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실패, 정말 감독과 선수만의 문제일까?
"조직은 신호를 잃어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신호를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멈추기 시작한다."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라는 결과를 통해, 조직의 구조와 시스템이라는 본질을 짚어내는 조직생태학 해설. https://t.co/6LOUijw7Hy
"질문이 사라진 조직은 이미 위험하다."
이 한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썼다.
실패하는 조직보다,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조직이 왜 더 위험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시아경제 소개 기사.
『메뚜기는 멈추지 않는다』
6월 19일 출간.
https://t.co/VX2tjHrVQ3
【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 : 빈 평상 】
객주는 망나니칼을 내렸습니다. 주막 처마 밑에는 뒤늦은 사과문도 나붙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칼은 사라졌는데, 주막의 평상은 비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침부터 장꾼들이 모여 국밥을 먹고, 나그네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 묵어가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주막 앞에 이르러도 선뜻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술맛이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밥상이 갑자기 초라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 앉는 순간, 자신도 이웃의 피눈물을 모른 척한 사람이 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술병만 품에 안고 서둘러 나왔고, 어떤 이는 약속 장소를 다른 주막으로 옮겼습니다. 예전에는 “거기서 보세” 하던 말도, 이제는 입에 올리기 어려워졌습니다. 객주는 뒤늦게 장부를 펼쳐 들었습니다. 하루 벌이가 얼마나 줄었는지, 단골 손님이 얼마나 발길을 끊었는지, 다른 장사판까지 얼마나 흔들리는지 밤새 셈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묻고 있던 것은 엽전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망나니칼을 내린 것은 알겠네. 허나 그 칼이 어찌 그날 그 자리에 걸릴 수 있었는가.”
그 물음에 답하지 않는 한, 사과문은 종이에 적힌 글자일 뿐이었습니다. 징소리는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일 뿐이었습니다.
주막은 여전히 열려 있었습니다. 가마솥도 끓고 있었고, 술독도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상 위에는 예전 같은 웃음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것은 술이 미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주막이 더 이상 아무 일 없던 곳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9cm】
많은 사람은 서소문 고가 붕괴를 59년 된 노후 구조물의 문제로 본다. 나는 다르게 본다.
구조물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있었다. 콘크리트 낙하, 바닥판 탈락, 강선 파손. 그리고 붕괴 당일 2.9cm의 침하. 생태계는 죽기 전에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
문제는 신호의 부재가 아니다. 신호를 듣지 못하는 조직이다.
메뚜기 군집에서 2.9cm는 이미 이동 명령이다. 하지만 인간 조직에서 2.9cm는 보고서가 된다.
그리고 어떤 조직은 그 보고서를 읽다가 무너진다.
『메뚜기는 멈추지 않는다』
【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 : 주먹밥을 나누던 사람들 】
망나니칼 장도를 품고 다니며 낄낄거리던 자들이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주먹밥이었습니다.
나라의 망나니칼이 마을을 덮쳤을 때, 길은 끊기고 장터는 멈추었습니다. 군사들이 사방 길목을 틀어막자 장터로 들어오던 곡식마저 끊겼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굶주림과 두려움 속에서 버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누구도 이웃집 쌀독을 털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굶주린 틈을 타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어떤 집은 쌀을 내놓고, 어떤 집은 나물을 내놓고, 어떤 집은 장작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것으로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가마솥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밥을 지어 서로에게 건넸습니다. 배고픈 아이의 손에 쥐여주고, 다친 사람 곁에 놓아두고, 밤새 사람을 돌본 이에게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누구 하나 앞세우는 이도 없었습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이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사람들은 그것을 주먹밥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밥덩이가 아니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표였고, 마지막까지 사람 곁에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기억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은 그 집안을 망나니칼에 쓰러진 집안으로만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이웃과 주먹밥을 나누던 집안으로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그날이 오면 마을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망나니칼이 사람은 죽일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까지는 죽이지 못한단다.”
