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품은 가치가 혼자만의 이상은 아닐까 흔들리고 있을 때 아니라고, 충분히 의미 있다고 지지받고 공감받고 싶었던.
귀한 정신은 드물게 만난다. 그러나 잊지 말자. 없는 것이 아님을. 흩어져 있을뿐 어디선가 빛을 내며 행동하고 있음을.
그분과 내 책을 읽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글쓰기 지도자 과정을 배우고 싶다는 분이 찾아오셨다. 대안학교 선생님, 카피라이팅과 출판 편집, 글쓰기 지도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그간 활동을 전환하려는 시점에서 내가 하는 수업 방식에 마음이 끌렸고, 아이들을 만나는 데 있어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그러면서 깨달은 게
'아, 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였구나!'라는 것.
그분은 그 경력으로 논술학원에 갈 수도 있고 개인 학원을 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향하는 교육관이 비슷한 사람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드무니까.
어느 날 그가 나한테 왜 고시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질문이 뜬금없다고 느꼈던지 어조를 갑자기 힐난조로 바꾸었다. 불문학과니까 불문학을 하지. 대답이 아니라 회피였다. 그러나 저 고시생의 확실하고 단단한 신념 앞에서 내 공부의 내용과 목표를 차근차근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 고3일 때 후기 대학 한국철학과에 들어간 친구가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말했다.
"졸업하면 철학관이라도 한다더냐."
그래도 식자층이었는데 말이지. 학문의 세계에서 실용성과 유용성이 다가 아니다. 학문은 문화의 근간. 문화의 실용성과 유용성을 꼭 당대에서 찾을 것도 아니고.
“I just wanna stay in it.”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사진작가가 한 말. 사진은 확실히 '순간' 속에 존재하는 것. 안 그러면 피사체의 아우라가 흩어지기 때문. 글쓰기도 '순간'을 잡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안 그러면 핵심을 놓치기 십상. 원고 작업이 더디다. 마음이 흐리게 가라앉는다
왔다,《미셸 푸코》! 프레데릭 그릭/지음. 배세진/옮김. 역자는 나의 발리바르 선생님. '푸코의 철학 전체를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함. 8년 전 《감시와 처벌》로 알게된 푸코릍 배세진 샘 덕분에 푸코-발리바르 연관성으로 다시 만남. 부족한 머리로 정독해보겠음.
이런 것이 '대화'지' 하면서 읽었던 책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작가 장정일의 사적인 면모를 보는 재미,
비평가 한영인의 날카로운 사유를 발견한 재미. 오늘의 한국문학과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 한동안 소원했던 국내 문학작품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