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BDSM 성향
이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통계로 한 추론과 가설임을 미리 밝혀 둔다.
나의 서브였던 아이들 그리고 오랜시간 BDSM에 있으며 자연스레 형성된 지인들의 직업에 어떤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그리곤 하나의 명제가 떠올랐다.
BDSM 성향과 직업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연관이 있다면 BDSM 성향이 지금의 직업선택에 영향을 주었을까?
아님 현재의 직업이 BDSM 성향에 영향을 주었을까?
일단 내가 발견한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직업군이 특정 성별에 국한되거나 구성원들이 특정 성별로 쏠림 현상이 다분한 직업군들이었다��� 것이다.
예를 들면 디자이너, 간호사, 어린이 선생님, 군인등과 같이 특정 성의 쏠림이 심한 직업군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가설임에 이는 절대적 가치의 기준은 될 수 없다. 즉, 특정 성의 쏠림이 많은 직업군이 반드시 성향과 연결된다는 억지가 아닌 직업과 성향 상호 간의 영향력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가설이다.
이에 대해 가장 확실한 직업군은 군인이다. 가장 폐쇄적 환경을 가지며 남성이라는 특정 성 쏠림이 확실한 직업군이다.
대부분 군대를 갔다 온 건장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군대란 폐쇄적 환경에서 성에 대한 욕구와 상대 성(여성)에 대해 성적대상화가 심화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이것은 군대가 아니라 감옥(교도소)이란 더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환경에서 기존에 없었던 성향이 환경에 의해 동성애를 시도하는 케이스도 발생한다.
이 현상은 조물주가 숫컷에게 종족번식이란 의무감에 강한 성욕을 ��께 저주로 준 남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들 역시 같은 성으로 군집을 이룰 때 음단패설에 자유롭다.
실제로 주위 간호, 유아교육직에 종사하는 지인들의 말을 인용하자면 평소 수다를 비롯해서 회식자리에서 남성 못지 않게 도를 넘는 음단패설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또한 2차로 남성접대부가 나오는 유흥업소도 많이 이용한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반면 도착된 성향이 특정 성별의 직업군이 아닌 독립적 창의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도착된 리비도의 충동 에너지가 예술적 영역으로 승화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몇 성향자 중 미술, 음악, 학문쪽으로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이에 속한다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루라는 24시간에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인생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가끔 잊어버리곤 한다.
BDSM 성향이라는 것이 특정 욕구가 억압을 받고 결핍이 되었을 때 그것이 풍선효과와 같이 그 억압만큼이나 특정 성욕구에 도착 된다.
만약 직업적 환경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는 환경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충분히 특정 성욕구로 도착될 수 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특정 성별로 구성된 직업군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그렇지 않은 직업군 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이 밖에도 완벽함을 추구하는 도미넌트와 마스터의 성격이 직장에서 자연스레 자신을 리더로 만들지 않는지?, 지배자에 대한 완벽한 서포트를 꿈꾸는 서브가 유능한 비서를 지향하게 만들진 않는지?
그렇다면 직업이란 것은 이미 성인이 된 이후에 선택적 환경에 속한다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직업을 갖는데 기존에 이미 인지한 성향이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님 직업이 뒤늦게 내 잠재 된 성향을 인지하게 된 계기나 영향을 준 것 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각자 개인이 가지는 성장배경과 환경의 변수가 매우 많기에 섣부른 결론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우선이 되어 현재의 귀결을 만들었던 간에 현재 자신이 가진 직업과 성향이 완전무관하지 않으며 지금의 직업과 지금의 성향을 가지게 된 환경적 요인에 서로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이 가설이 한번쯤 내가 가진 직업이 혹 내가 가진 성향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고찰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래본다.
내 성향이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한 것은 아닌지?
지금의 직업이 내 성향을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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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은 Dom에게 갔는데 책임은 왜 sub에게 갔을까?>>
오늘 밤에도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D/s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얘기가 ���편한 Dom 이라면 뭐, 님이 그런 Dom을 지향하는 것이니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D/s는 기본적으로
권력이 비대칭인 관계다.
Dom은 일정한 범위의 권한을 가지고,
sub는 그 권한을 상대에게 넘기는 데 동의한다.
명령하고,
따르고,
통제하고,
맡긴다.
여기까지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애초에 그 비대칭 자체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지는 관계도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 보다 보면
조금 이상한 장면이 생긴다.
Dom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플레이를 좋아해."
그러면 sub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는 저건 조금 무서운데.'
'그래도 내가 좀 더 견디면 되지 않을까.'
