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의 운명
누군 우리를 '주인'이라고 한다. 누군 우리를 언급하길 꺼린다. 또 누군가에겐 우린 자신의 고귀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해꾼'이다. 그게 정치인들에게 비친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정치에 별 관심 없는 일반 대중에게 우린 아까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별종일 뿐이다.
"나 민주당 당원이야". 이 말보다 상대방의 눈에서 빛을 걷어내고 마음을 굳게 만들며 대화를 식히는 주문이 있을까 싶다. 헌법에 보장된 '비밀투표'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사람들은 당원임을 당당히 드러내고픈 내 욕망을 무슨 변태성욕에 대한 폭로 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 그들의 시각에서 난 철없는 정치 고관여층, 정치'팬'이다. 하지만 내가 덕질을 하는 대상은 개별 정치인이 아니다. 난 민주당과 그 당원들, 즉 대체로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유사한 꿈을 가진 그 당원의 팬이다. 당원이 있고 당이 있고 그 다음에 정치인이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불편하다.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번 전당대회는 Yes맨 호러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중도, 우파, 극우파 '국민'을 배려하는 만큼 민주당원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의 센스 있는 입담으로 우릴 모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까?
난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경험, 꿈에 대해 더 설득력 있는 사람이 대표가 되길 바란다. 당이 대통령을 더 뒷받침해야 한다는 그런 개소리 말고....
새로운 ABCD론
단순 지지자와 당 내외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을 몽땅 뒤섞은 그 거지 같은 ABC론 말고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정치 고관여층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ABCD론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A는 순수 인물파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생팬'에 가깝다. 이들에게 지지하는 정치인은 자신과 동일시되며 남들도 그 정치인과 자신을 동일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의 열정은 그 어떤 집단보다 뜨겁니다. 문제는 이들에게는 당도 어젠다도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당도 어젠다도 이들에게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입당도 탈당도 쉽고 지지하는 정치인이 말을 바꿔도 용서하는 경향이 있다.
B는 전략적 인물파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수단이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 여부는 자신의 정치적 어젠다를 실현하기에 얼마나 유용한가로 결정난다. 따라서 태도나 말을 바꾸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할 수 있으며 상대적이지만 당에 대한 충성도가 A보다 높다. 당은 이들에게 정치적 수단인 정치인들을 꾸준히 제공하는 유용한 인재 풀이다.
C는 순수 이념파다. C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개별 정치인도 정당도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념의 차이나 '선명성'이 중요하다. 이념이 중요하기에 그 실현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강하고 순수하며 선명한 이념적 요구가 중요하다. 그래서 항상 '뺄셈의 정치'를 선택하며 그 요구에 부응하는 소수의 인기 없는 정치인들에 만족한다.
D는 전략적 이념파다. 이들에게는 이념의 구현이 중요하다. 그래서 C보다 '덧셈의 정치'를 선호한다. 큰 힘을 모아 자신에게 중요한 이념을 법률로,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대중정당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A와 BCD 연합 간의 싸움이다. 이러한 구도를 만든 장본인은 안타깝게도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그가 주창하는 '실용'은 결코 이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용은 전략에 불과하다. 이를 구분할 의지가 없는 A형 지지자들이 대통령 주변에 차고 넘치며 이들이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을 줄세우고 당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정청래가 진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다. 나머지 한 명은 아직도 진영을 배신한 잘못에 대하여 전국적인 용서와 검증을 받지 못한 정치가이고, 또다른 후보는 수도권 권리당원들이 그렇게 힘들게 잠재웠던 호남을 당의 전면에 재등장시킬 가능성이 높은 자다.
정청래가 패배한 민주당은 다음 총선에서 수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의 인기에 힘입어 당원의 지지를 정식으로 얻을 생각은 없이 비주류 혹은 외부인사에서 단번에 주류가 되겠다는 자들이 판치는 선거 국면에 무슨 신명으로 운동도 하고 투표장으로 나가겠는가.
