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계정은 삼일운동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알리고, 삼일절(독립선언일)이 한민족의 뜻깊은 명절이자 축제의 날임을 설파하는 계정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팔로우와 공유를 환영합니다. 상업용 계정이나 정치 계정의 팔로우, 댓글, 좋아요 일체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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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78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걸린 태극기의 생김새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을 제기한 일부 그룹이 존재하는 것같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정의 연원과 과정, 그리고 태극기 도안의 변천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촌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당일 국회의사당 경축식장에 걸린 태극기는 총 3장입니다. 왼쪽부터 1882년 처음 만들어진 「이응준 태극기」, 현행 태극기, 그리고 1923년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입니다. 태극기의 도안은 처음부터 획일적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도안이 공존했고, 지금 태극기 도안이 확정된 것도 1949년 문교부 고시에 의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임시의정원 태극기는 헌법 전문에 나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상징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가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정 선포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 태극기의 역사와 대한민국 헌정사에 대한 몰이해로 인하여 일부 정치 계정에서 경축식장의 태극기를 문제삼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이런 일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제헌 국회 의장으로서 삼일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에 적극적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조차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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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다시 보는 제헌절]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세상에 처음 공포되었습니다.
제헌절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세운 뜻깊은 날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대 국회의 탄생부터
제헌헌법이 제정되고 공포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며,
헌법의 가치와 제헌절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 제헌절 78주년 기념 특별전 〈다시 보는 제헌절〉
기간 : 2026. 7. 16.(목) ~ 8. 31.(월)
장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다목적홀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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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30년(1948)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1919년 삼일운동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이래,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30여 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습니다. 78년 전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매년 7월 17일을 「제헌절」(制憲節)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제헌절은 18년만에 다시 공휴일로 쉬게 된 기념일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뜻깊은 날입니다.
1919년 삼일운동 이래 우리 민족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갖은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역만리에서 임시정부를 세워 군사·외교독립운동을 병행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임시헌법과 강령 등을 제정하며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청사진을 그렸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1948년 헌법의 제정을 통해 마침내 결실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제헌 헌법 전문에서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한 정신을 이어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명시한 구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삼일운동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었습니다. 이것이 1944년 제5차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다시 1948년 제헌 헌법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계승되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 헌법이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 위에서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헌 헌법의 제정은 삼일운동 정신의 승리이자 제국주의에 대한 한민족의 승리였습니다. 삼일운동 정신을 건국 이념으로 하고,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문화한 『대한민국 헌법』 공포 78주년 제헌절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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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기미년(1919) 3월1일에 독립선언을 하고 대한민국을 건설해 천하에 선포하고 행세했던 것입니다. 국내에선 일본 정부의 압력을 받아서 행세를 못 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행동을 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정신을 살리는 데는 우리 국회에서 정신적 행동한 사실을 부인한다든지 역사를 부인한다는 것은 우리 독립국가 건설 정신에 위반이라고 봅니다.
(중략) 3억 만년 이후의 역사가가 우리 역사를 보고 이러한 사실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연호를 써 내려가는 것이 좋다고 주장합니다. 공문서나 사문서에도 대한민국 연호 쓰기를 주장하는 것이올시다."
- 대한민국 30년(1948) 9월 제헌 국회의원 연병호 선생
미국 독립기념일, 멕시코 독립기념일, 그리스 독립기념일, 프랑스 혁명기념일, 중화민국(대만)쌍십절… 이들 나라 국경일의 공통점은 바로 「건국(독립)의 출발」을 기념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독립 선언 이후 13년이 지나서야 연방 정부를 건립했고, 멕시코와 그리스는 첫 번째 독립 봉기로부터 약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독립을 달성합니다. 프랑스 또한 1789년의 혁명 이후 누차에 걸친 혁명을 겪고 나서 1870년에 이르러 공화정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건국이 완성된 순간이 아닌, 건국의 의지를 처음 내비친 순간을 국경일로 정하고 온 국민의 경축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국사에 대입하여 봅시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주권자인 「대한국민」은 1919년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1948년 우리와 우리들의 후손을 위해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으로 결실되었습니다. 30여 년에 이르는 건국사에서 그 출발점은 너무나 분명하게도 삼일운동입니다. 우리가 삼일절을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기념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삼일절은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일입니다. 보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건국의 기념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1920년 삼일운동 1주년을 맞아 국내에 뿌려진 기념 전단에서도 3월 1일은 「건국의 기념일」, 「대한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한 생일」 등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또 1949년 제30주년 삼일절을 맞아 『조선일보』는 「건국의 생일」(1949.02.23.)이란 단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30세 생일』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건국의 출발로부터 건국 연대를 기산하는 것이 매우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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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월 14일은 프랑스의 혁명기념일입니다. 1789년 7월 14일, 성난 파리 군중들이 구체제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근대 민족국가를 세우는 혁명의 첫 출발에 나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계사의 3대 혁명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혁명은 근대적 민족주의의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삼일운동과 결을 같이 합니다.
