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손절 기준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 돋았음
불교, 진짜 인자한 종교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지막 손절 기준 같은 것도 있더라.
그 사람을 이해했는데도 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니라, 거리를 둘 때가 됐다는 뜻이다
이거 보고 좀 멍해졌음.
이해���면 풀리는 관계도 분명 있는데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한 다음에도 계속 아픈 관계는
그냥 놓는 게 맞는 거였구나.
헤아린다고 다 괜찮아지는 건 아니었던 것 같음.
기후 위기 시대, 산업 전환의 짐을 '약자'에게 지우지 않으려면
발전소 하나가 문을 닫는 일은 단순한 설비의 폐기가 아니다.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발전소에 물건을 대던 지역 업체, 노동자들이 밥을 먹던 식당, 그 세금으로 굴러가던 지방정부 살림이 한꺼번에 흔들린다. 탄광을 폐쇄한 뒤 태백에 살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떠났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를 보면 1987년 12만 명을 넘었던 태백시 인구는 올해 3월 3만 6859명으로 줄었다. 40년...
https://t.co/bm4yUJiHfy
[인터뷰] 간판 스타 지소연 “한국 축구 혁신 논의, 여자축구는 왜 빠졌나” @i_ilyo https://t.co/vFOd6wIrNb
지소연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축구협회에서 여자축구는 '방치'돼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 원문봐주세요
배재고 엔딩이 정말 빡치는 건
결국 스벅 5.18 조롱은 정용진의 사과쇼와 매출 타격에도 불구하고
꼰대 진보 대 문화적 관용이라는 담론 구도를 통해 결과적으로 극우의 승리로 마무리됐다는 것
일베노 건이나 이수지 건이나 문화전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데 한가한 소리하는 것들 진짜 개패고 싶음
목이 있어야 적당히 얄랑방구도 끼고 너스레도 떨고 친분도 쌓고,
공적인 관계에서 사적인 관계. 꼭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정으로 끈끈하게 묶이는.
이런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데
목이 없는 사주나, 목이 있어도 힘을 못쓰는 사주들은 누군가랑 친분을 쌓기도 힘들고. 굳이 굳이?임. 친해져도 자기가 힘든 일 생기면 의지 안할라하고. 혼자 잠수탐
말하면 뭐가 해결된답니까 하고 입꾹닫 하는 애들.
미얀마 노동자의 부인께서 미얀마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라는 온갖 회유.협박을 이겨내고
내일 새벽 5시50분 인천공항으로
들어오십니다!
바로 단국대 천안병원 장례식장에
가시어 사랑하는 남펀의 청천벽력 같은 주검을 맞이하십니다.
그리고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분향소도 차려집니다!
모레 목요일 오후 한시는 소녀상앞 SK에코 플랜트 본사앞 기자회견도 참석 예정이십니다!
모레 저녁 6시에는 본사앞 추모집회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동지들!
서러우면서도.잔혹한 이주노동자의 죽음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에 함께 해주십시요!
"대중을 만나려면 그들의 불완전한 언어와 윤리에 무뎌질 필요가 있다. 일상의 대화와 말투 하나하나의 ‘PC함’에 승패를 걸면 안 된다는 말이다. […] 불완전한 공간에 들어서서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며 제도적 성과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https://t.co/EvJRuIBqbn
[단독]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법무부, 국민 의견 듣는다https://t.co/HxlUh81Iz5
법무부가 동물을 민법상 ‘물건’에서 제외하는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을 위해 국민 여론조사를 조만간 실시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예고한 ‘국민적 합의’ 절차의 첫발로 풀이된다.
유튜버 새덕후가 논쟁적인 영상을 올렸다. 제목은 「고양이, 이젠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올라온 지 하루 만에 댓글창은 또 한 번 두 진영으로 갈라졌고, 남초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유해조수로 지정해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글이 줄을 잇는다. 길고양이는 생태 교란범이고, 캣맘은 공범인가?
