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그림 그릴 때 쓰는 판 같은 걸 샀어요. 아들은 전에 써보고 싶었다며 포장을 먼저 뜯었고요. 뭘 잘못 눌렀는지 설정하는화면에서 막혀서 딸이 올 때까지 기다렸대요.
딸은 자기 물건인데 왜 허락 없이 열었냐며 화를 냈어요. 저는 동생도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같이 쓰면 되지 않냐고 했죠. 그랬더니 아들이 얼마 전 산 이어폰은 왜 자기도 못 만지게 했냐고 하더군요.
그건 귀에 직접 닿는 물건이니까 다르잖아요. 게다가 아들은 돈 모아서 산 거라 더 예민할 수 있고요. 딸이 자기도 자기월급으로 산 거라고 해서 알겠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했습니다.
다음 날 딸이 동생 택배를 식탁에 올려놨어요. 저한테 이거 열어봐도 되냐고 물었는데 상자에 전자제품 이름이 있어서 일단 동생한테 물어보라고 했어요.
딸은 그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봤다면서 자기 물건도 그렇게 취급헤달래요. 저는 둘이 잘 지내라고 한 건데 한마디 한마디 따져서 판정받으려는 태도가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아들한테 앞으로는 누나 물건 열지 말라고 했어요. 그 정도면 끝난 줄 알았는데 딸은 이미 배송지를 바꿨고 자기 택배가 와도 손대지 말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다음 달부터 친구랑 같이 살 집도 알아보겠대요. 가족이랑 잘 나눠 쓰지도 못하면서 친구랑은 어떻게 살겠다는 건지 모르겟어요.
딸이 택배를 회사로 받겠대요. 집으로 오는 물건은 이제 대신받지도 말라고 하고요.
동생이 상자 하나 열어본 걸로 너무 예민한 것 같아요.
둘 다 성인이고 한집에사는데 가족끼리 그 정도도 못 하나요.
비싼 건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길래 저도 설명했는데, 이번엔 제 말까지 문제 삼네요.
회사에서 준 게 아니라 내 돈으로 산 거라고 했음. 팀장은 회사에 가져왔으면 필요할 때 같이 쓸 수도 있는 거지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 했음. 정작 충전이 필요한 순간에 내 자리에 없다고 하니까 그냥 말하고 가져오면 되지 않냐더라.
다음 날부터 충전기를 서랍에 넣고 잠갔음. 점심 먹고 오니 팀장이 열쇠 어디 있냐고 물었음. 조카가 충전할 게 없대. 본인 걸 사면 될 것 같다고 하자 그런 말투때문에 분위기가 불편해진다고 했음.
그날 오후에 내 키보드가 고장 났음. 마침 조카는 외근 중이었고 그 자리에 회사 기본 키보드처럼 생긴 게 있어서 팀장한테 써도 되냐고 물었음. 팀장은 그건 개인물건이라 먼저 허락받아야 한다고 했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 메모장애 받아적었음. 개인 물건은 먼저 허락받기. 팀장은 말을 그런 식으로 기록하지 말라며 내 손을 한번 보고는 자리를 피했음.
조카가 돌아와서 무슨일 있냐고 묻길래 내 충전기랑 키보드 얘기를 했음. 그 사람은 충전기가 공용 비품인 줄 알았대. 팀장이 그렇게 말해줬다면서 자기 가방에서 바로 꺼내줬음.
퇴근하려는데 팀장이 조카한테 조용히 물었음. 새 충전기 좀 써도 되냐고. 조카는 포장을 뜯다 말고 대답했음.
‘제가 새로 샀어요. 이건 개인 물건이라 안 빌려드릴게요.’
내가 올린 사진은 친구가 예약해준 작은 식당이었음. 담당자는 우리가 몇번 갔으니까 사장님과 친한 줄 알았대. 이번 주말 자기 모임이 있는데 예약이 꽉 찼다며 한 번만 말해달라고 했음.
모르는 사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다 아는 사람만 부탁하겠냐고 웃더라. 그냥 손님 입장에서 전화 한 번 더 해주면 되지 않냐고. 예약 번호를 보내주겠다고 하자 본인은 이미 거절당햇으니 내가 해줘야 한대.
그러고는 메뉴판 사진도 있으면 달라고 했음. 차 댈 곳, 술 종류, 룸이 있는지도 물었고. 나는 가본 기억을 더듬다가 이걸 왜 회사 책상에서 하고 있나 싶었음.
