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7살 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근데 당신이 매우 급한 일이 생겨서
당신 딸을 아래 누군가 20분간 맡겨야해.
그럼 누구에게 맡길거임?
1. 이재명
2. 윤석열
난 정치 성향이 없다고 해도 윤석열에게 맡길 거 같은데?
일단 전과가 없잖아.
일단 여동생 밖에 없어서 찢을 형수도 없을테고
일단 젓가락 장인 아들도 없고
일단 모녀 살인마 조카를 감형 변호해 준 적도 없고.
그냥 내 본는이 윤석열한테 맡기는게 안전하다고 느끼는데
너네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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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가 증발한 시대.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굳이 법전을 들추지 않아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감각이 있었다. 바로 염치다. 고위 공직자의 자녀가 부정한 특혜로 자리를 꿰찼다는 의혹이 밝혀지면, 설령 그것이 당장 감옥에 갈 일이 아니더라도 가문의 수치로 여겼다.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이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상식이었다.
그러나 2026년 대한민국의 엘리트 생태계에서는 이 낡은 염치의 미덕이 완벽하게 멸종해 버렸다. 부끄러움을 잊은 자들이 법망의 틈새를 파고들어 뻔뻔하게 기득권을 사수하는 진화된 괴물들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 사무총장의 딸이 아빠 찬스로 특혜 채용되었다는 논란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관리하는 국가 기관의 신뢰를 무너뜨린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난 채용의 실태는 참담했다. 면접위원들은 채점란을 비워둔 채 서명만 했고, 인사 담당자가 나중에 임의로 상중하 등급을 조작해 합격자를 맞추었다. 심지어 그 딸의 선관위 전입 승인 문서를 직접 결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본인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이쯤에서 얼굴을 붉히고 세상의 시선에서 숨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들은 임용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당당하게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대동해 법원을 찾아갔고, 기어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며, 부끄러움이 그보다 앞서야 하는 법이다. 이 염치가 작금의 뻔뻔한 특권층 앞에서는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해져 버렸다. 하지만 이 기막힌 촌극에서 그들의 철면피보다 더욱 절망적이고 썩어 문드러진 곳은, 바로 이들에게 합법이라는 면죄부를 쥐여준 대한민국 사법부다.
법원의 판결 논리를 들여다보면 실소가 터진다. 재판부는 면접표가 조작되는 등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절차가 있었음은 분명히 인정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딸의 합격을 위해 직접 부정행위를 지시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부족하므로 임용 취소는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최고 권력자인 사무총장의 자녀가 지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급자들이 알아서 백지 채점표를 조작해 바치는 것이 관료 조직의 맹목적인 생리이자 카르텔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아버지가 직접 '콕 집어 조작을 지시한' 스모킹 건이 없다는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특혜 채용이라는 거대한 부조리에 스스로 눈을 감아버렸다.
이것은 단순한 판결이 아니다. 염치를 내다 버린 권력자들에게 사법부가 기꺼이 합법의 방패를 내어준 치명적인 사법적 타락이다. 공정과 상식을 파괴한 부정 채용의 정황이 차고 넘치는데도 알량한 증거의 엄격성을 핑계로 기득권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왜 막대한 세금을 들여 사법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가.
부끄러움을 잃은 자들이 당당하게 법정으로 향해 승전보를 울리고, 썩어빠진 법원이 그들의 탐욕에 거룩한 합법의 인장을 찍어주는 나라. 그 대단한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이쯤되니 뭐 거창한 일도 아닌 듯하다
<농지법 때문에 스트레스>
1. 지방에 상속받은 땅이 있음.
2. 내려가서 도저히 농사지을 상황이 안되어 임대를 주었고 연 100만원을 받음. ㅡㅡ;
3. 그런데 세금 연 40 가까이 냄... 남는 게 별로 없음.
4. 그런데 이번에 농지법, 농사 직접 안지으면 25% 이행강제금.
5. 그럼 땅을 공시지가에 사줘. 그렇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난 다음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던 해야지.
6. 이건 뭐 땅을 강탈해가겠다는 얘기임.
7. 지방 땅은 거의 거래가 안되는 상황인데. 이건 뭐하자는 미친 법이야.
8. 민주당 이 미친것들은 정말 국민의 삶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음.
9. 어떻게 하면 국민의 재산을 뺏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10. 역겹다 정말...
