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6.25 기념 행사에서 참전 유공자들에게 기본적인 예절도 안 갖추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공자분들께서 이재명한테 나가라고 호통치셔서 결국 쫓겨나다시피 퇴장했었네;
마치 이재명이 친형 빈소를 방문했다가 문전박대 당했을 때처럼, 비서실장 조문을 거부 당했을 때처럼ㅉ
응?; 뭔 소리야 이게..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대통령실에선 이번 인사검증부턴 학폭을 면밀히 조사했지만, 정작 방통위원장 후보자 이동관의 아들 학폭은 정순신 사례와는 달라서 탈락을 안 시켰다고?ㅋㅋ
학폭은 OX의 문제고 무조건 틀린 거지, 다르단 말은 적용이 절대 안 되는 건데; 정신 차려
그래서 핸드폰을 갖고 계셨던 선생님께서는, 법무부에 전화를 걸었는데 휴일이라 연결도 안 됐대. 결국에는 인근 경찰서로 찾아 가셔서 분실물로 접수를 하셨는데, 접수할 당시 휴대폰이 웬 서류 봉투에 꽁꽁 싸매져 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이 왜 서류봉투에 싸맸냐고 물어보니까 답을 하시더래.
알고 보니까 한동훈 장관이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줄 몰랐던 재향군인분께서, 한장관이 앉았던 자리인데 휴대폰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으니까, 휴대폰을 그냥 놓고 간 줄 알고 놀라서 얼른 집어 밖으로 뛰쳐 나와 한동훈 장관을 계속 찾아 다니셨다는 거야ㅠ 근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을 거잖아.
다음 날 한동훈은, 이창건 선생님과 켈로 부대의 애통한 사연과 업적을 국민 한 분이라도 더 알아 주셨으면 하는 간곡함으로 그랬던 거라고 했대ㅠ
근데 그렇게 한동훈 장관이 사진을 다 찍고 와 보니까, 의자에 놓아 두었던 폰이 없어져 버린 거야;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져간 상황일 수밖에 없었어.
편지를 한참동안 몇 번이고 보던 한동훈 장관은 본인 휴대폰을 꺼내서 가로로도 찍어 보고, 세로로도 찍어 보고.. 시종일관 품 안에 소중하게 간직했어.
그렇게 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로부터 사진 요청이 쇄도하자 한동훈 장관은 핸드폰을 의자에 두고 선생님께 받은 편지를 들고선 사진을 찍어줬어.
그렇게 켈로는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버려졌어.
한동훈 장관이 받은 종이 모퉁이 하나하나 서투르게 잘려 있었지만, 북에 남아 끔찍한 고문을 받았을 동지들을 생각하며 쓴, 73년 만에 KLO의 명예를 처음으로 찾게 된 켈로노병의 필체는 서럽게도 아름다웠다.
6.25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고 전세를 한순간에 바꿔 놨던 인천상륙작전도, 북한군이 점령한 팔미도 등대를 켈로부대가 환하게 밝히며 성공할 수 있던 거야.
하지만 북한군으로 위장해서 군번도 못 받고, 비정규군으로 활동을 수행했으니 기록도 남지 않아서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한 비운의 부대였어.
켈로부대는 한국 전쟁에서 첩보조직으로 활동했어.
<지피지기 백전불태> 인민군으로 위장한 뒤 북한에 스파이로 침투해 작전 수행에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미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어. 처음 보는 중국군과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며 적을 무너뜨리는 제갈공명의 일을 한 거야.
켈로부대 이창건 선생님 또한 유공자로서 예우를 받으며 행사에 처음 참석하셨는데, 앉은 자리에서 종이를 구해 한참동안 수기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셨다.
그리고는 단상에 올라가기 직전, 한동훈 장관에게 서둘러 그 종이를 건네주셨어.
편지엔 KLO부대의 공적을 인정받은 건 처음이라고 적혀 있었고.
캬ㅋㅋ 뉴스 보다가 개소름 끼쳤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휴대폰 분실 사건이 그냥 일어났던 게 아니었네.
지난주 일요일에 6.25전쟁 73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 여기에 켈로부대원들이 처음으로 참석하게 됐어. 6.25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유공자들이 73년 만에 처음으로 공로를 인정받은 거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