업무로 맡은 행사냐고 물으니 그런 건 아니고 친구들 모임이래. 그럼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고 했더니 평소엔 답을 잘하더니 갑자기 선을긋는다고 했음.
월요일에 우리 팀장한테 내가 협조가 좀 부족하다고 말했다더라. 팀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인지 물었고 담당자가 그 식당 얘기를 꺼냈음. 팀장은 나를 불러 같이 듣자고 했음.
나는 휴대폰을 열고 업무 관련 요청이 있던 부분부터 보여드리겠다고 했음. 그런데 담당자가 그건 개인 메시지니까 굳이 볼 필요 없다고 말을 끊었음.
팀장이 잠깐 조용히 있다가 물었음.
‘개인적인 대화가 불편해진걸 저희 회사 업무 평가에 넣으신 거예요?’
거래처 담당자가 내 주말 사진마다 어디냐고 메시지를 보냄.
처음엔 음식점 정보가 궁금한가 했는데 점점 몇 시에 퇴근하냐, 이번 주말도 거기 가냐고 물음.
업무연락처로 알게 된 사이라 대충 답했는데, 어느 금요일엔 대뜸 여섯 명 가능하냐고 옴.
그재야 뭔가 이상해서 전화했음.
저는 처음부터 매트리스 바꿀 생각이 있다고 했어요. 지금 쓰는 것도 당장 못 쓸 정도는 아니라 천천히 고르는 중인 거죠. 십분 누웠다고 알 수 있는 물건이면 왜 그렇게 비싸겠어요.
처음에는 직원이 불도 약하게 해주고 편하게 있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다음에도 같은 시간에 갔고요. 다른손님이 오면 저는 이어폰을 끼고 가만히 있었어요. 상담하는 데 방해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꾸 옆 제품도 누워보래요. 저는 그 자리가 제일 편하다고 했는데 다른 분도 체험해야 한대요. 일어나 옮기면 잠이 깨잖아요. 그냥 조금만 더 있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아예 침대 위에 제품 설명판울 올려놨더라고요. 치우고 누워도 되냐니까 물론인데 체험은 오 분 정도만 부탁한대요. 저한테만 하는 얘기냐고 물으니 모두에게 안내하고 있대요.
제가 지켜보니까 다른 손님한테는 시간 재는 말을 안 하던데요. 그분들은 몇 번 앉았다 일어났으니까 그럴 수 있지만, 결국 오래 체험한 사람만 불편해지는거잖아요.
직원이 옆에 조용히 쉴 수 있는 카페를 알려주길래 거긴 음료를 사야 하지 않냐고 했어요. 그러자 여기 매트리스도 판매하는 제품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돈 아끼려고 온 것도 아니고 점심 먹고 딱 삼십 분 편하게 있고 싶은 건데, 그럼 체험이라고 쓰지 말아야죠.
매트리스는 누워봐야 안다면서 자주오니까 눈치를 주네요.
회사 근처 매장이라 점심시간에 체험하러 갔어요. 편해서 눈 좀 붙인 적은 있고요.
직원이 괜찬다고 했는데 세 번째 방문부터 구매 시기를 묻더니, 오늘은 제 가방 놓을 의자까지 치웠어요.
아직 안 산 손님은 손님도 아닌가요.
할아버지는 따뜻한 커피를 양손으로 잡고 기계 옆 작은문을 보고 있었음. 컵을 채워놓는 사람이 아침마다 저기로 나온다는 거였음. 어제는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만났다고 했음.
기계가 커피를 뽑는데 굳이 누구한테 인사하냐고 했더니, 컵도 누가 넣고 바닥도 누가 닦아야 하지 않겠냐더라. 잠깐 기다리다 사람이 안 나오자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음.
설마 민원 쓰신 건가 싶어서 봤는데 커피가 너무 뜨거워서 천천히 마셨다는 얘기부터 적혀 있었음. 예전엔 잔을 쥐기 힘들었는데 종이컵이 가벼워서 편하다고도 했고. 내가 대신 리뷰를 써드리겠다고 하니 그건 됐대. 얼굴을 보고 얘기하면 된다고.
조금 뒤 안쪽 문에서 장갑 낀 직원이 나왔음. 할아버지가 종이를 내밀자 직원은 고장 난 부분을 적으신 거냐고 물었음. 할아버지가 아니라고 손을 저으며 자기는 여기 와서 싫었던 게 없다고 했음.
