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이게, 다른 개체에게 이타적으로 행함으로 천적을 간접 공격하는 거라는 가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어나 범고래는 새끼 고래에게 가장 위험한 천적입니다. 때문에 고래는 상어나 범고래에게 공격적일 수 밖에 없죠.
혹등고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상어나 범고래에게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해양 동물을 보호합니다. 이는 해당 동물에겐 단순히 이타적인 행동으로 인식되나, 실질적으로는 이 동물을 돕는 것이 천적의 활동에 대한 일종의 사보타주가 되는 것입니다.
천적이 사냥에 실패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동족의 어린 개체의 생존을
모든걸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어디까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체의 구멍이 완전히 닫혀버릴지.
그렇기에 우린 구멍이 이 이상 좁아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환경이 이 이상 훼손되는 걸 막아야 합니다.
그게 우리 미래를 보장할 길입니다.
이 채반의 비유에서, 우리가 환경 보호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자연선택이라는 채반의 구멍은 환경에 따라 변하며, 동시에 종이 적당히 유연성을 발휘하면 좁은 구멍이라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A라는 종이 B라는 종을 주식으로 삼는다고 할 때, B종이 멸종하면
발휘한다고 해도 그게 어디까지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예 구멍이 막혀버린다면 유연성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겠죠.
벌의 집단 실종, 세계적 이상기후, 빙하 붕괴, 자연림 훼손, 수많은 종의 멸종.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통과해야 할 챗구멍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진화에 대한 오해중, 우생학으로 이어지는 아주 위험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자연선택이 "살아남는 종을 선택한다"는 게 그것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생존에 별 영향이 없는 형질도 생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선택은 살아남을 종을 선택하는게 아닙니다.
"사라질 종을 선택"하는거죠
사실, 자연 '선택'이란 표현 자체가 우생학으로 이어질 오해가 가득한 표현입니다. '선택'이란 말에는 '의도를 가진 선별'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저 자연 시스템일 뿐으로 의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더 적절한 비유를 찾아보자면, '채반'에 가까운 구조라 생각하시는 게
행위에 불과하며, 때문에 이런 행위나 주장과 행동은 원천적으로 대화의 장에서 끌어내린 다음 토의를 진행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결국 여러 이야기를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 이상 야생 고양이가 늘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어느 방법을 선택할진 더 논의가 필요하겠죠.
일전에 "고양이는 외래종이다"라는 이야기가 돈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상황이 과열돼서 꺼내기 껄꺼로웠으나, 지금은 꺼내봄 직 하다 생각합니다.
사실 적절한 논의를 위해서라면 "외래종"이란 명칭은 상황에 맞지 않습니다. 적절한 접근은 "생태계 교란종"이 맞는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반대할 근거가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이 감성적인 부분이 무시하기 힘들 만큼 굉장히 큰 것도 사실이지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적으로 고양이를 살해하는 걸 옹오하거나, 야생 고양이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을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고양이를 빌미로 사람에게 혐오를 투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