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yu9mamyu@chaserchaser5 이러한 이름은 무려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견되는데
조선총독부가 1911년 작성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는 아직 총독부가 한글을 금지하기 전에 작성되어서 한글 표기가 똑바로 적혀있는 보기드문 사례로 내가 앞서 설명한
목섬(현 관음도), 대나무섬(죽서도), 돌섬(독도)
@mamyu9mamyu@chaserchaser5 이에대해 석도와 독도는 완전히 다른 단어라서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일본인이 많으나. 이것은 오히려 일본인이 더 이해하기 쉬운 연관성이 있다. 석도는 훈독이고 독도는 음독이다.
돌의섬 이라는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둘 중 뭘 쓸지 기록마다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thqMKnDGy9L4jk6@chaserchaser5@komeyakaitaiya 일본측의 주장중 내가 제일 흔하게 들은 것은 보고서에 적힌 "강치가 있고 나무가 없는 섬" 은 서양의 오류인 아르고노트 섬이기 때문에 독도가 아니라는 설명으로
독도와 울릉도 둘 다 깔끔하고 현대수준으로 정밀하게 그려진 지도와 모순 될 뿐만 아니라 당시 태정관이 그정도로 바보라는 뜻의 의견
@mamyu9mamyu@chaserchaser5 내가 기축도약도를 제시한 이유는
보통 이런 대화를 할 때 일본측 인간이
조선 자료는 전부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직접 자료 조사한 물건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경험 때문이다. 이것 조차 "당시 일본태정관은 서양에 속은 것이다" 같은 논리를 펼치는 놈이 있긴 했다만
@mamyu9mamyu@chaserchaser5 우선, 그 지도는 서양식 지도가 아니라 동양식 조감도 이기 때문에 당연히 축적이나 방향이 맞지 않는다.
둘, 울릉도검찰일기의 목적은 현재 사람이 사는 곳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독도에는 당시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 어업중 중간 정착지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독도가 지도에 그려질 이유가 없다.
@LKongg97465@mamyu9mamyu@chaserchaser5 태정관 지령 전문: 메이지 10년(1877년) 3월 20일 내무성이 품의한 동해 내 죽도 외 1도를 판도 외로 정하는 건에 대하여, 본건은 겐로쿠(元祿) 시대에 조선국과의 교섭(울릉도쟁계) 결과 양국 간에 영토가 아님을 확인한 사안이므로, 이전 문서대로 일본과는 관계가 없다고 여겨 마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