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일가 하나를 몰살시키는 초-비현실적이고 개싸이코 같은 공포영화에도 눈 하나 깜빡 않는 그 여자애가 —안수호는 일순 동족··· 따위의 감상을 떠올렸으나— 유일하게 약한 부분은 흔해빠진 레퍼토리 속에 굴러들어간 모성애·부성애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데 있다는 걸
해피(리트리버)가 꼬리 살랑이며 달려드는 영상을 세 번쯤 돌려본 천사랑이 말없이 안수호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 무던한 낯에 깃들었던 슬픔인지 설움인지 당최 종잡을 수 없던 감정이 말끔히 자취를 감춘 뒤였다 안수호는 원래대로 돌아온 여자애의 면에 그저 멋쩍게 뒷목만 문질렀고
사랑, 천사랑. 명찰에 붙은 이름이 묘했다 그야 사랑이란 단어는 소년에게 낯설고도 낯간지러운 모종의 그것이었으므로 사랑도 모자라 천사랑이란 이름을 가진 저 애는 얼마나 사랑받으려나 막연히 생각했으리라 비록 그 여자애는 단 두 번만에 안수호의 예언을 보란듯이 전복시키고 말았지만
안수호가 그 여자애와 천사랑 이름 석 자에서 기인한 부조화를 곱씹을 때 천사랑은 그 남자애의 이름을 소리 죽여 발음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정립했을 것 어떤 언어처럼 기계적으로 학습된 그 이름 석 자가 훗날 사랑보다 가장 미운 단어가 될 줄 천사랑은 알지 못했으리라
천사랑 유독 발목 쪽이 약해서 어릴 적 거하게 접지른 뒤로 발목 다치거나 접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 같단 말이야 어느 정도냐면 옆에서 잘 걷던 애가 갑자기 발목 꺾여서 주저앉을 정도로··· 그날 안수호 심장 철렁해서 주저앉은 애랑 시선 맞추곤 괜찮냐 부러진 거 아니냐 너 살아있지 할 것 같아
“너 그거 방치하다 발목 아작나 진짜.” 사뭇 진지한 어투로 울리는 남자애의 음성이 사실 기꺼워서··· 평소라면 내쳤을 너른 등에 가만 머리 기대는 천사랑이 연상된다 집 앞에 도착한 뒤 여자애 들어갈 때까지 안수호 그거 꼭 냉찜질이라도 하고 자라며 입 닳도록 걱정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