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재게시하며 다루었던 동학에 대한 매천 황현의 기록에 이어 당대 지식인들의 평가를 뒷받침함과 동시에, 그 시대를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던 진짜 백성들의 시각을 조사해 보았다. 길고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거창한 수사나 감정적 호소 없이, 오직 당대에 박제된 1차 사료와 팩트만으로 건조하게 나열할 것이다. 우리가 교과서와 미디어로부터 주입받은 무결하고 숭고한 농민운동이라는 거대한 신화와 유족 연금의 타당성에 대해, 작고 서늘한 의심의 씨앗 하나를 심기 위함이다.
먼저 구한말의 개화 지식인 윤치호의 시각이다. 탐관오리의 부패와 무능을 그 누구보다 혐오했던 윤치호였지만, 그는 자신의 영문 일기에서 동학을 철저히 냉소적이고 경멸 어린 시선으로 해부했다. 그의 눈에 비친 동학은 세상을 바꿀 개혁 세력이 아니라, 미신과 무지에 사로잡힌 광신도들이었다. 윤치호는 1894년의 일기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동학당은 애초의 불만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은 도적 떼이자 광신도들의 무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신비한 글자가 적힌 종이 부적을 가슴에 붙이면 총알을 막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The Tong-haks... are now a band of robbers and fanatics... They believe that by pasting a piece of paper with some mystic characters on it on their breasts, they will be bullet-proof'.
윤치호는 부적을 태워 마시고 주문을 외우면 서양과 일본의 무기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의 기괴한 주술적 행태가, 결국 조선을 문명 세계로부터 철저히 고립시키고 국가의 기본 질서마저 파괴하고 있다고 차갑게 진단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인 백암 박은식의 지정학적 평가 역시 궤를 같이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한국통사 제2편 제43장에서 동학이 불러온 참혹한 나비효과를 한문 원문으로 뼈아프게 짚어냈다.
동학당의 난이 마침내 청일전쟁을 도발하였고, 필경 우리 국권 상실의 원인이 되었다.
東學黨之亂 遂惹起淸日戰爭... 必竟爲喪失國權之原因.
박은식은 동학이 일어난 근본 원인이 탐관오리들의 수탈에 있음을 분명히 인정했다. 그러나 내부의 불만을 이성적 시스템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주술에 의존해 폭주한 결과, 무능한 조정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고 이는 톈진조약을 빌미로 일본군까지 한반도에 상륙하게 만드는 결정적 방아쇠가 되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동학당의 난이 청일전쟁을 촉발했으며, 국권 상실이라는 외교적 대참사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서늘한 진단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존망을 논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당장 삶의 터전에서 그들을 직접 마주해야 했던 일반 백성들의 시각은 어떠했을까. 여기서 한국 역사 교과서가 철저히 은폐하고 있는 가장 흥미롭고도 비극적인 집단이자, 백성들의 진정한 평가라 부를 수 있는 향촌 자위대 '민보군'과 '수성군'이 등장한다.
우리는 흔히 1894년의 충돌을 억압받는 농민과 부패한 관군의 1차원적 대결로만 배운다. 하지만 이는 교묘하게 편집된 반쪽짜리 진실이다. 실제 역사에서 동학 세력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피를 흘리며 싸운 이들은 다름 아닌 향촌의 평범한 농민과 평민들이 결성한 자위대, 민보군과 수성군이었다.
동학 세력이 각 고을을 휩쓸며 군량미 명목으로 식량을 징발하고, 부자를 털고, 사적인 앙심을 품은 자를 처형하는 등 통제 불능의 약탈을 자행하자 향촌의 민심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견디다 못한 일반 백성들은 무능한 관군의 보호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스스로 낫과 괭이, 화승총을 들고 마을 어귀에 방어벽을 쳤다. 최근 학계에서 발굴된 고창 지역의 취의록이나 상주 지역의 소모일기, 토비대략 같은 사료들은 이 참혹한 내전의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 기록들은 동학의 무차별적 폭력에 맞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민보군 조직의 실체와, 그들이 동학 세력을 진압해야만 했던 절박한 생존의 명분을 담담히 박제해 놓았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자칭 혁명가들의 광기로부터 내 가족의 목숨과 알량한 곳간을 지키기 위해, 진짜 농민들이 뭉쳐 동학군과 처절하게 피를 흘리며 싸웠던 끔찍한 내전. 이것이 민보군의 낡은 일기장에 남겨진 1894년 조선 백성들의 진짜 민심이다. 만약 2026년 현재 지방정부가 거액의 혈세를 털어 누군가에게 유족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면, 주술에 빠져 이웃의 묘를 파헤치고 마을을 유린했던 세력의 후예들이 아니라, 그 광기 어린 약탈로부터 촌락을 지켜내기 위해 피를 흘렸던 민보군의 후손을 찾아 보상하는 것이 더 역사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화파 지식인, 민족주의 사학자, 그리고 처절하게 마을을 지켜야 했던 평범한 자위대 민보군과 수성군에 이르기까지. 당대를 살아간 이들이 남긴 1차 사료와 족적은 분명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1차원적인 선악 프레임으로 굳게 믿어온 숭고한 농민운동이라는 단일한 신화 뒤에는, 비이성적 주술과 약탈, 국가의 명줄을 끊어놓은 지정학적 파산, 그리고 진짜 백성들의 피눈물이라는 복잡하고 서늘한 이면이 존재했다.
물론 내가 역사학자도 아닌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료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 몇 가지 기록만으로 1894년 동학에 대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평가를 내렸다고 우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복잡하게 뒤엉킨 역사의 핏빛 진흙탕을 완벽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재단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교과서와 미디어가 주입한 단일하고 낭만적인 신화에 작은 균열을 내어,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역사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지평을 조금이나마 넓히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건조한 노력의 일환임을 밝혀둔다.
@AgainFreeKorea 헐 전시안...
신인 데뷔하자마자 궁으로 주연작 찍고 곧바로 유흥업소에서 물뽕 걸린 놈 이미지 세탁하려고 현역 도피 입대하더니 왜 나오자마자 주연작 맡고 날라다니나 했더니만...
김준수 김재중은 날라다니고 박유천만 짜진 건 전시안에 충성 안해서인건가???
[왜 검사들이 검찰해체에도 저항을 안하나?]
라고 제가 검찰에 있는 친구한테 물어봤습니다. 하도 이해가 안되서. 그 프라이드 강한 검사들이 당하고만 있는게. 충격적인 친구의 답 "어차피 저항해봤자 좌파정권에는 안먹힌다. 그냥 국민들이 당할만큼 당해보고 깨우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야"
@Truthmind2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 욕했다고 공안에다 엄마 신고한 중국인 생각남
엄마가 돌아오지 않게되고 나이가 먹고 자기가 늙어보니 그게 얼마나 잘못된 짓인가 알게됐다고...
좌익이란 놈들이 얼마나 미친 짓을 하는지 그 때 알았음 이건 상종하면 안될 사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