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께>
이 글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눈을 비비고 작성 날짜를 3번 확인했습니다. 이 시국에 책소개는 정말 당신의 뜻입니까? ‘농촌의 꽃나무’라고요? 망가진 민주주의를 슬퍼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그곳 농촌에는 들리지 않는 것입니까?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도 정의롭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선거 직후 전직 대통령의 첫 메세지는 이와 관련된 것이었어야 했습니다.
‘진영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상식을 말하던 문재인과 지금의 문재인은 다른 사람입니까? 혹시 살아있는 권력과 진영의 비판이 두려우신가요? 국민이 두렵지는 않은지, 비겁한 침묵에 따르는 부끄러움은 없으신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묻습니다.
어제는 온통 선거의 소음과 피 말리는 개표의 긴장감으로 가득 찬 하루였다. 아침이 되서야 판이 뒤집히고 작은 격차가 빚어내는 아수라장과 선관위의 기괴한 파행이 교차하는 그 소란스러운 링 밖에서, 나는 굳이 사적인 감정을 광장에 꺼내놓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의 이면에서, 나는 어제 하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누릴 수 있는 가장 깊고 묵직한 행복을 남몰래 삼키고 있었다.
발단은 메신져로 당도했던 박상용 검사의 메시지였다. 이재명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을 파헤치다, 기어이 '직무 정지'라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버린 그 고독한 검사. 어제 선거를 다녀와 쓴 글에 이 나라의 병리에 큰 깨달음과 위로를 얻었다며 정중한 인사를 건네왔다. 방금 나는 그가 보내온 명함의 번호로, 요란한 동정 대신 담백하고 정중한 연대의 문자를 조심스레 남겨두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종종 캄캄한 허공에 대고 홀로 돌을 던지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권력의 오만과 맹목적 광기에 맞서 매일같이 차가운 활자를 벼려내지만, 이 견고하고 야만적인 벽이 과연 내 알량한 펜촉 하나로 긁히기나 할까 하는 서늘한 무력감이 찾아오는 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제, 권력의 린치를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박상용 검사로부터 날아온 문자들은 내 안의 그 오랜 무력감을 단숨에 증발시켰다.
범죄자가 떵떵거리며 권력을 쥐고, 그 범죄를 수사한 공직자가 도리어 행정적 단두대에 올라 유배당하는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 그 광기의 한복판에서 가장 외롭고 시린 싸움을 하고 있을 사람에게, 모니터 뒤에서 두드린 내 보잘것없는 글 몇 줄이 아주 작은 온기와 등기대가 되어주었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지난 몇 년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글을 쏟아낸 그 어떤 날 선 촌철살인보다도 벅차고 거룩한 보상이었다.
이재명이 대낮의 투표소에서 조롱하듯 법을 짓밟고, 텅 빈 깡통들이 진영의 간판을 달고 승리하는 기괴한 시대.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고, 떼법이 법치를 능멸하는 참담한 암흑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을 지키려는 고독한 개인들이 이렇게 활자 너머로 서로를 알아보고 묵묵히 연대하고 있는 한, 이 싸움은 결코 저들의 뜻대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선거라는 거대한 소란함 뒤로, 외로운 검사에게 건넨 짧은 문자와 함께 참으로 완벽하게 충만하고 행복했던 하루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갔다. 나는 오늘도 캄캄한 허공을 향해, 가장 서늘하고도 따뜻한 돌을 던질 채비를 한다.
아니다. 우선 밤새 롤러코스터를 탄 댓가로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P.s:박상용 검사님에게 게시글 개시여부를 여쭤보느라 삭제후 재게시했음을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상용 검사 징계 관련, 정유미 검사장님이 검찰 내부망에 올리신 글입니다. 많은 분들의 일독과 공유를 바랍니다. 아울러 더 많은 검찰 선후배들의 상식적인 목소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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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장관이 박상용 검사에 대해 내린 2개월 직무정지 기간이 끝나가자, 직무정지 기한을 무기한으로 연장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무기한이라는 것은 징계의결시까지라는 의미’라고 한 발 물러나기는 하네요.