그러면 아이들은 묻곤 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그러면 노인들은 빙그레 웃으며 저 멀리 마을 어귀를 가리켰습니다.
“그래. 저 집안을 아직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
【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 】
그날은 끝까지 지조를 지키다 참수를 당해 온 집안이 도륙 났던 어느 한 집안의 참혹한 기일(忌日)이었습니다. 정답던 이웃들은 아침부터 대문을 꼭 걸어 잠근 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아침, 마을 주막의 처마 밑을 본 사람들은 숨이 턱 막혔습니다. 술을 새로 걸렀다는 신호로 장대에 높이 걸어둔 대나무 용수(술체) 바로 옆에, 주모가 망나니칼 한 자루를 나란히 걸어둔 것입니다.
이웃의 목이 잘려 나가던 서글픈 날, 바람에 흔들리는 용수와 망나니칼은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서늘한 조롱이 되었습니다. 장사를 위해 이웃의 피눈물 나는 역사를 한낱 구경거리로 삼은 기괴한 풍경에 동네는 차갑게 식어갔습니다.
“평생을 같이 살아놓고도, 저 주모는 엽전 몇 푼에 우리 이웃의 목을 다시 한번 베는구나.”
【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 : 칼을 품은 자들 】
망나니칼 사건으로 온 저잣거리가 뒤집히고 객주가 연일 징을 울리던 와중에도, 사람들을 더욱 소름 끼치게 한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주모가 내걸었던 그 망나니칼을 본떠 작은 장도를 만들어 품고 다니는 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들은 저잣거리에서는 슬그머니 감추고 다니다가도, 저희끼리 모이면 소맷자락 속에서 꺼내 보이며 낄낄거렸습니다.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깟 쇠붙이 하나 가지고 왜들 그리 호들갑인가.”
본래 장도란 선비가 절개와 지조를 잊지 않겠다며 몸에 지니던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웃의 피눈물을 본뜬 칼을 품고 다니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어떤 이는 술잔을 기울이며 웃었고, 어떤 이는 장도를 만지작거리며 으스댔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웃을수록 저잣거리는 조용해졌습니다. 그들이 장도를 자랑할수록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습니다. 예전에는 술상을 함께하던 이들도 등을 돌렸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이들도 모른 척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왜 그런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훗날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들은 망나니칼을 품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품고 다녔던 것이지.”
그날 이후에도 장도를 품은 자들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칼은 더 이상 용기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것은, 이웃의 상처를 희롱한 자들의 표식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 : 지조를 지킨 집안 】
마을 사람들이 왜 그토록 화를 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집안은 대대로 청렴과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집안이었습니다. 힘없는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장 먼저 나섰고, 권세가들의 눈치를 보며 등을 돌리는 법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집안을 믿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그 집 대문을 찾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나라에 큰 변고가 일어났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할 자들이 군사를 움직여 권세를 움켜쥐었습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입을 닫았습니다. 나라의 칼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집안의 자식들과 젊은이들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칼이 옳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들은 장터로 나갔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몇 사람뿐이었지만, 그들의 뜻에 공감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노인도 있었고 장사꾼도 있었고 학동도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온 마을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권세를 쥔 자들은 백성들의 목소리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라의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날 형장은 따로 없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형장이었습니다. 나라의 망나니칼은 죄인을 찾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찾았습니다.
젊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딸은 다시 부모의 품에 안기지 못했습니다. 그 집안 역시 가장 사랑하던 자식들을 잃었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그날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망나니칼이 마을에 내려온 날."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은 장식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쇠붙이가 아니었습니다. 그 집안의 통곡이었고, 이웃들의 피눈물이었으며, 나라의 칼이 백성을 향했던 날의 기억이었기 때문입니다.
【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 : 껍데기뿐인 객주의 징소리 】
주막 처마 밑에 걸린 망나니칼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주막은 처음에 사과 한마디 없이 그저 망나니칼 뒤에 슬그머니 칼집을 씌우는 시늉만 하며 백성들의 눈을 속이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속임수가 통하지 않자, 한양 객주가 급히 내려와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평상 위에서 비통하게 징을 울려댔지요.
