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를 지우니, 우아함도 사라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좌아하게 말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우아하게’의 ‘우(右)’를 ‘좌(左)’로 바꾼 모양입니다.
대통령의 언어유희라니 웃고 넘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정을 보면 마냥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습니다.
우를 지우고 좌를 넣으니, '우아함’마저 사라졌습니다.
좌우를 아우르겠다던 대통령은 어디 가고,
강성 지지층의 말투까지 빌려가며 ‘좌아함’을 뽐냅니까.
대통령은 좌우 가운데 서야 합니다.
왼쪽 사람들끼리 박수치며 즐기는 자리가 아닙니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계속 좌로만 가면
그건 ‘좌아함’이 아니라 ‘좌편향’입니다.
대통령님,
요즘 좌환이 조금 심해 보입니다.
좌황청심환이라도 한 알 드시고, 이제 ‘우’도 좀 돌아보십시오.
글. 이동훈
https://t.co/paf2E3g5dV
"창신메모리 공정, 100% 삼성 것
기술 넘기자 쫓겨나" 유출범 후회
삼성전자에 죄송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국가핵심기술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유출,
사용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전 삼성전자 부장 전모씨가 지난 9일 법정에서 처음으로 공개 사과했다
[출처:중앙일보] https://t.co/uuz5VG4uOs
대법관 제청 절차를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헌법에 규정해 놓은건 권력간 견제를 위함이다
즉 대법원장과 대통령 사이에 의견이 갈릴 경우
권력을 '사용'해 다툼을 하라고 헌법적으로 인정해 놓은거다
합의가 안되면 절차를 거쳐 싸우면 되는거지 누가 위라고 인정해 놓은건 없다
염치가 증발한 시대.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굳이 법전을 들추지 않아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감각이 있었다. 바로 염치다. 고위 공직자의 자녀가 부정한 특혜로 자리를 꿰찼다는 의혹이 밝혀지면, 설령 그것이 당장 감옥에 갈 일이 아니더라도 가문의 수치로 여겼다.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이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상식이었다.
그러나 2026년 대한민국의 엘리트 생태계에서는 이 낡은 염치의 미덕이 완벽하게 멸종해 버렸다. 부끄러움을 잊은 자들이 법망의 틈새를 파고들어 뻔뻔하게 기득권을 사수하는 진화된 괴물들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 사무총장의 딸이 아빠 찬스로 특혜 채용되었다는 논란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관리하는 국가 기관의 신뢰를 무너뜨린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난 채용의 실태는 참담했다. 면접위원들은 채점란을 비워둔 채 서명만 했고, 인사 담당자가 나중에 임의로 상중하 등급을 조작해 합격자를 맞추었다. 심지어 그 딸의 선관위 전입 승인 문서를 직접 결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본인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이쯤에서 얼굴을 붉히고 세상의 시선에서 숨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들은 임용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당당하게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대동해 법원을 찾아갔고, 기어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며, 부끄러움이 그보다 앞서야 하는 법이다. 이 염치가 작금의 뻔뻔한 특권층 앞에서는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해져 버렸다. 하지만 이 기막힌 촌극에서 그들의 철면피보다 더욱 절망적이고 썩어 문드러진 곳은, 바로 이들에게 합법이라는 면죄부를 쥐여준 대한민국 사법부다.
법원의 판결 논리를 들여다보면 실소가 터진다. 재판부는 면접표가 조작되는 등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절차가 있었음은 분명히 인정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딸의 합격을 위해 직접 부정행위를 지시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부족하므로 임용 취소는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최고 권력자인 사무총장의 자녀가 지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급자들이 알아서 백지 채점표를 조작해 바치는 것이 관료 조직의 맹목적인 생리이자 카르텔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아버지가 직접 '콕 집어 조작을 지시한' 스모킹 건이 없다는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특혜 채용이라는 거대한 부조리에 스스로 눈을 감아버렸다.