특히 김민석 전 총리는 아직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한 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 그 카드를 이번 전당대회에서 날려버릴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이재명이 아닐뿐더러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내에서 대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조건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김민석에게는 문재인이 없다. 자신을 친노로 인정해 당 내에서 세례를 집행해줄 영향력 있는 후견인이 없다. 김민석은 민주당의 친노 권리당원들에게 자력으로 '정치적 세례'를 구걸해야할 처지에 있다. 단 한 장 손에 쥔 대권도전장을 써 볼 수 있으려면 그 길뿐이다. 그리고 이건 송영길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이 정청래와 대척점에 서서 피튀기는 당권 경쟁을 한다면? 그리고 그 싸움에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일부 진보채널과 민주당 주류를 조롱해 온 보수언론의 지원사격을 받아 이긴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미래다. 그래서 정청래를 지키고 나머지 도전자들은 각자의 분수에 맞는 정치적 자리로 주저앉혀야 한다. 그래야 먼 훗날 큰 상처 없이 민주당 차기 대선후보 선출경쟁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
수도권 4-50대 민주당 권리당원
명실 상부한 민주당의 주류,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다. 이들은 민주적 적통을 이어받았다. 김대중의 나쁜 유산인 동교동식 지역주의도 극복했고, 이전 6-70대의 전근대적 정치문화도 정화했다.
이들은 어린 학생때 민주화 운동을 외부에서 체험했고, 이에 감동하였으나 대학 운동권이 쇄퇴하기 시작한 3당합당 전후 또는 그 한참 후에 대학을 다녀 운동권의 직접적인 영향(좋든 나쁘든 간에)에서도 빗겨나 있었다.
이 세대의 정치적 의지에 불을 지핀 것은 노무현이었으며 상당수가 노사모를 시작으로 정치적 고관여층이 되었다. 그리고 노 대통령 사후 문재인 대표가 호남 토호세력과 안철수로부터 난타당할 때 권리당원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언론은 이 세력에게 결코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 이들이 각 지역에서 후보로 추대해 선출한 민주당 국회의원 대신 정의당 잔당세력이나 당원의 선택을 받지 못해 민주당을 떠난 패배자들, 혹은 민주당 밖에서 독자생존을 노리는 조국혁신당 전국구들을 패널로 등장시켜 이들을 대변하도록 시킨다. 사실 이 그룹의 정치적 행보를 왜곡 조롱하기에 이들보다 만만한 스피커는 없다.
이미 3번의 총선과 2번의 지선, 2번의 대선을 승리하며 대한민국 정치지형의 가장 중요한 블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딸'로 폄훼되고 아직도 '노무현 팔이' 일부 정치인들의 사생팬 정도로 치부된다.
언론이 이들을 이토록 배제하는 이유는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자신을 선택한 당원들을 거스르는 대통령은 아무리 유능해도 지지를 철회하고, 설익거나 기회주의적인 후보는 아무리 청와대가 낙점해도 낙선시키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하는 지지 블록이다.
이들이 호남의 젊은 개혁 세력과 합심하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그래서 오늘도 온갖 지면과 방송에서는 갈라치기와 조롱이 계속된다. 주욱~~~
https://t.co/yJ6ydzAHWj
똑똑하고 말 잘하는 누님
거의 모든 내용에 동의한다.
다만 정 대표에 대한 부분은 아쉽다. 그는 당원 1인 1표제라는 민주당 역사에 남을 혁명적 개혁을 완수한 자다. 우리는 그에게 보은해야 한다. 연임하고자 한다면 한 번 더 '써 먹어야' 한다.
친노 성향의 당원이 민주당의 생명인 이유는 노 대통령에 대한 존경은 있어도 '친노 간판팔이' 정치인들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인을 '도구'로 쓸 줄 안다.
민주당을 망친 세력은 언제나 지연으로 뭉쳤거나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한 '사생팬'이었다. 이들에게는 민주당이 도구였다.
당원이 주인이 되면 당이 중요하지 정치인은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정치인은 우리의 개혁 의지를 대변할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길을 정청래가 열어주었다.
