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치민 부촌 아파트 32평 600억동(34억)
월세는 무려 500만원 ㄷㄷ
베트남 하면 가성비 여행지로만 알고있었는데
그안에서도 부촌의 아파트는 정말 비싸군요
로비가 아파트보다는 호텔 같은 느낌이네요
실내는 우리나라 아파트같은 사이즈의
비슷한 느낌인데 자재가 좋다고는 하네요
멋진 한강뷰는 아니지만 역시 리버뷰이다보니
비싼 가격에 한몫하는듯 합니다
근데 화장실 인테리어는 예술이네요!
(출처 : 유튜브 희철리즘 )
래퍼 슬리피가 "문신 때문에 어린이집 가기가 창피하고 부끄러워진다"고 최근 영상에서 말하더라.
온 몸에 보기 흉한 문신 도배질을 해놓고 어린이집을 가면 어느 누가 그 모습을 반기겠나.
아이가 소속된 반 엄마들은 물론이고 어린이집 선생, 아이들 모두 불편해할 것이다.
문신을 하지 않는 것도 배려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그리고 특히나 사랑하는 아이에 대한 배려.
https://t.co/lUFifQjohE
조용필 "돌아와 부산항에"
한국 음악의 흐름은 아주 거시적으로 보면..
일제 유산과 미국의 유산.. ㅋㅋ
일제가 남긴 트롯트와..
미8군 무대로 대표되는 팝(락)의 영향력 싸움
이게 또 싸움만은 아니고..
미8군 출신의 뮤지션들..
그러니까, 신중현부터, 김추자, 박인수
그리고 최헌, 윤수일 등등은..
락 베이스에 트롯의 뽕기를 더한.. 음악을 했는데..
그 결정판 같은 뮤지션이 난 조용필이라고 생각해.. ㅎㅎ
난 대학생들이.. 언제쯤..
이 사회에서 엘리트 위치를 잃었는지 추정해 보면..
대학축제란 것에서..
지들 부모님이 낸 등록금으로..
몇천만원씩 들여서..
아이돌 초청 공연 했을때부터라고 생각해... ㅋㅋ
요즘은 대학축제 원타임 공연에..
1억원 넘는 아이돌도 많다고 하더만.. ㅋㅋㅋ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남쪽은 친탁/반탁이 공존했을 1946년에..
이승만의 남한 단독 선거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안 발언이 나왔는데..
북한은 그 이전에 반탁을 하던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이..
이미 소련에 의해 가택 연금이 되고..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정리된 상태
저때 남북한 공동선거였으면..
한반도는 전체가 동유럽처럼...
소련의 위성국가로 수립되었을 것..
돌아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쿠헤이지 별주(Betsuatsurae)를 한 번 사봤음. 전에 레스토랑에서 한 번 마셔보고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나저나 닷사이23은 이제 일본 공항면세점의 간판스타인 듯. 정중앙에 딱 ㅎㅎ. 일본 동료들이 닷사이는 과대평가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고 하길래, 그럴 수는 있는데 내 생각엔 한국인의 평균적인 입맛에 잘 맞는데 면세가격이 7천엔도 안하니까 미친듯이 팔리는 거 같다고 답해줌.
외국인의 입맛은 내국인과 일반적으로 다른 경우가 많음. 나도 왜 일본 사람들이 닭한마리와 간장게장을 사주면 그렇게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음ㅋㅋㅋㅋ 특히 닭한마리는 그냥 니네 집에서 삶아먹으면 되잖아? 라고도 여러번 얘기했는데
여튼 닷사이 23이나 39는 가성비가 정말 좋은 사케라서 불티나게 팔리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얘기. 그리고 닷사이23 마시고 맛있다고 한다고 사케 맛을 모른다며 젠체하는 사람들 가끔 보면 풉 할 때가 있는데, 술은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게 좋은 술이고 사케 자주 마실 일이 없고(굳이 자주 마실 필요도 없음 더 맛있는 술이 널렸는데) 한 병을 골라 마셔야 한다고 추천을 부탁하는 한국인에게 닷사이23은 실패없는 좋은 선택임.
