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궈나가는 일은 몹시 외로운 일인가봐요. 삶은 방향성이 있는 탓 한쪽으로 기울어 쉽사리 무너질 것만 같아요. 위태로움은, 지탱하는 게 있다면 위협이라 불리게 돼요. 기나긴 마음의 흔들림은, 현실의 흔들림에 대한 선행학습이 아니었어요. 언제나 새로운.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긍지 가득한 산등성이 넘어 우리 대지와 풀밭의 세계로 비록 불씨 없을 냉소의 저편이어도 머금은 걸음 하나 둘 넷 방황도 지평에서 망각도 바다에서 발버둥도 파도에서 사실 괘념치 않은 적 없을 순간들 그 따가운 눈총 마음 한켠 상흔 먹이가 되지 못한 기억 잡지 못할 손 내밀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저는 마음이 몰릴 때면 득실을 찾아요. 이것으로 얻을 것이고, 마음은 자고 일어나면 다시 땅으로 돌아갈 거라며, 얻는 것과 잃는 것 재어 마음을 등한시해요. 이 냉정과 그럴듯한 성숙함, 사실 냉소는 커녕 ��초적인 회피일 뿐이에요. 다 그런 거라고요? 그렇구나. 어른의 포장은 더 촘촘하구나."
"어른의 도망침은 결국 앞을 딛는 거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지언정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거구나. 마음의 단단함은 근거가 아니라 방향에서 오는 거구나. 모든 걸음은, 다른 무게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방황하는 거구나. 단지 아무도 그게 방황인지 모르는 거야. 본인 역시도 말이야."
좋아하니 옮아요. 손 움켜쥔 세기와 말 맺음, 시선에 담긴 힘, 하나하나 따갑게 의식돼요. 일상 속 마음에 벽 치는 방법은 줄곧 잘 알고 있었는데: 좋아하면, 좋아하면, 쉽사리 옮고 같이-각자 앓아요. 그래서 함께 처지고 함께 꿍해져요. 그는 안 그러던데. 좋아함과 성숙함은 어떻게 함께 머금나요?
그러나 잔해가 없는 곳은 아무것도 새로 쌓아나갈 수 없잖아요 무너짐의 미학을 따르기엔 진작에 사회로 나왔지만요 지키는 삶은 무척 고요해요 새벽이 아침에 닿을 적 봄과는 다른 결의 적막 해친 풀숲을 돌아보고 또 놓고 온 것들을 두 눈으로 분명히 바라보아요 딛은 평야의 발밑엔 무엇이 있었는지
텍스트 둘 하나 잃어감에도 썩 괜찮은 건 마음이 더 건강해졌기 때문일까요? 나는 언제나 불 마음 한켠 잔여가 한가득이었는데, 요샌 세상을 살아가며 태워야할 것들 한가득이라 땔감도 품절 잔재도 텅 비었어요 관성없는 마음은 이리저리 떠돌기 마련이니까 바���에 나온 나 이제 멈춰선 안되니까
멀어지는 것은, 마음에서 가까워져요. 돌이키지 않은 순간만이 늘 꿈에 등장하지요. 사랑하나 사랑이 아니게 된 것들은 본디 오밤중 얇은 이불 속 튀어나와 손을 뻗어요. 햇살을 머금은 구름은 자주 울고 떤대요. 나 역시 온기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쳐서, 날씨가 없는 곳으로 저 멀리 멀리.
이어지는 것을 사랑할래요. 다시, 이어지는 것만 사랑할래요. 마음은 유한하니 맞잡은 것을 평생 껴안고 살아가고 싶어요. 왜냐면, 마음은 비싸니까. 마음은 봄처럼 비정하니 겨울에 피어나는 꽃처럼 만연하지 못하니까. 나는 사랑하게 될 것을 사랑할래요.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될래요.
지나친 것들 돌아보면 두고온 마음 한��득 토해내지 못한 미움과 분노 이어가지 않은 사랑 이어가지 못한 사랑 또한 흩어져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지요 시간은 감정과 기억에 낡아가니 아릿한 연정만 입가에 남아있어요 그러니 나, 마음은 늘 묽게, 온 짙음을 시선에 담을래.
묽은 눈시울엔 먼지 하나 둘 남들 다 겪을 별 거 아닐 풍파 다들 이런 발버둥 몸에 지니고 사나요 같은 하늘 같은 세상 같은 눈 빛바랜 긍지와 잊은 신념 난 이어가고 싶은 것이 생겨요 기어코 손 안에 연과 정 한 줌 작은 모래성을 쌓아 온 세상 대적해요 강인한 성은 커다랗지 않다고 했으니까
다만 냉소와 허무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수단이 목적이 되지 않도록, 혼을 잃은 껍데기뿐일 존재가 되지 않도록, 유한한 마음을 지켜요. 색채가 변할지라도 질감은 변하지 않았음해요. 이십의 후반은 원래 그런 나이인 거겠죠. 세상의 냉소에 손쉽게 중독되고야 마는 그런 시기, 그런 거겠죠.
안온함은 비싸니까, 따스함도 비싸니까,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요. 그저 평범히 유지되는 어떤 삶을 살아가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구나. 시행착오는 어리다는 이유로 할인해주지 않아요. 마음도 돈도 유한하니 우리는, 우릴 갉아먹는 것들로부터 우릴 지키고 더 머나먼 곳으로.
삶의 본질은 어려워요. 삶의 목적도 어렵고, 형체도 어려워요. 어느 곳이 평범인진 사실 잘 모르겠어요. 많이 잊었거든요. 그런 것 숫자와 계산으로 나오는 기준이 아닐테니까. 다만 그저 안온한 삶, 다만 그저 따스하고 평범한 삶, 내 이상은 늘 보이지 않으나 손 뻗으면 닿는 곳에 둘래요.
푸르른, 평화롭고 따스한 나날을 줄곧 이상으로 품고 있어요. 여전히, 가장 평범한 게 가장 특별한 것이라 믿지만, 도시의 기류는 그 평범의 기준조차 몹시 높이고 말아요. 그러니 쉴새없이 살아요. 무얼 위해서인진 잘 모르겠어요. "더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말은 모순이지 않나요.
순간을 가쁘게 들이쉬는 습관을 도시에서 얻었어요. 도시의 공기는 희박하여 나눠가질 새도 없이 잔뜩 들이마셔야 하나요. 공기, 공간, 물, 수면, 음식, 이동, 건강. 삶의 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데엔 얼마나 많은 숨이 필요할까요. 채우고자 하는 숨은 영원히 가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사라져도 공백으로 마음 한켠 차지하는 순간들, 영구적인 빈 서랍으로 남는 어느 시기들. 나는 잊는 ��� 곧잘 함에도 다시 채우는 데엔 몹시 미숙해요. 어른이 되면 될 수록 더욱 미숙해요. 셋 다음 다섯, 여섯 다음 아홉. 그렇게 빈 것이 넷-일곱-여덟 늘어나다보면 열 다음 기어코 아홉되는 건가요.
비 오는 여름밤 문득 찾아오는 일렁임, 애써 쳐다보지 않은 지 몇 년이 되어 잊힌 어떤 순간의 어느 기억, 기억이 형체없이 찾아와. 풍경도 사람도 시기도 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으나 그 질감, 기류, 맺힘, 창백, 욱신거림, 모두 낯이 익어. 여름밤 빗줄기에 묻힌 순간들은 줄곧 공간을 차지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