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육사는) 쿠데타를 무려 세 번이나 한 중심"이라고 말하며, "(쿠데타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느냐... 앞으로는 못하게 해야 할 것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육사를 없애고 사관학교를 통폐합하려는 진짜 이유가 '쿠데타 때문'임을 대통령이 실토한 겁니다.
육사가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났고 육사를 없애면 쿠데타가 없어질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검찰 때문이니 검찰을 없앤다'는 것과 똑같은 사고방식입니다.
과연 육사라는 학교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난 겁니까?
그런 논리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졸업한 서울대 법대도 없애고 충암고도 없애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회 국방위를 오래 하면서 수많은 군인들을 겪어봤습니다.
육사든 해사든 공사든 3사든, 군인정신과 국가관, 사생관이 투철한 훌륭한 군인들도 많았고 그렇지 못한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육사 출신들도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저지했던 육사 출신들도 있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1979년 12월 12일 밤 저는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의 일병으로 12.12쿠데타를 현장에서 겪었습니다.
그날 밤 쿠데타 세력에 맞섰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육사 9기)을 지키려다 쿠데타군의 총탄에 전사한 故김오랑 중령(육사 25기)을 저는 진심으로 존경해왔습니다.
'육사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육사를 없애야 한다'는 단순무식한 생각으로 육해공 사관학교를 통폐합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육사를 없애고 사관학교를 통폐합하는 것이 왜 강군을 만드는 최선의 길인지를 입증하고 국민과 군을 설득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함부로 통폐합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 군의 가장 심각하고 고질적인 병폐를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군 인사'라고 답하겠습니다.
소위로 임관되어 장군이 되기까지 군 인사가 공정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와 헌법을 위해 복무하는 훌륭한 군인들이 배출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5년에 한번씩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 줄서고 대선캠프에 기웃거리는 정치군인들이 출세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이재명 정부도, 그 이전의 정부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진심으로 강군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쿠데타를 핑계로 육사를 없앨 게 아니라 군인다운 군인이 조국을 위해 복무할 수 있도록 군 인사를 개혁하기 바랍니다.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세제 개편안은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참담한 정책 실패를 이재명 정부가 그대로 답습한 겁니다.
복습을 제대로 안하니까 또 틀린 답만 열심히 찍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면 민주당 정권의 고질병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라는 냉소처럼 그동안 대통령이 국민에게 했던 약속들도 모두 뒤집었습니다.
이번 부동산 세제의 핵심은 초고가와 비거주에 징벌적 세금을 매기는 겁니다.
초고가에 대한 보유세는 올릴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부유세 혹은 로빈후드세(Robin Hood Tax) 같은 겁니다.
문제는 초고가에 대한 징벌적 보유세가 대다수 중산층 서민들이 원하는 집값 안정, 전월세 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입니다.
지금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수도권의 미친 집값과 전월세인데, 초고가에 대한 세금폭탄이 이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보유세를 올리면 취득세와 양도세를 내려야 시장에서 거래가 되는데 취득세는 건드리지도 않았고 양도세는 1~2년의 한시적 조치 이후에는 더 무겁게 했습니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비거주에 대한 징벌적 보유세와 양도세입니다.
집주인이 살든 세입자가 살든 그 집에는 누군가가 필요해서 계약에 따라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는다고 이유로 1주택 보유자까지 징벌적 보유세와 양도세를 때리면 도대체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이나 해봤는지 의문입니다.
비거주 세금이 무서워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쫓으면 세입자는 갈 곳이 없고, 세금증가분의 일부라도 전세 월세에 전가하면 세입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의 전월세난은 이미 심각한데 비거주에 대한 징벌적 세금은 전월세 대란을 훨씬 더 악화시킬 게 분명합니다.
서울 인천 경기에서 전월세를 사는 세입자의 비중은 각각 53%, 35%, 40% 수준입니다.
엄청난 숫자의 이 세입자 가족들이 전월세 대란으로 일터에서 학교에서 더 먼 곳으로 이사를 떠나게 만드는 정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입니까?
문재인 정부 때 "집은 사는 것(buying)이 아니라 사는 곳(living)"이라는 말장난을 하다가 어떻게 됐는지 국민들은 똑똑히 봤습니다.
지난달 부동산 토론회에서 두 딸의 아빠가 "집으로 돈 벌려는 마음,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한 사람 마음 속에 같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본능, 시장의 본능을 외면하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왜 부동산 국민토론회를 했습니까?
그때 주담대를 풀어달라, 전세대출 이주비대출을 풀어달라, 토허제 같은 규제는 풍선효과만 있다, 재개발 재건축을 완화해달라 등의 목소리는 왜 외면당하는 겁니까?