일본의 유서깊은 사케양조장도 동료들 덕분에 몇차례 가봤는데 맛있는 곳도 있고 왜 이게 유명할까 싶은 곳도 있었음. 뭐 계속 마셔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겠지만.
요지는 내 입에 맞는데 가격이 부담되지 않으면 그게 명주임
여튼 닷사이 23이나 39는 가성비가 정말 좋은 사케라서 불티나게 팔리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얘기. 그리고 닷사이23 마시고 맛있다고 한다고 사케 맛을 모른다며 젠체하는 사람들 가끔 보면 풉 할 때가 있는데, 술은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게 좋은 술이고 사케 자주 마실 일이 없고(굳이 자주 마실 필요도 없음 더 맛있는 술이 널렸는데) 한 병을 골라 마셔야 한다고 추천을 부탁하는 한국인에게 닷사이23은 실패없는 좋은 선택임.
일본의 유서깊은 사케양조장도 동료들 덕분에 몇차례 가봤는데 맛있는 곳도 있고 왜 이게 유명할까 싶은 곳도 있었음. 뭐 계속 마셔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겠지만.
요지는 내 입에 맞는데 가격이 부담되지 않으면 그게 명주임
“리센느 미나미, 알고 보니 일본 사립 에스컬레이터 학교 출신 🇯🇵”
1.
미나미는 치바 출신으로 치바니혼대학제일초등학교, 치바니혼대학제일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학교는 일본 최대 규모 사립대 중 하나인 니혼대학교 부속학교.
2.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대학까지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도 학비가 꽤 비싼 편이라 보통 가정 형편이 어느 정도 돼야 보낼 수 있다.
3.
초등학교 6년 학비만 약 380만~412만 엔.
초·중·고를 모두 다니면 총 학비가 약 950만 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급식비·수학여행비·학원비 등은 별도)
4.
원래라면 니혼대 진학 코스를 밟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미나미는 아이돌을 위해 한국으로 왔다.
생각보다 평범한 공립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의외라는 반응도 많다.
내 글에 찾아온 한 방문자가 짐짓 객관적인 척 점잖은 훈계를 남겼다. 안민석이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고 ‘교권보호국’ 신설을 제안한 것을 비판하자, 그는 이렇게 따져 물었다.
"방법은 달라도 교권 보호는 필요한 것 아닙니까. 사람을 보고 정책을 판단하나요?"
이 방향감각을 상실한 질문 앞에서 한참 멍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라는 엄중한 영역에서, 그 제도를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의 철학과 궤적을 보지 않고 대체 무엇을 보란 말인가. 나는 그에게 가장 건조한 팩트 하나를 돌려주었다. "그 정책 하려면, 당신들의 든든한 뒷배인 전교조한테 허락이나 먼저 받고 오시라."
이 해프닝은 오늘날 대한민국 좌파 카르텔이 앓고 있는 지독한 철학적 빈곤과 인지부조화를 완벽하게 압축해 보여준다. 그들은 대중에게 인기 있어 보이고 '맛있어 보이는' 소재라면, 그것이 자신들의 이념적 근간과 정면으로 충돌하든 말든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덥석 주워 먹고 본다.
안민석이 감명 깊게 보았다는 드라마 <참교육>의 본질을 차갑게 해부해 보자.
솔직히 나는 과장된 캐릭터와 비현실적인 폭력 묘사 탓에 참으로 어렵게 완주한 작품이지만, 이 드라마가 관통하고 있는 세계관만큼은 지극히 명확하다. 극 중 교실을 무법천지의 지옥으로 만든 근본적인 원흉은, 다름 아닌 좌파 교육감들이 그토록 신앙처럼 떠받들어 온 최대의 치적인 '학생인권조례'다.
권리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교실의 질서를 붕괴시킨 그 끔찍한 좌파적 실험을 뼈아프게 박살 내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핵심 뼈대다. 오죽하면 좌파 진영과 전교조가 "학생 인권을 탄압하고 폭력을 정당화한다"며 거품을 물고 반대 시위까지 벌였겠는가.
극 중 교육부 장관 역을 맡은 이성민 배우가 내뱉었던 묵직한 대사를 기억하는가.
