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을 지키기는커녕 이재명 아부에 나선 조정식 국회의장]
정치적으로 중립해야 할 조정식 국회의장이 ‘이재명 연임’을 띄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 부정하는 것이자 독재 찬양입니다.
국민은 곡소리 나는 날에 이재명 행차한다고 꽹과리 치는 격입니다. 지금 막 신납니까?
국회의장이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 가면서 주식 시장도 안 봅니까? 눈치 좀 챙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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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씀드리지만, 미래위 진상조사단의 공판기록 습득 시도는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행위입니다. 그럼에도 진상조사단은 대법원의 불허 결정에도 편법적으로까지 공판기록 습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국회 제정의 법률을 무시한채 생겨난 조직이 이제는 법원 결정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래선 안됩니다.
[단독] 대법, 檢미래위 조사단 ‘김용 사건’ 기록 열람·등사 요청 다시 불허…검찰 보관 사본 등 활용 수순[세상&] https://t.co/1BImw7OjB7
해군 병사 사망 당시 이재명이 골프를 쳤는지 알려달라니까 '비공개'니까 알려줄 수 없다고 대응하는 청와대 대변인. 아니, 그럼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 때는 분 단위로 공개하라고 왜 그 난리를 쳤어? 좌파가 역겨운 것은 이런 '내로남불'이다. 자기들은 옳고 괜찮고, 다른 사람들은 안 돼?
딸이 피해자로 기억되는게 안타까워 신상을 공개했던 채원이 부모님 심정이 어떨까. 경찰이 살인자 부친이랑 내통해서 내새끼가 입었던 옷과 신발도 돌려주지 않고 증거도 없앴다니. 그런데 뭐? 1년에 몇 번씩 있는 일? 보완수사권 있다고 장윤기 사건이 안 일어나는게 아니라고? 에라이 나쁜 놈들아.
설마 지금 국방부장관님은 아니시죠?스레드에서 지금 난리나서 여쭤봅니다.
같은 이름 다른 사람이라 믿고 있겠습니다.
사실확인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펌)안규백
여고생 간음 사건 정리
1. 사건 관할서(동대문경찰서)와 해당 인물의 거주지(동대문구 이문동)가 일치
2. 기사 속 나이(22세)와 1982년 당시 한국나이(22세)가 일치
3. 한자 이름(安圭伯)이 동일
4. 기사 속 서열(차남 추정)과 실제 서열(3남 4녀 중 차남)이 일치
5. 형제 중 주범이 형이고 본인은 종범이라 약식기소·벌금형으로 그쳤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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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라디오 스튜디오에 뉴스타파 PD가 마주 앉았다. 좌파 미디어 생태계를 떠받치는 두 거대한 스피커가 모여, 최근 올림픽공원에서 벌어지는 2030 세대의 시위를 도마 위에 올렸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청년들의 시위를 두고, 그들이 내린 건조하고도 기괴한 진단명은 이것이었다. "청년들이 극우의 세계관을 배우고 퍼뜨리는 공간."
우리는 이 방송의 텍스트 기저에 깔린, 4050 좌파 특유의 끔찍한 오만함과 계몽주의를 현미경으로 쪼개어 해체해야 한다.
과거 광우병 사태나 탄핵 정국 당시, 청년들이 교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며 거리로 나와 보수 정권을 향해 돌을 던질 때 좌파 언론은 그들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깨어있는 시민', '민주주의의 최전위'라며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고 칭송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청년들이 이재명 치하에서 벌어진 투표 관리의 절차적 하자에 항의하며 광장에 모이자, 하루아침에 "음모론에 세뇌당한 극우"이자 "빨간약에 중독된 불쌍한 환자"들로 전락시켜 버린다.
자신들의 진영에 유리한 구호를 외치면 위대한 주권자이고, 이재명 정권의 치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면 배후 조종을 받는 극우 세력이란 말인가. 청년들을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맘대로 세뇌하고 통제할 수 있는 애완견이나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이 지독한 이중잣대. 이것이 바로 좌파가 청년 세대를 바라보는 납작하고 폭력적인 시선이다.
가장 서늘한 블랙코미디는 해당 PD가 내놓은 해법이다. 그는 10대에서 30대 청년들이 X나 해외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을 우려하며, "4050 데스크들이 이를 양지로 끌고 와 잘못된 사실임을 팩트체크해 주어야 한다"고 훈계를 늘어놓는다.