무기한이건 징계의결시이건, 현직 공무원을 일하지 못하게 무리수를 두는 꼴을 난생 처음 보는 터라, 날마다 이 막장의 끝은 어디일지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검사징계법 제8조 제2항은, ‘법무부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징계혐의자에게 직무집행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어떤 경우가 직무정지가 ‘필요한 경우’인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르겠으나, 검사가 사건당사자에게 금품 등을 받았음이 밝혀졌거나, 사건관계자를 폭행하였거나, 혹은 사건관계자와 부적절한 관계임이 밝혀져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 등이 얼른 떠오르는 경우들이네요.
박상용 검사에게 제기된 징계혐의는, ①부당하게 변호인을 통해 자백을 요구했다는 것, ②수용자를 소환조사하고 수사과정확인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 ③음식물 또는 접견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아, 물론 제공했다는 음식물에 온 나라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연어회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변호인을 통해 자백을 요구한 것이 과연 잘못인지, 수사과정확인서 미작성 행위가 징계감인지, 음식물이나 접견편의를 제공한 것이 그렇게나 나쁜 일인지 여부를 떠나,
과연 위 세 가지 징계혐의가, 당장 부부장급 검사 하나를 온전히 직무에서 들어내야만 하는 ‘직무정지가 필요한 경우’일까요?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얘기를 나눠 본 검사들 중 여기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권력이든 권한이든 올바로 행사되어야 하고, 올바른 권한행사의 가장 핵심은 ‘절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손에 권력이 주어졌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잘못된 행위를 모두 법으로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절제하며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검증하여 뽑아 쓰기 위해 일반 공무원은 인사제도, 선출직 공무원은 선거제도라는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법에 명시적인 한계를 두지 않았다고 하여 막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명시적인 한계를 두지 않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 법령을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하여 도출할 수 있는, 그리고 ◆ 역사적으로 만들어 온 전례와 원칙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고, 국민들은 공직자에게 이와 같은 한계를 준수하여 그 범위 안에서 절제된 권한 행사를 할 것으로 기대할 것입니다.
권한이 절제되지 않은 채 마구 행사되니, 80년에 가까운 검찰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법률가인 검사와 변호사들이 바글바글한 법무부라는 국가기관에서 말입니다.
대검 감찰위원회에서 정직 2개월이 의결된 검사에 대해 이미 내려진 직무정지 기간이 도과된 상황에, ‘무기한’이건, ‘징계의결시까지’건 추가로 직무정지를 하는 것은 검사징계법 제8조에 대한 규범조화적 해석상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징역 2개월 구형한 피고인에 대해 이미 구속기간 2개월이 도과되었는데 ‘무기한’ 또는 ‘선고시까지’ 구속을 연장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닙니까?
더 나아가, 피고인 주변을 탈탈 털어 무엇이라도 무기징역형을 때릴 구실을 찾아올테니 그때까지 구속을 연장하겠다는 장면이 연상되는 것은 저 뿐입니까?
검찰권이 절제되지 않은 채 행사되어 검찰이 국민적 지탄을 받은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요.
비슷하게, 인사권이든 징계권이든 장관의 어떤 권한도 절제되지 않은 채 행사된다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법령은 모든 국민들이 넘어가지 말라고 만들어 둔 경계선입니다. 누구라도 그 경계를 함부로 밟고 넘어서면서 ‘나는 여기를 밟고 넘어갈 권한이 있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러면 더더구나 안됩니다. 그러면 경계는 더 이상 경계가 아니게 되고 법치주의는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날이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그저 망연자실 바라만 보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합니다.
다소 시일이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박상용 검사에 대한 무기한 직무정지 연장 처분에 대해 박상용 검사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을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다들 바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법률가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게시하는 것이니, 한 번씩 읽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품격 있는 대화를 위한 지식 브리핑>
이렇게 귀중한 지식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쉽게, 이렇게 많이 알려 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렇게 한다. 현직 유명 앵커의 역작이다.
이 책은 사람, 사회, 세계를 움직이는 수많은 법칙을 가장 쉬운 말로 설명한다. 뉴스가 전해 주지 않는 뉴스 뒤의 본질, 인간과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손에 쥐어 주듯이 전달한다.
먼 얘기는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시대의 고민으로 가득하다. 그 고민을 이해하게 돕는 열쇠를 빠짐 없이 준비해 놓았다. 한두 가지만 예로 든다.
아는 사람은 아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1969년 실험. 번호판을 떼고 보닛을 연, 똑같은 차량을 뉴욕 브롱크스와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버려두었다. 뉴욕에는 유리창이 깨진 차를, 캘리포니아에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차를 두었다.