"학교는 학생의 인권만 있는 곳이 아니다. 선생님의 인권도 있고, 선생님도 학생과 똑같이 집에 가면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이 대사는 맹목적인 학생 인권 지상주의를 맹폭하며, 무너진 규범과 상호 존중의 질서를 다시 세우자는 지극히 건강하고 상식적인 '보수 우파의 세계관'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평생을 학생 인권이라는 얄팍한 핑계로 교사의 훈육권을 해체하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온 전교조를 등어업은 좌파 교육감이, 넷플릭스 대본 몇 줄에 뽕이 차올라 자신들을 저격하는 보수적 세계관의 기구를 '우리의 정책'이랍시고 천연덕스럽게 훔쳐 오려 든다.
자신들의 텃밭인 전교조가 결사반대하는 드라마의 설정을 훔쳐 와 교권 보호의 구세주 행세를 하려는 이 소름 돋는 표리부동. 앞뒤 맥락도, 철학적 일관성도 없이 그저 대중의 박수 소리가 들릴 것 같으니 적군의 무기조차 훔쳐 와 자신의 것인 양 껍데기를 씌우는 이 천박한 지적 도둑질을 어떻게 보아 넘겨야 하는가.
철학이 빈곤한 자들은 늘 화려한 포장지에 집착한다. 교권을 짓밟은 당사자들이 넷플릭스를 핑계로 교권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 역겨운 연극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념적 뼈대도 없이, 그저 시류에 맞춰 맛있어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주워 먹다 보니 지금 당신들 좌파 진영의 꼴이 어떻게 되었는가. 진보의 가치는 증발하고, 오직 권력욕과 얄팍한 포퓰리즘만이 덕지덕지 기워진 흉측한 '혼종 괴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남의 철학을 훔쳐 먹고 체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식탐.
진심으로 교권을 보호하고 교육을 정상화 시키고 싶나? 그렇다면 내가 방법을 제시하마. 되도않는 교권보호국 같은 비현실적인 망상에 기대지말고, 학생인권조례부터 선생님의 인권이 포함된 학교인권조례로 변경하고, 진짜 구원자가 되고 싶으면 학원보다 못한 선생들을 양산한 전교조부터 해체해라.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해 학생과 부모, 선생님들의 사례와 교육계의 외침, 뉴스와 르포가 있었는데 깡그리 무시하다가 고작 ‘참교육’따위의 드라마가 뜨니 마치 지금껏 몰랐다는듯한 정치권과 정부기관의 반응을 보면서 ‘이제서야’의 안도가 아닌 참담함과 졸렬함, 모욕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해 학생과 부모, 선생님들의 사례와 교육계의 외침, 뉴스와 르포가 있었는데 깡그리 무시하다가 고작 ‘참교육’따위의 드라마가 뜨니 마치 지금껏 몰랐다는듯한 정치권과 정부기관의 반응을 보면서 ‘이제서야’의 안도가 아닌 참담함과 졸렬함, 모욕감을 느낀다.
큰 형은 내가 이틀간 굶고 입원해서 해괴한 검사를 다 받고 최종완치판정을 났다고 하니까 전화로 내려와서 몸보신하라고 난리쳐서 왔더니 착한 오리,염소를 죽여서 끓여댄다.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에게 '쫌 이러지좀 마요'했던 이정재처럼 쏘아붙였..노인네의 사랑표현은 같이 과수원일 하고 밭매기.
[삼성은 국수, 닌텐도는 화투 ..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의외의 시작]
전 세계를 주름잡는 대기업들의 의외의 첫 시작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출발점들이다
소니는 초기에 전기밥솥 시제품을 만들었다. 나무통에 알루미늄. 전극을 두른 형태였지만, 밥이 설익거나 질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상용화에는 실패했다
삼성은 1938년 대구에서 국수.건어물.식료품 등을 팔던 무역상으로 시작했다.
닌텐도는 1889년 교토에서 손으로 만든화투를 팔던 카드 회사였다.
도요타의 뿌리는 자동차가 아닌 자동직기∙방직기계 사업이었다.
나이키 역시 처음엔 일본 오니츠카타이거 신발을 미국에 유통하던 회사였다.
