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부모님이랑 사는 30대 캥거루족에
일침을 가하는 법륜스님
1. 부모님하고 30년 같이 사는 것도 반생태적이다.
2. 자식이 성인이 된 후, 부모와 자식의 동거는 서로의 필요에 의한 사회적 계약관계이다.
3. 같이 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계약관계이니 그만한 역할을 해야한다.
4. 계약관계에서 부모는 나를 돌봐줘야된다는 생각하면 안된다.
5. 방세를 안내면 설거지를 하든지 밥을 하든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6. 회사에서 한 사람의 역할을 하듯이 집에서도 해야 할 몫을 다해야 한다.
7. 부모님이 해주는 것에 대해 당연함 대신, 감사함을 담은 책임이 있어야 한다.
Le vieil homme nourrissait 200 chats errants chaque matin depuis 22 ans. Quand il s’est effondré sur le sentier, ils ont formé un cercle autour de lui et n’ont laissé personne s’approcher pendant 3 heures jusqu’à l’arrivée de l’ambulance 🐱💔
Dans un village côtier, un homme nourrissait les chats.
Chaque matin. Pendant vingt-deux ans 🐾
Il a commencé en 2001, l’année où sa femme est décédée. Elle aimait les chats. Ils n’avaient pas d’enfants. Elle laissait des restes pour quelques chats errants derrière leur maison. Trois, peut-être quatre.
Après sa mort, il a continué.
Pas pour trois chats. Pas pour quatre.
Avec les années, ils sont devenus des dizaines, puis plus de cent, puis environ deux cents chats vivant dans les haies, les murs de pierre et les bâtiments abandonnés autour du village 🌿🐱
Chaque matin à 5h45, il parcourait le même sentier avec deux seaux. Il déposait la nourriture à onze stations. Tous les jours. Par tous les temps. Sans jamais manquer un seul matin ☔❄️
Personne ne l’aidait.
Il payait tout avec sa pension. Il vivait simplement, presque sans rien pour lui. Les chats passaient avant lui, chaque jour 🐾💛
Il ne leur donnait pas de noms. Mais il les connaissait tous. Il notait leurs blessures, leurs arrivées, leurs disparitions dans un carnet usé 📒
Un jour, il a amené plus de 300 chats malades chez un vétérinaire au fil des années, sans jamais rien demander en retour.
Le vétérinaire disait : « Il ne disait jamais “mon chat”. Il disait “un chat de la colline” 🐱 »
Le 14 octobre 2023, à 86 ans, il s’est effondré sur le sentier. AVC. Il ne pouvait plus bouger. Il ne pouvait plus appeler à l’aide.
Mais les chats, eux, ont vu 🐾
Un par un, ils sont arrivés. Puis des dizaines. Puis plus d’une centaine.
Ils ont formé un cercle autour de lui ❄️🐱
Un cercle serré. Immobile. Certains s’allongeaient contre lui pour le réchauffer. D’autres restaient en garde.
Quand quelqu’un a essayé d’approcher, les chats ont bloqué le passage. Sans agressivité. Juste… ils ne bougeaient pas. Comme une barrière vivante 💔
Ils l’ont protégé pendant trois heures jusqu’à l’arrivée des secours.
Les secours ont confirmé qu’ils ont dû avancer lentement pour traverser le cercle.
Et même après l’intervention, les chats ont suivi le brancard sur une distance avant de s’arrêter et de rester assis à regarder 🐾
Il a survécu, mais il ne pouvait plus marcher jusqu’au sentier.
Pour la première fois en 22 ans, le matin suivant était vide.
Mais les gens du village ont commencé à prendre le relais.
Un par un. Sans organisation officielle. Juste des volontaires qui ont repris les seaux, les stations, le chemin 🐱🤝
Le vieil homme a été informé.
Il a écouté.
Puis il a simplement dit :
« Station quatre… le bol est cassé. Il fuit. Il faut le remplacer. »
Pas de grands mots. Juste le travail à faire.
Parce que pour lui, ce n’était pas une histoire. C’était une responsabilité.
Il a dit :
« On ne s’arrête pas. »
🐾💛
목에 칼 두 번 찔린 17살 학생한테
사람들이 한다는 말이
“왜 도망갔냐”랍니다.
진짜 이 사회가 어디까지 망가진 건가 싶습니다.