이것은 단순한 판결이 아니다. 염치를 내다 버린 권력자들에게 사법부가 기꺼이 합법의 방패를 내어준 치명적인 사법적 타락이다. 공정과 상식을 파괴한 부정 채용의 정황이 차고 넘치는데도 알량한 증거의 엄격성을 핑계로 기득권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왜 막대한 세금을 들여 사법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가.
부끄러움을 잃은 자들이 당당하게 법정으로 향해 승전보를 울리고, 썩어빠진 법원이 그들의 탐욕에 거룩한 합법의 인장을 찍어주는 나라. 그 대단한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이쯤되니 뭐 거창한 일도 아닌 듯하다
이낙연, 김문수 지지 "후회하지 않아" #강적들 https://t.co/Z0tDrTNMIG - @YouTube
“총리까지 지내고 국가의 혜택을 받을만큼 받은 사람이,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얘기를 해 드리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외로워진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좌파들은 가난한 자들이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자들이 가난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영국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남긴 이 서늘한 통찰을, 2026년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완벽한 실사판으로 매일같이 지켜보고 있다. 오늘 페이스북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정민철의 선동 글을 보며 나는 실소를 참을 수가 없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출마 기탁금이 너무 비싸다며 불우한 흙수저 청년 코스프레를 하며 눈물을 짜내는 '문과' 감성을 자랑하다가, 고가의 테슬라 차량을 몰고 정작 본인은 비싼 학비의 예술고 출신이라는 사실이 들통나 전 국민적 개망신을 당했던 분이다. 그 화려한 위선의 아이콘께서 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른 채, 좌파 특유의 천박한 계급 갈라치기 선동의 최전선에서 마이크를 쥐고 계셨다.
그들의 기적의 논리를 뜯어보자.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과 자녀가 발달장애인 협동조합을 사유화하여 4년간 무려 3억 3천만 원의 급여를 챙기고, 지자체의 특혜를 받았다는 묵직한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되었다. 약자를 볼모로 삼아 국가의 지원금과 세금에 빨대를 꽂았다는 심각한 공금 유용 스캔들이다.
그런데 이 명백한 범죄 의혹을 방어한답시고 더불어민주당 스피커들이 들고나온 논리가 가히 예술적이다. 그들은 의혹을 제기한 주진우 의원의 20대 아들이 할아버지로부터 7억 원의 예금을 물려받은 사실을 끌고 와 비교하며 이렇게 일갈했다. 장애인을 돌보며 월 320만 원을 버는 김승원의 아들과, 할아버지에게 7억을 물려받은 주진우의 아들 중 누가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냐고.
이것이 도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물타기란 말인가. 할아버지가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국가가 정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고 손자에게 물려준 것이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부의 대물림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반면, 권력을 쥔 정치인의 가족이 사회적 약자를 앞세운 조합을 만들어 수억 원의 뭉칫돈을 셀프로 챙겨가는 것은 헌신이 아니라 수사를 받아야 할 삥땅이자 착취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작금의 정치판에서 가장 역겨워하는 부류의 인간이 바로 저 정민철 같은 자들이다.
어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남들처럼 땀 흘려 돈을 벌 실력이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유령 당사를 꾸미고 영세 상인 지원금을 쓸어 담아 셀프 삥땅의 신세계를 보여준 용혜인 같은 선배들의 활약상에 깊은 영감이라도 받은 것일까. 정직한 노동으로 제 삶을 책임질 생각은 안 하고, 그저 기득권 타령과 빈부 격차 선동을 무기 삼아 정치권 언저리나 기웃거리며 한자리 얻어걸리기를 바라는 그 얄팍한 생계형 코스프레가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부모 찬스로 예술고를 나와 테슬라를 몰면서 가난을 연기하던 자들이, 정작 남의 합법적인 상속에는 핏대를 세우며 범죄자의 세금 슈킹을 거룩한 봉사로 세탁해 주고 있다.