그를 지켜야 한다. 유시민이 떠난 노무현 재단은 조수진이 아닌 이광재에게 맡기고...
개같은 ABC론
불과 선거 2달 전이었다. 이 기괴한 도식이 등장한 것이... 그렇게 구분하고 시작한 선거였다. 난 A니까 신나서 투표할 것도 없고 난 B니까 이익보자며 달려들 것도 없는 맥빠지는 선거가 됐다.
그냥 다 기분 더럽게 선거를 맞이했다. 도대체 아무리 양당구도가 싫고 민주당의 포용력을 주문하고 싶었어도 진보 스피커의 아이콘이란 자가 전 진영의 투표 의욕을 이렇게 떨어뜨려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결국 김용남도 조국도 떨어졌고 입방정으로 더 이길 수 있는 선거를 망친 게 벌써 두번째다. 조금 과장하면 선거는 섹스 같은 거다. 온갖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려 절정의 타이밍을 맞추는 집단행위다. 그걸 분석한답시고 기분도 잡치고 타이밍도 놓치게 만들었다.
결국은 둘 중 하나다. 민주당 밖에서 진영의 승리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본인의 헛된 희망을 버리던지... 민주진보 진영 전체의 스피커라는 과분한 타이틀을 우리가 뺏어버리던지.
현재의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이래로 당 내에서 지방 기득권 세력과 때론 싸우고 때론 달래며 투쟁해온 결과다. 그 더러운 투쟁이 싫어 당을 버리고 나간 '배신자'인 자신을 다시 받아준 ABC 그룹의 모든 민주당원들을 그는 더 고맙게 여겼어야 했다.
헛다리 짚기
윤석열에 대한 분노가 가실 무렵 우린 반성해야 했다. 내란을 옹호하거나 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 만큼이나 그 원인을 제공한 민주 진영 책임자들의 사과와 반성이 필요했다.
윤석열의 본질을 보지 못해 검찰권력을 맡기고 대통령까지 오르게 한 전직 대통령과 법무장관, 그 외 민주 진영 책임자의 사과와 반성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자들은 눙치고 넘어가려 한다.
이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본질을 보지 못해 대통령과 법무장관,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게 만든 우리의 무지와 무능을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락 직전에서 되살아왔으나 아직도 위태로운 한국 정치가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성은 커녕 이들을 옹호하고 선거 직전 편가르기에 몰두하는 유시민과 그 동조자들이 있다. 이들은 많은 민주당원들로부터 댓글로 엄청난 공격을 당했다. 그리고 어제 방송을 통해 성토했다.
아무리 욕을 먹은들 댓글이다. 수가 많고 과격해도 댓글이다. 본인은 민주진영 전체를 대표하듯 거의 모든 진보진영 정치 채널에 나와 민주당원들을 난도질해가며 분석하고 조롱하면서도 누가 누굴보고 '폭력적'이라고 눈알을 부라리는가.
이번 사건은 일개 개인이 지나치게 많은 발언권을 독점했을 때 뜬금없이 나타난 명사병 증상 같은 거라고 본다. 이 모든 열기가 식었을 때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정치 평론가가 농담 말고 진심으로 반성하길 기대한다.
수비축구
게임은 수 개월 전에 사실상 끝났다. 상대팀은 계엄으로 감독을 잃었고 경기 시작과 함께 여러명이 퇴장당했으며 남은 선수들은 아직도 잘잘못을 따지며 골키퍼와 싸우고 있다. 이 정치 무대에서 우리당의 골 점유율은 60%를 넘는다.
하지만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수적 열세에 있음에도 자살에 가까운 공세적인 저 팀을 상대로 이 당은 수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겸손이나 '부자 몸조심'과 수비정치는 엄연히 다른 거다. 이 당은 그 차이를 모른다.
