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바라보는 눈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의 실수에는 관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행동에는 엄격하다. 정치를 볼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싫어하는 정치인이 정책을 내놓으면 내용보다 반대할 이유부터 찾는다. 결과가 좋아도 다른 흠을 들춰내고, 잘한 일이 있어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한다. 반대로 지지하는 정치인이 같은 일을 하면 의도부터 좋게 해석한다. 발언 내용은 같은데, 달라지는 건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뿐이다.
친구 중 한 명은 특정 정치인 이름만 나오면 표정부터 바뀐다. 정책을 발표하면 속셈이 있다 하고, 침묵하면 책임 회피라 한다. 무슨 선택을 해도 비판할 거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판단이 행동을 보고 정해지는 게 아니라, 감정이 판단을 먼저 정하고 이유는 나중에 찾아진다.
문제는 이렇게 보면 옳고 그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남는 건 내 편과 네 편뿐이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사람과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싫어하는 사람이 한 일이라고 다 잘못된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이 한 일이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다.
정치를 제대로 본다는 건 누가 옳은지 먼저 정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이 한 일에서도 옳은 부분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홍정기 교수님
참 유쾌하고 재밌으셔~
학력에 대한 자부심은 어마어마하신데
자랑하시는 것조차 자랑 같지 않고 웃김ㅋㅋ
교수님이 그러시더라
“만보 걷지 말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스쿼트 10개 하세요”
근데 이게 일하면서 해보니까
한 시간마다 스쿼트 10개도 쉽지 않음
그렇지만 나는 업그레이드해서
한 시간에 한 번 스쿼트 20개 도전
그리고 마지막엔
바운스 10개 + 버티기까지
근데 스쿼트 하면서 중요한 걸 너무 늦게 알았다
1️⃣ 앉았다가 일어나서
허벅지랑 엉덩이에 꽉 힘주기
2️⃣ 앉을 때 무릎만 굽히는 게 아니라
엉덩이를 뒤로 쑥 빼기
쉽게 말하면
쪼그려 앉는 화변기에 앉아서 응가할 때처럼
엉덩이를 뒤로 쭉 빼는 느낌
한 시간마다 스쿼트 해볼래❓
“이 카스테라, 성수동 빵집이 10억 버는 이유였네”
카스테라 사 먹던 거 이제 그만해도 될 듯.
성수동에서 연매출 10억 찍는다는 그 빵집 레시피, 그것도 집에서 밥솥으로 40분이면 똑같이 나옴.
재료는 진짜 별거 없어요.
근데 결과물은 구름처럼 폭신폭신.
레시피 적어둘 테니까 저장해뒀다가 한번 따라 해보세요.
그거 알아?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는 내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깔끔하게 세팅하는
슈카츠라는 문화가 있어.
60세:
일단 흩어져 있는 모든 금융 자산을 통장 딱 하나로 몰아넣고, 안 쓰는 자잘한 통장들은 싹 다 해지해버림.
65세:
한창때 엄청 아꼈지만 이제는 늙어서 몸이 안 따라줘 못 쓰는 등산, 낚시 같은 취미 장비들을 미련 없이 다 중고로 처분함. 부피가 큰 짐부터 덜어내는 첫 단계임
70세:
은퇴후 한적한 시골 절대 안 감. 무조건 구급차가 빨리 올 수 있고, 혼자 장보고 밥 사 먹기 편한 의료 인프라 빵빵한 도심소형 아파트로 이사함.
75세:
언제 갑자기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홀가분할 수 있게, 남은 소지품을 딱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갈 분량으로만 남김.
80세 이후:
내 장례식 방식부터 남은 재산 처분, 유품 정리까지 내 뒷수습을 책임져 줄 전문 업체를 찾아 미리 계약을 다 끝내놓음.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가장 깔끔하게 내 흔적을 지울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세팅해 두는 거.
점점 1인 가구도 많아지고 각자도생으로
혼자 늙어가는 시대인데, 스스로 기획하는
이 마인드는 진짜 소름 돋을 만큼 철저하
면서도 뼈때리는 현실 같음.