마가렛 대처가 살아서 이 촌극을 보았다면, 부자들이 가난해지기를 바라는 수준을 넘어 약자를 팔아 국가의 돈을 털어먹으려는 좌파들의 기괴한 진화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되지도 않는 억지 논리로 남의 합법적 재산에 열폭하며 선동질할 시간에, 구인 구직 사이트라도 켜서 제발 번듯한 직장이나 먼저 구하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
얼굴은 생각보다 더 두껍고 맷집은 기대보다 훨씬 쌨다.
며칠째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며 침묵의 출근길을 이어가던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마침내 국회 마이크 앞에 서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턱을 빠지게 만들 역대급 궤변의 향연을 쏟아냈다.
기자회견의 내용을 뜯어보면 기대 이상이다. 당원 자택을 유령 당사로 꾸며 국고보조금을 타내고, 영세 상인들을 위한 청년 지원금을 싹쓸이해 남편과 당직자들 주머니를 채워준 생계형 좀도둑질을 향해, 그녀는 "소수 정당의 현실을 모르는 억측이자 마타도어"라며 도리어 역정을 냈다. 비례대표 의원 배지도 달고 장관석도 꿰차겠다는 징글징글한 탐욕은 "법률이 허용하는 권리"라며 당당하게 정당화했다.
물론 개가 짖는 아파트를 당사로 꾸며 세금을 타낸 유령 당사 삥땅 자체도 엄중한 수사를 받아야 할 범법 행위다. 하지만 나는 "법률이 허용한 권리"라는 그녀의 당당한 외침이 훨씬 더 섬뜩하게 들렸다. 그 말의 진짜 속뜻은, 합법의 테두리를 방패 삼아 내 권리가 닿는 곳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뼛속까지 싹싹 긁어 해먹겠다는 끔찍한 탐욕의 선언같이 들렸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는 이재명 대통령과 자신의 짬짜미를 무려 김대중 정부 시절의 'DJP 연합'에 비유하며, 스스로를 숭고한 정치적 결단의 주역으로 셀프 격상시킨 대목이다. 7천만 원짜리 소상공인 지원금을 털어먹던 벤처 정당의 대표가 "개인 영달이 아니"라며 십자가를 진 희생양 코스프레를 시전했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의 본질을 이렇게 꿰뚫었다.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쥘 수 있는 마지막 무기는, 남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뻔뻔함이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뻔뻔함은 결코 용혜인 개인의 깡다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여론이 아무리 들끓고 여야가 한목소리로 사퇴를 압박해도, 일개 소수 정당의 후보자가 이토록 오만방자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인사권자인 이재명이 "내가 끝까지 든든한 뒷배가 되어 지켜줄 테니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마라"는 확실한 모종의 밀약을 주었기에 가능한 패기아닐까?
이재명이 프랑스로 비를 피한사이 권력이 선택한 해법은 후보자들의 사퇴가 아니었다. 어제부로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 대행까지 국가 기관이 총동원되어, 김승원의 의혹을 제기하는 한동훈 의원을 향해 도리어 수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만봐도 알 수 있다. 장관 후보자의 부패한 스폰서 문자를 해명하고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메신저의 입을 틀어막고 공익 제보를 색출하겠다며 수사 기관의 칼을 빼든 것이다.
삥땅의 달인을 DJP 연합의 주역으로 둔갑시키고, 탐욕을 법적 권리로 세탁해 주는 이 거대한 가스라이팅. 이재명 정권은 지금 국민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다. 좋게 포장해서 '돌파'이고, 냉정하게 말해 국민의 상식과 여론 따위는 털끝만큼도 수긍할 생각이 없다는 무도한 '배째라' 선언이다.
이재명은 아마 기어이 그들의 임명을 강행할 것 인가보다. 권력을 향해 충성만 맹세한다면, 유령 당사 삥땅이든 가족 돈 잔치든 청탁같은 도덕적 파탄쯤은 언제든 '공익'과 '연합'이라는 거룩한 단어로 씻어줄 수 있다는 권력의 오만. 우리는 지금 두꺼운 낯짝과 거대한 뒷배가 만나, 대한민국의 상식을 얼마나 허망하게 찢어발기는지 그 폭력적인 해부도를 생중계로 목도하고 있다.