프랑스에서 혁명기념일은 곧 「프랑스 국민」이라는 새로운 주권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거족적인 축제의 날입니다. 혁명 전야에는 도시마다 등불 행렬이 펼쳐지고, 혁명 당일에는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열병식이 거행됩니다. 엄숙한 군사 의례가 끝나고 나면 도처에서 무도회와 콘서트 등이 펼쳐지고, 밤에는 화려한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프랑스에서 주권자의 생일인 혁명기념일은 온 프랑스인의 명절이자 흥겨운 축제의 장입니다.
우리의 삼일절은 어떻습니까? 본래 「국경」(國慶)이라는 말은 「황제의 생일」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황제는 곧 주권자의 명칭입니다. 주권자의 탄생이 곧 국가의 경사이고, 주권자의 기쁨이 곧 국가의 기쁨입니다. 우리 헌법에서 주권자 「대한국민」이 국가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처음 분출한 순간은 바로 1919년 삼일운동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의 건국 의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그리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삼일절은 「대한국민」의 탄생을 기리는 국가와 국민의 경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은 삼일절을 프랑스 혁명기념일에 비견되는 경축일로 간주했습니다. 거족적인 만세 운동을 통해 한민족이 비로소 역사의 주체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삼일절은 매년 성대한 경축식과 차량 퍼레이드, 경축 공연, 연회 등으로 기념되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삼일절은 광복절보다도 큰 겨레의 명절이자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인의 혁명기념일은 지금도 프랑스 최대의 축제일이지만, 우리의 삼일절은 추념일로 오해까지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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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혁명기념일(1789.07.14.)은 프랑스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부상한 것을 기념하는 프랑스 국민의 대축제입니다. 기념일 전야에는 등불 행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당일에는 웅장한 열병식과 콘서트, 불꽃축제, 그리고 도처에서 무도회가 개최됩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밤을 지새우며 축하하는 유흥의 날이 바로 프랑스 혁명기념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삼일절은 과연 어떻습니까? 삼일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민족이 주체로 처음 부상하여 국가의 독립을 선포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독립 선언으로 말미암아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고, 그 법통 위에서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나라의 주인인 「대한국민」이 출현한 3월 1일을 격조 있는 축제로 즐기고 있습니까? 독립 선언 107주년이 되도록, 우리는 유관순 열사의 비극만 기억할 뿐입니다. 이것이 과연 삼일절의 참된 의의를 살리는 길입니까? 이러한 비판은 1950년대 지식사회에서도 공공연히 제기된 바 있습니다.
『누구의 지시나 누구의 권고로서가 아니었건만, 이처럼 민중 속에 뿌리를 박은 3월 1일이라면 프랑스 혁명 전야의 소위 혁명기념일의 예를 들 것도 없이, 해방 후에는 이날을 경축하는 행사가 자연발생적인 민속으로 나타날 법도 하건만, 아직은 관이나 단체에서 주최하는 이외에 별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섭섭하다.
설날, 단오, 추석 같은 세시 명절도 좋겠지만은, 1년에 한 두번쯤은 삼일절을 명실 그대로 민족의 날, 민중의 날로서 즐길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한다. 삼일절이 어느 틈에 '관의 명절'로 되는 일이 있다면 그다지 반갑다 하기 어렵다.』
- 1957년 2월 27일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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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헌병경찰통치의 총칼이 시퍼렇던 당시에 한민족의 독립이 어디에 이루어졌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그 만세를 부른 조상들 2천만의 가슴속이었다. 삼일운동의 역사는 이 같이 이미 그 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일으킨 민족의 신념 속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우리들 가슴 속에 이 같이 있었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우리 민족의 독립은 그 뒤 대한민국 임정이란 새 국가의 탄생을 통하여 실제 역사의 현실로 실천되어 나타났다.
삼일운동 뒤에 탄생된 대한민국, 그것은 5천년 한국사상 우리 한민족이 최초로 세운 근대국가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1910년에 무너진 조선왕조는 낡은 전통국가였다. 따라서 삼일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근대국가인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전통으로부터 근대로 가는 역사의 전진을 우리 민족이 단 10년 안에 이룩한 위대한 창조다.
(중략) 오늘의 한민족에게는 우리의 삼일운동을 국외자로서 바라보는 눈들이 너무도 많다.
