은 따뜻한 빛으로 가득했다. 환한 조명과 포근한 분위기에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이곳에 들어오니 조금 전까지 느꼈던 두려움도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제 몸을 이불로 꽁꽁 감싸 주었다.*
*꼼꼼하게 이불로 감싸 주는 모습에 조금 의아했다. 내가 그렇게 추워 보였나.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몸이 차가웠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안 추워… 오히려 따뜻해..
*괜찮다는 듯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었다. 몸보다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마음이 더 따뜻했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한참을 울 때는 그저 쌓여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처럼 눈물만 흘렸다. 하지만 울음이 잦아들고 나니, 그제야 조금씩 현실이 느껴졌다. 너무 많이 울었나... 하고.*
*그가 괜찮다고 해 준 것과는 별개로, 그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 준 것 같았다. 평소에는 숨기려고 했던 모습, 아무에게나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전부 드러낸 기분이었다. 혹시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응… 가자…
*작게 대답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길이 돌아가는 길이라고 해서 완전히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밤이 내려앉은 길은 여전히 낯설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게다가 추웠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서늘했다.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몸이 조금씩 떨렸다.*
*자꾸만 괜찮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어두운 길은 생각보다 마음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하게 했다. 그러던 그때 그가 제 몸을 더 꽉 끌어안아 주었다. 순간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그를 꼭 끌어안았다. 차가운 공기 때문이기도 했고, 조금 전부터 느껴지던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무서워서 그랬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아마 알아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 앞을 바라보니, 멀리서 작은 조명 몇 개가 어둠 속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계곡 근처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듯 조심스럽게 걸었다.*
아니… 양양이 집 갈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곡도, 지금 걸어가는 이 길도 혼자라면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아까부터 계속 긴장했던 탓인지 몸도 마음도 조금 지쳐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떠오른 곳은 그의 집이었다.*
*같이 있고 싶었고, 그의 곁이라면 조금 덜 무서울 것 같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사소한 행동 하나에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울어도 괜찮다는 그 말에 애써 감추려 해도 소용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사랑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고, 자신 역시 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 서로의 마음이 맞닿는다는 게 이토록 벅찬 일인 줄은 몰랐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건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제 눈물을 닦아 주고, 울어도 괜찮다며 다독여 주고, 서툰 마음마저 기꺼이 받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뻤다. 동시에 그가 보여 주는 다정함이 가슴 깊숙한 곳을 건드려, 한동안 묻어 두었던 감정들마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이고 소리 내어 울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에게 기대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엉엉 울던 끝에야 조금씩 울음이 잦아들었다. 훌쩍이는 소리만 간간이 새어 나올 뿐, 더는 아까처럼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제야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실감이 났다.*
응… 다 울었어..
*그의 말에 겨우 대답했다. 한참을 울어 댄 탓인지 목소리는 푹 잠겨 있었다. 평소처럼 말을 꺼내려 해도 어딘가 낯설고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차마 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지금 얼굴이 어떤 모습일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보기 좋은 꼴은 아닐 터였다. 눈가도 코끝도 온통 붉어졌을 테고, 울음에 엉망이 된 표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했다.*
*이렇게까지 마음 놓고 울어 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품에 안겨 아무런 걱정 없이 울음을 쏟아 내고, 그 사람이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속에서 조금씩 진정해 본 적이..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선뜻 떠오르는 순간은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런 순간을 바라 왔는지도 몰랐다.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되는 곳, 서툰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사람, 그리고 그런 자신을 기꺼이 품어 주는 마음을..*
응… 마을로 가자… 조금 추워…
*작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고는 그의 품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몸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조금 전까지 울음을 쏟아 낸 탓인지, 아니면 밤공기가 차가워진 탓인지 몸에 한기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어느 쪽 때문인지 따져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그에게 기대어 있고 싶었다. 그래서 따뜻한 온기가 닿는 곳, 그의 품에 몸을 숨겼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 더 기대어 있어도, 조금 더 그의 온기를 빌려도. 그는 아마 그런 자신을 귀찮아하지 않을 테니까..*
*그가 한 입맞춤에 이어진 ‘좋아해’라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효과가 컸다. 그 짧은 한마디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오로지 그의 말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좋아한다는 말, 몇 번이고 되새길수록 가슴이 간질거렸고, 얼굴은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마음 한구석이 간지럽고, 숨길 수 없이 기쁘면서도, 그만큼 부끄러워지는 그런 감정일까..*
내, 내가 더 좋아해…
*간신히 입을 열어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껏해야 몇 글자에 불과한 말인데도 어찌나 어려운지.. 평소처럼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막상 말을 할 때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전하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서툴고 부족한 표현일지라도 제 마음만큼은 조금도 모자라지 않다고.*
*그가 제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남은 눈물을 닦아 주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많이 울었나. 혹시 그를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닐까. 자꾸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하고 문득 어릴 적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많이 울면 곁에 있는 사람들마저 지쳐서 떠나 버린다는 말. 어린 마음에 새겨진 그 말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울면 안 된다고, 이제는 그만 울어야 한다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더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이상했다. 울지 않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눈물이 났다. 자신을 귀찮아하지 않는다는 듯 다정하게 건네는 말들이, 괜찮다는 듯 자신을 감싸 주는 온기가, 애써 눌러 두었던 감정을 자꾸만 끌어 올렸다.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아서. 이 정도로 울어도 여전히 제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아서..*