화이트 컬러 중심의 대졸자가 주 지지층이어서 DNA에 각인되어서 일 수도 있고, 상대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어 진영의 싸움꾼들이 일찍 탈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불행히도 축구에서나 정치에서나 재능있는 공격수들은 경기장 밖에서 사고도 많이 치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수비정치의 국면에서 선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민주당 지지자라면 평생 봐온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다. 선거 쟁점은 죄다 우리 코트 내에서 논다. 변변한 슛도 한 번 못해보고 경기에서 패배하고도 시즌은 겨우 우승할 기세다.
위기다. 팀을 이끌 다음 스타가 안보인다. 우승하면 퍼레이드에는 참가하겠다만 투표하고싶은 경기력이 실종된 지금 과연 유니폼 입고 경기장에 가볼 마음을 어디서 찾아내야 할까... ㅡ.ㅡ
트롯 혐오.
난 트롯이라는 장르를 혐오한다. 그 장르가 보여주는 가사의 원초성 때문이다. 트롯은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특정 계층의 억압된 동물적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구수한' 가사를 특징으로 한다. 이들의 억압된 욕망을 적나라하게 만족시키기 위한 음악 장르다.
60대 이상에게 트롯은 얼마전까지 2-30대에게 힙합이 그러했던 것과 같은 유사한 기능적 음악 장르다. 마음을 울리지만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주는 장르. 불륜을 암시하는 그 수많은 트롯 가사들을 생각해 보라.
정치도 트롯화 되었다. 보수가 마음 속 깊이 담아두었으나 차마 겉으로 내뱉기 창피한 그 말. "빨갱이는 다 죽여도 돼". 그걸 태극기 들고 시내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취해 노상원의 꿈도, 윤석열의 몽니도 현실로 툭 튀어나온 거다.
그 동안의 보수는 겉으론 점잖은 '스타일'을 유지한 재 뒤로는 언론과 검찰, 경찰을 이용해 민주진영 "빨갱이"들을 죽이는 행태의 것이었으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지나며 일본에서 배운 '스타일' 정치를 버리고 지지자들의 동물적 욕망을 직접 대리하기로 노선을 바꾸었다.
우리는 생으로 드러난 이들의 욕망의 상처가 아물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가 딱지처럼 굳고 그 밑에 새살이 돋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의 상처의 정당성을 따지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너무 막중해 보인다.
안전 불감증
내란 기도 1년이 넘었다. 그 미친 계엄 시도가 '설마 성공했겠냐'는 사람들이 많고 어느 정도는 나도 수긍한다. 하지만 1년이 지나 전 국민적 시위, 헌재의 파면과 대선을 거친 과정을 반추해보면 정상화와 회복의 과정이 그리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그 첫째 이유는 언론이다. 특히 '진보' 언론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의 근간이다. 하지만 일부 보수가 끊임없이 기도하는 언론 자유 말살에 대해 '진보' 언론조차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 직접적이고 원시적인 핍박에 항상 거리를 두고 점잔을 뺀다.
오히려 '진보' 언론은 기울어진 언론 지형에 불만인 민주당을 병신 취급하기 일수이다. 그 결과 이들 언론은 보수의 비민주적 행태보다 조국 사태와 윤미향에 더 잔인하게 분노해 왔다. 조금이라도 '민주당'의 편을 드느니 민주당 지지자들을 '진보' 언론 지형에서 소외시키고 주변화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언론 지형 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무능했거나 검찰이 마지막 힘을 다해 제2의 조국과 윤미향을 발굴해 냈다면 민주주의 수호와 헌법질서 회복이라는 우리의 대업은 이미 벌써 꺾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수호와 이를 분쇄하려는 반동적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민주당이라는 실체가 없는 민주적 진보 여론은 아무리 60% 이상이 찬성해도 우리의 공기를 가득 매운 안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 의지는 언론이 조작하는 여론몰이 바람에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라는 기계는 중단이라는 파국을 겨우 피했다. 하지만 법원, 학계, 검찰, 군, 경찰, 언론에는 100년을 이어론 썩은 부품들이 가득해 대통령 교체만으로는 향후 10년도 보장할 수 없다. 우리는 이 고질적 안전 불감증에서 이제라도 벗어나야 한다.