뉴욕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와 타이어가 사라졌다. 1주일 뒤에는 낙서와 오물 투기가 일어났고, 차량부품도 없어졌다. 캘리포니아 차는 한동안 멀쩡했다. 그러나 어느 날 망치로 차를 부수어 놓자, 뉴욕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깨진 유리창'을 사람들은 규범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저자는 한국의 현실을 이렇게 지적한다. "정치인의 도덕적 기준이 해가 거듭될수록 낮아지고 있다. 같은 진영 정치인의 도덕적 결함에 눈감다 보니 정치인의 전반적인 도덕적 수준이 하향하는 것이다." 투표소에서 이미 기표한 용지를 보여주는 것은 '깨진 유리창'처럼 작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대목도 소개하고 싶다. 애국심과 쇼비니즘의 차이다. "애국심은 질문하고, 쇼비니즘은 침묵한다. 애국심은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따져 묻고 국가에 책임을 요구한다. 쇼비니즘은 '나라를 사랑한다'는 거룩한 명분으로 모든 질문의 입을 막고 권력에 면죄부를 준다."
조덕호에게 한 표 주고 싶은데 못 줘 안타까운 분들은 이 기사 댓글, 공유, 알티로 한 표 찍어주는 것에 갈음합니다.
그 행동 하나가 아산 유권자 한 명에게 닿을지도 모릅니다.
#팩트파인더
아산을 조덕호 후보, ‘진짜 아산 사람‘ 현장행보... 경로당부터 단오제 봉사까지 https://t.co/7SXIAqy0e9
위선(僞善)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노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26년 대한민국 좌파 진영의 정치인들은 그 알량한 수치심마저 완벽하게 내다 버린 새로운 종-種-으로 진화했다.
민주당 간판을 달고 평택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김용남의 기막힌 행보를 살펴보자.
그의 차명 소유로 추정되는 대부업체 논란이 이미 언론의 추적을 통해 취재되고 있었고 이게 세상에 까발려질 걸 몰랐을 리 없다. 입만 열면 서민과 약자를 부르짖는 좌파 정치인이 뒤로는 고금리로 피를 빠는 '대부업자'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적 생명이 끝장나야 마땅한 스캔들이다. 정상적인 지능과 염치를 가진 정치인이라면 백배사죄하고 당장 폐업 신고서부터 제출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언론의 십자포화가 쏟아지고 유권자의 시선이 집중된 바로 그 선거판 한복판에서, 그는 불과 5일 전 대부업 면허를 보란 듯이 '새로 갱신'했다. 대부업 등록은 3년마다 갱신해야 한다는 행정적 룰을 아주 성실하게 따른 결과란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유권자를 향한 섬뜩할 정도의 조롱이다. "그래, 나 대부업자다. 어차피 좌파 텃밭인데 너희가 나 안 찍고 배길 거냐"는 오만함. 배지는 달고 싶지만 내 캐시카우인 이자놀이 수익은 단 1원도 포기할 수 없다는 그 지독한 투잡 정신. 언론의 질타 따위는 눈치조차 보지 않고 직진하는 이 '노빠꾸 돈미새'의 민낯 앞에서는, 차라리 위선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이쯤 되면 이번 선거를 치러야 하는 평택 시민들이 마주한 투표용지는 한 편의 잔인한 호러물이다.
한쪽에는 조국이 서 있다. 다른 한쪽에는 김용남이 서 있다.
'똥 맛 카레'냐 '카레 맛 똥'이냐는 농담섞인 자조가 이토록 완벽하게 들어맞는 선거판이 역사상 또 있었던가. 거짓과 위선으로 뭉친 입시 비리 범죄자냐, 아니면 서민의 뼈를 발라먹는 뻔뻔한 고리대금업자냐. 이 처참한 오물통 속에서 하나를 골라 지역의 대표로 밀어 올려야 하는 평택 유권자들의 심정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것이 바로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대중을 향해 던지는 가장 투명한 영수증이다. 논란이 터져도 꼬박꼬박 대부업체 갱신 서류에 도장을 찍는 저 안면몰수의 뻔뻔함이 살아 숨 쉬는 한, 좌파 진영이 부르짖는 '약자 보호'는 영원히 대국민 사기극일 뿐이다. 평택 시민들이 이 모욕적인 선택지 앞에서 차가운 심판의 채찍을 들지 못한다면, 저들의 '노빠꾸' 질주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