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행동의 밤은 생각보다 달다
작가:한서
7월의 대전 은행동 이안경원 앞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습도였다. 수호는 연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멀뚱히 서 있었다.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외국계 기업에 갓 입사한 수호에게, 오늘 이 자리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익명 앱으로 대화 좀 잘 통했다고 대뜸 대전까지 내려와 번개를 잡다니. 앱 프로필에는 '21살 대학생, 대전 토박이'라는 정보와 흐릿한 어깨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후…… 안 나오나."
시간은 약속된 저녁 7시를 5분 넘기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훔쳐보며 '이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눈치 싸움을 하던 그때, 누군가 수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흰 반팔 티셔츠에 대충 걸친 셔츠, 그리고 젖은 머리칼. 앱에서 봤던 그 실���엣이었다. 소년은 수호의 빳빳한 슬랙스와 셔츠 차림을 위아래로 한 번 슥 훑더니,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혹시 '수호' 형?"
"아, 네! 혹시…… '유성' 씨?"
처음 마주한 서로의 실물. 유성은 생각보다 선이 굵고 훤칠한 미남이었고, 수호는 생각보다 훨씬 단정하고 반듯한 인상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찰나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유성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맞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 근데 형, 오늘 면접 보고 오셨어요? 웬 슬랙스에 칼각 셔츠야. 대전 은행동에 이렇게 입고 오면 되게 튀는데."
유성의 당돌한 첫마디에 수호의 긴장이 탁 풀렸다. 그러고 보니 주변을 둘러봐도 전전긍긍하는 고등학생들이나 편하게 슬리퍼를 끌고 나온 대학생들뿐이었다.
"아, 사정상 그렇게 됐어. 나 대전에서 대학교 나오긴 했는데,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가버려서 은행동 감을 좀 잃었네."
"아~ 대전 맛만 보고 도망간 이방인이시구나. 어쩐지 얼굴에 서울 냄새 묻어있더라."
유성은 번개로 만난 사람치고는 낯가림이 전혀 없었다. 유성의 거침없는 말투는 서울에서 매일 칼 같은 영어 이메일과 눈치싸움에 절여져 있던 수호에게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근데 우리 이제 어디 가요? 형 배고프죠. 이안경원 앞에서 계속 기다리느라 땀 엄청 흘리신 것 같은데."
"난 대전 오랜만이라 잘 몰라. 네가 자주 가는 데 있으면 가자. 네가 대전 토박이라며."
"음, 그럼 일단 이 더위부터 피해요. 제가 아는 대흥동 골목에 되게 숨은 힙한 바(Bar)가 하나 있거든요. 거기가 안주도 맛있고…… 조명이 되게 ��해서 번개 장소로 딱이에요."
유성이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수호의 어깨를 툭 치며 앞장섰다. 으능정이 스카이로드의 화려한 네온사인 조명 아래로 걸어가는 유성의 뒷모습을 보며, 수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흰 티셔츠 너머로 비치는 유성의 넓은 어깨와 탄탄한 피지컬이 21살치고는 꽤 남성적이었기 때문이다.
대흥동의 어두운 골목으로 접어들자 시끄러운 소음이 잦아들고 붉고 보라색의 네온 조명이 가득한 바가 나타났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테이블은 생각보다 좁았다. 자리에 앉자 두 사람의 무릎이 의도치 않게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수호는 칵테일 잔을 만지작거리는 유성의 곧은 손가락을 훔쳐보았다. 앱에서는 그렇게 조잘대던 녀석이, 막상 어두운 조명 아래 마주 앉으니 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수호를 빤히 응시했다.
"형, 진짜 신기하네요. 앱에�� 연락할 땐 좀 고���타분한 형인 줄 알았는데."
"내가 왜?"
"그냥, 말투가 딱딱해서요. 근데 직접 보니까……."
유성이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바짝 밀착해왔다. 유성의 숨결에서 청량한 향수 냄새와 달큰한 알코올 향이 섞여 풍겼다.
"생각보다 되게 괴롭히고 싶게 생겼어요. 형 귀 빨개진 거 다 보여요."
처음 만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훅 치고 들어오는 연하남의 도발. 수호는 직감했다. 이번 대전 번개는, 생각보다 아주 위험하고 긴 밤이 될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