글로벌 븅신론.
'븅신'이란 욕은 참 오묘하다. 우리가 '븅신'이라고 조롱하는 대상들의 특징은 감정적, 심리적 이유로 자신에게 끼칠 막대한 손해를 예상하지 못하거나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선택을 하는 이해못할 자들이다. 그래서 '븅신'은 악의보다는 측은의 표현이 된다.
내란을 주도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의 국내외에서의 황당한 행태를 보며 해외의 시민들이 뉴스나 유튜브 화면 뒤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는 한 마디가 '븅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상황을 벗어났고 오히려 우리 이웃 혹은 동맹국에서 수많은 '븅신'들이 준동하는 국면이 되었다.
한국의 혈맹이자 자유 민주진영의 '큰 형님'이던 미국은 인권을 똥 닦은 휴지만도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업가를 대통령으로 모셨다. 북쪽의 형제 국가는 곰팡이 가득한 방에서도 햇살 들어올라 모든 창틈을 메우기에 급급하다. 전직 조폭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성공한 일본은 이제 사업이 기울자 초라해진 몸으로 새로운 동네 깡패 중국과 한 판 붙을 기세다. 그리고 러시아는... 놀구 있다.
각국이 저마다의 '븅신'들에게 휘둘려 누가 더 멋진 뻘짓을 할 수 있는가를 두고 경쟁하게 된 원인은 다양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복원력을 발휘했지만 우리 이웃들에게서 가까운 미래에 '븅신' 소리를 그만 듣게 될 정치사회적 복원력이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우리는 '븅신'들이 판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 세계 질서는 기후변화를 심화시키고 국제기구와 국제협약들을 무력화하여 국지전, 무역분쟁, 문화갈등을 극대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미친 세상에 합리적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다. 실천으로 모범을 보이는 일이다. 그리하여 먼 훗날에 전 세계 시민들이 이 위기의 시대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진가를 올바르게 평가하길 기원하는 일이다.
번역으로 밥벌어 먹는 자의 단상.
3류 번역가는 자신이 잘못 해석한 원문의 번역을 독자에게 강요한다.
2류 번역가는 자신이 성심성의껏 해석한 원문의 꽤 정확한 번역을 독자에게 강요한다.
1류 번역가는 자신이 원문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가 고스란히 남겨진 번역을 내놓고 사라진다.
물론 무성의하거나 정돈되지 않은 원문을 가지고 와 훌륭한 문장의 번역문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서비스도 내 몫이다. 그래서 난 반만 번역가가 된다. 나머지 반은 작문 코치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도 글로 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글의 번역에 대해 사람들은 원문이나 원저자를 탓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번역이 잘 못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번역은 애초에 읽는 이에게 그 어떤 영감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킬 욕망도 없이 그저 글을 쓰고 또 번역해 둘 목적으로 의뢰된다. 그건 현재 수준의 AI로도 충분히 번역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AI가 통번역 시장 전체를 지배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기술의 고도화 때문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건 아마도 타인과 글로 소통하고자 했던 태초의 욕망이나 의미를 완전히 망각한 후 벌어지는 슬픈 미래상이 될 지도 모른다.
트럼프에게서 살아남기.
ADHD 증세가 있는 깡패두목에게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떠벌리기 좋아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논리도 근거도 책임도 일관성도 없는 자가 세계 최강 시장을 무기로 예측불가능한 정치적 호러쇼를 펼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참여해야 할까...
남은 임기 3년 동안 뭉게야 한다.
일단 말은 최대한 뱉어주고 보자. 상대는 자기가 아침에 한 말도 점심에 뒤집는 자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에 대해서도 논리의 일관성이나 과거의 말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빈말은 최대한 화려하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행동은 최소한으로 하자. 100을 약속했다면 2-3만 한다. 말로 약속했고,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 약속을 언제까지 얼마나 실천했느냐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요구에 반발하는 자가 받는 모욕과 분노에 비하면 이행에 늦은 자가 받을 모욕과 분노의 양은 미미하다.
