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살 노인이 길바닥에 자리를 펴고 토마토와 깻잎을 판다. 어느 날 시장을 돌던 정치인에게 고생한다며 찰밥 도시락 하나를 건넸다. 평범하고 정겨운 시장통의 미담이다. 그런데 이 소박한 찰밥 한 그릇이, 자칭 약자의 수호자라는 좌파 진영의 신경망을 건드리는 거대한 발작 버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정치인이 하필 한동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팝콘을 씹으며 보기엔 너무나 비열하고 엽기적인 블랙코미디다.
좌파 강성 지지층은 즉각 좌표를 찍고 북구청에 하루 수십 통의 민원 테러를 쏟아부었다. 목표는 아주 투명하고 잔인했다. "감히 우리 진영의 적에게 밥을 줘? 저 할머니의 노점을 치워버리고 밥줄을 끊어라." 입만 열면 서민과 빈민, 노동자의 생존권을 절대선으로 떠받들던 자들이다. 그런데 내 편이 아닌 자에게 온정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80대 노점상의 생계를 완벽하게 박살 내기 위해 사이버 린치를 가했다. 이쯤 되면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광기에 절여진 사이비 종교의 이단 심문이다.
이 집단적 광기에 화답한 관할 구청의 행정력은 가히 예술에 가깝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이끄는 북구청은 득달같이 달려가 노점 주변에 노란색 통제선을 빙 두르고, '노점 금지' 입간판을 무려 10개나 박아 넣었다. 마치 흉악범의 범죄 현장라도 통제하듯, 할머니 한 명을 포위하기 위해 국가의 공권력이 알뜰하게 동원된 것이다.
하지만 이 촌극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안면몰수와 꼬리 자르기에 있다. 한동훈 의원이 다시 찾아와 안부를 묻고, 상인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으며 여론이 뒤집어지자 민주당 구청장은 어떻게 돌변했는가. "아침에 보고를 받고 처음 알았다.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곧바로 철거를 지시했다."
구청 한복판에서 민원이 폭주하고 10개의 입간판이 동원된 요란한 행정 집행을, 구청장 본인만 몰랐다는 변명을 믿어줄 호구는 없다. 민심의 표밭이 흔들릴 것 같으니 실무자에게 슬그머니 책임을 떠넘기고 야반도주를 택한 권력의 비루한 쌩얼이다.
여기서 아주 얄미운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보수 정당의 구청장이, 이재명에게 찰밥을 건넨 80대 노점상 할머니를 철거하려 펜스를 치고 입간판을 박아 넣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온 좌파 매체와 스피커들이 총출동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살인", "서민을 탄압하는 파시즘"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광장에 촛불의 바다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해자가 자신들의 진영일 때는 약자의 눈물 따위는 1그램의 가치도 없는 불쏘시개로 전락한다. 나에게 밥을 주면 숭고한 민중이고, 남에게 밥을 주면 치워버려야 할 적폐가 되는 이 기막힌 이중잣대.
정치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정치인에게 밥 한 끼 주었다는 이유로 80대 노인의 생계마저 짓밟아버리는 사회라면, 그런 정치와 진영의 쓸모는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약자의 밥줄을 짓밟으며 감히 '민주'를 참칭하다니, 그 이름 두 글자가 너무 역겹고 아까울 지경이다. 차라리 이참에 그 위선적인 간판은 미련 없이 떼어버리고 '민호병(민주주의 호소하는 홍위병)'으로 개명하시라. 동네 힘없는 노점상이나 떼거지로 때려잡는 그 시뻘건 완장이 당신들의 진짜 쌩얼이니까.
