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피스의 "진정한 친구" 스피치에 대해서.
황금시대 arc 내에서 최대 떡밥은 단연 프림로즈관에서 이루어진 그리피스의 "진정한 친구" 연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구론은 황금시대편이 일식, 파국에 이르기까지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그만큼 이 장면을 둘러싼 질문도 오래되었다. 그리피스는 정말 가츠를 친구라고 생각했는가. 가츠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보았는가. 친구론은 진심이었는가, 아니면 샬로트 앞에서의 과시였는가. 그가 말한 ‘진정한 친구’는 가츠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가.
실제로 친구론은 샬로트가 “매의 단 동료들은 친구가 아닌가”라고 묻자 그리피스가 그것을 부정하면서 시작되므로, 타인을 규정하고 선별하는 기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진정한 친구란 나와 대등한 자”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친구의 조건을 제시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친구론을 단순히 관계 규정의 언어로만 읽는 순간, 이 연설이 등장한 정서적 맥락과 훗날 그것이 현실에서 무너지는 방식은 지워진다.
왜 그리피스는 친구의 자격을 말하기 위해 자기 꿈과 존재 방식에 대해 그토록 길게 이야기하는가. 왜 하필 그 시점에 그런 정의가 필요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훗날 가츠가 그 정의를 거의 문자 그대로 실행해 자기 삶을 찾아 떠나려 했을 때, 왜 그리피스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가.
내가 친구론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래서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가보다 그 정의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리피스를 자신의 정신 상태를 거의 직접 설명하지 않는 인물로 설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그리피스는 자신의 내면을 독백으로 해설하거나 감정을 명시적으로 고백하는 방식 대신 행동과 선택,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작품 전체에서 그리피스는 자신의 감정을 정면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그는 죄책감을 신념의 언어로 정당화하고-게논 매춘 이후 강가에서의 캐스커와 대화, 욕망과 자기혐오를 타인에 대한 해석 속에 우회적으로 투영하며-압송 후 지하감옥에서 국왕과의 대화, 자신의 내면을 직접 고백하는 대신 행동 또는 보편적인 언어의 형태로 말한다.)
따라서 그리피스의 심리는 발화 자체보다도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추론될 필요가 있고 이 점은 친구론 장면을 해석하는 데에도 중요한 전제가 된다.
@rotttencat When Griffith says a friend is someone who is his equal, it was a direct rejection of Charlotte's proposition that his comrades are his friends, so I disagree with that being solely about Griffith himself. Among other things, this is why I see this as an established+
I think there’s a pretty important asymmetry in your argument here.
“Griffith explicitly defines what he considers a true friend in terms of equality and having one’s own dream” is a textual fact. But treating “friendship” as if that explicit definition itself objectively defines guts and griffith’s relationship and explains everything that follows - Guts outshining the dream, Griffith’s possessiveness, his inability to tolerate Guts leaving, and his collapse - is not. The manga never explains those developments simply by saying “because friendship” Thats precisely where interpretation and analysis become necessary.
So I dont think its fair to call your position “what the story itself presents” while calling mine merely an “interpretive layer” Textual grounding isnt limited to explicit statements. actions, sequencing, contradictions, and visual motifs are also things the author put on the page.
And I should clarify this because I think the distinction matters. I do think the speech explicitly defines griffith’s criteria for a true friend. I dont think it objectively defines guts and griffith’s relationship as “friendship between equals” Those are two different claims.
I’m also not arguing here that “friendship” should simply be replaced with “romance” You already know I read guts and griffith through a romantic lens, but this argument doesnt depend on that at all. You could label their relationship entirely as platonic friendship and the psychological/narrative contradiction Im analyzing would remain exactly the same.
What i asked you was how your reading explains the sequence - the friend speech > Guts leaving > Griffith’s self destruction. Saying “guts became extremely important within the friendship framework” tells the degree of his importance. It doesnt explain why that importance takes this specific form, especially when guts acts according to the independence and equality griffith himself described.
