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작품 중 가장 큰 충격을 줬던 작품
안도 타다오의 〈청춘〉
거대한 청사과 조형물인데
처음에는 그냥 귀엽고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 설명에 적힌 한 문장을 보고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닌 어떤 마음가짐”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안도 타다오는 아직 익지 않은 푸른 사과를 통해
나이가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청춘이라고 표현했다
보통 청춘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언젠가는 지나가고
나이를 먹으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춘이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면
우리는 나이를 먹어서 청춘을 잃는 게 아니라
어쩌면 스스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꿈꾸지 않고
도전하지 않을 때 청춘을 잃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몇 살이든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용기가 있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청춘일 수도 있다는 것
별생각 없이 봤다가
거대한 청사과 하나 앞에서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전혀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청춘은 지나가는 시기가 아니라
스스로 잃지 않는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생각이 오래 남았다
Mishima’s whole deal is way more aesthetic fetish than any real lived experience.
He never actually knew war or real conflict he spent his whole adult life in this pacifist, post-war Japan that was trying to move on and get rich.
A gay aesthete who reinvented himself as the last samurai in a Japanese society that didn’t want any of that warrior shit anymore. It works like crazy on guys who are desperate for some kind of meaning or purpose.
For the Korean War, he experienced it as this young anti-communist writer in Japan while the country was cashing in on all the US military orders. Never set foot anywhere near the fighting. He was just sitting at his desk, talking about the big world tensions, and building up his own personal warrior myth at the same time.
최근에 본 전시중에 좋았던거!
Hayward Gallery에서 Chiharu Shiota: Threads of Life 봤는데 너무 좋았어용ㅠ
작업에 계속 사람은 없지만 흔적은 남아 있는 물건들이 나오는데 실은 그 흔적들을 감싸면서
사라진 사람
지나간 시간
죽음 이후 남는 기억
을 표현하는거래요…🥹
이 분이 중국 등 여러나라의 부호들에게 선호되는 이유를 알아요? 하고 한 사업가가 물어봐서 그냥 건물이 이뻐서? 라고 대답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했다. 안도 타다오의 오장육부가 텅비어져있는데도 건장하게 있어서 이 사람의 건축물을 소장하면 장수한다는 미신(?)이 있어서라는 것.
한국인들은 스스로 절대기준을 세우고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경주마처럼 일단은 뛰는데,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 왜 뛰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걸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했고 물어보는 이 자체를 이단자,잠재적 낙오자로 취급한다.(철학, 기초과학의 부재)
절대기준이 없는데 계속 불안해지니 상대기준인 등수에 집착하고, 삶의 모든면에서 끊임없이 등급을 매기고, 내가 어디쯤 위치하는지 확인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배운게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점은, 정말 잘하고 있어서 등수를 확인하는 경우보다는 뭔가 잘 안되니까 그걸로라도 위안을 얻으려고, “뭐 이정도면 나쁘진 않잖아.“라고 안도하고 싶어서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