이재명 정권과 안규백이 기어코 선을 넘고 있다. 군의 비전투 분야 15만 명을 아웃소싱하겠다는 구상 아래, 이르면 내년부터 후방 부대의 경계 업무를 사설 경비업체에 맡기겠다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의 '바그너 그룹'이나 미국의 '아카데미(블랙워터)' 같은 민간군사기업(PMC)을 대한민국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용병'이라는 단어가 주는 흉측함을 피하려 '민군협력기업'이라는 매끄러운 관료적 조어를 발명해 냈다. 병력 자원이 급감하니 어쩔 수 없는 효율화 조치라는 포장지도 꼼꼼히 발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 조악한 변명 이면에 숨겨진, 아주 치명적이고 불온한 꿍꿍이를 차갑게 꿰뚫어 보아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학적 정의에 따르면 국가는 '합법적인 물리적 폭력의 독점적 주체'다. 군대와 경찰이라는 무장력은 오직 국가의 통제 아래서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은 지금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사 기지의 경계를 사기업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 이것은 국방의 효율화가 아니라, 국가 폭력의 외주화이자 권력의 입맛에 맞는 '합법적 사병(私兵)'을 양성하겠다는 무서운 선언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건조하게 상상해 보자. 국방부 장관이 지정한 '전문기관의 인증'을 받은 기업만이 이 막대한 이권 사업을 따낼 수 있다. 민주당 출신 전현직 지자체장들이 어떻게 수의계약을 맺고 이권 카르텔을 분배해 왔는지 복기해 보면 답은 투명해진다. 조폭 연루설이 끊이지 않던 '성남 국제파'의 페이퍼컴퍼니나,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중국계 자본이 프런트 기업을 세워 군부대 경계 입찰을 따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군사 보안 시설의 열쇠와 경비망이 정권과 결탁한 특정 카르텔, 혹은 검은 자본의 손에 고스란히 넘어가는 진정한 디스토피아가 열리는 것이다.
더욱 기괴한 것은 무기 사용과 파업의 딜레마다. 보고서는 무기 사용 규정을 법에 명시하면 용병 논란이 일 테니 일단 빼자고 권고한다. 얄팍한 눈가림이다. 실탄 없는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 슬그머니 총기 소지를 허락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근로자다. 민노총 산하에 '민간군사기업 노조'가 설립되고, 이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해 군부대 게이트를 열어둔 채 철수해 버리면 국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안보의 척수를 노조의 파업표와 사기업의 계산기 위에 올려놓는 미친 짓이다.
좌파의 지독한 내로남불을 여기서 다시 목격한다. 철도나 의료 같은 민생 분야의 아주 작은 민간 참여조차 '민영화=절대 악'이라며 게거품을 물고 촛불을 들던 자들이, 정작 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공공재인 '국방'을 통째로 사기업에 팔아넘기는 짓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도대체 왜인가. 그 막대한 국방 예산의 파이가 자신들의 진영과 결탁한 사설업체들의 밥그릇으로 떨어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을 막는 장애물은 필요 없다"며 최전방의 방어선을 뜯어내 북한군을 80미터 앞까지 끌어들인 국방장관. 이제 그는 후방 부대의 경계망마저 정체불명의 사설 용병들에게 넘겨주려 한다. 국가의 안보 생태계를 앞뒤로 완벽하게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업에 무장 사병을 허락하는 이 짓거리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 전복에 가까운 기망이다. 위장복을 입은 조폭이나 중국 자본의 하청업체 직원들이 대한민국 군부대의 초소를 점령하는 날, 우리가 알던 국가는 그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게 될 것이다.
과거 보수 정권 시절, 환율이 1,300원을 넘보자 당장 나라가 절단 날 것처럼 곡(哭)을 하던 자. 종말론적 공포를 팔아먹던 그 방송사가, 이재명 치하에서 1,540원이라는 참담한 지표가 찍히자 돌연 세상에서 가장 너그럽고 낭만적인 시인으로 탈바꿈했다. 메인 뉴스의 타이틀이 무려 "속상해요", 그리고 "시간이 해결"이란다.
오른쪽으로 기울면 국가 부도의 전조이고, 왼쪽으로 기울면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속상한 감정의 문제인가. 이토록 노골적인 선택적 관대함 앞에서는 분노를 넘어 차라리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국가의 경제적 뼈대가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위기를 한낱 개인의 투정쯤으로 축소해 버리는 마술. 이것은 보도가 아니다.
최근 며칠간 트럼프 대통령을 다루는 기괴한 행태는 역겨워 굳이 논평조차 하지 않았다. 다자외교의 장에서 한개의 정상회담도 못 한 정권의 초라한 현실을 방어해 주려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품과 자존심마저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꼴이란. 공공의 전파가 사이비 광신도 집단의 사보로 완벽히 전락한 순간이다.
