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논하는 자는 대개 늦는다. 간합을 지우고, 축을 빼앗으며, 호흡을 끊는다. 강함은 오래 남는 데 있고, 오래 남는 것은 미련을 덜어낸 자에게만 허락된다. 가문은 장부와 명령의 고리일 뿐. 기능은 울지 않는다. 남을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칠흑 같은 혈맥의 고동. 억겁의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흉성이 뼛속까지 침잠하여, 기어이 귀신의 형상을 빚어내고야 말았다. 가당치 않은 연민 따위로 갈증을 달랠 길 없으니 구차한 명분도, 얄팍한 투지도 내세울 필요 없다. 오직 네놈의 처절한 파멸만이 내 권태를 잠재울 유일한 전리품이 될 뿐.
나는 다윈주의가 빚어낸 가장 정교한 집행자에 불과하다. 약자가 도태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네놈의 눈동자 속에 서린 보잘것없는 복수심, 그것이 네 아니마를 잠식하게 두어라. 고통 속에서 불순물을 걷어내고 남은 순수한 살의만이 나라는 절대 타자에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