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한국후방에서 북한을 위해 한국정부와 싸웠던 빨치산 박현채. 그런데도 서울대에 들어가 나중에 교수가 되었고 수많은 학생들을 공산주의 사상으로 의식화시켜서 반미, 반국가세력을 만드는데 큰영향을 줬다. 박현채는 인혁당사건에도 연류돼있다.
김대중은 박현채가쓴 민족경제론 논문으로 경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71 대선때 박현채의 대중경제론을 가지고 나왔다.
김대중은 지금 한국에 부를 가져다준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과 산업화를 반대했고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건설도 비판하고 막을려고했다. 그는 그냥 생계를 위한 농업과 소규모 공예품을 만들고 다 나눠서 살자고 했다. 굶주리는 상황에서 이렇게 했으면 한국은 계속 가난하게 살았을것이다.
한국 경재발전 기초를 잘 닦아낼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생긴게 유신적 개혁이다. 일본의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이 현대화하며 경제가 급격히 자라며 강대국이 되었다. 한국이 경제발전을 단시간에 급격히 자란걸로 유명한데 유신이 없었으면, 즉 대중경제론을 따랐으면, 한국은 계속 빈곤의 악순환에 빠졌을것이다.
기자들은 그걸 "유신헌법"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좌파들은 그걸 비판적으로 사용하는데 그당시 국민들은 유신적 개혁을 지지했다. 중화화공업을 성공 시킬려면 필요했으니. 그결과는 지금의 부를 가져왔다.
이때 학생들 시위가 많았는데 배후엔 통혁당, 민청학련 (인혁당 재건위)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