정부는 재정지출과 대출을 늘려 시중에 돈을 풀고,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올려 돈을 거두는 긴축이다. 정말 코메디다.
경제학 설명은 필요 없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정부는 욕조에 계속 물을 틀어놓고, 한국은행은 물이 넘친다며 배수구를 더 크게 뚫는 상황이다. 물을 틀어놓은 것은 정부인데, 배수 비용인 고금리는 국민이 부담한다.
결국 생색은 정부가 내고, 이자는 국민 품으로
6월 기사를 이제야 봤다.
꾹 다문 입술 사이로 기어이 얕은 욕설이 새어 나온다. 2014년 참사의 바다에서 살아남았던 단원고 생존 학생이 12년의 세월을 견디다 못해 끝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눈앞에서 수많은 동급생이 물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소년이 청년이 되기까지, 그가 매일 밤 홀로 감당해야 했을 죄책감과 공포의 깊이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좌파는 광장을 점거하고 거룩한 추모의 굿판을 벌여왔다. 그들은 진상 규명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퍼 올리며 권력을 쥐었고, 막대한 세금을 들여 거대한 추모 공원을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그러나 정작 살아남은 자들의 부서진 삶을 복원하는 일에는 철저히 무능하고 무관심했다. 재난의 트라우마는 몇 번의 형식적인 상담이나 일회성 위로금으로 치유될 수 있는 가벼운 상처가 아니다. 수년, 아니 평생에 걸쳐 끈질기고 섬세하게 밀착해야 하는 고단하고 막대한 의료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수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안전 인프라 구축같은 대비책도 역시 마찬가지다.
좌파 정치꾼들에게 그런 실무적이고 조용한 대책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생존자의 장기적인 트라우마 치료나 해상 안전 시스템 구축은 당장의 자극적인 표가 되지 않고, 광장의 대중을 선동할 스펙터클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절실했던 것은 오직 정치적 자산으로 끊임없이 활용할 수 있는 죽음 그 자체였다. 말없는 망자들은 권력자들이 원하는 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진영의 무기로 독점할 수 있는 완벽한 도구였지만, 끝없는 돌봄과 비용이 필요한 생존자들은 그저 외면하고 싶은 성가신 존재에 불과했다. 산 자의 고통을 방치한 채 죽은 자의 무덤 위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며 권력을 누려온 이 잔혹한 위선을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이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오직 정치적 이슈몰이와 시체팔이에 불과하다는 끔찍한 물증이 바로 무안공항 참사다. 표가 필요했던 더불어민주당 토호들의 억지 포퓰리즘으로 철새 도래지에 활주로를 욱여넣었다가 고추나 말리는 공항이라는 조롱을 받자, 무리하게 광주공항의 국제선을 끌어와 기어이 179명의 국민을 불태워 죽인 예견된 살인이었다.
이 죽음은 그들의 진영에 어떠한 이익도 주지 못하고 선동의 불쏘시개도 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철저히 침묵했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유족들은 무려 1년이 넘도록 현장 인근 쓰레기 더미를 맨손으로 파헤치며 흩어진 망자의 뼛조각을 수습하는 지옥을 겪어야 했다. 그래 놓고 참사 발생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수백 명을 사지로 몬 진짜 주범인 정치인들은 뒤로 숨은 채 보도자료를 조작한 하급 공무원 7명만 꼬리 자르기로 기소했다. 돈이 되고 표가 되는 남의 죽음 앞에서는 거대한 추모비를 세우면서도,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죽음 앞에서는 유골마저 쓰레기장으로 내팽개치는 압도적인 사이코패스적 위선이다.
다시 홀로 남겨졌던 생존자의 죽음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이지 않는 눈총을 받고, 먼저 간 친구들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폭력적인 위로 속에 갇혀 삶이 엉망으로 부서진 생존자들. 그들은 시체팔이에 혈안이 된 정치꾼들의 무관심 속에서 철저히 고립되었다.