새덕후가 같은 주제로 영상을 올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고양이의 생태 교란 영상, 2023년 「고양이만 소중한 전국의 캣맘 대디 동물보호단체분들에게」, 2025년 서울시 길고양이 정책 비판에 이어, 이번엔 "죽일 수밖에 없다"가 됐다.
고양이는 새를 사냥한다. 그 외 여러 도시생명을 사냥한다. 먹기 위해서 잡기도 하고, 유희를 위해 잡기도 한다. 멸종위기종을 딱히 가려서 잡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생태계에�� 고양이를 위협할 수 있는 포식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고양이의 포식이 생태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살처분’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기여도가 얼마나 되는지, 다른 원인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를 정교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새덕후가 제시한 영상 속 새들의 끔찍한 사체들이 모두 고양이가 죽인 것이라는 입증이 없다. 사후에 발견된 사체일 수 있고, 다른 원인으로 죽은 새를 고양이가 건드린 흔적일 수도 있다. 영상에서는 그저 ‘고양이를 죽이자’는 혐오의 메시지를 정당화할 스펙타클로 활용된다.
새가 줄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도심의 불빛은 야행성 조류의 휴식과 이동을 방해한다. 철새들이 돌아오는 갯벌은 매립되고, 신공항은 철새 도래지를 가르며, 어업 쓰레기는 바닷새의 위장을 채운다. 또 새들은 도시의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 죽고, 폭죽소리에 놀라 죽고, 로드킬 당해 죽고, 서식지가 개발되어 갈 곳을 잃어 죽는다.
또한, 새를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포란 중인 둥지를 찍겠다고 가지를 자르고, 희귀종을 따라다니며 소음을 내고, 야간에 손전등을 비추는 것으로 새들의 시력을 잃게 만든다. 새덕후 본인 조차 그런 일을 저질러 사과문을 쓰기도 했다. 이 모든 원인은 인간으로 수렴한다. 빛도, 매립도, 쓰레기도, 로드킬도, 버드스트라이크도, 무리한 촬영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고양이 또한 이 구조의 결과물 중 하나일 뿐이다.
길고양이가 늘어난 이유부터가 그렇다. 캣맘이 사료를 줘서 늘어난 것이 아니다. 사람이 키우다 버려서 늘어난 것이다. 펫샵과 브리더가 수요를 끊임없이 공급으로 바꾸고, 그 공급의 일부가 거리로 흘러나온다. 왜 거리에 고양이가 끊이지 않냐면,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버려서 그렇다. 산 꼭대기에 고양이가 있는 이유도, 고양이가 없던 섬에 고양이가 있는 이유도 사람이 그곳에 고양이를 버려서 그런 것이다.
캣맘들이 사비를 들여 중성화를 시키는 이유, TNR 사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길고양이의 자연 소멸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TNR과 급식소 병행이 개체수를 안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으나, TNR의 효과는 중성화 커버리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캣맘이 고양이를 ‘늘리는 주범’이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해법이 멀리 있지도 않다. 들개 물림 사고가 잇따르고 유기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유기견 보호소라는 제도가 자리잡았다. 길고양이도 같은 경로를 갈 수 있다. 유기묘 보호소를 만들고, 브리더와 펫샵을 규제하고, 유기 처벌을 강화하고, 야생 개체를 줄이는 인도적 포획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동시에 새들을 죽이는 빛공해 기준을 강화하고, 신공항과 매립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들여다보고, 어업 쓰레기 수거 체계를 손보는 일. 모두 사람이 만든 문제를 사람이 치우는 일이 기본이 된다.
그런데도 캣맘과 고양이에게만 그 책임을 돌린다. 최근 몇 년 사이 ‘털바퀴’라는 노골적인 혐오의 말이 일상어가 됐다. ‘털바퀴’라는 혐오의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살���보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성, 캣맘, 페미니스트가 그 안에 함께 묶여 있다. 동물에 대한 혐오는 좀처럼 동물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옆 사람으로 번지고, 그 사람들이 속한 집단으로 번진다. 한 종을 미워하고, 혐오하고, 학대하고, 살해할 명분이 한 번 허용되면, 그 명분은 다른 곳에서도 쓰인다.