새벽 길거리에서
“살려달라”는 여학생 비명을 듣고
망설임 없이 뛰어간 것도 그 학생이고,
피 흘리는 학생 대신
119 신고하려다
흉기 든 범인과 맨손으로 맞선 것도 그 학생입니다.
한 손에는 휴대폰,
한 손으로는 칼을 막다가
손등이 찢어지고 목까지 두 번 찔렸습니다.
그 상태에서도
끝까지 지인에게 전화해
“사람이 칼에 찔렸다”고 도움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상황도 모르면서
“혼자 살겠다고 도망갔다”
“상처 조금 입고 튄 거 아니냐”
이런 악플을 달고 있습니다.
사람이 목이 찔리고 피를 쏟는데
그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고
비겁자 취급하는 게 정상입니까?
오히려 대부분 사람들은
비명 들어도 무서워서 못 갑니다.
저 17살 학생은
도망친 게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살리려고 몸 던진 겁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남 도우려다 다친 사람한테까지
완벽한 영웅만 요구하게 된 걸까요.
저 학생이 부디
악플 때문에 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난할 자격 있는 사람보다
저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적을 겁니다.
심심해서 여고생을 죽였다는 20대 장윤기씨의 인스타그램이 공개됐습니다.
y.k_67_
아동성범죄 사건이 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약자가 죽었습니다. 가해자는 끽해야 징역 몇 년 살면 그만이겠죠? 계획을 한 정황이 나왔는데도 가해자는 여전히 힘들어서 우발적으로 낸 사고라고 주장하며 신상 공개를 거부합니다.
그럼에도 오는 14일 신상이 공개된다 하네요.
사건 관련 뉴스 링크 첨부합니다.
약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t.co/nCIhohL7ws
* 건강 악화로 최근 활동이 뜸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실망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집 위층에는 거의 아흔이 다 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두 분은 늘 둘뿐이었다. 누가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나갈 때도 둘, 들어올 때도 둘이었다.
어느 날, 그분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 집, 사시겠어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나는 이미 집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집을 또 사야 하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주신다면 3,300만원만 받겠습니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이었다. 65제곱 정도..
시세로 따지면 최소 8,700만원 넘는 집이었다.
내 첫 생각은 이거였다.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직접 쓴 계약서였다. 글씨가 너무 반듯했다.
그 연세에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건은 세 가지 뿐이었다.
첫째, 3,300만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
둘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살 수 있게한다.
셋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집 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넘긴다.
나는 두 분을 집 안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품 속에서 작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등기 관련 서류, 주민등록증 사본, 그리고 사망진단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은 아들의 것이었다. 서른 두살 간암.
한 장은 딸의 것이었다. 스물 아홉살 교통사고.
마지막 한 장은 유일한 손자의 것이었다. 일곱 살 백혈병.
사망한 해는 각각 2008년, 2011년, 2014년이었다.
종이 모서리는 전부 닳아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형편을 알아봤다고 했다. 대출도 없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사람도 괜찮아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은 집값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조금 쉬어 있었다.
"우리 장례 보조금입니다."
두 분의 연금은 합쳐서 한 달에 약 136만원. 생활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섭다고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집 안에서 썩어가고, 냄새가 나고 나서야 발견이 될까 봐..
할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3,300만원을 받고 서류를 갖고 있으면, 그때부터 책임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 주고, 화장해 주고, 제일 싼 납골 자리 하나 잡아서 같이 넣어주면 됩니다. 남은 돈은 다 가져가세요.우리가 당신을 고용하는 겁니다."
나는 목이 꽉 막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 없이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안에는 세 묶음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두 분이 늘 먹는 약 목록과 건강보험 관련 서류.
두 번째는 장례식장 기본 상품 가격표.
가장 싼 193만원 짜리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세 번째는 통장 사본이었다.
잔액은 2,240만원 조금 넘게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비밀번호는 뒤에 적어 놨어요. 병원비가 부족하면 여기서 쓰세요. 남으면 그 3,300만원까지 전부 가져가세요. 공증도 하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잡을 못잤다.
머릿속에는 그 집 베란다에 걸려 있던 낡은 옷 두 벌이 계속 떠올랐다. 너무 많이 빨아서 색이 바랜 옷이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 네 시마다 위층에서 아주 작게 들리던 옛 노래 방송 소리도 떠올랐다.