국민의힘이 아예 사전투표를 없애겠다는 걸 공식 당론으로 정했음
국민의힘이 오늘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사전투표제 폐지를 포함한 이른바 국민참정권 수호법을 당론으로 채택했음
내용을 보면 생각보다 상당히 큼
사전투표를 없애고
투표가 끝나면 현장에서 바로 수개표하고
투표용지는 유권자 수만큼 100퍼센트 미리 인쇄하고
득표율 차이가 0.5퍼센트포인트 이하면 자동 재검표하도록 하자는 것임
선관위 구조도 건드림
법관과 법원 공무원을 선관위원에서 배제하고 상임위원 숫자를 늘리겠다는 방안까지 포함됐음
계엄선포로 피해 본 사람
아무도 없음.
뭐 공포가 어쩌구 저쩌구
심장이 떨리니 마니 어쩌구 저쩌구
내란이니 마니 지랄염병들을 해대는데
정작 피해본 사람은 없음.
오히려 이재명의 부동산 정책으로
실질적으로 인생에 피해받은 사람 많음
주식 레버리지 도입으로
실질적으로 인생에 손해 본 사람 많음
공공기관 다니던 사람들
갑자기 지방이전으로 피해를 봄
진짜 이 3가지만 말해도
계엄보다 이재명이 더 심각한 피해를 끼침
이런데도 내란타령이라고?????
진짜 계엄때문에 피해 본 사람은 있고????
문득 짙은 서글픔이 밀려왔다. 우리 국민들이 국가를 향해 도대체 뭘 그리 대단하고 거창한 것을 바란단 말인가. 무결점의 유토피아를 달라는 것도, 내 지갑에 당장 일확천금을 꽂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여태껏 피땀 흘려 만들어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훌륭한 기틀 안에서 공중도덕을 지키고, 치안의 안전을 누리며,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평범한 희망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그저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존경할 만하다고 가르칠 수 있는, 부끄러움 없는 어른다운 지도자를 보고 싶은 지극히 소박하고 당연한 갈망이다.
그러나 권력의 옥좌를 차지한 위선자들은 이 담백한 상식마저 도달할 수 없는 사치스러운 기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포성이 확산하는 살벌한 시기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국토를 굳건히 지키고, 누가 진짜 적이며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명확히 구별할 줄 아는 강한 군인을 육성할 장관다운 장관이다. 그런데 우리는 안보 대신 위장전입으로 강남 아파트의 불로소득을 챙기는 철거민 코스프레 장군을 마주해야 한다. 얄팍한 사익의 유혹을 끊어내고 오직 공정함으로 법의 저울을 쥘 것이라 믿음을 주는 법무부 장관을 원했건만, 룸싸롱 마담의 하명을 받들고 흉악범을 비호하던 자가 사법의 수장을 탐하는 촌극을 지켜봐야 한다.
입법과 국정의 풍경은 또 어떠한가. 국가를 지탱해 온 훌륭한 법전을 매년 2천 개씩 뜯어고치고 찍어내는 것을 무슨 위대한 의정 활동의 지표인 양 훈장처럼 흔들어댄다. 국민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법을 어린아이 다루듯 소중하고 신중하게 다루는 입법부 대신, 오직 진영의 이익을 위해 법치를 망가뜨리는 입법 폭주만이 광장을 지배한다. 개인의 삶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통제하려 드는 억압적 국가 대신, 국민 개개인의 역량을 믿고 그 자유로운 발전을 국가 성장의 밑바탕으로 삼는 상식적인 정부는 이제 교과서 속에나 존재하는 허상이 되었다.
경제가 조금 살 만해졌다고 해서 권력자들 마음대로 국고를 허물어 부채를 늘리고, 표를 얻기 위해 빚 탕감을 함부로 남발하는 것은 결코 정치가 아니다. 미래 세대에게 어차피 지워질 빚이라면, 지금 우리가 조금이라도 허리띠를 졸라매어 그 짐을 덜어주자는 정직한 성실함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국가의 역할이다. 끝없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징얼거리며 피 같은 세금이 낭비되는 낯부끄러운 지역 행사들을 억지로 인내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상식의 회복이다.
다시 처음의 짙은 서글픔으로 돌아온다. 국방, 사법, 입법, 재정. 이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세상을 뒤집는 혁명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염치를 알고 본연의 책임을 다하라는 지극히 평범한 기본이다. 그런데 그 기본을 요구하는 일이 어찌하여 이토록 처절하고 피곤한 투쟁이 되어버렸는가. 눈앞의 권력과 탐욕에 눈이 멀어 나라의 기둥을 갉아먹는 자들에게, 이 국가는 결코 당신들만의 얄팍한 전리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영국의 정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묵직한 통찰로 대신 전한다.
