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장 뜨거운 주제 "친일"
이 문제에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작가는 친일을 한 다수는 절대적 악인이 아닌 '미상'의 회색분자이며, 더 두려운 건 침묵하고 중립을 고수하며 권력에 복무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준엄한 단죄를 받은 이는 없다는 사실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기담집 <인비인>을 썼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피와 뼈', 그 역사적 의미를
8월 22일(토) 오후 4시, 성해나 작가와의 대화에서 진하게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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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성해나 #작가와의대화 #친일
친일인명 사전에 안상호 이름이 안 오른 이유는 당시 친일파 명단 작성시에 친일파들이 이미 기득권이었기때문에 방해 작업이 많았다고 함
그래서 매우 보수적으로 작성됐는데, 빼박���라 숨기기 어려운 인물들만 먼저 올리고 다른 굵직한 친일파들은 우선순위상 명단에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파락호로 위장한 진짜 애국자, 김용환 선생
1. 1887년 안동 출생, 학봉 김성일 13대 종손
2. 의성김씨 학봉 종가의 재산을 물려받은 명문가 자제
3. 일제강점기 안동에서 ‘파락호’로 악명 높았�� 인물
4. 전답 18만 평을 도박으로 탕진했다는 소문이 자자함
5. 종택마저 여러 차례 날리고 딸의 혼수 비용까지 잃음
6. 가족과 문중으로부터 평생 멸시와 원망을 받음
7. 그러나 그 모든 삶은 철저한 위장이었음
8.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일본 경찰에게 무릎 꿇는 모습을 보고 항일 의식 키움
9. 1908년·1911년 의병 활동에 직접 참여
10. 1921년 상하이 의용단에서 서기로 활동
11. 수십 년간 종가 재산을 만주 독립군 자금으로 보냄
12. 일본 경찰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난봉꾼 행세
13. 가족에게조차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음
14.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은 채 1946년 세상을 떠남
15. 임종 직전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만 답함
16. 사후 동지들의 증언으로 진실이 뒤늦게 밝혀짐
17.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8. 딸 김후옹 여사는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로 회한을 토로
평생 모욕을 감수하며 조국을 위해 침묵한 그 헌신 앞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와 보고 왔는데.
분노하는 지점들을 정확하게 설명해주심.
연좌제가 뭔지도 ㅎㅎ 연좌제타령금지.
전혜린 작가는 50년대 후반에 피아노로 독일유학가서는 궁핍(가난)했다고까지 했대 ㅋㅋㅋㅋ
가난도둑질은 옛날에도 있었구나…
가장 ��경하는 인물이 아버지라고도 했었대…
https://t.co/FZELRtfoNd
【안중근은 왜 영웅 대접 받는거야❓】
안중근은 이토를 쏘고 도망가지 않았음. 그 자리에서 만세를 외치고 체포됐음
처음부터 살 생각이 없었다는 거임. 목적이 살인이면 도주 계획을 세우는데, 목적이 “세계를 향한 고발”이면 법정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재판을 무대로 만들어버림. 이토의 죄 15개를 조목조목 읊는데 일본 판사들이 방청객을 내보냈을 정도
그리고 사형 선고받고 나서 항소를 안 함. ��머니가 보낸 편지 때문임. “네가 항소하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했으니 당당히 죽어라”
죽기 전 마지막 부탁이 소름인데, 자기 ��를 하얼빈에 묻었다가 나라를 되찾으면 그때 고국으로 옮겨달라 했음. 죽은 뒤의 자기 몸까지 독립운동에 쓴 거임. 그리고 그 유해는 아직도 못 찾아서, 116년째 그는 귀국 중임
서른한 살이었음. 나라가 망하는데 목숨으로 항의한 서른한 살을 영웅이라 안 부르면 누굴 영웅이라 부름
공무원은 이런것도 모르면 그냥 백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