And this is prolly the key difference between us. naming a relationship is not the same as explaining how it works. If “friendship” can absorb guts’ autonomy, griffith’s possessiveness, “if I cant have you, I’ll kill you,” his collapse, Guts outshining the dream itself, and even the eclipse - while the answer to every contradiction is simply “because Guts was that important as a friend” -then the framework is describing the container without explaining the mechanism inside it.
A framework broad enough to absorb every contradiction without explaining any of them is a classification, not an analysis. At some point, “it all happens within friendship” stops being an explanation. It doesnt answer what kind of friendship could produce those specific contradictions; it simply restates the category youve already placed them in.
The definition may be explicit. The explanation isnt.
I’m not claiming “this is what miura secretly meant” either. I’m analyzing what the narrative does.
And since textual explicitness seems to matter quite a lot to you, it’s worth being precise here again...the manga explicitly gives us griffith’s definition of a true friend, but reading that definition as an objective definition of guts and griffith’s relationship is already an interpretive step.
Ironically treating that step and everything you subsume under that explicit framework/label as “the actual story", while treating analysis of the mechanisms underneath it as merely “interpretation" comes much closer to claiming interpretive authority than anything ive said.
1. 그리피스의 "진정한 친구" 스피치에 대해서.
황금시대 arc 내에서 최대 떡밥은 단연 프림로즈관에서 이루어진 그리피스의 "진정한 친구" 연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구론은 황금시대편이 일식, 파국에 이르기까지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그만큼 이 장면을 둘러싼 질문도 오래되었다. 그리피스는 정말 가츠를 친구라고 생각했는가. 가츠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보았는가. 친구론은 진심이었는가, 아니면 샬로트 앞에서의 과시였는가. 그가 말한 ‘진정한 친구’는 가츠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가.
실제로 친구론은 샬로트가 “매의 단 동료들은 친구가 아닌가”라고 묻자 그리피스가 그것을 부정하면서 시작되므로, 타인을 규정하고 선별하는 기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진정한 친구란 나와 대등한 자”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친구의 조건을 제시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친구론을 단순히 관계 규정의 언어로만 읽는 순간, 이 연설이 등장한 정서적 맥락과 훗날 그것이 현실에서 무너지는 방식은 지워진다.
왜 그리피스는 친구의 자격을 말하기 위해 자기 꿈과 존재 방식에 대해 그토록 길게 이야기하는가. 왜 하필 그 시점에 그런 정의가 필요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훗날 가츠가 그 정의를 거의 문자 그대로 실행해 자기 삶을 찾아 떠나려 했을 때, 왜 그리피스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가.
내가 친구론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래서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가보다 그 정의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리피스를 자신의 정신 상태를 거의 직접 설명하지 않는 인물로 설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그리피스는 자신의 내면을 독백으로 해설하거나 감정을 명시적으로 고백하는 방식 대신 행동과 선택,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작품 전체에서 그리피스는 자신의 감정을 정면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그는 죄책감을 신념의 언어로 정당화하고-게논 매춘 이후 강가에서의 캐스커와 대화, 욕망과 자기혐오를 타인에 대한 해석 속에 우회적으로 투영하며-압송 후 지하감옥에서 국왕과의 대화, 자신의 내면을 직접 고백하는 대신 행동 또는 보편적인 언어의 형태로 말한다.)
따라서 그리피스의 심리는 발화 자체보다도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추론될 필요가 있고 이 점은 친구론 장면을 해석하는 데에도 중요한 전제가 된다.
5. 어쩌면 그리피스가 쫓은 것은 왕국이라는 꿈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직 꿈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이다’라는 자기 신화.
왕국은 그의 꿈이었지만, 그를 더 깊이 속박한 것은 어쩌면 그 꿈을 쫓는 자기 자신의 형상이었다.
그래서 가츠는 위험한 존재다.
