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의 가장입니다. 저의 의견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을 논할 때 대체로 취해지는 암묵적 전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불쌍하다.
그런데 저는 '왜?'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가난해서? 대체로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멀리 떨어진 나라로부터 능력없는 남자 하나 믿고 선진국에 와서 살다보니 외로울 수밖에 없어서?
우리가 '복지정책의 대상'을 선정하는 조건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나의 사정은 내가 선택한 결과인가, 아니면 천재지변•태생•사회적 구조 등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처해진 것인가를 나눠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문화가정'은 사회경제적 특징을 구분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단순히 출신 국적 또는 출신 문화가 상이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꾸려진 가정이라는, 전혀 다른 가치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국가의 경제적 복지혜택을 베풀어야 할 대상자로 규정하는 집단적 특성이 없는 용어입니다. 이 집단이 받으면 좋을 혜택은 한국어 교육, 문화 행사 등일 수는 있어도 출산 지원이나 세금 혜택일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런 복지 수혜자에 대한 질못된 타겟팅이, 결국 님처럼 마음이 따뜻한 우리 사회의 온정문화가 빚은 독특한 결과라고 봅니다. 좋은 일이지요. 다만, 다문화가정의 사정이 좋든 나쁘든, 그건 그들의 능동적 결정의 결과일 뿐이지 자연재해의 결과가 아니므로, 어떤 복지혜택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스마트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직장인분들, 이런 감정적 메세지나 언행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젠 법적으로도 이런 옛날 마인드나 보수적 분위기, 혼자가 옳다고 주장하는 매너를 이해해 주지 않아요. 출근이 9시면 9시까지 출근했으면 될 일이고, 한 달차에 업무능력이 부족한 건 당연하기에 수습기간을 두는 것입니다.
4년제 대학 가라, 10살 차이 나면서, 우르르 보낸 위압적 문자들, 모두 보내신 분이 잘못하셨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적, 반복적으로 벌어진다면 처벌 받습니다.
이런일이 한국에서도 있었음
원인은 지독한 가난임
미래를 믿을 수 없으니 오늘 먹고 오늘 팔아치우며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하는거
한 벨기에 천주교 사제가 1959년 한국에 도착해서, 한국 안에서도 많이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서 도와주려함
그 사제는 매일 배고플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불쌍해서, 3년간 간척지를 만들어서 농사지을 땅을 만들어주고 떠남
한국사람들이니까 땅을 주면 그 땅에서 부지런하게 일해서 성공했을거같잖음?
그 사람들은 너무 가난했음. 가난속에 살아보려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빚진 사람들도 많았고, 미래를 포기하고 도박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냥 당장 먹고살 돈이 없는 사람도 많았음
그 사제가 떠나자 더이상 보호해줄 사람이 사라진가임
지독히도 가난했던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땅을 자발적으로 팔거나, 고리대금업자에게 빼앗김
사제가 돌아왔을땐 대부분의 땅이 다른사람에게 넘어가 있었음
이 사제가 다음으로 간 곳은 더 가난한 곳이었음
이곳은 농사지을 땅을 만들 수도 없는 산이었음
사제는 고민하다가 주민들이 가축을 키우고, 그 생산품을 가공해서 팔아 고수익을 얻게 하려고함
고민끝에 산양을 선택하고, 산양의 젖으로 치즈를 만들어 팔도록 만들려고 주민들에게 산양을 나눠주고 키우게함
한국인들이면 한국인답게 이런 도움을 받을 때 엄청 열심히 해서 잘살거 같잖음?
사제가 치즈만들기를 더 제대로 해보려고 잠시 유럽국가들을 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주민들은 이미 그 산양들을 다 팔아치웠음
너무 가난하니까, 주민들은 사제가 제대로 알아온다는 말을 믿고 기다릴만큼 삶의 여유가 없었음.
지금 가난하고 내 가족이 굶주리니까, 내년에 가족이 살아있을지도 아무도 모르니 일단 오늘의 굶주림을 벗어나는게 중요한거임
이 사제는 다시 시작함
다시 산양을 공짜로 주며 키우게하고, 이번엔 주민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서로 미래를 계획하게 하고 책임지게 함
드디어 성공함
임실은 한국에서 서양식 치즈를 생산하는 톡특한 지역이 되었음
너무 굶주리고 가난하면 내일이 보게되지 않음
오늘 먹을것이 없어서 죽은 가족이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꿈꾸게 하는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