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다가갔던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상하게도 속도가 있다.
나는 한동안 그 속도를 잘못 읽었던 것 같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무언가를 잘했을 때 한마디 건네고, 힘들어 보이면 괜찮은지 묻고, 때로는 내 생각을 말해주고, 별것 아닌 이야기로 웃는 일들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아마 나도 모르게 그 다음을 기대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사람에게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나의 말이 조금 더 깊��� 닿고, 나의 판단을 조금 더 믿어주고, 어느 순간에는 망설이지 않고 내 쪽으로 한 발 내디뎌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마음은 내가 원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믿는 데는 시간이 필��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의 무게를 조금 더 건네는 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그 기다리는 쪽에 서게 되자 생각보다 잘하지 못했다.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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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애매하게 있었던 건 아닐까?
내 마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조금 더 분명하게 나서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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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어느 순간 상대가 아직 내게 건네지 않은 것까지 먼저 받으려고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가장 잘못된 부분이었다.
나는 확신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만, 상대에게는 부담이었을테니..
나는 한 발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앞서갔다고.
그리고 다시 조금 전의 거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옳은 선택과 아프지 않은 선택은 다른 것 같다.
특히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것이 남아 있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는 훨씬 가볍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마음이 아팠다.
그 사람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꾸만 질문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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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아니었을까?
정말 시간이 더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어떤 마음은 노력이나 시간만으로 생기지 않는 걸까?
내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어도, 마음을 맡기고 싶은 사람은 아닐 수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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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를 가장 흔들었던 것은 그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서둘렀는지도 모른다.
내가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속 자리는 그렇게 얻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밀어서 가까워질 수 있는 거리도 있고, 밀수록 멀���지는 거리도 있다.
나는 뒤늦게 그 차이를 배우고 이해한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까지만 하려고 한다.
내 생각이 있으면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약속한 것은 지키고, 상대가 힘들어하면 챙기고, 잘한 것이 있으면 잘했다고 말하는 것.
그 이상은 상대의 ��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나에게 더 가까이 오고 싶은지.
내 말을 조금 더 믿어보고 싶은지.
무언가를 맡겨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마음은 내가 요구해서 얻는 순간 이미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 되어버릴 테니까.
어쩌면 그래서 내가 정말 원했던 것도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누군가를 내 쪽으로 끌어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충분히 나를 본 뒤에도 스스로 내 쪽으로 걸어와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기다리는 일은 늘 어렵다.
기다린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곳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고, 지금의 거리 그대로 오래 머물 수도 있고, 결국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게 될 수도 있다.
아직은 모른다. 다만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별것 아닌 말들을 주고받고, 전처럼 웃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보려 한다.
결말을 먼저 정하지 않고,
관계에 이름을 붙이려 하지 않고,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상대를 끌어당기지도 않으면서.
그냥 다시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 쪽에 내려놓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서두르지 않고 제대로 받아주고 싶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이번에는 억지로 만들어내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마음 한편에는 기대가 있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기대를 상대의 책임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결국 선택받는 것이지,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지금은 한 발 물러난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고 있다.
조금 느리게.
조금 덜 확신하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이 사람이 궁금한 마음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면,
아직은 그것으로 괜찮다.
<<Dom/Sub 질투는 똑같은데, 왜 한쪽의 질투만 규칙이 될까??>>
시작 전에...
앞에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런 류의 글들을 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 정신적인 안정을 원해 이 암흑의 굴레에 들어왔다가 육체적인 부분들을 중시하는 분들과의 마찰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육체파 / 정신파 모두 행복한 만남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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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sub가 말한다.
“요즘 주인님이 대화를 나누는 그 사람 때문에 조금 질투가 나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돌아올 수 있다.
“왜 불안한데?”
“나를 못 믿는 거야?”
“그 감정은 네가 잘 다뤄야지.”
라는 질문 말이다.
이 질문들이 틀린 말일까?
정답은 , '아니다.'
질투는 자신의 감정이고,
그 감정을 전부 상대에게 해결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것이다.
그렇기에 이 감정들은 당연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Dom이 질투를 느끼면 가끔 문장의 모양이 달라진다.
“그 사람 만나지 마.”
“앞으로 연락하지 마.”
“그 계정은 정리해.”
sub의 경우와 Dom의 경우 둘 다 질투다.