가츠가 왕국 추구를 방해해서가 아니라, 그리피스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가츠가 곁에 있으면 ‘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자기규정이 흔들린다. 가츠가 떠나면 그 규정이 이미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곁에 있어도 위험하고, 떠나도 위험하다.
출구가 없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리피스는 가츠를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 질문은 친구론을 가츠에게 붙일 명찰처럼 취급한다.
가츠는 친구인가.
대등한가.
조건을 충족했는가.
그러므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피스는 가츠를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는가보다, 왜 그는 ‘진정한 친구’를 저런 방식으로 정의해야만 했는가.
그 정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자기상을 유지하면서도 친밀성을 상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을지 모르며, 진정한 친구가 나타날 미래를 낙관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닌, 친밀성을 갈망하면서도 취약성을 허용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관계의 이상향에 가깝다.
그렇기에 친구론 연설 장면은 쓸쓸하다.
내게 여기서 가장 크게 들리는 것은 ‘진정한 친구’를 향한 열망의 크기 보다, 그것이 부재하는, (그리고 그리피스가 지금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한, 어쩌면 앞으로도 끝끝내) 부재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적막함이다.
존경받을 수는 있다.
동경받을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을 거느릴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와도 완전히 나란히 설 수는 없다.
그리피스가 말하는 ‘대등한 친구’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친밀성이면서, 역설적으로 실제 누군가가 그 자리에 들어서는 순간 그를 지탱해온 자기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결국 친구론은 훗날 반박되거나 폐기될 철학적 명제라기보다, 이미 균열이 시작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한 심리적 행위에 가깝다.
어쩌면 프림로즈관에서 그리피스가 가장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던 것은 ‘진정한 친구’라는 개념 그 자체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꿈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이다.”
라고 믿고 싶었던 자기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4. 그리피스에게 친구론은 타인에 대한 정의인 동시에 자기규정의 언어였다. 그러나 가츠는 그중 ‘대등한 친구’라는 명제를 실제 자신의 삶에서 수행해야 할 지침으로 수신한다.
같은 말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론은 자기파괴적 예언이 된다.
그리피스의 철학은 그것을 실제 관계에도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감당할 수 있어야 할 사건을 정작 그리피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다.
그럼 친구론은 그리피스의 위선이었는가?
친구론은 거짓도 위선도 허풍도 아니라 너무 진심이다. 그리피스는 이미 자신의 삶 전체를 그 신념에 맞추어 살아온 인간이다. 꿈을 위해 몸을 팔았고, 수많은 피와 희생을 감수했고, 그 모든 것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이라는 하나의 논리 안에서 견뎌왔다.
그리피스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그런 인간이라고 진심으로 믿었고, 또한 계속 그렇게 믿을 수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나는 꿈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이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에게 꿈보다 중요할 수 없다.
하지만 가츠의 이탈로 촉발된 정치적 자살행위와 급격한 추락은 그리피스의 불완전한 자기이해를 폭로한다.
훗날 지하감옥에서, 망가진 몸으로 바라본 왕궁은 빛바랜 고철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츠만은 형형히 빛난다. 꿈의 상징이어야 할 왕궁은 퇴색하고, 그 누구도 꿈보다 중요할 수 없다고 믿었던 인간의 시야 안에서 가츠만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그리피스가 끝까지 믿고 싶어 했던 자기 질서의 역전을 시각적으로 선언한다.
그렇게 결국 <수천의 동료와 수만의 적들 가운데, 오직 너만이 나에게 꿈을 잊게 했다.> 라고 말 하기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 문장>은 친구론의 반박이라기보다 친구론의 진단서에 가깝다.
친구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왜 그리피스가 그토록 ‘꿈만을 향해 나아가는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자기상을 필요로 했는지를 사후적으로 보여준다.