하지만 그 요란한 징소리가 멎자마자, 객주의 기만적인 민낯이 온 저잣거리에 드러났습니다.
그는 말로만 “내 잘못”이라 외쳤을 뿐, 정작 관아 장부 어디에도 제 이름 석 자를 올려둔 적이 없는 자였습니다. 장사가 잘될 때에는 한양의 온갖 이권과 엽전 꾸러미를 독식하면서도, 막상 탈이 나면 관아의 문책과 백성들의 손가락질만은 교묘히 비켜갈 길을 미리 닦아두었던 것입니다. 권세와 이익은 앞장서 누리되, 책임만은 장부 밖으로 빼돌려 둔 셈이었지요.
게다가 객주는 이웃의 목이 잘려 나간 참혹한 비극을 두고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말하였습니다. 역사의 피눈물을 한낱 장사치들의 입씨름쯤으로 여기며, 이웃들의 상처를 덮고 지나가려 한 꼴이었습니다.
화가 난 백성들이 “다시는 저 주막 술을 마시지 않겠다”며 미리 맡겨두었던 보증전을 돌려달라 요구하자, 주막은 도방의 해묵은 관례를 핑계 삼아 “술독의 절반도 비우지 않았으니 돌려줄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엽전 몇 닢에 집착하는 졸렬함을 보였습니다.
결국 온 동네의 매서운 호통에 밀려 사달이 난 지 여러 날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맡긴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물러섰지만, 이미 주막의 신용은 바닥을 드러낸 뒤였습니다.
그날 밤에도 객주는 사람들 앞에서 몇 차례 더 징을 울렸습니다.
허나 예전 같으면 위엄 있게 들렸을 그 소리는, 이제 백성들의 귀에는 공연한 면피와 허세의 소음처럼 들릴 뿐이었습니다.
이웃의 슬픔을 장삿속으로 삼고, 권세는 누리되 책임은 장부 뒤로 숨겨버린 거상의 민낯을 보며, 평상 밑에 모인 백성들은 마침내 그 주막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를 그만두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바람 센 밤이면, 처마 끝 어딘가에서 빈 징소리 같은 것만 오래 남아 떠돌았다고 합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후 기업들은 검수 단계와 승인 절차를 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뚜기는 멈추지 않는다》가 말하는 조직의 진짜 위험은 ‘절차 부족’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조직은 실수하는 조직이 아니라, 누군가 “이건 위험합니다”라고 느꼈지만
그 감각을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조직이다.
메뚜기떼도 한 방향의 밀도가 강해질수록 개체 판단보다 주변 반응에 더 빠르게 동기화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검수는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방향에 맞춰 질문 자체가 사라진 조직은 결국 같은 사고를 반복한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은 단순 마케팅 실패가 아니다. 조직 내 “위험하다”는 신호가 마비됐다는 증거다.
메뚜기떼가 한 방향으로 동기화되듯, 가장 위험한 조직은 실수를 하는 곳이 아니라 권력의 방향에 맞춰 감각까지 정렬된 조직이다.
『메뚜기는 멈추지 않는다』
【메뚜기의 법칙: 이번 장에서 소외된 투자자를 위하여】
내 주식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내 가치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은 숫자의 시간이 아니라,
자금과 심리가 한데 엉킨 ‘밀도의 시간’일 뿐이다.
메뚜기떼가 한쪽 풀밭을 쓸고 지나갈 때,
무리 밖에 남겨진 풍요로운 대지는 잠시 외면받는다.
내 주식이 소외된 진짜 이유는
과거의 단단한 껍질과 안정에 취해,
새로운 이동 신호를 무시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진짜 위기는 내 주식이 떨어질 때가 아니라,
남들의 축제를 저주하며 감각의 안테나를 닫아버릴 때다.
