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k_land_1215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문제 중 전자는 복잡한 내용이라 추후 논의할 기회가 있음좋겠고, 2번째 문제는 제 입장에서 그 turn이라는건 Bourdieu적 시각으로 field 내 투쟁의 무기로 즉 상징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행위자들의 전략적 무기라고 봅니다.
알렉산더는 아마도 진정한 이론가인 듯싶다. 그는 우리 한국의 이론가들이 쉽사리 빠져드는 이론과 실천의 결합 혹은 지행합일의 요구에 냉정하다. 새로운 대안적 사회에 대한 비전을 포기하지 않기는 해도, 결코 그것을 빌미로 하여 우리를 선동하지 않는다. 맑시스트의 변혁적 열정이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베버의 신중한 비관주의를 연상시키는 지적 세련성을 발휘한다. 여전히 낭만적 꿈과 급진적 전복의 기획에 사로잡힌 필자로서는 알렉산더가 시민사회를 추동하는 자유의 담론에 머무르기만 할 뿐, 해방의 의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
No liberation, no liberty. From liberals to libertarians!
-----------------------------------------------------------------------
제프리 알렉산더의 한 책에 대한 서평을 읽었다. 그 중 인상적인 서평자의 평은 여전히 한국 사회과학계가 공유하는 환상(illusio)이다. 왜 이론가는 '반드시' 실천을 추구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가? 실천이란 악명높은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론가는 어떤 근거를 통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과연 이론가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일상행위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왜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은 그리도 경박하게 실천을 부르짖으며, 세계를 변혁하려 하는가? 그들이 변혁하려는 세계는 정말로 부당한가? 그들이 이야기하는 해방의 세계는 무엇인가? 비판과 해방(혹은 파괴)이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이러한 치열한 고민과 질문 없이 그들은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사회에 투신한다. 동시에 세계학술장 내에서 한국의 식민지 종속성 또는 후진성을 한탄한다.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론가인가? 또는 사회운동가인가? 학문의 발전에서 role-model의 중요성은 콜린스와 벤 다비드가 이미 입증한 바 있다. 한국 사회과학의 미성숙? 또는 후진성은 언어적 장벽도, 서구중심주의에 의한 주변성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문장의 독립과 그 장에 속한 행위자들의 정체성이다. 동시에 과연 사회이론가는 세계를 파악할 수 있고 변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논쟁적이나, 나는 그리고 내가 아는 이들은 이를 부정할 것이다.
「……만일에…… 만일에 말이지요…….」
「만일이라니, 뭐요? 들어봅시다!」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 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Zorba the Greek 』
“그래 김군 자네 요새 무엇을 읽고 있나?” ‘알튀세르를 읽어볼 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structurism 말이군! 내가 시카고에서 공부할 때 structurism이 유행했었지. 근데 말이야 그 전에 고전을 읽어보게. 맑스면 맑스의 원전을 베버면 베버의 원전을 말일세. 자네 스스로가 고전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발견하는게 더 도움이 될걸세. 그 이후 이것 저것 읽어보게나”
김군,
소식 반갑네. 그리고 책도 읽어가며 군복무를 하고 있다니 자네의 큰 복일세. 그런데 무슨 군복무가 the Cambridge School 서적을 탐독하면서 지내게끔 여유가 있나? 나는 전방에서 30개월 하고 나오니까 취직시험 볼 때 영어나 한자 단어의 철자가 가물가물한 것이 많을 정도였는데 말이야.
대학원 시절에 나는 intellectual history 분야를 공부하다가 "interpretation" 이라는 토픽을 통해서 Skinner 등의 글을 읽게 되었었네. 그 때문에 J.L. Austin "speech act" 개념도 좀 들여다봐야했고[his book: "How to Do Things with Words"]. 작년에 학부 1학년 "정치사상입문" 시간에도 자네가 언급한 논문 ("Meaning and Context")를 읽힐까 한참 망서리다가 뺐었네. 학부생들에게는 너무 어려울 듯해서.
어떤 때는 이론만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 한 편 읽는 것보다는 그런 이론에 바탕을 두고서 실질적 문제를 다룬 연구서 자체를 읽는 것이 그들의 접근법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되기도 할 걸세. 그런 의미에서 Quentin Skinner, "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s" 가 더 쉬운 가이드가 되기도 할테니 재미있게 읽기 바라네. 또 John Toews, "Intellectual History after the Linguistic Turn," AMERICAN HISTORICAL REVIEW (v. 87) 도 관련분야를 다룬 논문 중 유명한 것이니 한 번 들춰보면 the Contextualists 및 다른 접근방법의 학자들과의 관계상 좌표가 그려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네. 1990년대 초반에 나왔음.
잊지않고 있으며 글 주어서 고맙네. 건강하게 군복무 마치기를 바라네.
지지율 올랐다는 최근 여조 결과에 따르면 제법 효과 있는 듯?
지금 진보 성향 쪽에서 대통령의 발언 비판도 많지만 '이건 대세니까 순응하자'는 사람도 많고. 민주당과 국힘의 차이는 미래의 갈 길이 아니라 과거 역사 해석에서만 드러나게 될 듯(이미 그렇게 된지 좀 됐지만 앞으로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