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보수 우파 진영 내부에서 맴돌던 '부정선거론'을 철저히 경계하고 선을 그어왔던 사람이다. 근거 잃은 음모론은 보수의 차가운 이성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유해한 바이러스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3일, 대한민국 지방선거 본투표일에 벌어진 일련의 참혹한 촌극들을 지켜보며, 나는 내 오랜 신념을 잠시 유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서늘한 자괴감에 빠졌다. 단언하건대, 지금 이 나라에 부정선거의 망령을 부활시키고 그 음모론에 끊임없이 땔감을 공급하는 진원지는 보수 유튜버도, 극성 지지자들도 아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 바로 그들 자신이다.
범죄의 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너무 완벽한 우연'과 '경이로운 무능'의 결합이다. 이번 선거에서 선관위가 보여준 행정은 무능을 넘어선 하나의 기괴한 예술이었다.
한 유권자가 두 번이나 투표를 시도했음에도 선관위는 까막눈처럼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사전선거에선 사촌의 신분증을 들고 투표소에 갔는데, 수백억 혈세를 들인 최첨단 지문 인식 기기는 천연덕스럽게 ‘본인’으로 인증하고 패스시켰다. 동네 헬스장 출입기만도 못한 이 허접한 깡통 시스템 앞에서, 대중이 투표함의 바닥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오만한 지적 모독이다.
이 뚫린 바닥 위로 소름 돋는 '우연'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용지가 모자라 주권자가 발길을 돌려야 했던 14곳의 투표소는 송파, 강남 등 대부분 우파 진영의 지지세가 강한 텃밭에 집중되어 있었다. 선관위는 투표율을 예측하지 못해 절반만 인쇄했다고 변명했지만, 하필이면 좌파 권력에 불리한 지역에서만 핀셋으로 집어낸 듯 용지가 동나는 현상을 단순한 '행정 착오'로 넘기기엔 국민의 인내심이 그리 깊지 않다.
이 난장판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서늘한 불기둥이었다. 투표가 종료되고 용지 부족에 대한 빗발치는 항의가 쏟아지던 저녁 7시경.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뒤뜰에서 돌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발화 지점은 외부인의 침입이 철저히 통제된 헌법기관 부지 내부였다. 습도가 66%에 달해 자연 발화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축축한 저녁, 굳게 닫힌 선관위 뒷마당에서 하필 개표 직전에 피어오른 이 불길을 대중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이것이 조직적으로 설계된 완벽한 부정선거라고 대놓고 단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기괴한 우연의 겹침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면, 바다 건너 어느 독재 국가가 남긴 참혹한 궤적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바로 이재명과 좌파 진영이 낭만화하던 베네수엘라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치하의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2020년 총선 직전 선관위 메인 물류 창고에서 원인 모를 대형 화재가 발생해 4만 9천 대가 넘는 전자 투표 기기가 잿더미로 변했다. 행정의 마비를 핑계로 반대파의 표를 말려 죽이고, 시선이 쏠린 곳에는 불을 질러 증거를 은폐하는 것. 그것이 권력을 연장하려는 독재 정권의 가장 클래식한 매뉴얼이었다.
지문 인식마저 뚫려버린 먹통 시스템, 우파의 텃밭에서만 증발해버린 투표용지, 그리고 개표 직전 솟아오른 선관위 뒤뜰의 불길. 이 거대한 인지부조화의 퍼즐 조각들을 쥐여주고서 대중에게 "그저 우연과 행정 착오일 뿐이니 불순한 상상을 하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은 무책임한 폭력이다.
이재명이 대낮의 투표소에서 "난 상관없으니까"라며 천연덕스럽게 룰을 짓밟았을 때 선관위는 비굴하게 엎드려 룰북을 찢어주었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굽신거리는 심판이, 평범한 주권자의 표는 무능과 우연을 핑계로 허공에 날려버린다.
나는 여전히 부정선거라는 파국적 결론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나라에 부정선거라는 불신의 망령이 들불처럼 번져나간다면 그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선관위의 몫이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룰을 포기하고 스스로 우연과 무능의 굿판을 벌인 심판. 그들이 과천 뒤뜰에서 피워 올린 저 서늘한 매연이, 결국 이 나라 민주주의를 베네수엘라의 잿더미 속으로 밀어 넣는 가장 치명적인 도화선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