삼일운동에서 독립은 선언되었지만 그 독립은 즉시 이룩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부터, 삼일운동은 한마디로 실패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까지도 있다.
이 같은 시각은 바로 삼일운동을 하나의 소요나 폭동으로 하여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일제 쪽의 역사의 눈(식민사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일제의 총칼이 삼일운동 그 자체를 탄압하였듯이, 이 같은 일제 쪽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눈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삼일운동의 역사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 故 최창규 서울대학교 정치학 교수
#삼일운동 #삼일절 #독립기념일 #독립선언일 #국경일 #독립운동 #독립운동가 #역사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정부 #역사 #대한민국만세 #대한독립만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경축사 말미에서 날짜를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도는 삼일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있었던 1919년을 「건국 1년」으로 삼는 「대한민국 연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1948년은 1919년(1년)으로부터 햇수로 30년이 되는 해이므로 「대한민국 30년」이 됩니다.
일찍이 1919년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자신의 수립 연도인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1년)」으로 선포한 바 있습니다. 삼일운동의 거족적인 독립 선언을 통해 「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발족시켰기 때문입니다. 과거 1787년 미합중국 헌법 제정 당시 미국도 헌법의 말미에 「미합중국 독립 12년」(Independance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e Twelfth)이라는 기년을 표시한 바 있고, 한국에 앞서 공화국을 출범한 중화민국 또한 1912년을 「중화민국 원년」으로 선포한 바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연호는 이러한 선례를 본뜬 것인데, 이를 1948년 수립된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도 계승한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연호의 사용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이었습니다. 제헌 국회 출범 당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부활」을 선언하며 연호를 기미년(1919)에서 기산할 것을 주장했고, 1949년 제30주년 삼일절을 맞이해서는 이날을 「대한민국 30세 생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또 1949년 개천절에 이승만은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민국 연호의 사용을 재차 촉구했는데, 그에 따르면 이승만은 「우리나라 역사상 광영을 더 발전」시키고, 「민주 건국의 기초가 이미 그때(1919)에 잡힌 것을 표시」하고, 「무저항주의(3·1운동)을 시작해서 성공한 사적을 표명」하기 위해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각에서는 1919년에 국민, 주권, 영토가 없었는데 어째서 1948년이 「대한민국 30년」이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연호는 대한민국 건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독립을 선언한 그 해부터 한반도 내에 완전한 주권체가 출현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말처럼, 대한민국이 삼일운동의 건국 정신으로써 태어난 민족사의 정통 국가라는 것,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기원한다는 사실을 자부하는 데 대한민국 연호의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올해는 대한민국 108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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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월 4일은 미국의 250번째 독립기념일입니다. 1776년 7월 4일, 미국 대륙회의에서 13개 식민지 주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미국이 실제로 영국에게서 독립한 것은 1783년, 미합중국 연방 정부가 수립된 것은 1789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들의 자유 정신을 처음 선포한 1776년의 독립선언일을 최대 최고의 경축일로 기념합니다.
미국인들에게 독립기념일은 기쁘고 즐거운 축제의 날입니다. 마을마다 가장행렬을 벌이고, 가정에서는 바베큐 파티와 피크닉을 즐깁니다. 저녁에는 여러 도시에서 축하 콘서트가 열리고, 밤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태평양에서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체가 경축 분위기 속에 젖어드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독립기념일을 축제로 기념하는 것은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존 애덤스의 유언을 충직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1776년 독립선언 직후, 존 애덤스는 "후세의 사람들은 이날을 위대한 축제로 기념할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히, 대륙의 끝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행렬과 쇼, 게임, 스포츠, 총, 종, 모닥불, 그리고 불빛으로 가득 찬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7월 4일마다 퍼레이드를 벌이고 불꽃놀이를 여는 것은 바로 25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오는 전통인 것입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 다시 말해, 독립선언기념일에 대응하는 우리의 국경일은 바로 삼일절입니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3월 1일을 『독립선언일』(Kor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Day)로 정한 것이 그 기원입니다. 임시정부에서는 매년 삼일절이 되면 성대한 축하식을 열었고, 식이 끝나면 자동차를 꽃과 태극기로 장식하여 퍼레이드를 벌였습니다. 밤이 되면 축하 공연을 개최했고, 공연이 끝나면 축하 연회를 즐기거나 폭죽을 터트리는 등 그야말로 즐거운 명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천만대에 기념할 우리 민족의 부활일"인 3월 1일을 "무한히 기쁘게 축하하자, 놀자"고 동포와 후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1924년 임시정부 기관지 『배달공론』은 대한의 남녀들에게 "이날(3월 1일)을 기뻐하여 만세를 부르라! 날뛰고 노래하여 기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삼일절은 선열들의 당부처럼 즐거운 축제로 기념되고 있습니까? 미국인들은 그들 선조의 유언을 잘 지키고 있지만, 우리는 있는 삼일운동의 역사적 의의마저 제멋대로 축소·왜곡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삼일절을 기쁘게 축하하라던 선열들의 간곡한 호소는 언제쯤 빛을 발하게 될까요? 아무도 모를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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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헌병경찰통치의 총칼이 시퍼렇던 당시에 한민족의 독립이 어디에 이루어졌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그 만세를 부른 조상들 2천만의 가슴속이었다. 삼일운동의 역사는 이 같이 이미 그 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일으킨 민족의 신념 속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우리들 가슴 속에 이 같이 있었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우리 민족의 독립은 그 뒤 대한민국 임정이란 새 국가의 탄생을 통하여 실제 역사의 현실로 실천되어 나타났다.