메뚜기떼의 거대한 질주도
자극의 신호가 끊기면 순식간에 사방으로 분산된다.
광풍의 정점에서 모두가 환호할 때,
흐름의 끝을 냉정하게 관찰하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라.
시장이 다시 흩어지는 임계점이 오면,
살아있는 감각으로 준비된 자만이 다음 밀도의 주인공이 된다.
【 메뚜기의 법칙: 왜 시장은 늘 한쪽으로 미쳐가는가】
주식시장은 늘 “가치”로 설명되지만,
실제로 시장을 움직이는 건 숫자보다 ‘밀도’다.
사람과 자금이 한 방향으로 몰리기 시작하면,
시장은 메뚜기떼처럼 동기화된다.
닷컴 버블도,
2차전지도,
AI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광풍은 누군가의 명령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옆 사람이 뛰기 시작할 때,
나도 뒤처질까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제는 모두가 안심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메뚜기떼도
신호가 끊기면 순식간에 흩어진다.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폭락할 때가 아니라,
영원히 오를 것처럼 느껴질 때다.
【 용수 옆에 걸린 망나니칼 : 그 후 】
동네의 작은 주막 주모가 이웃의 참혹한 제삿날에 망나니칼을 내걸었던 사건으로 성난 백성들이 마을 어귀의 징을 '쾅~' 하고 울려 공론(公論)을 일으킨 지 수일째. 마침내 한양에서 이 주막의 돈줄을 쥐고 흔들던 거대한 객주(客主)가 급히 징을 울리며 마을 평상으로 내려왔습니다.
객주는 일가 백성들이 모인 앞에서 번듯한 비단 두루마기를 갖춰 입고 두 차례나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습니다.
"이 모든 화근은 주인인 제 불찰이자 제 잘못입니다. 이웃들의 마음을 찢어놓은 그 가벼운 처사에 대해 주막을 거느린 객주로서 뼈저리게 반성하오며, 백성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제법 비통했고, 사과문 또한 물 흐르듯 유려했습니다. 그러나 객주가 울린 맞불 징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평상 밑에 모인 마을 주민들의 눈길은 차갑게 식어갔습니다.
"내 잘못이라 소리는 참 잘도 하면서, 정작 지 손에 쥔 주막 열쇠 꾸러미는 절대 안 내려놓는구만."
그는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며 백성들 앞에 큰소리를 쳤지만, 자신이 주막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거나 상권을 내어놓겠다는 실질적인 책임의 방식은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미 며칠 전 눈치 없는 주모와 하인 몇 명을 대신 쫓아내며 소나기를 피했으니, 객주 본인의 안위와 이권은 그대로 보전하겠다는 심산이 뻔히 보였던 탓입니다.
게다가 객주는 사과를 마친 뒤 슬그머니 덧붙였습니다.
"다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려 가마솥에 불을 때던 주막의 애꿎은 어린 일꾼들에게는 부디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십시오."
상처받은 이웃을 위로하기는커녕, 은근슬쩍 발길을 끊은 백성들을 '모진 이웃'으로 몰아가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를 교묘하게 뒤바꾸는 장사치의 말재주였습니다.
결국 그날 밤, 객주가 면피용 징을 울리고 떠난 주막 앞마당에는 다시금 성난 백성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해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또 다른 징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살던 정답던 동네에서, 맛도 멋도 잃어버린 그 주막은 이제 말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기만적인 인간들의 야바위판으로 영영 낙인찍히고 있었습니다.
Intriguingly, the word "Dubai" originates from the Arabic term for a locust. The rise of this city-state perfectly mirrors the survival mechanism of a locust swarm.
Traditional nations operate like rigid, top-down anthills—treating high-performing individuals as suspicious threats and binding them with heavy regulatory weights. Dubai, however, built an ecosystem based on synchronization rather than control.
By lowering systemic friction, it released a powerful organizational pheromone that draws high-performing global talent together. It's not just a tax haven; it’s a non-linear platform where driven individuals are finally synchronized by sense and shared vi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