남초 커뮤니티의 길고양이 혐오 담론을 분석한 이진(2022)의 연구는 "남성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빼앗아 가는 페미니즘과 여성의 인권 가시성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남성성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형태"로 정리한다. 길고양이 혐오는 길고양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정면으로 발화되기 어려워진 여성혐오가 동물을 경유해 분출되는 통로라는 말이다. '캣맘=페미'라는 공식이 반사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정릉골의 역사는 서울 개발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60~70년대 청계천 복개사업과 도심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북한산 자락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 바로 정릉골이다. 사람이 먼저 들어와 살고 길이 뒤따라 만들어졌다는 이 마을은 수십 년 동안 주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를 이뤄온 공간이다. 때문에 주민들은 현재 진행 중인 재개발을 단순한 주택 정비사업이 아니라, 개발로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 개발로 밀려나는 '두 번째 축출'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본주의 개발독재가 지우려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과 존엄을 위하여
나 한때 헬렌켈러에 꽂혀서 찾아보다가 헬렌켈러가 쓴 엄청난 사회주의 연설 보고 ㅈㅉ충격먹었음
이 사람이 이렇게 파격적인 워딩을 쓴다고?
할정도로 거의 아나키즘에 가까운 사회주의자였음
또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였고 서프러제트였고..
그동안 동화 수준의 위인전에서는 이런 내용을 다루지 않으니까 내가 알던 설리번 선생님한테 손바닥으로 물 배우던 그 헬렌켈러가 맞나? 하고 와장창 뭔가 머릿속에서 깨지고 재정립됨
불륜을 꿈꾸는 대한민국 남녀에게 해 주고 싶은 경험담 하나.
구급차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무인텔이었다. 널따란 대지에 차고가 딸린 독채가 여럿 줄지어 있는 구조였다.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자 차고 문 하나가 열렸다. 바로 누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기척이 없었다. 소생장비를 챙겨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 구석에는 말쑥한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고 방바닥엔 나신의 남자가 누워 있었다. 남자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뒤 가슴압박을 시작했다. 잠시 지켜보던 여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 빨리 집에 가야 해요!"
같이 있던 사람이 가족이던 누구든 사망하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화장을 고치고 단정하게 머리까지 빗은 여자를 보며 생각했다.
사랑은 언제나 곁을 지키지만 불륜은 언제나 도망갈 준비를 한다.
(재미로 보는)
감성적인 금 과다 사주 특징
금 = 차가움, 냉정하다 이게 원론적인 해석인데, 이걸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잇음
1. 금 = 섬세함
: 특히 신금이 그런데, 금은 정제된 기운, 불순물을 걸러내고 순수한 것만 남김. 그래서 감각이 예민함. 작은 변화나 미묘한 분위기 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음. 이게 감수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음.
2. 상처받기 쉬운 단단함.
: 금은 단단하지만 부서지기 쉬움. 겉은 강해 보이지만, 금이 한번 가면 깊게 남고 오래 감.
3. 완벽주의적 이상
: 이게 오히려 감성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잇음. 금은 현실적인 사람이 아님. 현실보단 이성을, 완벽을 추구하게 됨. 사실은 낭만주의인 것임. 이 강한 내적 기준이 드러나는 것
4. 내면이 고독함
: 이게 큰데, 금은 홀로 잇음. 혼자 잇으면서 내면이 깊어짐. 외롭고 쓸쓸한 감정에 익숙해짐.
5. 억눌러진 감정
: 금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억누름.근데 그래서 사라지냐? 그렇지 않고 쌓이고 깊어짐. 겉은 냉하고 속은 감정이 쌓이게 됨. (금도 인간이닉가..)
이런 사람��은 이렇게 개운하자! (타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