'계속 하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내가 따르기로 한 사람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해볼까.'
여기까지는 꼭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의 취향은 원래 잘 변한다.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처음 해본 일이
나중에는 자신의 취미가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싫었던 감각이
좋��� 경험과 반복해서 연결되면서
어느 순간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가가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그 취향이 가짜인 것은 아니다.
지금 좋아한다면
지금의 그 취향은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사람이 왜 변했느냐가 아니다.
둘 중 누가 더 많이 변해야 했느냐는 것이다.
원래 조율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조금씩 움직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걸 좋아해."
"나는 그건 조금 힘들어."
"그러면 어디까지가 우리 둘에게 좋을까?"
한쪽이 조금 내려오고,
다른 한쪽이 조금 올라가고,
그 가운데 어딘가에서
둘만의 선을 찾아가는 것.
그게 조율이다.
그런데 D/s에서는 가끔 아니 자주
꽤나,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나는 원래 이런 Dom이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sub가
어디까지 받을 수 있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무엇을 새로 좋아해야 할지,
자신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러면 Sub의 노력으로 관계는 분명 변하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만 계속 변하고 있다면
그걸 정말
'서로 맞춰가고 있다'
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D/s의 조금 이상한 책임 구조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Dom은 권한을 가져간다.
그런데 그 권한을 '안전하게 작동'시키기 위한 고민은
어느 순간 sub가 하고 있다.
Dom은 원하는 것을 말하고,
sub는 그것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고민한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권한은 Dom에게 갔는데
왜 그 권한을 '관리하는 책임'은 sub에게 갔을까.
물론 sub에게도 책임은 있다.
자신이 싫은 것을 말해야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하고,
오늘은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하고,
멈추고 싶다면 멈춰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가 모든 것을 알아서 읽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Dom은 독심술사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상태를 말할 책임'과
'관계 전체가 안전하게 굴러가도록 관리할 책임'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힘들면 말해”와
“힘든지 아닌지는 너가 알아서 관리해.”
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문장이다.
앞의 문장에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조절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뒤의 문장에는
내가 하는 행동은 그대로 둘 테니
당신이 알아서 버티거나 멈추라는 뜻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그 순간부터
Dom에게는 권한만 남고
관리의 책임은 sub에게 넘어간다.
나는 좋은 Dom이라는 역할이
단순히
‘명령하는 사람’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보고,
묻고,
기억하고,
반응을 살피고,
강도를 조절하고,
필요하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까지 포함된다.
어쩌면 권한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살펴야 하는 사람에 가깝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불안하면 조수석에서 알아서 브레이크 밟으세요."
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요즘은 자신의 성향을 정의하기가 참 쉬워졌다.
성향표도 있고,
용어도 많고,
검색하면 설명도 나온다.
"나는 Dom이다."
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역할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 역할에 따라오는 책임을 아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Dom = 명령하는 사���
까지만 배우면 관계는 꽤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상대에게 요구하고,
복종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 뒤에 붙는 문장은 훨씬 귀찮다.
Dom = 관찰하고, 묻고, 조절하고, 책임지는 사람.
이걸 배우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내가 하고 ���어도
상대가 힘들면 줄여야 하고,
내 성향과 맞아도
상대에게 맞지 않으면 포기할 수도 있고,
"왜 못 견뎌?"
보다
“어디까지가 좋아?”
를 먼저 물어야 한다.
권력은 커졌는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조금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D/s에서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복종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맞춰주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걸 헌신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그 사람의 선택이고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복종하기로 했다는 것이
관계를 맞추는 책임까지 혼자 떠맡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계속 참고,
한 사람이 계속 배우고,
한 사람이 계속 변하면서
다른 한 사람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는 자리에 계�� 서 있다면,
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잘 조율되고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이건 사실 D/s 밖에서도
그렇게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한 사람이 말한다.
"나는 원래 이래."
그러면 다른 사람이 생각한다.
"내가 이해해야지."
"내가 참아야지."
"내가 맞춰야지."
그렇게 한 사람은 계속 움직이고
다른 사람은 같은 자리에 있는데
우리는 가끔 그것을
‘서로 맞춰가고 있다’
고 부른다.
하지만 둘 중 한 사람만 계속 움직였다면
그건 정말 조율이었을까.
D/s에는 분명
권력의 비대칭이 존재��다.
그래도 나는
책임까지 같은 방향으로 비대칭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른다.
더 많은 권한을 가져간 사람이라면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책임도
더 많이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복종은 혼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조율은 둘이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