부동산은 대출을 막고 주식은 마음껏 빚투하도록 한 결과 지금 두 시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통령과 민주당이 실패가 뻔히 예고된 부동산 정책으로 치달을 때 기재부 국토부 금융위 관료들이라도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아부만 하는 영혼없는 관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이번 부동산 세법 개정안이 국회로 오기 전에 국민의힘은 부동산정책 전반에 관한 야당의 대안을 만들어 국민에게 제시하고 왜 우리가 대안인지를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집 위층에는 거의 아흔이 다 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두 분은 늘 둘뿐이었다. 누가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나갈 때도 둘, 들어올 때도 둘이었다.
어느 날, 그분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 집, 사시겠어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나는 이미 집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집을 또 사야 하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주신다면 3,300만원만 받겠습니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이었다. 65제곱 정도..
시세로 따지면 최소 8,700만원 넘는 집이었다.
내 첫 생각은 이거였다.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직접 쓴 계약서였다. 글씨가 너무 반듯했다.
그 연세에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건은 세 가지 뿐이었다.
첫째, 3,300만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
둘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살 수 있게한다.
셋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집 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넘긴다.
나는 두 분을 집 안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품 속에서 작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등기 관련 서류, 주민등록증 사본, 그리고 사망진단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은 아들의 것이었다. 서른 두살 간암.
한 장은 딸의 것이었다. 스물 아홉살 교통사고.
마지막 한 장은 유일한 손자의 것이었다. 일곱 살 백혈병.
사망한 해는 각각 2008년, 2011년, 2014년이었다.
종이 모서리는 전부 닳아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형편을 알아봤다고 했다. 대출도 없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사람도 괜찮아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은 집값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조금 쉬어 있었다.
"우리 장례 보조금입니다."
두 분의 연금은 합쳐서 한 달에 약 136만원. 생활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섭다고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집 안에서 썩어가고, 냄새가 나고 나서야 발견이 될까 봐..
할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3,300만원을 받고 서류를 갖고 있으면, 그때부터 책임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 주고, 화장해 주고, 제일 싼 납골 자리 하나 잡아서 같이 넣어주면 됩니다. 남은 돈은 다 가져가세요.우리가 당신을 고용하는 겁니다."
나는 목이 꽉 막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 없이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안에는 세 묶음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두 분이 늘 먹는 약 목록과 건강보험 관련 서류.
두 번째는 장례식장 기본 상품 가격표.
가장 싼 193만원 짜리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세 번째는 통장 사본이었다.
잔액은 2,240만원 조금 넘게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비밀번호는 뒤에 적어 놨어요. 병원비가 부족하면 여기서 쓰세요. 남으면 그 3,300만원까지 전부 가져가세요. 공증도 하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잡을 못잤다.
머릿속에는 그 집 베란다에 걸려 있던 낡은 옷 두 벌이 계속 떠올랐다. 너무 많이 빨아서 색이 바랜 옷이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 네 시마다 위층에서 아주 작게 들리던 옛 노래 방송 소리도 떠올랐다.
사흘 뒤, 나는 현금 3,300만원을 준비했다. 두 분과 함께 공증을 받으러 갔다.
계약서에는 내가 한 줄을 더 넣었다.
나는 매주 최소 한 번, 위층에 올라가 두 분을 확인한다.
할아버지는 서명할 때 손을 심하게 떨었다.
지장을 찍고 나서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겨우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위층에 올라갔다.
딱 30분 정도 앉아 있었다.
두 분은 말이 많지 않았다.
나는 전구를 갈아주고, 수도꼭지를 고쳐주고, 문고리를 봐드렸다.
할머니는 가끔 직접 말린 무말랭이를 작은 봉지에 담아 내 손에 쥐여줬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곱 달 뒤, 어느 화요일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아침에 장을 보고 돌아오다 계단 복도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올라갔을 때, 할머니는 혼자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이미 차가워진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아주 조용했다.
나를 보더니 한마디만 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두 분이 표시해 둔 가장 싼 장례 상품으로 장례식장에 연락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할아버지 베개 밑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3년 11월 5일. 아래층 이웃이 와서 부엌 수도꼭지를 고쳐줬다.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내가 담근 반찬이 맛있다고 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친 지 214일째 되는 날이다. 돈은 헛쓰지 않았다. 사람도 잘못 보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화장한 지 37일째 되는 날 세상을 떠났다. 잠든 채로 갔다.
할머니 쪽 침대 협탁을 정리하다가 나는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지난 일곱 달 동안 내가 가져갔던 과일과 과자 포장지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들을 전부 깨끗이 씻어놨다. 반듯하게 눌러놨다.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는 새 통장 하나가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처음 드렸던 3,300만원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예금주는 내 이름이었다.
나는 두 분을 한 쌍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납골묘에 모셨다.
가장 싼 곳은 고르지 않았다.
비석에는 이름과 태어난 해, 떠난 해만 새겼다.
그 집을 정리하던 날, 햇빛이 좋았다.
