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견디지 못한 드림주가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던져봄
뭡니까, 야쿠자 씨. 왜 그렇게 빤히 봐요?
저 없는 동안 저 보고 싶어서 벽에 머리라도 박았어요?
눈빛이 완전...
그랬는데 마츠카와가
남은 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드림주의 뺨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아주 느릿하고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음
이내 특유의 진동하는 낮은 목소리로
억눌렀던 감정을 툭 토해냄
...글쎄요
네...?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반갑습니까,
사람 미치게
쿵.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달싹이는 드림주를 내려다보며,
마츠카와가 붉어진 귀끝을 한 채로,
쐐기를 박음
...드림주 씨
......어, 네
올라가서 짐만 대충 풀고 나오시죠
네...? 아뇨,
저 방금 막 도착해서 꼴도 엉망이고...
꼴 안 봅니다. 얼굴만 볼 거니까.
약속 없으면, 오늘 저녁은 나랑 먹어요
거절은 안 받고요
평소처럼 장난스레 부르던 1303호가 아니라
정확하게 이름을 부르며 본격적으로 발을 올린
어른들의 연애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끔찍했음
오사카부터 교토까지 이어지는
릴레이 팝업스토어 강행군
낯선 호텔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하루 종일 딱딱한 구두를 신은 채
억지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음
발바닥은 다 부르트고,
다크서클은 턱 끝까지 내려오고,
영혼은 이미 신칸센 선로 위에
흩뿌려진 지 오래
'집... 내 침대... 기절...'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꾸만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어젯밤 그 남자가 보냈던 라인 메시지
[ 역으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
그치만 진짜 언제 도쿄에 도착할지
시간도 불확실했고 주말 밤에 피곤할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게 미안해서 거절했었음
[ 아니에요! 저 시간 늦어질지도 모르고
혼자 갈 수 있어요!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오피스텔 근처 역에서 내렸지만,
막상 눅눅한 도쿄의 밤공기를 마주하니
자기 몸만 한 캐리어가 천근만근이었음.
'아... 그냥 데리러 오라고 할걸 그랬나...'
속으로 찔끔 후회하며, 드림주는 돌바닥을
드르륵드르륵 울리며 오피스텔 1층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감
오피스텔 입구 쪽에 다다랐을 때쯤
익숙한 1층 편의점 야외 테이블
평소 야근하고 올 때면 마츠카와랑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부딪치며 피로를 풀던 그 지정석
드림주가 무심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 자리에 아주 익숙한 거대한 인영이 앉아 있는 거
...어?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편안한 차림
테이블 위에는 맥주 캔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마츠카와는 긴 다리를 뻗은 채 등받이에 기대어
약간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음
묘하게 축 처진, 어딘가 처량함마저 감도는 뒷모습
자기가 오지 말라고 해서 안 오긴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습관처럼 그 자리에 나와서
혼자 술을 홀짝이고 있었던 거
드림주가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캐리어 손잡이를 쥔 채 멍하니 서 있는데,
때마침 고개를 돌리던 마츠카와와
시선이 딱 마주침
......!
순간, 마츠카와의 눈동자가 확 커지고
테이블에 기대어 있던 몸이
반사적으로 튕기듯 벌떡 일어남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먹다 남은
캔맥주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엄청나게 다급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거
마, 마츠카와 씨? 여기서 뭐해... 헉.
인사할 틈도 없었음
드림주 앞까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마츠카와가,
말없이 긴 팔을 뻗어 드림주가 꽉 쥐고 있던
캐리어 손잡이 위로 자신의 크고 단단한 손을 겹침
그리고 그대로 캐리어를 가볍게 확 빼앗아 듦
도쿄역에서부터 질질 끌고 오느라
어깨가 빠질 것 같았던 캐리어가 순식간에 넘어가고,
빈손이 된 드림주가 당황해서
아니, 연락도 없이 혼자 편의점에서...
하지만 드림주의 말끝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음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마츠카와의 눈빛이 너무... 너무
근데 마츠카와는 말 한마디가 없었음
오직 드림주의 얼굴만을 집요하게,
마치 환영이라도 보는 사람처럼 뚫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