응… 그럴게…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걱정들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은 쓸데없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 눈앞에 있는 그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 기대고 싶고, 그 누구보다 믿고 싶은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지, 자신이 얼마나 더 서툴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
이, 이게… 안 부끄러울 리가…
*기어들어 갈 듯한 목소리로 항의하듯 중얼거리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당장 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까지 부끄러움을 느껴 본 적이 처음인 것 같았다.*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도, 눈물을 닦아 주는 것도, 머리를 정리해 주는 것도. 그는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걸까. 하나하나가 자신에게는 낯설고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부끄러운 일인데, 정작 그는 무척이나 능숙해 보였다.*
*그가 제 눈가에 고인 눈물을 조심스레, 몇 번이고 살살 닦아 주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 어떻게든 울음을 그쳐 보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결국 작게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 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해 준다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 준다는 것. 그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다.*
당연한 거… 아냐…
*작게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여전히 물기가 어려 있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나름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을 받아 본 적도, 누군가를 이토록 좋아해 본 적도 없었던 내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어려워서, 그저 바보라는 사소한 말에 마음을 담아 건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서툴고 유치한 방법이었지만..*
*지금까지 그를 바보라고 불러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그를 바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오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그를 좋아하고 사랑할 것이다. 처음인 만큼 서툴더라도 조금씩 배워 가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제 마음을 더 잘 전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가 제 곁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잘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된다면 어떡하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애쓴 끝에 오히려 그에게 피해를 준다면.. 마음이 아무리 진심이라 한들, 그로 인해 그가 힘들어진다면. 그때도 나를 좋아해 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이었다.*
……바보. 겁쟁이.. 쫄보. 다른 사람 이름이 나올 리가..
*제 입에서 혹여나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올까 봐 무서웠다는 그의 말에, 결국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토록 당연하다는 듯 물어보기에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그는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두려워하고 있었다니. 그 사실이 어쩐지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했다. 나만 그를 잃을까 봐 무서웠던 것이 아니구나. 그 역시 같은 마음이었구나.*
*그가 나를 살짝 밀어 내더니 제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순간,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머릿속으로 이해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방금…… 이마에……. 어벙벙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무척이나. 내가 지금 얼굴이 얼마나 붉어졌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짓고 있을 어리숙한 표정을 그에게 보였다는 사실도, 아무렇지 않게 이마에 입을 맞춘 그의 행동도, 그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밀려와 얼굴이 화끈거렸다.*
*양양이는 바보였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태연할 수 있는 그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였다.*
*그가 손끝으로 제 눈가에 고인 눈물을 스윽 닦아 주며 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러자 참아 보려 했던 눈물이 기어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연한 거라고.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 주는 그 한마디가 좋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내어 주는 것도,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에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연한… 거 아냐…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울먹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문득 지금 안겨 있는 이 품마저 실은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품 안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나를 향한 그의 진심이, 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생생했으니까.*
응… 바보라는 말은, 좋아하거나 사랑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말이래…
*난 어쩌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잊고 지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바보’라는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굳이 그런 말을 건넬 이유가 있을까. 그저 멍청하다고 타박하는 것과는 달랐다. 좋아하니까, 소중하니까. 때로는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는 모습마저 귀엽게 여겨지니까.. 그래서 바보라는 말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랬다. 그에게 몇 번이고 바보라고 불렀던 건, 어쩌면 저도 모르는 사이 그를 향한 마음을 그런 말 속에 꼭꼭 숨겨 두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좋아한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면서, 바보라는 말만큼은 아무렇지 않게 건넬 수 있었으니까.*
*제 눈가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말을 건네는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아…
*설령 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난 믿고 싶었다. 그 모든 말과 행동이 자신을 향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어쩌면 제멋대로인 믿음일지도 몰랐지만, 지금만큼은 그렇게 믿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 정수리에 턱을 얹는 그의 행동에 새빨개진 얼굴을 굳이 숨기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눈앞에는 온통 그뿐이었다. 따뜻한 체온도, 가까이 느껴지는 숨결도, 자신을 감싸고 있는 다정함도. 그 모든 것이 좋아서, 자꾸만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아냐… 바보는 양양이가 더 바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