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P통신 보도: 일본 현지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해 발굴 작업과 사고 진실을 다룬 외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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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리아타임스 영문 보도: 1942년 해저 탄광 붕괴로 180여 명이 수몰된 참사와 한·일 간 유해 발굴 공동 대응 소식
➡️ https://t.co/0NT1eTbIUh
타래로
@babyjksinheaven@Taehwa_Li 이들은 일본군 지휘부를 찾아가 "국제법상 너희가 이 도시의 점령군이니, 너희 군대의 폭력과 학살을 당장 멈추고 치안을 확보하라"고 강력히 항의,요구한 것이지 일본군이 정의로워서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외국 대사관들은 일본군의 잔혹한 행위와 약탈에 대해 끊임없이 항의했음.
@babyjksinheaven@Taehwa_Li 니가 말하는 '보호 요청'의 진실은,"일본군이 너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니, 서양 외교관들이 국제법을 들이밀며 '너희 군대 좀 제발 통제하고 치안 좀 잡아라'라고 항의하고 압박한 역사.외국 대사관들과 난징 안전구역의 서양인들(존 라베 등)은 일본군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을 보고 경악함
@babyjksinheaven@Taehwa_Li 왜 외국 대사관은 자국민 보호를 중국군이 아닌 일본군에 요청했는가?➡️ 일본군이 난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를 무력으로 함락하고 실효 지배 하고 있었기 때문. 당시 국제법(헤이그 협약)상, 한 도시를 무력으로 점령한 군대는 그 도시의 치안을 유지,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었음.
@babyjksinheaven@Taehwa_Li 일본이 홍수피해자를 도왔다➡️ 일본군의 홍수 구호 기록들이 왜 존재할까? 장제스 정부가 '일본군 공습으로 황하가 터졌다'고 발표하자 일본군은 국제 비난을 피하려 '우리가 안 그랬다'는 걸 증명위해 대대적으로 연출해서 찍은 선전용 기사를 냈다.
@babyjksinheaven@Taehwa_Li 1938년 6월, 황하 결괴 사건은 장제스 정권의 가혹한 군사적 실책이자 비극이 맞아. 하지만 중국 정권이 자국민에게 실책을 저질렀다고 해서, 일본군이 남의 나라를 침략해 난징에서 수많은 민간인과 포로를 학살한 전쟁 범죄가 정당화되거나 사라지지않음.
@babyjksinheaven@Taehwa_Li 1940년 3월, 일본은 친일파인 왕징웨이를 내세워 난징에 괴뢰 정부를 세움. 일본이 전쟁을 정당화하고 중국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세운 '바지사장 정권'일 뿐이며, 이는 1937년 일본군이 저지른 학살을 덮기 위한 선전 도구에 불과함.
@babyjksinheaven@Taehwa_Li 두번째는자료는 당시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항일 게릴라전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 자국을 침략한 일본군과 그에 협력한 부역자를 공격한 교전 기록일 뿐, 이것이 1937년 난징에서 일본군이 무장 해제된 포로와 민간인을 대규모로 학살한 전쟁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babyjksinheaven@Taehwa_Li 첫번째 문서는 1937년 난징 대학살이 일어나고 무려 4년이나 지난 1941년의 문서입니다. 당시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북부 지역(천진 등)의 치안 상황을 다룬 보고서일 뿐이며, 1937년 난징의 학살 사실을 부정하는 것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babyjksinheaven@Taehwa_Li 일본군 주력 부대가 다음 전선으로 이동한 것은 사실이나, 가장 끔찍한 대규모 학살과 약탈은 일본군이 난징을 함락한 직후인 1937년 12월 중순부터 수 주간 집중적으로 발생함. 부대가 나중에 이동했다고 해서 이미 저지른 범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babyjksinheaven@Taehwa_Li 네가 준 자료들의 원문을 제대로 읽어보긴 한 거야? 전형적인 체리피킹 오류. 네가 강조한 쌀 배급 내용 바로 옆을 보면 '수많은 난민이 갈 곳과 옷이 없어 굶주리고 있고, 병원에는 폭격을 맞은 어머니와 아기들이 넘쳐나며, 미국 대사관 직원마저 총상을 입고 들어왔다'는 참상이 그대로 적혀 있어
@babyjksinheaven@Taehwa_Li 극우 세력은 '난징'이라는 도시 경계선 안만 따지지만, 역사학계와 전후 재판(난징 전범 재판소 및 극동국제 military 재판)에서 인정한 피해 범위는 난징 시내뿐만 아니라 난징 주변의 6개 현(구역)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임
@babyjksinheaven@Taehwa_Li 1913년이나 1927년의 난징 사건은 당시 군벌이나 내전 시기에 일어난 별개의 역사적 사건들. 그 사건들이 1937년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한 후 민간인과 무장 해제된 군인을 상대로 저지른 대규모 불법 살해와 약탈(난징 대학살)이라는 독립된 역사적 사실이 없어지지않는다.
@babyjksinheaven@Taehwa_Li 논문은 난징 안전지대 내부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민간인 인구 규모를 학술적으로 정밀하게 추정하는 역사 연구 논문.논문과 당시 기록(존 라베의 일기 등)에서 말하는 20만~25만 명은 난징시 전체가 아니라, 외국인들이 만든 일종의 대피소인 '난징 국제안전구역'안에 모여있던 민간인 숫자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