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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하 기자
"우리는 괴물이 아니야." 광주 선배의 말이 슬펐다.
김영삼 정권 시절 광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았다. 갓길도 없는 허름한 고속도로가 언덕들 사이로 굽이굽이 물결치듯 이어졌다. 광주의 첫인상은 무채색이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사람들의 웃음에서 아픔과 슬픔이 느껴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광주에서 순환근무를 했다. 선배가 나주 곰탕을 사주며 나지막히 말했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야." 그 말이 그렇게 슬펐다. 이래저래 만나는 광주 사람들마다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좋은 기억만 가져 가세요." 그 말이 그렇게 슬펐다.
경상도 정권에서 충남 출신자처럼 행세한 전북 출신 인간들, 자신은 전남이 아니라 전북 출신이고 전북은 전남과 다르다고 강조한 인간들이 있었다. 그 인간들이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기 무섭게 "나는 전라도! 선생님 만세!!"을 외치며 승승장구하는 꼴을 봤다. 정작 광주 사람들은 "선생님께 누가 돼선 안된다."며 숨죽이고 살았다. 그 모습이 그렇게 슬펐다.
광주총국 보도국에서 야근(밤샘 근무)할 때 일이다. 아침 종합뉴스 담당 부서의 간부급 기자가 새벽에 전화로 이런저런 지시를 했는데, 내용이 좀 모호했다. 정확한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했더니 다음과 같이 고함을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야! 이 촌놈아! 말귀를 그렇게 못알아 들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동료 기자에게 하소연했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요." 그 말이 그렇게 슬펐다.
노조가 파업을 할 때 일이다. 현장 취재를 무서워하고 기사 쓰는 것도 서툰 데 이상하게 승승장구하는 경상도 출신 선배 기자가 후배들에게 말했다. "걔는 전라도 출신도 아닌데 왜 파업을 해?" 그말을 들은 광주 출신 기자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았다. 기사작성용 노트북의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이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분위기가 너무 슬펐다.
내 기억 속의 광주는 그렇게 슬픔의 도시였다.
반면, 경상도는 황제의 고장 같았다. 그쪽 출신자들은 황족 같았다. 능력과 무관한 자신감과 상명하복이 체질화된 봉건사회 같았다.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무탈하게 간부, 특파원, 임원 따위로 승승장구하는 기적의 주인공들은 유독 경상도 출신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공영방송에 막 입사했을 때, 폭포처럼 쏟아지는 경상도 발음과 억양의 홍수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경상도 말이 표준어처럼 위세를 떨쳤다. 다른 지역 출신자들은 서울말을 쓰기 위해 노력했는데, 경상도 출신자 상당수는 유별나게 고향 억양을 고수했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특유의 튀는 발음과 억양을 고수했다. 복도가 울리도록 큰 소리로 통화하는 목소리도 경상도,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잡담하는 목소리도 경상도, 지시하는 인간도 경상도, 소리 지르는 인간도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과시하는 경상도인과 사투리 억양을 숨기려 애쓰는 전라도인의 대조적 처세가 슬펐다.
내 경험이 유별난 것이라고 지적질한다면 그것은 너님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 내 기억이 왜곡됐다고 지적질하면 그것도 너님 말이 옳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나를 차단하시라.
@ttjattja 저도 군대 논산 들어갈때 혼자 집에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처음 논산에 갔지요.
다행히 논산가는 기차에서 후배들하고 같이 만나 같이 입영했습니다.
시간 남아 다같이 점심 먹는데, 6월이라 더워서 콩국수 시켰는데 설탕이 안나오서 다들 놀랐구요^^
전라도 출신들이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