AI가 말한 '행복하게 사는 법'
✔️ 클로드
원하는 것을 줄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사라질 것을 붙잡지 마라.
✔️ ChatGPT
사랑하고, 성장하고,
현재를 받아들이며,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라.
그것이 가장 오래 행복한 삶이다.
✔️ 제미나이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며,
오직 지금 이 순간을 깊이 살아라.
결국 세 AI의 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행복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부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는
원하지 않는 것을 사지 않아도 되는 것,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리고 시간을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정적 자유의 본질입니다.
(찰리 로즈, 2009)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생각을 자산으로 만들어 돈을 번다.
생각을 수익화하는 가장 쉬운 공식은 이렇다.
1. 배운다.
→ 책, 경험, 실패, 관찰
2. 정리한다.
→ 메모, 노트, 글쓰기
3. 공개한다.
→ SNS, 블로그, 뉴스레터, 유튜브
4. 상품화한다.
→ 책, 강의, 컨설팅, 커뮤니티
많은 사람들이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가진 지식을 정리하지 못해서 돈을 못 번다.
세상에 없는 지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 이해하기 쉽게 구조화하는 것이 가치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리된 통찰은 항상 부족하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으면 소비재지만,
글과 콘텐츠로 남는 순간 자산이 된다.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기록하는 사람은 적다.
수익화하는 사람은 더 적다.
그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한국만 밥그릇을 상에 두고 먹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그릇 재질의 차이
한국은 전통적으로 놋그릇(유기), 현재는 스테인리스 같은 금속 그릇을 씁니다. 금속은 열전도가 빨라 뜨거운 밥·국을 담으면 손으로 들기 어렵고 무겁습니다. 반면 중국·일본·베트남은 가볍고 열이 덜 전달되는 도자기·사기·나무 그릇을 써서 손에 들기 편합니다.
2. 수저 문화의 차이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먹는 것이 기본입니다. 숟가락을 쓰면 그릇을 입에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밥도 젓가락으로 먹기 때문에, 흩어지는 밥알을 젓가락으로 쓸어 넣으려면 그릇을 입 가까이 들어 올리는 것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3. 유교식 상차림 예절
조선 유교 문화에서는 그릇을 들고 먹는 행위를 천하거나 걸인의 행동으로 보아 금기시했습니다. 밥상에 그릇을 두고 허리를 곧게 펴고 먹는 것이 양반의 예법이었고, 이 규범이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반대로 일본은 밥그릇을 들지 않으면 오히려 “개처럼 엎드려 먹는다(犬食い)“며 무례하게 여깁니다.
정리하면, 무겁고 뜨거운 금속 그릇 + 숟가락 사용 + 유교 예절이 결합되어 한국만 독특하게 그릇을 상에 두고 먹는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19살 자퇴생 스페이스X 들어간 사람
SpaceX 상장 기념으로 영상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내용임
스펙 좋은 애가 과감하게
학교 때려치우고 대기업 골라 들어간,
뭐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생갔했음
근데 읽어보니까 정반대였음
스펙이 좋아서가 아니라,
스펙이 없는 걸 알고도
들어갈 방법을 만들어낸 이야기였음
이 사람 19살 때 상황은 이랬음
파트타임으로 겨우 학교 다니면서
잡다한 알바를 전전하던 사람
항공우주는커녕
기본적인 기술 경력도 없었음
초저온 시스템? 모름
고압 테스트? 모름
이력서에 자랑할 한 줄이 없는 수준이었음
보통 이런 상황이면
“스펙부터 쌓고 나중에 지원하자”가 정석임
근데 이 사람 생각은 달랐음
“일단 어떻게든 발만 들여놓자.
안에 들어가서 움직이면 된다”
그래서 한 게 좀 미친 짓이었음
스페이스X 채용 페이지를 열고,
자기가 지원 가능한 직무 8개에 전부 넣어버림
엔지니어 자리만 노린 게 아니라
현장 요리사, 일반 보조원,
청소부 자리까지 다 넣음
“엔지니어로 못 들어가면
밥이라도 짓겠다. 청소라도 하겠다.