삼일운동 뒤에 탄생된 대한민국, 그것은 5천년 한국사상 우리 한민족이 최초로 세운 근대국가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1910년에 무너진 조선왕조는 낡은 전통국가였다. 따라서 삼일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근대국가인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전통으로부터 근대로 가는 역사의 전진을 우리 민족이 단 10년 안에 이룩한 위대한 창조다.
(중략) 오늘의 한민족에게는 우리의 삼일운동을 국외자로서 바라보는 눈들이 너무도 많다.
삼일운동에서 독립은 선언되었지만 그 독립은 즉시 이룩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부터, 삼일운동은 한마디로 실패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까지도 있다.
이 같은 시각은 바로 삼일운동을 하나의 소요나 폭동으로 하여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일제 쪽의 역사의 눈(식민사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일제의 총칼이 삼일운동 그 자체를 탄압하였듯이, 이 같은 일제 쪽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눈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3.1운동의 역사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 故 최창규 서울대학교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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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1948년) 3월 1일 기념은 새로운 정신으로 경축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간 29년 동안을 두고 우리가 이날을 경축한 것은 비폭력 혁명운동의 성공을 준비하기 위해 행한 것인데, 오늘 와서는 비폭력 혁명이 성공한 것을 우리가 경축하게 된 것이니, 우리가 총선거를 실행해서 정부를 민의대로 수립해 40년 동안 잃었던 국권을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을 우리가 특별히 축하하는 것이다.
우리 전 민족은 만강의 열정으로 이날을 경축하며 기미년 삼일운동 정신을 다시 발휘해 유엔의 협조로 우리 목적을 하루 바삐 달성하도록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매진해야 할 것이다.
- 대한민국 30년(1948) 3월 1일 서울 기미독립선언기념대회 이승만 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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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경일 중 삼일절은 금일의 민주국가 창건의 씨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을 기념하는 날로 현재 우리의 실제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국경일은 이상의 사실로 볼 때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 1961년 3월 1일 『조선일보』 사설 中
지난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습니다. 미국 독립기념일은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 주 대표가 필라델피아에 모여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것을 기념하는 미국 최대 경축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날은 미국이 식민모국 영국에게서 독립한 날이 아닙니다. 1776년 7월 4일은 단지 그들의 독립 의지를 천명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소위 '76정신'(Spirit of 76)을 지켜 나가며 독립전쟁을 계속했고, 마침내 프랑스 등의 도움을 받아 1783년 독립을 이룩했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런 위대한 역사적 성취의 출발일인 7월 4일만을 독립기념일로 정하고, 이날을 온갖 경축행사로 축하합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독립된 날이 아닌 독립을 선언한 날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삼일절'과 같은 날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미국인들이 삼일절을 "Korean Independence Day"라고 부른 사실, 그리고 한국의 여러 지식인들이 삼일절을 미국 독립기념일에 상응하는 날로 표현한 데서도 나타납니다. 위의 1961년 『조선일보』의 삼일절 기념 사설은 그러한 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삼일절 #독립기념일 #독립선언일 #삼일운동 #America250 #4thofJuly #IndependenceDay #국경일 #역사 #독립운동 #독립운동가
『서울경제신문』에서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1776년 7월 4일과 한국의 독립선언일인 1919년 3월 1일을 비교하는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어떤 의미를 지닌 날인지, 이날에 대응하는 우리의 국경일인 삼일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에 동 칼럼을 쓴 기자의 문장을 인용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정말 특별하다면 그것은 3·1 독립선언과 운동 및 사실상의 혁명 결과에 따른 이유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왕(王) 제도를 폐지하고 민(民)이 국가의 기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겠다는 일반의지를 보였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우리 현행 헌법의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다.
기자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미국의 독립일(또는 독립기념일)이 7월 4일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국내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대해서는 다른 논리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으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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