물론 어떤 매체건 일말의 정치적 편향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팩트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허물고 권력의 애완견을 자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1,540원이라는 피 마르는 국가적 비상사태를 두고 "속상하다"며 칭얼대는 집단에게 언론이라는 이름표는 너무도 과분한 사치다.
그러니 훗날 상식을 되찾은 사회가 이 낡고 부패한 선전 기구의 문을 닫게 만들거나 책임을 물을 때, 부디 거리로 기어 나와 '언론 탄압'이라며 거창한 순교자 코스프레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진실을 말할 의무를 버리고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은 다름 아닌 MBC, 너희 자신이다.
기억하라. 언론의 본질을 스스로 폐기한 자들의 최후는 탄압이 아니다. 그것은 무허가 불법 건축물의 '철거'요, 수명을 다한 유해 '폐기물의 처리'에 불과하다.
다만, 너희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그날, 기꺼이 '속상한 척' 정도는 해주마.
범죄학에서 통용되는 아주 건조하고도 명확한 진리가 하나 있다. "한 번은 우연한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이 겹치면 그것은 명백한 고의이자 치밀한 '설계'다."
불과 며칠 전, 대한민국 안보의 성소인 전쟁기념관이 6.25 전쟁을 중국 공산당의 시각인 '항미원조로 묘사한 어린이 포스터를 내걸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것을 넋 나간 외주 업체의 일회성 행정 사고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기어이 두 번째 참사가 터졌다. 국방부 산하 전쟁기념사업회가 전국의 초·중·고 교사들을 모아, 국민 세금을 들여 중국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으로 연수를 보내려던 계획이 발각된 것이다. 북한의 남침을 부정하고, 국군을 조롱하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세뇌 교육장으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들을 밀어 넣으려 했던 이 기괴한 기획. 이쯤 되면 이것은 무능이나 실수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통성을 내부로부터 허물어 중국 공산당의 발밑에 헌납하려는 완벽한 '체제 전복적 설계'다.
이 소름 돋는 헌정 유린 앞에서, 나는 그토록 예민하고 깐깐하던 좌파 진영의 잣대를 차갑게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텀블러 행사에 이름이 광주의 열흘을 모독한 대역죄라면, 수백만 명의 국군과 유엔군을 학살한 전범의 역사를 국가 기관이 나서서 세금으로 찬양하고 교사들에게 주입하려 한 이 짓거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광주의 피는 티끌만 스쳐도 거품을 물어야 할 거룩한 성역이고, 6.25의 피는 적국의 렌즈로 마음껏 능멸하고 유린당해도 '단순한 동선상의 탐방' 정도로 포장될 수 있는 하찮은 것인가. 내 진영의 상처는 종교로 만들면서, 국가를 지켜낸 호국 영령들의 무덤 위에서는 기꺼이 춤을 추는 이 지독하고 구역질 나는 국방부를 어떻게하면 좋겠는가?
경고하건대, 역사에 대한 존중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다.
만약 이재명 정권과 국방부가 이 미쳐 돌아가는 전쟁기념관의 사상 공작을 "일정이 빡빡해서 뺐다"는 식의 조악한 꼬리 자르기 변명으로 덮고 넘어간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이 쳐놓은 도덕적 금기에 갇혀있지 않을 참이다.
정부가 이번에도 나라를 지켜낸 6.25의 거룩한 피를 적국의 시각으로 능멸하는 것을 방관한다면, 나 역시 앞으로 당신들이 그토록 성역화하는 5.18을 가차 없이 '광주사태'라 부를 것이다. 당신들이 대한민국의 근간을 지킨 영웅들을 모욕하는데, 내가 왜 당신들 진영의 상처만을 깍듯이 예우하고 성역으로 모셔야 한단 말인가.
국가 기관이 스스로 붉은 교리를 수입해 교사들의 머릿속에 심으려 했던 이 참혹한 사태의 배후를 뼛속까지 발본색원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이미 총성 없는 내전에서 안락사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