사흘 뒤, 나는 현금 3,300만원을 준비했다. 두 분과 함께 공증을 받으러 갔다.
계약서에는 내가 한 줄을 더 넣었다.
나는 매주 최소 한 번, 위층에 올라가 두 분을 확인한다.
할아버지는 서명할 때 손을 심하게 떨었다.
지장을 찍고 나서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겨우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위층에 올라갔다.
딱 30분 정도 앉아 있었다.
두 분은 말이 많지 않았다.
나는 전구를 갈아주고, 수도꼭지를 고쳐주고, 문고리를 봐드렸다.
할머니는 가끔 직접 말린 무말랭이를 작은 봉지에 담아 내 손에 쥐여줬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곱 달 뒤, 어느 화요일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아침에 장을 보고 돌아오다 계단 복도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올라갔을 때, 할머니는 혼자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이미 차가워진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아주 조용했다.
나를 보더니 한마디만 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두 분이 표시해 둔 가장 싼 장례 상품으로 장례식장에 연락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할아버지 베개 밑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3년 11월 5일. 아래층 이웃이 와서 부엌 수도꼭지를 고쳐줬다.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내가 담근 반찬이 맛있다고 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친 지 214일째 되는 날이다. 돈은 헛쓰지 않았다. 사람도 잘못 보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화장한 지 37일째 되는 날 세상을 떠났다. 잠든 채로 갔다.
할머니 쪽 침대 협탁을 정리하다가 나는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지난 일곱 달 동안 내가 가져갔던 과일과 과자 포장지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들을 전부 깨끗이 씻어놨다. 반듯하게 눌러놨다.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는 새 통장 하나가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처음 드렸던 3,300만원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예금주는 내 이름이었다.
나는 두 분을 한 쌍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납골묘에 모셨다.
가장 싼 곳은 고르지 않았다.
비석에는 이름과 태어난 해, 떠난 해만 새겼다.
그 집을 정리하던 날, 햇빛이 좋았다.
낡은 가구들은 버리지 않았다.
텅 빈 거실에 서 있는데,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두 분이 3,300만원과 빈집 하나로 사 간 것은 내 돈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수십 년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두 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내려앉을 그 기억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비싼 부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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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자갈치시장 암꽃게 사건
또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터졌네요.
이러니 시장 안 가고 마트 가는듯.......
1.
제보자가 제철 암꽃게를 사러 자갈치시장을 방문. 한 점포 사장이 "알이 꽉 찼다"며 1kg(5마리)에 4만 원을 제시해 구매함.
2.
집에 와서 보니 암꽃게는 2마리뿐이고, 3마리는 숫꽃게로 섞여 있음. 일부는 다리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
3.
제보자가 문자로 사진과 영수증을 보내며 환불을 요구하자, 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옴.
4.
사장은 사과 대신
"너는 엄마도 없냐?",
"엄마 같은 사람한테 왜 이러냐" 며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적반하장 태도를 보임.
5.
패드립 들은 제보자,
또 가기 싫어서 그냥 환불 포기함.
6.
기자가 해당가게 사장에게 연락해 물어보니
"처음에만 암꽃게 달라고했지,
한바퀴 둘러보고 돌아왔을 땐 별 말 없었다."
"나도 암수 섞어서 주겠다 얘기 안 해주긴 했다."
"그렇게 중요하면 본인이 확인했어야지"
개드립 시전
7.
자갈치시장 상인회는 이번 사건을 엄중히 받아들여 해당 점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함.
해마다 바가지 사건이 터져
이미지 구리니까
작년에는
바가지근절 결의대회까지 한 자갈치시장 (?)
근데 이걸 듣고 누가 찾아갈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 추적해본 결과
"남편이 요새 힐링한다고 주말마다 차박하러 감. 바람피우나 의심해서 몰래 폰 위치추적 앱 켜놓음. 딴 데 간 게 아니라 우리 아파트 지하 3층 짐 구석에 주차해 놓고 태블릿으로 넷플릭스 보면서 컵라면 끓여 먹고 있었음. 그냥 혼자만의 시간이 고팠던 거라 불쌍해서 모른 척 남둠."
이 짧은 글을 읽고,
주변에 퇴근하면 중대형 외제차 SUV 운전석에 가만히 들어가 앉아 인디밴드 음악 1시간 듣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개마냥 힘없이 올라가는 중년의 지인이 있어 마음이 좀 쓰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