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와 성별을 싸잡아 '청년 극우'나 '내란 옹호'라는 극단적 용어로 매도한다면 향후 치러질 선거에서 더 고통스러운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다.
#김선#팩트파인더
[사설] 서울민심 2030의 경고, 언제까지 ‘극우몰이‘만 할 것인가 https://t.co/uzvcgIgaEa
폭력에 관대한 25일, 주권자에 잔혹한 33시간: 공권력의 이중잣대
6월 3일 밤 10시. 선관위의 투표용지 수급 실패로 헌법적 주권을 거세당한 잠실의 시민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섰다. 내 표를 행사하게 해달라는, 주권자로서 너무도 당연하고 이성적인 항의였다. 그리고 6월 5일 아침, 국가는 대규모 경찰 기동대를 투입해 이들을 짐짝처럼 끌어내며 시위를 강제 해산시켰다.
시민들이 잃어버린 참정권을 돌려달라며 절규한 지 불과 33시간 만에 벌어진, 참으로 신속하고도 무자비한 진압 작전이었다.
이 서늘한 방패의 속도전을 지켜보며, 나는 불과 얼마 전 대한민국을 멈춰 세웠던 또 다른 시위의 현장을 겹쳐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가 편의점 CU 물류센터를 무단 점거했던 사태.
당시 민주노총은 무려 '25일간'이나 물류의 혈관을 인질로 잡고 몽니를 부렸다. 대체 차량의 출차를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과정에서 트럭에 사람이 치이는 참혹한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격앙된 노조원들이 대형 차량을 몰고 경찰 바리케이드를 향해 돌진해 공권력을 무참히 짓밟았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라 명백한 폭동이었고, 타인의 막대한 재산권을 유린하는 거대한 폭력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한민국 공권력은 어떻게 작동했던가. 25일이라는 그 길고 끔찍한 무법의 시간 동안, 경찰은 돌진하는 트럭 앞에서도 극도로 몸을 사리며 방관자로 일관했다. 강제 해산은커녕 노동부 장관이 직접 심야 교섭장에 납셔 중재자를 자처했고, 결국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기업의 팔을 비틀어 폭력 주동자들에게 '민형사상 면책'이라는 완벽한 전리품을 쥐여주었다.
자, 이제 두 개의 몽둥이를 차갑게 교차 비교해 보자.
'진보'라는 붉은 완장을 찬 권력의 핵심 카르텔이 무려 25일간이나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경찰을 들이받을 때, 이 나라는 한없이 너그럽고 서윗한 협상가였다. 그러나 헌법기관의 파산으로 신성한 투표권을 도둑맞은 빽 없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자, 국가는 불과 33시간 만에 잔혹한 폭력 기구로 돌변해 기동대의 방패로 시민의 입술을 짓이겨버렸다.
폭력과 흉기를 든 자들에게는 25일의 치외법권을 허락하고, 맨손으로 헌법을 요구하는 주권자들의 절규는 단 하루 반나절 만에 수갑을 채워버리는 이 지독한 이중잣대. 이것은 치안 유지가 아니라 권력의 노골적인 사유화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법과 원칙이라는 보편적 저울이 박살 난 자리에,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내 편의 불법은 비호하고 남의 편의 정당한 권리는 진압하는 비루한 사병(私兵)으로 전락했다.
민주노총 앞에서는 비굴하게 무릎 꿇던 천사가, 만만한 주권자 앞에서는 곤봉을 든 괴물로 돌변하는 이 서늘한 광장. 내 편의 25일짜리 폭력은 눈감아주고, 남의 편의 33시간짜리 정당한 저항은 압살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호흡을 멈췄다. 강제 해산된 잠실의 텅 빈 아침 아스팔트 위로, 우리가 그토록 경멸했던 파시즘의 그림자가 길고 짙게 드리우고 있다.
공권력을 이렇게 제 멋대로 행사하는 권력이 있었던가?
선관위가 투표용지 참사의 주범이고, 투표함은 그 증거물이다.
투표함을 지킨 행위는 정당행위다.
투표함을 지킨 국민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선관위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다.
선관위가 개표함을 함부로 개봉해서는 안 된다. 증거인멸의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부산에서 선대위 마무리 후 바로 출발했으나 지금 현장에 도착한다.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
미쳤어? 남의 재산을 왜 나눠 가져? 강도야? 도둑이야? 정치 권력으로 깡패짓 하는 거야? 전두환 욕은 왜 하는 거야? 너희 개딸들은 거울치료 받아야 해. 뭐든 적당히가 없어. 나는 남의 이윤 뺏을 생각 없어. 나는 너희들 강도짓에 동참할 생각 없어. 국민이란 명분으로 나를 이용하지 마.