티파니앤코는 뉴욕의 문구.잡화점, 이케아는 우편 주문 잡화점, 레고는 나무 장난감을 만들던 목공 사업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아는 브랜드가 됐지만, 결국 큰 기업도 시작은 하나의 시도였다.
어쩌다 보니 또다시 ‘부정이냐 부실이냐’를 가르는 소모적인 사상 검증의 늪에 빠졌다.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 선관위의 파행이 의도된 조작인지 멍청한 실수인지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며칠을 이 지독한 갑론을박 속에서 허우적대다, 문득 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고도 서늘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진짜 지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올림픽공원의 아스팔트를 지켜보던 중 마주한, 참으로 서글프고 기괴한 풍경 때문이었다.
나 역시 잃어버린 참정권을 찾으려 나선 청년들의 자발적인 시위에 낡은 정치색이 묻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현장 주변을 서성이는 우파 지지자들과 보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았는가. 그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푹 눌러 가리고, 행여나 자신들의 존재가 청년들의 순수성에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발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당한 의구심과 지지의 마음마저 억누른 채, 그저 멀리서 서성이는 그 주눅 든 어깨들을 보며 나는 견딜 수 없는 모멸감과 슬픔을 느꼈다.
왜 우리는 늘 이토록 스스로를 검열하며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저들의 궤적을 차갑게 복기해 보라. 이 나라에 사회적 비극이나 굵직한 이슈가 터졌을 때, 민주당과 좌파 카르텔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던 광우병, 천안함 폭침을 향한 모욕과 음모론, 아이들의 비극에 인신공양설을 덧칠했던 세월호, 전자파에 참외가 튀겨진다던 사드 괴담, 방사능 소금 사재기를 부추겼던 후쿠시마, 그리고 이태원의 참사까지.
그 숱한 선동의 굿판들 속에서, 단 하나라도 완벽한 과학적 증거와 팩트를 가지고 시작된 시위가 있었는가. 없었다. 그들은 1%의 불안을 100%의 공포로 부풀려 광장을 점령하고, 타인의 슬픔을 탈취해 정권 퇴진의 흉기로 삼았다.
그래놓고도 그들은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뻔뻔한 정치적 이용을 ‘시민사회와의 숭고한 연대’라며 거룩하게 미학화했다.
그런데 왜 보수 우파는, 헌법 기관이 대낮에 주권자의 투표용지를 증발시키고 개표 직전 선관위 뒤뜰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이 명백하고도 기괴한 팩트 앞에서도,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고 눈치를 보아야 한단 말인가.
내 권리가 도둑맞은 것 같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구심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들은 즉각 '극우'라는 주홍글씨를 찍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프레임이 두려워 스스로 마스크를 쓰고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린다. 남이 남의 비극에 숟가락을 얹어 나라를 흔드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의 행동'이고, 내가 내 짓밟힌 주권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극우의 정치색'이 되어버리는 이 지독하고 구역질 나는 이중잣대.
내가 진정으로 분노하고 서글픈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보수 우파에게 부정이냐 부실이냐의 논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진짜로 분노해야 할 본질은, 내가 품은 당연한 의구심을 자유롭게 내뱉을 그 소박한 권리마저 저들이 휘두르는 ‘극우’라는 폭력적인 딱지 앞에 처참하게 빼앗겨 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유를 수호한다는 우파이면서도, 정작 내 생각과 의심을 표현할 자유를 저들의 검열 기준에 완벽하게 외주 주어 버렸다. 저열한 선동꾼들은 광장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마이크를 쥐고, 상식을 지키려는 자들은 뒷골목에서 마스크를 쓴 채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 전도된 세상.
이제 그 알량한 마스크를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완벽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점잖게 중립을 지키겠다는 지적 허영도, 극우로 몰릴까 두려워 뒷걸음질 치는 그 서글픈 눈치 보기도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국가의 시스템이 무너져 내릴 때, 주권자가 의심의 돌멩이를 던지는 것은 정치색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숭고하고 처절한 본능이다. 당신의 정당한 분노를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도둑맞은 투표용지 이전에, 숨통을 옥죄는 저들의 프레임을 비웃으며 내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잃어버린 야성(野性)'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