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만들어준 소개팅자리에서 취미가 뭐냐길래 "러닝이요" 하고 대답했음
3년간 내가 뛴 거라고는 닫히는 지하철 문뿐이었음 근데 상대 눈이 갑자기 반짝였고 "헐 저도요!" 하는 순간 거짓말을 취소할 타이밍이 사라졌음
헤어질 때 상대가 말했음 "다음엔 한강에서 같이 뛰어요"
그 주 토요일에 5km를 뛰었는데 나는 2km에서 시야가 하얘졌고 상대는 "오늘 컨디션이 별로라서요" 하며 나랑 속도를 맞춰줬음 이상하게 한 번도 나를 앞서지 않았고 러닝화는 박스 접힌 자국이 그대로 남은 새 신발이었음 나는 그냥 장비 관리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음
여기서 끝낼 수 있었는데 상대가 말했음 “11월에 하프마라톤 같이 신청할래요?”
나는 "좋죠" 라고 말했고 집에 가서 참가비 5만 원을 결제했음 그때부터 퇴근하면 한강 가서 토하기 직전까지 뛰었음 거짓말을 만회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어느새 기록 앱에 5km 31분이 찍혀 있었음
두 달 동안 우리는 매주 서로 러닝 인증샷을 보냈음
대회 날 출발선에서 서로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있었음
상대가 파스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나도 똑같았음 둘 다 아무 말 안 하고 출발했음 5km까지는 같이 뛰었는데 8km에서 상대가 보이지 않았고 12km 즈음에서 나는 다리가 풀려서 갓길 가로수에 기대 있었음
15km 표지판 앞에서 걷고 있는 상대를 만났음
얼굴이 새빨갰고 숨이 넘어갈 듯했는데 나를 보자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