실소가 터진다. 청년들이 왜 그 잘난 레거시 미디어를 버리고 해외 SNS와 1인 스피커들에게로 떠났는지 진정 모르는가. 광우병 괴담부터 첼리스트 청담동 술자리, 최근의 이화영 연어 술파티까지.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진실로 둔갑시켜 권력의 입맛에 맞게 가공해 온 진짜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바로 MBC와 뉴스타파 같은 매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사보(社報)로 전락해 팩트의 신뢰를 스스로 붕괴시킨 자들이, 이제 와서 "우리가 청년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 주겠다"며 회초리를 든다. 이 얼마나 기괴한 지적 허영인가.
자신들이 독점하던 진실의 스피커가 통제 불능의 공간으로 넘어가려 하자, 청년들을 정신병자 취급하며 사상을 검증하려 든다. 이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국가가 청년들의 뇌 구조까지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 파시즘의 완벽한 발현이다.
2030 세대가 좌파를 혐오하는 이유, 이른바 극혐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 방송 단 몇 분 안에 완벽하게 응축되어 있다. 내로남불의 특권은 숨 쉬듯 누리면서, 민주화라는 낡은 훈장을 목에 건 채 청년들의 삶과 사상을 가르치려 드는 그 숨 막히는 '꼰대질'.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면 윽박지르고 극우라는 낙인을 찍어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리는 옹졸한 전체주의.
청년들은 결코 선동에 놀아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저 이재명과 좌파 권력이 뿜어내는 그 퀴퀴한 위선과 계몽의 폭력에 구역질을 느끼고 등을 돌렸을 뿐이다. 청년들의 시위를 극우의 부화장이라 폄훼하며 양지로 끌어내 가르치겠다는 4050 좌파 데스크들에게 차갑게 일러둔다.
지금 광장의 청년들에게 가장 혐오스럽고 쓸모없는 폐기물은, 다름 아닌 당신들의 그 알량한 가르침과 MBC, 뉴스타파라는 그 이름 자체다.
선글라스를 낀 연예인 이하늘이 차 안에서 카메라를 향해 거친 욕설을 섞어가며 대중을 훈계했다. 1,540원이라는 참담한 환율을 걱정하는 이들을 향해 "모지리들"이라 침을 뱉으며 그가 내뱉은 일갈은 이렇다. "지갑에 기껏 1달러, 2달러 꽂고 다니는 주제에 무슨 환율 걱정이냐. 우리한테는 곱창값, 원자재값, 식재료값, 마늘값이 오르는지가 더 중요하다."
무식도 일정 수준을 넘기면 경이로움이 되는 듯하다. 곱창집 불판을 달구는 LNG는 어디서 결제되어 오나? 그 곱창을 내어주는 소를 찌우는 사료는? 불판위의 마늘밭에 뿌려지는 비료의 원료는 도대체 어느 나라 돈으로 사 온단 말인가.
수출입으로 연명하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밥상 물가와 원자재 가격은 정확히 저 바다 건너의 '환율'이라는 핏줄을 타고 들어온다. 환율 폭등이 곧 곱창값 폭등이고 마늘값의 폭주다. 이 직관적이고 1차원적인 연결고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당장 네 지갑에 달러가 없으니 환율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저 투명하고 해맑은 무식함. 저것이 바로 세상을 흑백의 평면으로만 인식하는 좌파들의 평균 해상도 인건가.
허나 한심함의 심연을 지나자 오히려 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어졌다. 정말이다. 이 영상은 한 편의 완벽한 사회학적 예방주사였다. 우리가 도대체 어떤 지능을 가진 자들과 같은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며 이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굴려가고 있는지, 그 뼈아픈 현실을 너무도 잔인하게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25만 원에 환호성을 지르고, 멀쩡한 원전 생태계를 박살 내고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산에 깔 때 박수를 치던 맹목적인 지지층의 민낯이 바로 저기에 있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이성의 회로가 애초에 끊어진 자들이다.
그동안 저들에게 거시 경제의 위기를 말하고, 국가 재정의 뼈대를 설명하며 어떻게든 논리적 토론을 시도하려 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득한 헛짓거리였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환율과 곱창값이 별개라는 기적의 경제학을 신봉하는 자들과 도대체 무슨 언어로 국가의 미래를 논한단 말인가.
능지가 처참한 자들에게 팩트는 폭력으로 수용될 뿐이다. 이하늘은 1,540원이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우리 사회 기저에 깊숙이 뿌리내린 '절망적인 무지의 심연'을 자신의 얼굴을 걸고 완벽하게 증명해 냈다.
그러니 진심으로 고맙다. 덕분에 저들과 논리적 대화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헛된 미련을 아주 깔끔하게 쓰레기통에 버렸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비극은 소크라테스의 한 표와 바보의 한 표가 같은 무게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오늘, 그 묵직한 절망감을 곱창 씹듯 아주 잘근잘근 되새기게 해 주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