Hmm i see you read the friend speech pretty literally...well i have way too much to say about this lol so ima post a longggg quote thread about it...no pressure tho i dont mean to attack or smth. I wanted to post it anyway ahaha
So...berserk may wear the shell of masculine dark fantasy, but miura openly talked ab how much of its delicate emotional language came from 70s–80s yaoi/shoujo manga. With a work this reliant on symbolism and indirect emotion, I dont think the dialogue can always be read too literally without losing what the later narrative is doing.
So im genuinely curious how your reading connects the friend speech > guts leaving > griffith’s self destruction... Bc to me, thats exactly where a purely literal reading stops being sufficient...
원문
"여성 독자들에게 야오이적 반응이 나오는 것이 불본의 입니까(-작가로서의 의도에 어긋나나요, 달갑지 않습니까)?"
"아니요, 다들 육체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로 선을 긋고싶어하는데 나는 그런 선 긋기는 잘 모르겠어요.
(이미지상에서는 크롭 되어있지만 이어지는 대답) 그 친구도 여자애들은 꽤 되는대로 대하는데 친구에게는 의리가 깊거든요. 그러니 남들이 보면 호모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일단 쏘지마세요 저는 아군입니듸.....
그치만 난 이 트윗에 총을 좀 쏴야겠음
농담처럼 하는 말 이지만
나한테 베르세르크는 가끔 야오이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대체 뭔지 실험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작가는 가츠그리 관계의 원형이 본인의 남성 우정 경험에 기반한다고도 말 한 바 있다. 둘을 연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둘은 사랑을 속삭이지도 않고 키스도 섹스도 주어지지 않/못한다. 당연한가? 그럼 이걸 다 제거하고도 끝끝내 남아있는건뭐지?
상호간 압도적 특수성, 선택 받고 싶은 욕망, 소유와 대등함의 충돌, 상실을 통해서만 발각되는 의존, 상대가 사라진 순간 자아와 삶의 질서 자체가 무너지는 관계.
로맨스의 표지는 계속 삭제되는데 로맨스의 중력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베르세르크를 '야오이로도 읽을 수 있는 우정 이야기' 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여기엔 비엘적 독해를 떼어내고도 완즈이 동일한 관계가 남는다는 전제가 숨어있다. 꼭 본체는 명료한 남성 우정이고 야오이는 독자가 나중에 얹은 해석용 dlc인 것 처럼.
그치만 가츠그리 사이에서는 ✌️우정✌️이 사랑의 일을 하고 동경이 욕망의 온도를 띄고 인정 받고싶은 마음이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엉킨다.
이 뒤엉킴 자체가 이 관계의 본체다. 이걸 떼어낸다 가정하면 단지 퀴어하게 읽는 재미 하나가 사라지는게 아니라 애당초 이 관계가 왜 이렇게까지 과열되고 파국적인지 설명이 안된다.
그렇다고 반대로 "그러므로 둘은 사실 서로를 사랑했다"란 정답을 찍는 것도 재미없다.
가츠그리의 핵심은 사랑이 없어서 애매한게 아니라 사랑 같은데 끝내 관계의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데 있으니까.
베르세르크가 존나 악질적인건 야오이를 완성하지 않음으로써 야오이를 극대화한다는거다!!
보통 관계를 완성하면 감정에는 출구가 생긴다
아 사랑이었구나, 둘은 서로를 원했구나, 고백/키스/섹스/연인이라는 명명이 엄청난 압력을 하나의 관계 형태로 수습한다. 그런데 가츠와 그리피스에게는 그 수습이 끝내 오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이 한가지 이름 안으로 들어가 안정되는 대신 계속 초과분으로 남는다.
우정이라고 부르면 넘치는 것 같고 사랑이라고 부르면 미실현된 부분이 남고 성애라고 부르면 몸이 없고 비성애라고 부르자면 이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너무 로맨틱하다.
- Miura gave a direct “no” when asked if he had any issue with Guts and Griffith's bond being seen as yaoi
- He suggested that Guts and Griffith’s relationship transcends simple binaries, and didn’t reject any possibility of physicality between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