그런데 한쪽의 질투는
설명하고 다뤄야 할 감정이 되고,
다른 한쪽의 질투는
상대가 따라야 할 규칙이 된다.
내 불안은 명령이 ���고,
네 불안은 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물론 당연하게도 말이다, Dom도 질투할 수 있다.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미숙하거나 나쁜 Dom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가 자신에게 불편���다고 말하고,
둘 사이의 경계를 다시 정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다.
다만 감정이 생겼다는 사실과
그 감정을 바로 명령으로 바꿀 권리가 생겼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나를 불안하게 해.” 란 말과
“그러니까 그 사람을 만나지 마.” 의 사이에는
원래 한 번의 대화가 있어야 한다.
왜 불안한지,
실제로 관계를 위협하는 일이 있었는지,
누구의 어떤 경계를 조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규칙으로 생기는 매몰비용은
누가 감당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 말이다.
그런데 권한이 있는 사람의 감정은
그 과정을 건너뛰기 쉽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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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말하면 되니까.
내가 시키면 상대가 따를 수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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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Dom은 자신의 질투에서 빨리 벗어나지만,
sub는 ���간관계를 정리하거나
행동을 바꾸는 사회적 비용을 떠안게 된다.
이때 규칙은 둘의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Dom이 자기 불안을 직접 다루지 않기 위해 만든 아주 편리한 울타리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Dom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
이 규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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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관계에 정말 필요한 걸까?
아니면 내 질투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
상대의 삶을 줄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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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말이다.
D/s에서 권한은 감정을 없애주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에 실행력을 붙여준다.
보통 사람의 질투는 서운한 말 한마디로 끝날 수 있지만,
권한을 가진 사람의 질투는
누군가의 연락처와 인간관계와 생활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더 큰 권한을 가진 쪽이라면
감정을 더 적게 설명해도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오래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 만나지 마.”
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왜 이 관계가 이렇게 불안하지?”
를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것.
같은 질투라면,
한쪽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해야 하는 것도 이상하다.
한쪽은 계속 이해받아야 하고,
다른 한쪽은 계속 따라야 한다면
그건 질투의 차이가 아니라
권한의 차이가 감정의 모양을 바꾼 것이다.
'질투는 똑같다.'
다만 권한을 가진 사람의 질투는
너무 쉽게 규칙이 된다.
그래서 D/s에서 중요한 것은
Dom이 질투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상대가 지켜야 할 법으로 만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상대에게 설명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SM은 가벼워졌지만, 그 안의 것들은 가볍지 않다.>>
요즘 SM은 예전보다 훨씬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된 것 같다.
누군가는 로프를 하나의 기술처럼 배우고,
누군가는 스팽을 취미처럼 즐기며,
굳이 자신을 Dom이나 sub라고 깊이 정의하지 않아도
관심 있는 부분부터 경험해볼 수 있다.
처음 온 사람이 묻는다.
“저는 뭐부터 해보면 돼요?”
예전에는 어쩌면
이런 질문이 먼저 돌아왔을 것이다.
“왜 해보고 싶은데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일단 성향표부터 해보세��.”
결과가 이렇네요.
“스팽은 어때요?”
“에이, 일단 해보면 알죠.”
SM으로 들어오는 문턱은 확실히 낮아졌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그 안의 ���단에 난간까지 생긴 것은 아니다.
이 변화는 누군가에게 꽤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모든 성적 욕망에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되고,
평생의 정체성처럼 짊어지지 않아도 되며,
가볍게 경험해본 뒤
자신과 맞지 않으면 내려놓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숨겨야 했던 취향을
조금 덜 부끄럽게 꺼낼 수 있게 된 변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기가 무엇을 건드리고 있는지 알기도 전에
너무 깊이 들어갈 수 있다.
SM은 로프와 도구만 다루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과 통증,
신뢰와 권한,
의존과 불안,
그리고 때로는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건드린다.
처음에는 그저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상대의 말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거절하면 관계가 끝날까 두려워지고,
플레이가 끝난 뒤에도
그 안에서 생긴 감정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입구는 취미처럼 가벼워졌지만,
그 안에서 사람에게 남는 것까지
취미처럼 가볍지는 않다.
그래서 같은 변화도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주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닫혀 있던 자신을 꺼내는 문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무게를 ���기도 전에 발을 디디는
난간 없는 계단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