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남자이기에 남성적이��� 여자이기에 여성적이라는 말은 이미 구시대적 말이지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말 같기도 합니다. 나는 나 이니까요.
어렸을 때 소위 말하는 남성적인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책 좋아하고 운동 안 좋아하고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성적이라고 칭하는 표현들을 들었습니다.
여성적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자주 비하적인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남자에겐 비하의 표현으로, 여자에겐 가부장속 여성의 모습으로 말이죠. 요즘엔 돌려서 사용됩니다. 민감해지는 사회에 맞춰 표현은 둔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말했던 것 처럼 남성적인 것도 여성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손 쉬운 표현이지요. 듬직함, 여유로움, 조신함 등의 말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언어는 오염되고 불안전 하기에 한가지 시선이 아닌 다양한 시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되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자꾸 그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성격이 좋아서, 웃는 모습이 좋아서, 얼굴이 좋아서, 능력이 좋아서.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어 마치 그것이 사랑의 근거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헤어져야 할 이유를 찾습니다.
마치 사랑에도 시작과 끝을 설명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처럼요.
그런데 정말 사랑에는 이유가 필요한 걸까요.
처음 관심을 갖게 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에게서 발견한 어떤 것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붙잡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사랑이 되어갈수록 처음의 이유들은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유는.. 글쌔요 그냥 그 사람이 좋습니다. 다정함도, 서툼도, 장점도, 단점도 어느새 모두 그 사람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합니다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사랑한다고.”
어쩌면 사랑은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소중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사랑이니까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초록을 한껏 거머쥔 세상이 요즘 들어 유난히 반짝입니다.
여름의 열기는 아직 채 가시지 않았고, 계절이 바뀌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이른 날씨입니다. 그럼에도 하늘만큼은 계절의 경계를 아는 듯, 한층 또렷하고 깊은 푸름을 품고 있습니다.
잠시 멈춰 바라본 풍경에는 언제나 느린 여유가 깃듭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햇빛을 머금은 초록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시간이 잠시 걸음을 늦춘 것만 같습니다.
계절의 흐름이 잠시 머물러 선 이곳에서 자연은 말없이 제 빛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사랑은 어려운 일입니다.
도화지 위에 물감을 칠하듯,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의 색이 하나씩 묻어납니다.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칠해지기도 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색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마음먹은 색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할 수도 있겠지요. 다만 앞선 색이 채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색을 올린다면, 둘은 서로에게 스며들어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색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모든 색이 완전히 마른 뒤에는 괜찮을까요.
애석하게도 사랑은 미술과 닮았으면서도 ���술과는 다릅니다. 몇 분이면 마르는 물감과 달리, 사랑이 언제 마르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평생 마르지 않는 색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처음 도화지에 묻은 색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색은 바탕이 되어 그다음에 어떤 색을 올려야 할지 알려줍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색과 어울리는 색을 고르고, 어쩌면 너무 다른 색을 만나면 낯설어하며 붓을 멈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습니다. 처음의 색이 기준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지워지지 않는 색 하나가 이후에 그려지는 모든 색의 온도와 농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처음의 색을 다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설령 찾아낸다 하더라도 다시는 처음과 같은 붓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아마 저는 아직도 처음 마음에 들었던 색을 한 번 더 칠해보고 싶은, 욕심 많은 일곱 살의 화가 지망생인가 봅니다.
이미 한 번 칠해진 도화지는 다시 처음의 흰색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모르면서.
나는 여전히 당신이 좋습니다.
가을의 풍경엔 당신의 시선이 남아있고, 공원을 걸을 때면 발 맞춰 걸어주는 당신이 합께하곤 합니다. 자상한 미소에는 당신이 겹쳐 보이기까지 하네요.
여전히 사모하고 애정합니다. 언젠가 일기의 내용들이 줄어들면 기억 속에서도 흐릿해지겠지요. 그 전까진 이 마음을 품어보려 합니다.
나의 하루를 다듬어 멋진 조각을 하다 보면 빛바랜 색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나는 멋진 조각이 되어있겠지요. 무언갈 바라는게 아닙니다. 그저,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저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마음에 품으면, 그것을 쉽게 놓지 않고 오래 바라봅니다. 혼자서 �� 번이고 되짚어 보고, 다른 모양으로 뒤집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뜻밖의 곳에서 생각의 ��앗을 발견하곤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 한마디에서, 무심코 지나칠 법한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때로는 처음 품었던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장면에서조차 생각은 새로운 가지를 뻗어 나갑니다.
아마 제가 좋아하는 것은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니라, 사유하는 과정 그 자체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생각을 오래 품고 있다 보면, 마치 장을 천천히 발효시키듯 생각도 제 안에서 시간을 두고 익어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깊이가 생겼을 때 책을 펼칩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자리에 책의 지식을 먼저 들여놓기보다는, 제 나름의 생각과 기준을 세운 뒤 책을 만나는 편을 좋아합니다. 그래야 책의 문장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생각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제게 정답을 건네는 ���이라기보다, 제가 가진 생각의 경계를 조금 넓혀주는 곳에 가깝습니다. 동의하기 위해 읽기보다는, 이해하기 위해 읽습니다.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세계를 조금 더 넓히기 위해 읽습니다.
아마 제가 바라는 것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사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휘둘리지 않되,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생각.
스스로 세운 기준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 앞에서는 기꺼이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생각.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정을 ��고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시간처럼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가 아니라 일출과 일몰처럼 상수에 가까운 사람. 관계의 농도가 짙어질 수록 구태여 질문하고 여러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시간에 언제나 존재하고 싶어요
몇 번이��� 돌려봐도 몽글몽글 해지는 영상
라텍스와 스프링 사이를 오가는 두 사람의 시간에는 이상하리만큼 웃음이 많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입가에 번진 미소를 닮아 있고, 그 안의 설렘은 불안조차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만큼 깊습니다.
“어느 장면이 가장 좋아요?”
그 질문에 한참을 고르다 결국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모든 장면이요.” 라고 말하겠습니다
아마 사랑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순간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는 일이 아니라, 지나온 모든 순간을 마음에 품고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어쩜 저리도 자신의 마음을 믿을 수 있을까요. 불안보다 설렘을 믿고, 망설임보다 확신을 택하는 사람의 마음은 때로 사랑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