"국가란 단지 현재 살아있는 자들만의 동업이 아니다.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 전체를 잇는 숭고한 계약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맹목적일 만큼 깊은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보며 내심 거부감을 느꼈다. 근대적 시민의식을 배운 학생의 눈에, 그것은 민주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 전제 군주나 왕을 대하는 시대착오적인 맹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겪어보니 그 촌스러운 존경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시기도 전쟁으로 부터 불과 스무해 후였다는 점.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대, 내 자식의 입에 최소한 밥은 들어가게 해 주었다는 뼈저린 안도와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감사'아니였을까?. 그들은 지도자를 왕으로 섬긴 것이 아니라, 기아의 공포에서 건져준 행정가에게 투박한 고마움을 표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21세기 대한민국을 돌아보니, 정작 정치의식이나 지도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그 시대보다 더 퇴행한 건 아닌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생긴다. 정작 정치 지도자를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 왕'으로 떠받드는 기괴한 신정(神政) 정치는 -물론 우파에도 전혀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좌파 생태계 한복판에 철저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13세기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이래, 근대 시민사회의 가장 위대한 합의는 "아무리 지엄한 왕이라 할지라도 법의 지배(Rule of Law)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좌파 권력과 지지자들의 뇌 구조 속에는 이 근대적 상식이 완벽하게 거세되어 있다.
벌써 여러차례 다뤘었지만, 최근 김용민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자축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 기분 좋다'고 하셨을 것"이라 내뱉은 기괴한 발언은, 글을 쓰는 작가로서 아무리 상상력을 쥐어짜 내어 보아도, 도대체 무덤 속의 고인이 왜 기분이 좋아야 하는지 납득할만 정답을 상상하기 힘들다.
검찰의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었으니 사적 수준의 의미로 복수를 완성했다는 의미로 좋아할 것이라는 건가? 아니면 앞으로 권력자들은 뒤로 뇌물을 챙기고 부패를 저질러도 검찰이 없으니 수사가 힘들어 질거라 기뻐할 것이란 뜻인가. 그도아니면 힘없는 서민들이 사기를 당해도 경찰서 캐비닛에서 사건이 덮여, 비싼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간신히 법적 보호를 받는 무법천지가 열렸으니 환호할 것이란 뜻인가. 약자의 생명줄을 끊어놓고 죽은 자의 입을 빌려 환호성을 조작하는 저들의 정신 구조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넘어 이미 사이비 종교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밖에 못하겠다.
이들의 모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좌파의 근원적 모토는 '평등'아닌가?. 물론 그들이 부르짖는 평등이 모두가 다 함께 발전하고 나아지는 상향의 길이 아니라, 타인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내려 다 같이 진흙탕을 뒹굴게 만드는 가학적인 '하향 평준화'라 문제지만 말이다. 예를 들자면 매번 좌파정권이 들어설때마다 부동산 규제로 집값은 급등하고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가 불태워졌던 이 지독한 돌림노래를 모르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모두의 하향평준화의 평균을 원하면서도, 오직 자신들이 숭배하는 특정 정치 집단과 맹주 만큼은 모든 법과 제도의 통제를 벗어나는 '절대적 특권'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투표로 뽑았으니 이재명은 재판조차 멈춰야 한다"는 궤변이 버젓이 통용된다. 범죄 혐의자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불경죄로 여기는 이 끔찍한 성향을 대체 무슨 단어로 정의해야 할까. 이것은 시민의 권리가 아니다. 주인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자신의 지위도 올라간다고 착각하는 뼛속 깊은 '노비 근성'이자, 자발적 노예들의 처참한 정신 승리일 뿐이다.
자신들이 던진 투표지에 그토록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여 맹주의 방탄 방패로 쓰면서도, 정작 선관위의 투표율 조작이나 선거 부정 의혹 같은 진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팩트가 밝혀질 때는 약속이나 한 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못 본 체 고개를 돌린다. 그들에게 선거란 민의를 묻는 신성한 절차가 아니라, 내 편의 수령을 왕좌에 앉히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인건가?.
근대적 시민이 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봉건 시대의 자발적 노비가 되기를 선택한 자들. 법치를 조롱하며 하향 평준화의 정글을 세우려는 이 무지성적인 집단과 우리는 대체 어떤 언어로 대화해야 하는지 문득 두려워진다. 마그나카르타의 근대적 기본 상식을 내다 버리고 정치인을 군주인 양 호위하는 저 타락한 맹신도들이 존재하는 한, 이 나라의 미래를 향한 나의 묵직한 절망과 탄식은 끝내 지속될 수밖에 없을듯하다.