참사를 팔아 정치적 이득을 취하면서도, 정작 참사의 가장 아픈 증언자들인 생존자들의 영혼이 천천히 괴사해 가는 과정은 철저히 방치했다.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할 곳에는 예산을 쓰지 않고, 정치적 쇼를 위한 기념사업에만 돈을 쏟아부은 끔찍한 결과다.
12년의 기나긴 지옥을 홀로 걷다 끝내 안산 하늘공원의 친구들 곁으로 돌아간 그 젊은 영혼에게 마음 속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한다. 부디 그곳에서는 남은 자의 죄책감도, 죽음을 핑계로 권력을 연명하는 위선적인 어른들의 기괴한 정치질도 없이 그저 평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짧은 대사에도 마치 3류 느와르 영화를 본 듯한 감정이 밀려오게 만드는 스트레스 유발 능력자를 위해 오늘의 감상은 한줄평으로 남긴다.
[한줄평] ★☆☆☆☆ / 죄를 안 지으면 감방에 안 간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시나리오를 '체제 탓'으로 둔갑시키는 삼류 코미디. 대통령이라는 완장이 없었다면 애저녁에 철창행이었을 주연배우의 적반하장 대사에 아득한 현기증이 밀려온다.
현재까지 정부에서 나온 거지같은 정책이 지 대가리에서 나오고 지가 결제 했다는거 자백하는 글임.
본래 금융정책은 대통령이 디테일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아님. 재정학 전공도 안한 새끼가 뭘 안다고 개별사례를 들어서 공무원을 겁박함?
애초에 전문가들에게 일임하고 방향제시만 하면 될 일을 디테일이나 풍선효과 같은 부작용은 알지도 못하는 새끼가 자꾸 디테일에 이래라 저래라 압박을 하니까 이런 거지같은 모순된 정책이 나오는거임.
자신에게 말하면 해결해준다는 지금 이런 태도 자체가 공직사회를 망치는 직권남용임.
섬마을 의료를 살리겠다며 51억원을 들여
비대면 진료 키오스크를 깔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 기준으로 섬 한 곳당 진료가
월 1건도 안 됐고, 올해 설치된 곳 중
절반 이상은 진료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정작 같은 섬을 매달 찾아가 주민의 얼굴과 병력을 아는 병원선은 법에 막혀 비대면 진료조차 못 합니다.
쓸 수 있는 시스템은 막아두고,
안 쓰는 키오스크는 새로 깔았습니다.
환자보다 사업이 먼저였습니다.
텅 빈 금고 앞에서 비상벨을 누르면서도, 정작 그 금고를 거덜 낸 장본인인 '이재명'의 이름 석 자는 절대 입에 올리지 못하는 전임 김동연과 현직 추미애의 묵언수행이 눈물겹다.
추미애가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이 시간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다”고 외쳤다. 국가의 축소판이라는 경기도의 곳간이 바닥났다는 이 심각한 선고 앞에서, 상식적인 시민들은 도리어 솟구치는 헛웃음을 참아내야만 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온 국민이 다 아는데, 정작 삿대질을 하는 자들만 범인의 이름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완벽한 블랙코미디였기 때문이다.
작금의 경기도 재정을 탈탈 털어 껍데기만 남겨놓은 이재명 시절의 정책과 그 결과를 아주 건조하게 팩트로만 복기해 보자.
중앙정부가 재정 부담을 우려해 코로나 재난지원금 소득 하위 80% 선별 지급을 결정했을 때, 이재명은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돋보이게 하겠다며 도의 예산을 헐어 100% 보편 지급을 밀어붙였다. 수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지자체 혈세가 단발성 매표 행위의 불쏘시개로 허공에 증발했다.
