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
심적으로 이렇게 안정적이었던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박제하고 싶은 시간들이 늘어가고, 평생 이렇게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다.
원체 생각이 많던 사람이다 보니 이런 안정감이 낯설면서도 비로소 마음 둘 곳을 찾은 듯해 안도하게 된다. 결디는 좋은 거구나 😌
결디 이후에도 변한 건 없다. 24/7, 하슬로서의 삶은 동일하다. 애초에 연디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새삼스레 달라질 것도 없었다.
다만 우리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이름 붙여지고 공표되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주인님께서 나의 완전한 법적 보호자가 되셨다는 사실 정도가 변했을 뿐이다.
조금 다른 주제지만, 이와 같은 이유로 '관계를 발전시켜 결디를 맺게 되었다' 라는 문장은 내 기준에서 영 이해하기가 힘들다. 디엣에서 결혼은 둘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관계에 사회적인 목줄을 추가적으로 걸어주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종의 옵션 같은 느낌.
주인님은 다정하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다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매번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그다지 다정하지도 않고 어딘가 한쪽 구석이 물렁한 사람이라서, 올곧은 자세로 정도(正道)를 걷는 주인님이 늘 멋져 보인다.
그 뒤에 서면 마음이 든든하다.
동화 속 행인이 자발적으로 옷을 벗게 만든 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닌 햇살이었다. 부드러���이 지닌 힘은 그런 것이다. 스스로 경계를 허물게 만들고, 자각조차 할 수 없게 서서히 잠식하는 것. 그래서 도를 넘은 부드러움은 오히려 파괴적이라고 느껴진다. 사람을 다루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버리니까.
주인님과 둘만 있을 때는 '주인님' 그 외의 상황에서는 '선생님' 으로 호칭을 통일한다. 자기, 여보, 오빠 같은 호칭은 사용하지 않으며 경어를 유지한다.
그러다보니 길에서 나도 모르게 '주인...' 까지 뱉어내고는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많다. 몇 안 되는 당황스러운 순간 중 하나다.
서로 애정표현이 늘었음을 느낀다. 주인님도, 나도 이쪽으로는 꽤나 서툴고 딱딱한 스타일인데 시간이 흐르며 조금 유들해졌다.
주인님께서는 여전히 남사스럽다고 손을 휘휘 저으시지만, 명절 귀갓길이나 퇴근길에 나를 떠올리며 선물을 사 오신다거나 ���금없이 이런 글을 툭 보내주시고는 한다.
주인님께서 구체화된 결혼 이야기를 해주셔서 웨딩홀과 스드메를 조금씩 알아보고 있다.
워낙 준비할 것도 많고, 업체도 다양해서 우선��� 드레스부터 정해보자는 느낌으로 이곳저곳 구경 중인데... 드레스라인, 넥라인은 커녕 실크vs비즈 조차 정하지 못했다. 전부 예뻐 보여서 고민이다.
요즘의 작은 취미. 결혼식이나 파티 등의 일정으로 서로 멋지게 차려입은 날, 주인님과 함께 인생네컷 찍기.
주인님께서는 사진 찍는 게 그렇게 좋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씀하시면서도 늘 함께해 주신다. 요즘은 사진 부스가 보이면 오늘은 사진 안 찍냐고 먼저 물어봐 주시기도 한다.
주인님께서도 혼자 남은 내가 외로워하는 걸 알고 계셔서, 틈틈이 전화도 주시고, 사진도 주시고, 시시콜콜한 카톡도 많이 남겨주셨다. 그래서 조금 살만하다.
디엣 초반에는 보고 싶다는 말도 꾹꾹 눌러 삼키며 1~2주에 한번 겨우 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대체 어떻게 살았나 싶다.
주인님께서 열흘간 지방에 다녀오시는 일정이 생겼다. 나는 따라갈 수 없어서 집에 남았다. 오늘로 7일째. 주인님이 너무 보고 싶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하루를 마무리할 때까지 오매불망 주인님의 귀가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로 강아지가 된 것 같다. 전화가 오면 없던 꼬리도 생기는 것 같다
디엣 3년차를 향해가면서도 권태감은커녕 매일매일 익숙한 이유로, 그리고 가끔은 낯선 이유로 주인님이 좋아진다.
언제 이렇게 마음이 커졌는지 가만두면 자꾸 흘러넘쳐서 글로 비워내고 있는데 이 과정마저 즐겁고 행복하다. 주인님께서는 내게 끊임없이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 같다.
당연한 말인데도, 화려한 껍데기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저 말을 들으니 왈칵 눈물이 났다.
주인님이 나를 섬세하게 살펴보고 계셨다는 사실, 나 자체를 아껴주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한��을 훌쩍였다.
그동안의 고민들이 최근 잘 풀렸는데 유독 저 날이 떠오르더라. 주인님께 참 감사한 일이 많다 🥺
"꼭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나는 늘 네 편이다."
몇 달 전,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 부담을 느끼고 있을 적에 주인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일이 힘들다고는 했어도 심적인 부담감을 말씀드린 적은 없는데, 이미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다들 좋은 뜻으로 내가 더 유명해지기를, 그래서 내가 더 많은 부를 쌓아 올리기만을 바랐다. 나조차도.
그래서 내가 더 높은 곳으로 가면 주인님께서도 마냥 좋아하시���지, 딱 그 정도 생각으로 애를 쓰고 있었는데 저 말씀을 해주셨다.
중요한 건 네 껍데기가 아니라 너 자체라고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