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과거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내뱉었던 저 기괴한 어록을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의 무게를 스스로 조롱하며, 대중을 향해 천연덕스럽게 "진짠 줄 알았지?"라며 혀를 내밀던 그 기막힌 화법. 우리는 그저 그것을 한 정치꾼의 얄팍하고 가벼운 혓바닥이 빚어낸 국내용 코미디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 서늘한 조롱의 화법이 기어이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 정상 외교의 공식 매뉴얼로 등극하고 말았다.
며칠 전 벨기에 브뤼셀의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서, 이재명은 유럽연합(EU) 정상들과 나란히 서서 폼 나게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그 문서에는 북한의 핵 도발과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단호한 문장이 박혀 있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아, 한국의 좌파 정권도 마침내 자유 진영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을 맞추는구나.'
하지만 그 발언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이재명은 렌즈의 플래시가 터지고 돌아선 직후, 국내 언론 발표와 공식 보도자료에서 ‘북한 규탄’ 텍스트만 핀셋으로 집어내어 감쪽같이 가위질을 해버렸다.
왜 뺐느냐는 질문에 청와대가 내놓은 변명은 가히 예술적이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서 뺐다."
이쯤 되면 상황은 너무도 투명해진다. 이재명의 속마음은 딱 이거였을 것이다.
"유럽 정상들 앞에서 북한 강력히 규탄한다했더니... 진짜 규탄하는 줄 알더라. ㅋ"
수백만의 자국민을 굶겨 죽이고, 미사일로 대한민국 영토를 위협하는 깡패 국가를 향해 국제사회가 다 함께 회초리를 들자고 합의문까지 썼다. 그런데 정작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권력자가 북한 독재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스스로 그 회초리를 부러뜨리고 숨겨버린다. 자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자존심보다, 적국 독재자의 심기 경호가 최우선 순위로 작동하는 이 기형적인 멘탈리티.
만약 어떤 집단의 행동 양식이 완벽하게 북한의 이익에 부합하고, 그들의 본능적 반사신경이 언제나 평양을 향해 납작 엎드려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오리처럼 걷고 오리처럼 꽥꽥거리면 그것은 오리다.
행동이 주체사상의 궤도 위를 달리고, 영혼이 북조선을 향해 맹종하고 있는데, 자신들을 붉은색이라 부르지 말라며 억지를 부리는 것은 지독한 양심 불량이다. '빨갱이'라는 거친 단어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소환되는 이유는 우파의 색깔론 때문이 아니다. 적국의 핵 위협 앞에서도 스스로 문서를 조작하며 평양을 보위하는 저 비루한 권력과, 이를 맹신하는 좌파 카르텔 스스로가 매일같이 그 단어의 타당성을 완벽하게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께 다시 말씀드립니다. <시위대>라고 하려면 참가자들이 조직되어 있어야 합니다.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기 위한 사전 모의와 주도 집단이 있어야 합니다. 주최자도 무대도 없는 불특정 다수 시민들의 자발적 집회를 시위대라 부르는 건 시위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독재 부역질입니다.
편의점주들은 화물연대의 불법을 눈감아준 정부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최 회장은 “불법 파업이 눈앞에서 벌어졌음에도 노동부 관계자들과 경찰은 이를 방관했고,
CU가맹점주 “화물연대 파업, 최대 피해자는 우리… 끊긴 손님 어쩌나” | 다음 - 조선일보 https://t.co/gXjtx5LvHZ
‘불취불귀’ ‘혼자 가는 먼 집’의 시인 허수경이 타계한 지 올해로 8주년이 됩니다. 1964년 6월~2018년 10월. 이달 9일이 그가 태어난 날입니다. 때마침 출간된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은 이제야 매듭지은 고인의 유고 시집이자, 허수경의 마지막 신작 시집으로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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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중계권을 쥐고 흔드는 꼴이 보기 싫어 채널을 돌리고 싶다는 불쾌감.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그 오만하고 기괴한 촌극에 구역질이 난다는 탄식.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선관위의 투표용지 증발과 헌정 유린이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적 비상사태가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함성에 파묻혀 스르르 면죄부를 받게 될까 두려워하는 그 서늘한 경계심에 완벽하게 동의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차라리 이번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이 철저하게 '폭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썩어빠진 축구협회 수뇌부들이 심판을 받고, 대중의 시선이 다시 차가운 정치와 상식의 붕괴로 향할 것이라는, 일종의 극약 처방을 바라는 분노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을 쥔 자로서 한 가지 조심스럽고도 간곡한 당부를 건네고자 한다. 그 부패한 카르텔을 향한 정당한 혐오가, 그라운드 위를 맨몸으로 뛰어야 할 선수들의 처참한 실패를 기원하는 맹목적인 저주로 번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권력과 행정은 썩어 문드러졌을지언정, 저 푸른 잔디 위에서 청춘들이 흘리는 땀방울까지 부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꾼들과 행정가들에게 월드컵은 그저 자리보전을 위한 방패막이나 알량한 치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이 무대는 평생을 뼈 깎는 고통으로 준비해 온 '꿈의 제단'이다. 누군가에게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단 한 번의 절호의 기회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친 축구 인생의 가장 눈부신 마침표를 찍어야 할 무대다.
특히 손흥민을 비롯한 몇몇 베테랑 선수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보라. 솔직히 말해 국가가, 혹은 저 거드름 피우는 축구협회가 그들에게 해준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던가. 그들은 척박한 토양에서 오직 스스로의 피나는 노력과 압도적인 실력, 그리고 타국에서도 빛났던 훌륭한 인성 하나로 세계의 정점에 섰다. 지난 십수 년간 이 팍팍하고 어지러운 나라의 국민들에게 그들이 조건 없이 안겨주었던 과분한 환희와 위로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협회의 낡은 탁상행정이 밉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빚도 없는 그 위대한 선수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국가대표의 황혼에 고개 숙이고 눈물 흘리기를 바랄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그들은 그간의 헌신만으로도 가장 영광스럽고 박수받는 피날레를 장식할 자격이 충분한 청년들이다.
분노와 응원은 분리할 수 있다. JTBC의 로고가 눈에 거슬린다면, 묵묵히 전파를 쏘아 보내는 KBS로 채널을 돌려 시청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월드컵의 뜨거운 함성 속에서도, 헌법을 조롱하고 표를 훔쳐 간 선관위의 만행을 결코 잊지 않고 차갑게 주시하는 '두 개의 이성'을 우리는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조작된 룰을 심판하고 썩은 카르텔을 도려내는 것은, 축구대표팀의 패배에 기대어 이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 깨어있는 주권자들이 광장과 법정에서 차갑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할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니 부디, 저 멍청한 권력자들을 향한 회초리는 우리 손에 단단히 쥐고 있되, 평생의 꿈을 걸고 사투를 벌일 청년들의 발걸음만큼은 아낌없이 뜨겁게 응원해 주자. 썩은 제단 위에서도, 피어나는 꽃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