일단 저 건물 안에 내 자리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거였음
그리고 며칠 동안 본인 손으로
지원한 자리들이 하나씩 떨어지는 걸 지켜봄
거절. 거절. 거절.
8개가 도미노처럼
다 무너지는 걸 보면서
”아 역시 나 같은 애한텐 스페이스X는
불가능하구나” 하고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고 함
근데 정작 합격 신호는
본인이 “여긴 죽어도 안 되겠다”
했던 자리에서 왔음
추진체 기술자 인턴십.
기술 배경이 제일 많이 필요해서
가능성 0%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테스트 메일이 한 통 옴
기어가 이쪽으로 돌면
마지막 기어는 어디로 도는지 묻는,
간단한 논리·공간지각 테스트였음
한두 문제 빼고 다 맞혔더니
바로 다음 날 면접 오라는 연락이 왔음
근데 면접장이 진짜 압권이었음
다른 지원자들은 각 잡힌 정장에
두꺼운 포트폴리오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림
본인은 그걸 보면서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싶었다고 함
그런데 정작 면접관은
토요일이라고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들어옴
그러더니 이력서를 쓱 보고
던진 첫마디가 이거였음
“스펙이 별로 화려하진 않네요.
초저온 시스템 다뤄봤어요?”
→ 아니요
“고압 테스트는요?”
→ 아니요
“그럼 본인은 도대체 무슨 경험이 있죠?”
여기서 뜨끔했음
보통 사람은 정문 하나 두드리고
안 열리면 돌아섬
근데 이 사람은 정문이 막힐 걸 알고
처음부터 뒷문 8개를
동시에 두드린 사람이었음
요리사든 청소부든 상관없다는 건,
자존심을 버린 게 아니라
“들어가는 문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걸
알았던 거임
남들은 자격 요건 보고
”난 안 되겠다”며 지원조차 안 할 때
이 사람은 8번 거절당할 각오로
8개를 다 넣었고, 결국 그중 가능성
0%라 여겼던 문 하나가 열림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에
이 사람이 한 답도 그래서 나온 거임
“제가 오늘 면접관님이 만날
다른 지원자랑 다른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돈 벌려고 온 게 아닙니다.
인류를 다른 행성에서도 살게 만든다는
이 회사 미션, 그거 하나 때문에 왔습니다”
한 달 뒤 크리스마스에 합격 전화를 받음
지금 이 사람은 자기가 직접 손으로
조립한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렸음
“나는 언젠가 죽지만 저 위성은
우주에 영원히 떠 있겠구나” —
이 감각이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을 안 들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함
이 글 보면서 남은 생각은 이거였음
우리는 보통
“준비가 다 되면 지원하자”고 생각함
스펙이 부족하면 지원조차
안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배움
근데 이 사람은 거꾸로였음
부족한 걸 알면서 일단 문을 8개 두드렸고,
떨어질 자리까지 다 넣어본 사람만이
열릴 자리 하나를 만난 거임
기회는 자격이 다 갖춰진 사람한테
가는 게 아니라 안 될 걸 알면서도
문을 두드려본 사람한테 가끔 열리는 것 같음
지원조차 안 한 문은 100% 안 열림
근데 8번 거절당할 각오로 두드린 문 중엔,
가끔 하나가 열리는 듯함
출처: astrains space technologies(유튜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뀔때,
산업사회에서 인공지능 문명으로 바뀔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인류의 문화와 지혜와 삶의 개념은 송두리째 바뀐다.
다음 문명이 태동할때,
대부분의 (기여없는) 사람들은 원래 버블 논쟁이나 하며 아무말이나 떠드는것.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은
참으로 잉여롭다.
여유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챙기는 것이다.
"여유가 생기면 쉬어야지." "바쁜 게 끝나면 여행 가야지." 그런데 그 '생기면'은 언제 오는가. 대부분은 오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한 걱정이 사라지면 새 걱정이 자리를 채운다. 여유는 바쁨이 스스로 물러나며 만들어주는 공간이 아니다.