낡은 가구들은 버리지 않았다.
텅 빈 거실에 서 있는데,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두 분이 3,300만원과 빈집 하나로 사 간 것은 내 돈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수십 년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두 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내려앉을 그 기억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비싼 부탁일 것이다.
■연대생이 택배 상하차 하며 깨달은 것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았던 글. 연대생이 택배 상하차 하면서 배운 교훈인데, 배우고 깨달을 점이 많다. 정독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난 학부생 때 방학만 되면 택배 상하차 알바를 뛰었다.
일용직이라 한 달 딱 하고 번 돈으로 해외여행 가고 전자제품 사고 그러려고 했거든.
근데 내가 일하던 메가센터에 서울대 출신 30대 중반 형이 상용직으로 있었다.
진짜 서울대 나와서 알바 삼아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주 5일 꾸준히 하는 정식 직원으로.
사연 들어보니 대기업 다니다가 업계 불황 와서 2~3년째 여기서 생활비 벌고 있더라.
근데 이 형 진짜 일을 압도적으로 잘하고 열심히 해서 상차할 때 박스 목적지 안 보고 툭툭 던지는데 기가 막히게 정확하게 제자리에 떨어졌다.
나도 1년 가까이 일하면서 그런 사람 처음 봤다.
개인 UPH 평균 3000개 나오는데 이 형은 5000개 기본이고 하루 UPH 8000 넘겨서 관리자 4명이 달려와 확인했던 적도 있다.
센터 5층짜리 메가센터 전 직원 중 최고 기록이고 2층은 이 형 때문에 프로세스 자체가 바뀔 정도였다.
너무 궁금해서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냐, 단순노동에 왜 감정입히냐 물어봤더니 대답이 대박이었다.
나도 대기업 다녀보고 억대 연봉 받아봤는데 명문대 스펙으로 들어간 대기업 보니까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라.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작업들만 하고 전문지식 필요한 건 열에 한둘 정도라서 결국 직장인한테 제일 중요한 건 그 일에 대한 태도라고 했다.
나한테 주어진 일을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대하느냐 그게 차이를 만든다고.
진짜 듣고 멍때렸다. 택배 상하차 하면서 이런 인생 선배 만날 줄이야."
한 일본초등학생의 생활에서 일어난 일로 만든 방학숙제
초등6년의 호리 코우타군 아침에 길을 건너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무려 11대가 지난후에야 건널수있게 되고
그거에 화가나서
그래 결심했어! 하고 이걸 방학숙제를 함
진짜로 매일매일 체크하고 어떤사람이 잘 서주는지
어떤사람이 서지않는지 측정함.
그리고 너무 잘해서 경찰서에서 포스터로 만들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
우리도 애들 이런거 하면 안되냐?
투자자들이 회사채도 미친듯이 사고 있다고 함. 특히 장기채 공급이 부족해서 찍는대로 나간다고 함 //
현재 미국 채권 시장은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없는 낙관론'이 지배하고 있음. 투자자들은 기업, 주 정부, 시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중
국채 대비 추가 금리(스프레드)가 지난 1월 말 2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하이일드 스프레드도 1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짐
2. 채권 수요를 견인하는 3가지 핵심 동인
-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과 금리 인하 기대
미국 국채 및 회사채 금리는 여전히 전 세계 선진국 채권 시장 대비 높은 수준. 또한, 투자자들은 연준이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음
- 장기 채권의 희소성
최근 몇 년간 금리가 급격히 오르자 기업들은 높은 이자 비용을 장기간 확정 짓는 것을 꺼려왔음. 20년 만기 이상의 장기 회사채 발행 비중은 2021년 약 30%에서 2025년 13%로 급락
대만, 일본 등 국내 신용 시장이 미비한 국가의 생명보험사나 연기금들은 25년 이상의 장기 안전 자산을 찾고 있으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스프레드가 더욱 압착되고 있음
- AI 인프라 펀딩 열풍
오라클, 알파벳은 이번 달에만 총 450억 달러(약 60조 원) 규모의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특히 알파벳은 만기가 2126년인 '100년 만기 채권(Century Bond)'을 영국 파운드화로 발행했는데, 이는 시장의 장기 자산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줌
일부 경제학자들과 분석가들은 현재의 타이트한 스프레드가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
현재 채권 시장은 '공급 부족'이 '펀더멘털 리스크'를 압도하고 있는 형국. 알파벳의 100년 채권 발행 성공은 초장기물에 대한 기관 수요가 여전히 견고함을 의미. 하지만 공급이 늘어나고 정책 리스크가 가시화되면 스프레드는 순식간에 확대(Widening)될 수 있음
세제 혜택과 희소성 덕분에 지방채는 여전히 포트폴리오의 안정적인 완충재 역할을 할 것. 다만, 특정 주의 예산 건전성 악화 여부는 개별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