협상을 질질 끌어도 진행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머지는 마음껏 웃어주고 아첨하며 언젠가는 약속을 지킬 것임을 확인시켜주면 된다.
이런 행태는 십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전략이었으나 트럼프 1기 집권기에 실험되었고 오늘날에는 현명한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말과 행동으로 공격하기 좋아하는 국내 ADHD 언론이다. 논리도 일관성도 없이 과거 보도도 언제든지 뒤집는 대한민국의 찌라시들이 시키지도 않은 트럼프 빙의 게임에 빠져 지랄하는 3년을 버텨야 한다.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소망.
전 세계에 극우 열풍이 뜨겁다. 현재의 정치적 변화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외국에 대한 간섭과 전쟁도 불사했던 서구 선진국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하고 취약한 것이었나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워 국제적 기득권을 독점했으나, 각자 국내의 경제적 어려움과 개혁에 대한 불만이 일자 하루 아침에 자유무역주의와 함께 그동안 주장해 왔던 내용들을 뒤집는 선택을 한 것이다.
서구는 국제기구에서의 독점적 지위와 자금력을 앞세워 세계를 주도했고 여기에 동조한 국가들에게 국경과 시장을 개방하고 금융지원을 해 줌으로써 그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시장개방에 의한 일자리 부족과 이민자 문제가 대두되고 경제위기로 자금력이 쇠퇴하자 무책임하게 자신의 권리는 유지하되 책임은 축소하려는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도 소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신생 민주국가로서 아직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그 역사가 몇 배 더 긴 국가들보다 훨씬 뜨겁다. 민주주의 교육의 역사가 더 오래된 국가들에서조차 인터넷에서 양산되는 선동에 좌우되고 엉뚱한 희생양을 찾아 화풀이 하는 것이 유행이 되는 오늘날. 서구에서 보여지듯이 조금 먹고 살기 힘들다고 우리가 국가를 이루고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전부 부정하고픈 욕망에 굴복할 순 없다.
대한민국이 세계 정치사에 식민지와 독재를 거치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복원력을 실천한 국가로 평가되기를 소망해 본다.
극우는 무슨 극우?
그냥 싸가지가 없는 잡다한 집단들의 느슨한 연합이다.
국가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놓고 자신의 삶을 갈아넣고 남의 삶도 갈아넣을 생각은 1도 없다. 영토 확장은 고사하고 서진 또는 수도권 근처로 세력을 확장할 생각이 1도 없다. 외국인 혐오가 폭력으로 구현되는 서구의 정통 극우와 달리 게임과 스포츠 커뮤니티에 몰래 들어와 댓글을 반복해 다는 수준이다.
이들을 극우라고 칭하는 건 과대포장이다. 그저 어느 자리에서도 무슨 주제로 논쟁하더라도 상대를 조롱하고 자신이 심리적 우위에 있어야만 하는 집착증에 시달리는 불안한 세대들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말싸움에 능하다고 착각한다.
물론 말보다 욕, 욕보다 손이 먼저 올라가는 폭력적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세대를 막론하고 이들은 소수다. 그리고 서부지검 사태 이후 벌어진 수사와 재판에서 보듯이 이들도 투철한 신념이 있다기보단 그냥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구속되고 재판을 받을 즈음엔 미안하리만큼 쭈그러들어 반성하고 만다. 모진 모욕과 고문도 이겨낸 과거 운동권과는 비교조차 불가한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다. 욕망의 무제한적인 발산이다. 규제 없는 재산 및 자산 증식에 대한 욕망, 세금과 범칙금 없는 세상에 대한 욕망, 무한히 순종적인 여성 (혹은 남성)과 자식에 대한 욕망, 자신보다 지식이 많고 똑똑한 자 위에 서서 지배하고픈 욕망, 누구나 조롱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욕망 등등...
그래서 10분만 이야기를 나눠도 온갖 논리적, 실존적 모순과 함께 그 밑천이 드러난다. 강한 신념이라도 있었다면 존경할만 하겠으나 그 현기증나는 선택적 혐오로 어떻게 확장하겠는가?