기자의 끈질긴 질문 앞에서도 끝내 조사 중이라며 앵무새처럼 시선을 피하는 국방부 공보담당자의 영상을 보았다. 연평도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해군 장병이 머리에 출혈을 일으키고 쓰러져 사망한 지 무려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국방부는 그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부검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응급 조치는 적절했는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모르는 척했다는 게 내 마음이 더 편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한 달이 넘도록 진상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공권력, 그 무책임한 침묵 앞에서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먹먹한 슬픔이 밀려온다.
주식, 환율, 밥상 물가, 부동산. 한마디로 경제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하지만 허세 좀 떨어보자면, 수십 년간 개발도상국의 국민으로 살아왔고, IMF와 금융위기의 파도를 맨몸으로 넘으며 맷집을 키워온 우리 국민은 이 지독한 경제적 척박함조차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낼 것이다. 경제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절망은, 국가에 제 몸을 바쳐 헌신한 청년의 죽음 앞에서 국가가 이토록 뻔뻔하게 무능을 전시할 때 찾아온다.
군인이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는데 국가가 철저히 침묵하는 현상. 국가의 척추가 부러지고 공동체의 영혼이 썩어 들어가는 이 참담한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가장 섬뜩하고 진정한 의미의 내란(內亂)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비극적인 공백의 시간 속에서, 권력의 정점에 선 이재명은 참으로 기이하고도 화려한 정치 굿판을 준비하고 있다. 돌고 돌아 또 내란 타령이다.
그는 불현듯 12월 3일을 국민 주권의 날로 기념하겠다고 나섰다. 투표용지가 모자라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청춘들이 잃어버린 권리를 찾겠다며 날마다 올림픽 공원을 찾는 그 간절한 행위를 놀리기라도 하듯, 하필이면 그 거창하고도 기만적인 이름표를 갖다 붙인 것이다.
이 찬란한 도발 앞에서는 분노를 넘어 헛웃음이 터진다. 나라를 지키다 쓰러진 장병의 죽음이 한 달째 방치되고, 원인조차 대답하지 못하는 안규백 체제의 국방부를 그대로 둔 자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내란을 운운하고 국가 안보를 논한다는 말인가.
국민에게 진정한 내란이란 무엇인가.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를 행진하는 시각적 공포만이 내란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고, 국방부가 자국 군인의 죽음을 덮기에 급급하며, 입을 틀어막아 시민의 합리적 의심마저 통제하려 드는 이 폭력적인 무능과 무책임. 그것이 바로 공화국의 존립을 뿌리째 흔드는 일상화된 내란이다.
정치 권력의 유지와 진영의 결속에만 혈안이 된 자들에게, 평범한 청년의 피눈물과 죽음은 그저 귀찮은 행정 처리 대상에 불과한 것인가. 12월 3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내란을 기억하겠다 호들갑을 떨기 전에, 당장 저 차가운 연평도 바다에서 이유도 모른 채 쓰러져 간 병사의 억울한 죽음부터 똑바로 해명해야 마땅하다.
국가가 청년의 죽음을 외면할 때, 그 국가는 이미 스스로 내란의 주범이 된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내란 타령의 정치 굿판 뒤에서, 잊혀가는 장병의 죽음을 보듬지 못하는 시대의 야만이 참으로 뼈아프고 쓰라리다.
부정선거 다 밝혀지면 국가에서
부정선거 싸운 분들, 돌아가신분
싹다 모아서 피해보상금 주고
국가유공자 시켜줘야 함
나는 고작 1년 7개월 깔작거리는데도
스트레스 개받고 돌아버리겠는데
이거 25년간 투쟁한 한성천님이나
2020년부터 6년간 싸워온 모든 분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도 안감
존경합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나라 정상화 시킵시다.
🚨(발칵)먼저 재외국민에 사과하는 우원식
개헌안 통과 안 됐다고...
우원식은 선거인단에 등록한 *재외국민*에게 제일 먼저 사과를 했다.
10000번 양보하고 진짜 개헌이 국민의 뜻이었으면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다 알겠지만 재외국민 대다수가 중국인인거 알고있죠?....
아니 이걸 보고 정상이 아니라고 느끼는 건.. 저만인가요???
비정상이라 느끼시면 꼭 이 사실을 하트와 재개시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