4~5 년 전, 나는 미련하게도 아직 좌파에 일말의 미련이 남아 있던 상태였다.
당시 나는 이재명이라는 인물이 가진 본질적인 위험성을 두고 한 지인과 격렬한 의견 충돌을 빚었고, 결국 그와 영영 연락을 끊었다. 돌아서는 그를 향해 내가 던졌던 서늘한 예언이 하나 있다.
이재명 시대가 지나고 나면, 대한민국에서 좌파라는 세력은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그때 내가 한 예언은 소름 돋을 만큼 정확하게 실현되고 있다. '진보'라는 허울만 남은 이름의 거대한 생태계가 이재명이라는 선장의 무능과 사이비 팬덤의 광기에 완벽하게 포획되어 서서히 질식해 가는 광경. 지난 17일 밤,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전야제 무대가 그 끔찍한 도덕적 파산의 완벽한 증명서다.
이날 전야제 무대 위로는 귀를 의심케 하는 기괴한 노래 한 곡이 울려 퍼졌다.
야당 정치인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매불쇼 같은 편향된 좌파 유튜브 방송을 구세주처럼 찬양하는 주술적 타령이 축가로 불려진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가장 거룩하고 아픈 상처를 추모하는 국가적 제단이, 일개 삼류 유튜버 찬양제이자 정치 팬미팅 무대로 전락해 버렸다.
그런데 이 천박한 굿판의 진짜 절정은 따로 있었다. 이 숭고해야 할 전야제 무대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탄핵하라며 조롱의 노래를 불렀다.
조희대가 누구인가. 5.18 유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을 마침내 인정하며 국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가 정당하다는 역사적 판결을 이끌어낸 사법부의 수장이다. 수십 년 묵은 유가족의 피눈물을 법적으로 닦아주고 국가 배상의 길을 열어준 5.18의 은인이다.
그런데 정작 그 5.18을 기린다는 전야제에서, 자신들의 한을 풀어준 대법원장의 목을 치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가 이끄는 사법부가 자신들의 수령님인 이재명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범죄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해 준 은인조차, 주군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꺼이 단두대에 올리는 이 소름 돋는 자가당착.
이 기괴한 풍경을 목도하며 나는 하나의 명확한 사망 진단서를 끊는다. 5.18은 죽었다. 군부 독재가 죽인 것이 아니라, 5.18을 낡은 진영의 장난감으로 탕진해 온 정치꾼들과 이 저급한 집단 광기를 환호로 용인한 광주 스스로가 그 보편적 가치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이 참담한 촌극을 지켜보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던 광주를 향한 일말의 역사적 부채감마저 완벽하게, 1도 남김없이 증발해 버렸다. 과거 누군가가 호남을 향해 지역 차별적인 언사를 쏟아낼 때마다 진심으로 분노하며 방어했던 내 알량한 허영이 뼈저리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스스로 고립된 이념의 갈라파고스가 되어 사이비 스피커들이나 찬양하고, 은인마저 물어뜯는 집단을 대체 무슨 명분으로 변호하고 대우해 준단 말인가.
이제 앞으로 이 나라에서 자칭 좌파가 입에 올리는 화합이니 평화니 하는 수사학은 완벽한 개소리로 치부하는 것이 맞다.
지금의 좌파 세력은 대한민국의 모든 굵직한 사건과 사고, 역사의 비극마저 완벽하게 자신들의 전리품으로 사유화했다. 그들이 독점한 성역 안에서는,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숭고한 희생과 공익적 헌신도 존재하지 않는 가짜가 된다. 진영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진짜 영웅들조차 무참히 조롱당하고 모욕당하며 매장당한다. 추모와 슬픔마저 독점 카르텔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이 숨 막히는 통제 사회에서, 도대체 어떤 바보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명예를 던지겠는가. 그들은 지금 대한민국의 도덕적 기반과 연대의 뿌리를 밑바닥부터 아주 착실하고 악독하게 말려 죽이고 있다.
이념이 밥벌이로 전락하고, 역사의 성역이 아가씨와의 2차 시비의 변명거리로 소모되며, 추모의 무대가 삼류 유튜버 찬양제와 은인에 대한 저주로 변질된 집단.
스스로 도덕적 파산을 선언한 이 괴물들의 끝은 장엄한 패배가 아니다. 대중의 완벽한 조소와 무관심 속에서 맞이하게 될 찌질하고도 필연적인 자연사다. 수년 전 내가 던졌던 좌파 소멸의 예언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광주 전야제에 울려 퍼진 저 기괴한 노랫소리는, 좌파의 완전한 죽음을 알리는 가장 정확하고 천박한 기념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