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중국에 보낸 외교 문서는 기록되어 있는 것이 드물다.
대신 중국 사람들이 읽고 남긴 감상평은 많이 남아있다.
"참람하다", "무례하다", "교만하다" 등.
이를 두고 고구려 사람들이 예의를 모른다거나 외교를 대충했다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런 표현들은 지극히 중국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 기록들은 고구려가 중국적 질서•예법을 따르지 않은 사례로 봐야 하고, 중국의 천하관과 고구려의 천하관이 충돌했던 것으로 해석하는게 일반적이다.
중국의 일부 궁중 내신들만 쓰는 黑漆笠子(흑칠갓)는 고려에서 온것임을 가늠할수있다.
1.蘇伯脩徃上京王君實以高麗笠贈之且有詩伯脩徵和章
龍門峽中雲氣濕山雨定灑高麗
소백수(蘇伯脩)가 상경으로 떠날 때, 왕군실(王君實)이 고려의 갓을 선물해 주었고, 시를 지어주었다. 백수가 화답시를 청하다.
용문협 가운데 구름 기운이 젖어 있고, 산비가 분명히 내려 고려갓을 적시겠지.
苏天爵 苏天爵(1294年-1352年),字伯修
원나라의 소 백수는 1294년-1352년
즉 고려조 충렬왕시기보다 약간 이후의 인물이다
충렬왕시기에 이 고려갓에 대한 정체가 나온다
有蛇含龍尾, 聞過太山岑. 萬人各一語, 斟酌在兩心.
右二歌, 忠烈王朝所作. 王狎群小, 好宴樂, 倖臣吳祈·金元祥, 內僚石天補·天卿等, 務以聲色容悅, 以管絃房太樂才人, 爲不足, 遣倖臣諸道, 選官妓有姿色伎藝者, 又選城中官婢及女巫, 善歌舞者, 籍置宮中, 衣羅綺, 戴馬鬃笠, 別作一隊, 稱爲男粧, 敎閱此歌, 與群小, 日夜歌舞褻慢, 無復君臣之禮, 供億賜與之費, 不可勝記.(고려사 충렬왕 1274년 ~ 1308년 )
“뱀이 있어 용의 꼬리를 물고 있으니 그 소문이 태산의 봉우리를 넘어 퍼지고, 만 사람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지만 판단은 결국 두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 두 노래는 충렬왕 때에 만들어진 것인데, 왕은 소인배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연회와 향락을 즐겼다. 총애받는 신하 오기·김원상과 측근 석천보·천경 등은 음악과 여색으로 왕의 환심을 사는 데 힘썼으며, 관현방과 태악의 악공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겨 총신들을 여러 지방에 보내 용모와 기예가 뛰어난 관기를 선발하고, 또 성 안의 관비와 무녀 가운데 노래와 춤에 능한 자들을 뽑아 궁중에 소속시켰다. 이들에게 비단 옷을 입히고 말총으로 만든 갓을 씌워 따로 한 무리를 만들어 ‘남장’이라 부르게 하고, 이 노래를 익히게 하여 소인배들과 함께 밤낮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방자하게 굴어 더 이상 군신의 예법이 없었으며, 그들을 접대하고 하사하는 비용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서 알수있듯 고려립은 말총으로 엮은 검정색 갓임을 알수있다
이미 명나라가 성립하기 훨씬전부터 존재한한것이다
이 고려모자의 기록은 명나라에서
조선모자가 아닌 고려모라하여 한번더 등장한다
명나라 환관인 劉若愚 1621~1627 의 酌中志 명나라 궁궐 사정에 대해 쓴것이다.
雨帽則如方巾,周圍加簷三寸許 耳。亦有竹胎絹糊、黑油漆如高麗帽式者,亦惟大內 臣戴之。《酌中志》
비 모자는 모양이 네모난 건巾과 같고, 둘레에 약 세 치 정도의 챙을 두른 것이었다. 또 대나무를 뼈대로 하고 비단을 바른 뒤 검은 칠을 하여 고려 모자와 비슷한 형식도 있었는데, 이것은 오직 궁중의 높은 내신만이 착용하였다
>> 궁궐의 일부 대신만 비올때만 썼던 용도. 전혀 대중성이 없음
여기서도 고려모자는 대나무 뼈대에 검은 칠을 한것이 고려모식이라고 밝히고있다.
사진은 명나라의 大帽(대모)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모할수없고 말총갓으로
고려로 부터 건너간 것임을 알수있다.
결정적인것은
조선 선조때 사신이 남긴 중국의 풍속인데
中原雖有笠制。而人不能備。其出行之際。文官着忠靜冠。武官着毛帽而有簷。儒用儒巾。或着方巾。吏用吏巾。常人皆着帽子。而東方之人。不論貴賤。通戴笠子
“중원에는 비록 笠의 제도가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완비하지 못하여, 나가서 행차할 때에는 문관은 충정관을 쓰고 무관은 챙이 있는 털모자를 쓰며, 유생은 유건을 쓰거나 혹은 방건을 쓰고, 아전은 이건을 쓰며, 평민들은 모두 모자를 쓰는데, 조선(동방지인)사람들은 귀천을 따지지 않고 두루 갓을 쓴다.”
여기서 알수있는것은
중국인은 갓을 안썼다는것이다.
또 결정적으로 고려의 모자를
남송의 사림광기에서도 확인가능하다
1.갓(笠)은 외국유래라고 남송때 분명히 밝힘
事林廣記笠子古者雖出於外國今世俗皆頂之或以牛尾馬尾為之或棕或皁羅皁紗之
사림광기에서 笠은 옛날에는 비록 외국에서 나온 것이고, 지금 세속에서는 모두 머리에 이고(頂) 있다. 혹은 소꼬리·말꼬리로 그것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종려(棕)로, 혹은 검은 비단(皁羅)이나 검은 모시(皁紗) 따위로 그것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도 중국의 갓은 외국에서 온것이며 대나무나 말총으로 만들고 검정색으로 꾸민다는것을 알려주고있다
즉 고려양인것이다.
사진은 명나라 유물이다 확인되는 기록으로 그 계보는 고려립의 계보라는것을 알수있다.
물론 소분홍들은 챙만 달렸으면
어거지로 기원을 왜곡하려고 하겠지만
기록상 확실하게 나오는 계보는 고려모자 뿐이다
이 명나라 유물은 조선에서 건너간것이 맞다.
오늘 휴일을 이용해서
말총갓, 말총모자에대해
중국의 문집류 역사기록을 모두 뒤졌는데
말총으로 만든 笠子는 고려시대 충렬왕때 기록이 가장 이르고
말총갓 말총모자에 대한 기록은
조선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고려중기부터 조선초기 조선말기까지
두루 나오고
경국대전 법령책에도 등장한다
중국측 말총갓 (鬃笠)기록은 전무
笠이 아닌 帽의 기록에서
鬃帽(총모)의 기록은 대부분 명나라 후기 명나라 말기의 문집에서만 보임
즉 유물의 출토량과 문서의 기록을
참고할때 이 명나라 유물은 조선에서
건너간것이거나 그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것이라고 해석할수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려충렬왕때와 거의 비슷한 근거리
이전의 시기 남송말 원나라 초의
사림광기 事林廣記 後集 十卷에
笠子와 帽子 모두 외국에서 나온거라고 증언하고있으니 말다한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