'청년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적인 현금을 살포하고, '지역화폐' 발행액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며 10%에 달하는 캐시백 인센티브를 도비와 시군비로 땜질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청년기본소득으로 풀린 푼돈은 온라인 불법 도박 자금이나 사행성 게임의 판돈으로 유입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역화폐 역시 조폭과 사기꾼들이 수천 명의 유령 회원을 동원해 이른바 '깡'을 저질러 수십억 원의 세금을 편취해도 활기만 돌면 된다던 그 아니였나.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이른바 '경기 극저신용대출'이다. 신용이 낮은 이들에게 심사도 없이 세금으로 대출을 퍼주었지만, 그 결과는 기하급수적인 연체와 참혹한 미회수율이었다. 애초에 받을 생각조차 없었던, 대출의 탈을 쓴 악성 무상 복지였다. 도민의 고혈을 사실상 매몰 비용으로 탕진해 버린 것이다.
이 화려한 돈 잔치를 벌이고 범죄의 판돈을 대주기 위해, 그는 미래 세대의 비상금인 '지역개발기금'을 마른수건 쥐어짜듯 끌어다 썼다. 겉으로는 채무 제로를 외치며 탁월한 행정가 행세를 했지만, 실상은 지자체 내부의 기금을 헐어 쓰는 '내부 차입'의 폭증이었고, 후임자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완벽한 재정 분식회계의 늪이었다.
자신의 대선 가도를 위한 융단으로 경기도의 금고를 헐어 쓴 포퓰리즘 잔치. 그 무자비한 빚잔치의 폐허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 이재명 다음으로 부임한 전직 지사 김동연이다. 경제 관료 출신인 그가 텅 빈 장부와 폭증한 내부 부채를 보며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겠는가. 그럼에도 맹주의 흠결을 지적하면 즉각 ‘수박’으로 몰려 척살당하는 살벌한 진영의 룰 때문에, 그는 차마 앓는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지금껏 묵묵히 폭탄 돌리기를 견뎌왔다.
그런데 이제 와 추미애가 요란하게 ‘재정 비상’의 사이렌을 울린다. 곳간이 비었다고 핏대를 세우면서도, 정작 그 문을 열어젖히고 돈 잔치를 벌인 맹주의 이름은 철저히 생략한다. 노무현시절 보여줬던 익히아는 그 성격에 “대체 어떤 인간이 재정을 이따위로 거덜 내고 도망갔느냐”며 시원하게 쌍욕이라도 박고 싶었을 텐데, 수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으니 그 입술을 얼마나 꽉 깨물고 참았겠는가. 원인 제공자는 덮어둔 채 애먼 허공에 대고 비상사태만 읊조리는 그녀의 그 눈물겨운 인내심과 혀의 통제력에 진심 어린 경탄을 보낸다.
대한민국이 겪을 재정상황의 미리보기라는 게 섬뜩하지만, 표를 돈으로 사는 얄팍한 매표 정치가 낳은 필연적 결말이다. 권력자는 지자체의 금고를 헐어 자신의 정치적 몸값을 부풀린 뒤 유유히 청와대로 엑시트(Exit)했고, 남겨진 자들은 범인의 이름표를 숨긴 채 텅 빈 금고 앞에서 남 탓만 늘어놓고 있다.
나라 곳곳이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중국인을 중국인이라 부르지 못하는 언론이나, 이재명의 실책을 이재명의 짓이라 부르지 못하는 추미애나, 호부호형을 하지 못해 입을 틀어막은 홍길동이 되기는 전 국민이 매한가지다.