직원이 한 줄씩 읽다가 장갑을 벗더니 종이를 다시펴봤음. 사장님한테 꼭 전해드리겠다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그 사람한태 준 거라고 했음.
집에 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내 커피를 빼앗아 한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음. 내가 먹던 건 단맛 없는 커피였음.
‘이건 아까 그 사람한테 말하지 마라. 네가 잘못 누른 거니까.’
할아버지가 무인 커피 기계 앞에서 직원부르듯 손을 흔들고 계셨음.
괜히 남들 볼까 봐 얼른 다가갔더니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시더라.
기계라서 대답 안 한다고 알려드렸는데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그런데 다음 날도 그 앞에 가서 누굴 기달리고 있길래, 이번엔 나도 옆에 서봤음.
친구는 창밖 보는 걸 좋아해도 방충망운 절대 열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고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 예뻐서 유리 반사만 없애려고 잠깐 연 거고요. 그 순간 옆 화분을 밟고 내려가더라고요.
친구가 슬리퍼 바람으로 뛰어나갔고 저는 너무 놀라 집에 남았어요. 혹시 다시 들어올까 봐 문을지킨 거죠. 나중에는 저도 전단 붙이는 걸 도왔습니다. 사진도 제가 잘 찍은 걸로 골라줬고요.
사흘 뒤에 같은 건물 창고에서 찾았대요. 어디 다친 데도 없고 집에 와서 밥도 먹었다고 해서 저는 그제야 안심햇어요. 잘됐다며 웃는 얼굴을 보냈더니 친구는 답장을 안 하더라고요.
다음 날 전화해서 아직 화났냐고 했어요. 친구가 사흘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고, 고양이 데리고 병원도 다녀왔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제 괜찮으니까 다행이라고 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래요.
문을 열지 말라는 말을 무시한 걸 먼저 생각해보라는데, 제가 일부러 내보낸 것도 아니잖아요. 결과가 안 좋았으면 몰라도 지금은 집에 돌아왔으니까요.
이번 주말 모임도 자기 집 말고 밖에서 하자길래 혹시 저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어요. 맞대요. 이제 저한테 집을 맡기고 잠깐편의점에도 못 간다면서요.
저를 고양이보다 못 믿는다는 말인데, 이 정도면 사과한 사람한테도 상처 주는 거 아닌가요?
친구네 고양이가 잠깐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아직도 저를 못 믿겠대요.
제가 베란다 문을 연 건 맞지만 고양이가 그렇케 빠를 줄은 몰랐어요.
친구가 하지 말라는 말도 하긴 했는데, 저는 사진 한장 찍고 닫으려고 했거든요.
어쨌든 건강하게 찾았고 사과도 했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요.
입주민 소식지에 화해한 사례를 싣겠다는 거였음. 나는 수리얘기부터 끝내자고 했는데 소장은 그렇게 돈만 앞세우면 좋게 끝낼 일도 어렵게 된다고 했음.
관리실에 내려가니 그 이웃이 과일 상자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음. 이웃은 자기가 밤새 잠도못 잤다고 했고 소장은 요즘 형편이 안 좋아서 더 괴로울 거라고 대신 설명했음. 내 출퇴근 때문에 차를 언제 맡길 수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음.
소장이 우리를 벽 앞에 세우더니 조금 웃어보래. 나는 과일 상자를 내려놓고 수리 견적써를 꺼냈음. 그랬더니 이웃 얼굴이 바로 굳었음. 사진에 그런 것까지 나올필요는 없지 않냐더라.
차는 바로 밖에 있으니까 차 앞에서 찍자고 했음. 소장은 흠집이 보이면 사람들한테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했음. 실제로 긁힌 걸 보는데 무슨 오해가 생기냐고 하자, 그건 따로 해결할 문제라고 했음.
이웃은 차 수리보다 자기 사과가 먼저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했음. 나는 사과 잘 들었고 과일도 받았다고 했음. 그러자 둘 다 이제 됐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었음.
나는 과일 상자를 다시 이웃 쪽으로 밀어놓고 소장한테 물었음.
‘그럼 소식지에는 수리비 얘기를 꺼내면 제가 속 좁은 사람이 돼서 못 꺼냈다고도 써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