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토니 모리슨의 <재즈>를 읽을 때 분명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문장을 다시 읽으면 과거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겠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보며 문득 옛생각이 났다. 같은 이유로 지금 읽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읊조린다.
대학생이 된 이후, 그땐 내가 꽤 똑똑하고 성숙한 줄 알았다, 난 읽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 생각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일종의 적개심을 느꼈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성숙하거나 똑똑하지 않은 그저 평범하고 어설픈 스무살이었다.
추모의 방식을 고민한 적이 있다. 처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버지를 떠올리고, 말하는 것만으로, 내가 멀쩡하게 숨쉬고, 대화하고, 밥 먹고, 잠자는 것이 죄스러웠다. 아버지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 올랐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 생각했다. 그래서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부재에 그리움보다 미안함이 앞선다. 내가 충분히 애도 하지 못한 미안함이다. 아버지의 기억을 좀 더 주변과 나누지 못한 안타까움.
Saw a Korean article with a screenshot of a mom texting her missing daughter before finding out she had died. Kind of wish we don’t share those images as media. The images from Sewol that still give me flashbacks are screenshots of parents’ Kakao chats with their kids on board.
불현듯 생각났다.
"한때 진정한 사랑을 앞에 두고 소중히 여기지 않았소.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이오.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만약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서유기2, 선리기연(1995) 중>
무섭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있다. 알고 있지만, 무서운 그 순간을 유예하고, 회피해도 매번 다른 모습, 같은 얼굴로 되돌아온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은 지금 하는 것이 옳다. 그 선택이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충만해 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