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제가 몰래 나온 것을 눈치챈 룸메이트가 엄청나게 화를 낼 거예요… 좀 귀찮아요, 그 인간. 그걸 감수할 만큼, 오늘 밤은 바깥 공기가 특히 그리웠던 거 있죠.
…저한텐 밖이 더 익숙하니까요. 이 야생적인 추위가 오히려 절 감싸는 따스한 이불처럼 느껴진다고 해야할까요… …이상한 말 안 할게요, 네.
지금 이곳은 공원이에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아요. 지나가는 자동차도요. 가로등이 멀어서, 발 밑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어두워요. 저 멀리로는 아파트들이 보여요. 모두 자고 있나봐요.
바람은 꽤 쌀쌀하네요. 이런 날씨에 치마를 입고 바깥에 오래 있다간 감기에 걸릴 거예요.
(음, 이로써 경호원 목숨을 살리려던 시도는 무의미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뇨! 사례라뇨, 괜찮아요. 저는 그냥 언니가 도움이 필요해보여서, ‘선의’로 도와준 것 뿐이에요. 새로운 인연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뻐요~
(작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웃어보였다. 은근슬쩍 ‘인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시도도 잊지 않고. 마주본 미소중 어느 것도 진실되지 않아보이는 상황이 우습구나.)
아니에요. 그냥 인사만 드리고 싶었던 것 뿐이었으니까요. 계속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부디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고개만 꾸벅, 최소한의 예의만 차린 인사를 끝마치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발을 뗐다.)
(…)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가, 눈알을 슥 굴리고는 어깨를 으쓱한다.)
좋은 일이죠~ 안전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건요. 음, 그래도 꼭 집안 힘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언니가 그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이었던 거겠죠.
…아, 제가 언니를 조금만 닮았더라면, 그 모든 걸 제 힘으로만 해결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말이에요. 언니가 부러워요.
(눈썹을 푹 내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본다.)
아하하, 그러게요.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
(속내와는 정반대인 순한 웃음을 내보이며 손을 흔들다가, 저 멀리 눈에 띄는 외양의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엄청, 독보적인 모습이시네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누군지 단번에 알겠어요.
(뒷골목을 넘나들며 쌓아온 경험이 얼만데, 저 인간만큼의 거물이라면 모르는 게 더 힘들다… 만, 그냥 모르는 척 넘기기로 했다. 어짜피 이쪽을 인지할 리도 없고. 그나저나, ‘그 쪽’ 집안이었단 말이지… 능청맞게 눈동자를 둥글게 굴리고는, 오히려 앞장서며 당신을 재촉한다.)
남자는 아직인가? 안 보이네요. 얼른 가요.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이참에 저도 한 번만 인사하게 해주세요-
(장난끼 묻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당신을 올려다본다.)
결혼이라, 저한텐 너무 먼 이야기라. 어른들의 세상은 어렵단 말이에요~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가, 짧은 사이 당신의 표정을 살펴본다. 순 거짓말이지만… 뭐, 먼 이야기라는 것만은 참이렸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짐작이 가는데요. 선이 끝날 때 쯤엔 남자 쪽 얼굴이 초췌해져있다거나.
(입을 가리며 당신을 따라 큭큭 웃었다. 성격 센 부잣집 어머님이라니,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광경이 벌어지지 않을까. 데려다주는 김에 슬쩍 구경이나 할까…)
(예고도 없이 손을 확 잡아오니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타인과의 접촉이 익숙치 않은 듯 손을 뚝딱거리다가, 곧 자연스럽게 발을 떼어 호수로 향했다.)
저도 자주 가는 곳이거든요. 한적하니 분위기도 좋고… 머리가 복잡할 때 가고는 해요.
(타인과 와보는 건 처음이지. 나란히 걷고 있드니 어쩐지, 모양새가 언니와 동생 같아 보인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자, 귀를 쫑긋이더니, 당신을 힐끔이고 질문을 던져본다.)
점심 약속이에요? 이쪽 상가에 고급진 음식점은 그다지 없을 텐데. 부자들끼리 방문하기엔 조금 누추하지 않나?
…낯선 사람한테 이름은 함부로 알려주지 말라고 배웠는데… (약한 얼굴로 중얼거리다가 옆눈), 그냥… 생긴대로 토끼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세요. 사례는 괜찮으니까요.
있죠, 아까부터 경호원이라니… 부잣집 언니인 거예요? 어쩐지, 첫인상부터 엄청 고급진 느낌이다 싶었거든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방긋 웃는다. 이건, 순수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떠보는 것에 더 가깝지만. 목숨을 운운하는 걸 보면, 극진한 대접을 받으시는 분일까. 좋은 이미지로 보이는 게 좋을까… 귀여운 얼굴로, 속으로는 교활한 사고를 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