여유를 '생기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삶의 주도권을 외부에 넘겨준 셈이다. 일정이 허락해야, 상황이 맞아야, 주변이 조용해져야 비로소 쉴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삶은 친절하지 않다. 조건이 완벽히 갖춰지는 날은 거의 없고, 설령 갑자기 시간이 생겨도 그 여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오히려 불안해지기도 한다.
반면 여유를 '챙기는 것'으로 아는 사람은 다르게 산다. 바쁜 하루 중에도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10분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퇴근길에 일부러 이어폰을 빼고 걷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먼저 내린다. 이들에게 여유는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결국 여유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삶이 틈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틈을 벌려내는 것. 그것이 여유를 진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15세의 나는 하루 4시간을 혼자 보낸다. 80세의 나는 하루 8시간을 혼자 보낸다. 이 단순한 숫자가 인생의 궤적을 이토록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래프를 따라가다 보면 삶이 보인다. 10대와 20대에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시간이 흘러간다. 30대가 되면 아이들이 생기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점을 찍는다. 세상이 가장 북적이는 시절이다. 그러다 40대를 넘어서면 아이들은 서서히 곁을 떠나고, 60대가 되면 동료들도 사라진다. 남는 건 파트너,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흥미로운 건 친구 항목이다. 20대 초반 이후로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거의 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친구는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노년을 친구들과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으로 상상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 그래프를 슬프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건, 더 이상 역할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부모, 동료, 자녀가 아닌 그냥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 문제는 그 시간을 채울 내면이 준비되어 있느냐일 것이다.
결국 이 그래프가 묻는 건 하나다. 혼자가 되었을 때, 당신은 괜찮은 사람인가.
전립선은 사랑이었는지 혼자였는지 묻지 않는다
누군가 흥미로운 상상을 한다.
심장이 쉬지 않고 뛰기 때문에
암이 드물다면, 전립선은 어떤가?
월 21회 이상 사정하는 남성은 전립선암 위험이
20% 낮다는 하버드 연구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팬티에 손을 넣으려 한다.
논리의 도약이 아름답다.
그리고 방향은 놀랍게도 틀리지 않았다.
전립선은 심장과 정반대의 장기다.
조용히 앉아 있고, 분비물을 천천히 모으고,
혈류도 느리다. 암이 좋아하는 조건이다.
그런데 사정은 이 정체된 장기에 세탁 주기를 만든다.
발암 물질이 씻겨 나가고, 만성 염증이 잦아들고,
호르몬 환경이 갱신된다.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맑다.
21이라는 숫자에 마법은 없다.
데이터는 깔끔한 직선을 그린다.
빈도가 올라갈수록 위험이 완만하게 내려간다.
2025년 메타분석(29개 연구, 31만여 명)도
같은 방향을 확인했다.
같은 메타분석에
한 가지 흥미로운 디테일이 숨어 있다.
‘성교의 빈도’는 전립선암과 유의한 관계가 없었다.
오직 ‘사정의 빈도’만이 의미가 있었다.
전립선은 묻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외로움이었는지, 의무였는지.
다만 비웠는가, 비우지 않았는가를 볼 뿐이다.
생물학은 때로 이렇게 무심하다.
로맨스도, 죄책감도, 외로움도 묻지 않는다.
단지 흐름이 있었는가, 정체가 있었는가만 본다.
그 무심함이야말로 의학을 종교가 아닌 과학으로 만든다.
결국 전립선이 심장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이거다.
고여 있지 말 것. 순환할 것. 멈추지 말 것.
심장은 태생적으로 그 운명을 타고났다.
전립선은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다행히도, 그 도움은 비싸지 않다…
배우 윤여정님의 인생조언
"내가 살아보니까 40대 땐 진짜 일을 많이 했어요.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다 했죠. 가릴 것도 없고, 피곤하다고 누울 틈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나한테 제일 큰 힘이 됐어요. 결국 많이 해본 사람이 제일 잘 압니다. 이건 해봐야 아는 거예요. 머리로만 아는 건 오래 못 가요. 남들보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버텨봤고, 해봤고, 또 해본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에요.
무슨 일이든 별일 아닌 것처럼 해내는 사람이 있죠. 그 사람은 그만큼 지나온 게 많은 사람이에요. 나는 그런 사람 못 이긴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