불과 40여 일. 대한민국의 주식 시장에서 증발해 버린 시가총액이 2,600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1년 내내 피땀 흘려 만들어내는 국가 총생산(GDP)을 가볍게 뛰어넘는 경이롭고도 끔찍한 액수다. 국가의 1년 치 명운이 허공으로 산산조각이 났고, 수천만 개미들의 계좌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아비규환 속에서 참으로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의 경제가 통째로 녹아내리는 국가적 재난 상황임에도, 지상파와 주류 언론들의 데스크는 소름이 돋을 만큼 평온하다. 종일 속보를 띄우고 "경제가 붕괴했다"며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호들갑을 떨어야 마땅할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 철저한 '묵언수행'에 돌입했다. 마치 어디선가 주가 폭락을 기사화하지 말라는 '무형의 보도지침'이라도 하달된 것 같은 완벽하고도 끈적한 침묵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눈먼 벙어리 행세를 하는 저 언론들도, 훗날 정권이 바뀌어 보수 정부가 들어서는 그 순간 기적처럼 시력과 청력을 회복할 테니까 말이다. 그때가 되면 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갖 자유를 언급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수호하는 투사로 표변하여, 아주 미세한 경제 지표의 하락에도 거품을 물고 덤벼드는 '정의의 참언론'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국부가 증발한 코스피의 차트보다 더 처참하게 바닥을 뚫고 지하로 추락한 것은, 권력의 애완견을 자처하며 스스로 목줄을 찬 이 나라 언론들의 썩어빠진 양심이다.
짖기를 포기한 경비견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치인의 퇴장에도 타이밍의 예술이 존재한다면, 작금의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던진 사표는 단연코 올해의 마스터피스다. 이재명을 향한 사법부의 포위망을 허물고, 이른바 '공소 취소'라는 거대한 폭탄을 터뜨리기 위한 모든 도선 연결과 세팅을 끝마친 직후 유유히 짐을 쌌다. 막이 오르기 직전 극장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이 완벽한 타이밍에 우선 경쾌한 박수를 보낸다.
표면적으로는 숭고한 결단으로 포장했다. 국민의 치안을 위협할 것이 자명한 '보완수사권 폐지'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비장하게 사퇴서를 던졌다. 명분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진짜 셈법은 차갑고 영악하다 못해 비릿하기까지 하다. 그는 보완수사권이라는 편리한 핑계거리를 방패 삼아,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후폭풍에서 자신만은 절대 다치지 않는 완벽한 '무적의 가불기' 공식을 완성해 낸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첫째, 그가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 기어이 이재명의 공소가 취소되어 법치가 무너지고, 온 국민이 분노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대중이 책임을 묻기 위해 법무부를 향할 때, 그는 우아하게 손을 씻으며 말할 것이다. "저를 왜 보십니까. 저는 보완수사권 문제로 이미 책임지고 물러난 야인이었습니다."
둘째, 만에 하나 시스템이 멈칫하여 공소 취소가 불발되고, 분노한 극렬 지지층 개딸들이 배신자를 찾겠다며 죽창을 들고 날뛰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이때도 그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방어막을 칠 것이다. "제가 끝까지 장관직을 지키며 책임졌어야 했는데, 보완수사권 사태로 물러나는 바람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대중의 거대한 분노도, 극성 팬덤의 맹렬한 린치도 모두 피해 가는 완벽한 진공상태의 알리바이다. 궂은일은 후임자나 실무자들의 손에 피를 묻혀 해결하게 만들고, 자신은 십자가에 예수를 내어주고 대야에 손을 씻었던 본디오 빌라도처럼 도덕적 무결점의 무대 장치 뒤로 숨어버렸다. 국가 사법 시스템의 기둥마다 폭약을 잔뜩 매설해 놓고, 기폭 장치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설계만 했을 뿐 누르는 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며 택시를 타고 떠나는 비열한 건축가의 뒷모습이다.
이재명의 방탄을 위해 사법 체계를 찰흙처럼 주무르던 자가, 정작 파국이 닥쳐올 순간이 되자 자신의 정치적 생명 하나 다치지 않으려 가장 먼저 구명정에 몸을 싣는다.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린 죗값을 실무자들에게 떠넘기고, 보완수사권이라는 가짜 명분표를 쥐고 조용히 퇴장하는 이 기막힌 꼼수를 우리는 그저 '노련한 정치 공학'이라 부르며 감탄해 주어야 하는가.
폭탄을 조립한 자가 폭발의 순간에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그가 방화범이라는 명백한 팩트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