순한맛 테스트베드 대한민국.
미국 이민국의 이례적인 검거작전으로 시작된 LA소요가 악화되어 대통령이 주방위군 투입을 명령했고 해병대가 대기중이다. 미국의 시위대는 보도블럭을 깨 경찰과 경찰차량에 던진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35년 전에나 봤던 낯선 광경이다.
우리는 최첨단 국가에 살고 있다. 전 세계 극우 정권들에게 군을 동원한 정치문제 해결 시도를 누구보다 앞서 실천한 최초의 주요 국가다. 대중적 인터넷 인프라를 가장 먼저 깔았고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최저 출생률을 달성해 남녀의 대화단절과 갈등이 사회 붕괴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먼저 보여줬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 테스트베드인 셈이다.
대한민국은 동시에 벤치마크 국가이기도 하다. 극우의 창궐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이런 갈등과 폭력이 현실화 되었을 때 얼마나 빠르고 강한 회복이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기준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보수가 장악한 언론, 대학을 포함한 교육계에도 불구하고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더 대단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북미와 유럽의 경제가 불안하고 정치 시스템이 도전받는 지금, 세계는 방향타를 완전히 잃은 듯 보인다. 앞으로 이들이 달라진 자국의 사회적 환경을 직시하고 새로운 타협과 안정을 찾기까지 혼란스러운 기간을 보낼 동안 우리도 국력을 모아 우리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해 내야 한다.
87년 이후에 이루어진 개혁의 효과로 우리는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하지만 이제 다음 단계의 사회 혁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건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가치를 알아본 전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과 시민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승리와 과제.
김문수도 40%를 얻었다. 내란을 암묵적으로 지지한 저 어눌한 변절자도 보수 지지자들로부터 40%가 넘는 지지를 얻었다. 이건 대한민국의 40%는 누가 보수의 후보가 되어도 앞으로 상당 기간동안 어제와 같이 '묻지마 투표'를 계속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들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의 간판 아래 하나로 엮을만한 어젠다 하나 없이 오로지 반 민주당과 진보 혐오로 동질감을 확인하는 집단이다. 강남과 경상도 유권자들과 2030 남성들 사이에 민주당과 진보진영 혐오는 일상적인 놀이문화가 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극우가 국민의 힘에 내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지선이나 총선에서 '이재명 죽여'나 '민주당 죽여'를 운동 구호로 사용하는 미친놈들이 국힘 후보로 당선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어졌다.
이건 이재명 당선자가 '사법 리스크'가 있기 때문도 아니고 민주당의 역량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불행히도 오늘 우리가 확인한 '보수'의 행태는 누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든, 민주당의 인적 역량이 아무리 훌륭해도 바꾸기 힘든 고정변수가 되었다.
각 후보의 실력과 당의 역량을 놓고 정치적으로 경쟁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확인한 슬픈 승리의 날이다.
언론과 벽돌쇼핑.
한 때 고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대신 벽돌이 배송되어 언론에 보도되던 때가 있었다. 명백한 전자상거래 사기다. 피해자는 억울해 분노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라 느꼈더라도 그 금전적 손해를 깨닫는 순간 분노했을 지도 모른다.
지난 대선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벽돌을 배송받았다. 언론과 방송의 사기에 속아 대통령을 주문했으나 '인간 벽돌'을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댓가는 전자기기 가격 이상이었다.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내란에 의한 군부독재가 재현될 뻔했다.
이 정치적 사기에 가담한 자들은 간판도 바꾸지 않은 채 새로운 상품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이들의 사기 수법은 단순하다. 차마 벽돌을 대통령이라 찬양할 순 없으니 경쟁 후보와 진영을 깎아 내린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니 차라리 벽돌이 낫다는 기적의 논리다.
우리 각자에겐 지난 대선 때 받은 벽돌이 집안 어딘가에 하나씩 굴러다니고 있다. 그걸 집어 저 뻔뻔한 사기 언론에 힘껏 던지는 선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