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느 일베몰이 세력이 역겨운 이유
"무섭노."
조명이 어둡다고 무섭다는 말 한마디에, 리센느의 원이는 순식간에 일베 사용자로 몰렸다. 원이가 스물두 해를 살아온 거제의 말투가, 누군가의 SNS 한 줄에 의해 혐오의 증거로 둔갑하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발단은 MBC경남 소속으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김현지 PD였다. 그는 원이가 유튜브에서 미나미의 일본 집을 찾아가 "무섭노"라고 답한 장면을 두고, 이 어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밈에서 파생됐으니 그 계보를 아는 화자라면 사용을 멈추는 게 '태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뜻 정교해 보이지만, 이 논리는 뜯어보면 허탈할 정도로 헐겁다.
동남방언에서 '노'는 일베라는 것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의문형과 감탄형을 넘나들며 써온 종결어미. 안태형 동아대 교수는 이미 방송에서 '와 이리 졸리노' 같은 예시로 이 어미의 감탄 용법을 설명한 바 있고, 심지어 조국 전 대표조차 일베식 '노'와 영남 사투리의 '노'는 어법상 명백히 구��된다고 선을 그었다. 뿌리가 다른 말을 뿌리가 같다고 우겨야만 성립하는 비판이라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자의적 재단이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반박이 쏟아지자 김 PD는 "모든 사용자를 일베로 단정 짓는 게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혐오 표현에 뿌리를 둔 표현임을 알았을 때 사용을 멈추느냐는 태도의 영역"이라며 '고민'을 요구하는 말은 거두지 않았다.
낙인은 찍어놓고, 낙인이 아니라 말하는 것. 책임은 회피하면서 프레임만 남겨두는 것. 원이라는 이름에는 이미 '일베'라는 단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는데, 그 낙인을 지운 건 언어학자와 여론이었지 정작 낙인을 찍은 당사자가 아니었다.
'거제 소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고향 말을 자랑스럽게 쓰던 스물두 살 신인이, 하루아침에 혐오 표현 사용자 취급을 받을 뻔했다. 중소기���사 소속으로 이제 막 100만 구독자를 모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아이돌이,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의 말투 때문에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이 구도 자체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언어의 역사와 지역성을 뭉개고, 그 자리에 자신이 상상한 혐오의 계보를 채워 넣은 다음, 상대방에게 "고민해보라"고 요구하는 것. 이건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재판이다.
여기 동조하며 함께 고개를 끄덕인 이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게 정말 반혐오의 언어인가, 아니면 낙인을 찍을 권리인가. 방언을 쓰는 청년에게 사상을 검증하고, 감탄사 하나로 정치적 계보를 추궁하는 방식이 정말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인가.
열심히 살아가는 어린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식의 트집이 아니라, 최소한의 존중이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재단하기 전에,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제대로 알아보는 게 순서다.
(사진 오른쪽이 문제의 김현지 PD)
⚡ 전두환 대통령의 진정한 업적: 1980~1983 오해를 넘어 사실로
🕊️ 1. 권력 승계 과정: 강제 쿠데타가 아니라 최규하의 자진 양위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은 본인 입으로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은 군의 신뢰를 받고 있는 전사령관뿐”이라고 밝히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권력을 넘겼음. 최규하는 이미 7월 31일 사임 의사를 밝혔고, 전두환은 8월 5일 대장 진급 후 11일 만에 취임했음. 취임 후에도 최규하는 정치자문회의 의장으로 남아 1983년까지 전두환과 함께 일했음. 좌파들이 주장하는 ‘강압 하야’는 완전한 날조였음.
🌍 2. 1980년 국가 총체적 위기와 안정화 박정희 서거 후 미국 금리 쇼크 + 2차 오일쇼크 + 기업 줄도산 + 전국 노조·학생 폭동 + 유시민 등 청와대 점거 시도까지 대한민국은 사실상 내란 상태였음. 최규하는 외교 전문가였을 뿐 군과 안보를 장악할 역량이 없었고, 본인도 한계를 느껴 군 출신 지도자에게 맡겼음. 전두환은 취임 직후 ‘평화적 정권교체·경제 살리기·사심 없는 인재 등용·자율과 개방·국가안보’ 5대 국정원칙을 세우고 즉시 실행에 들어��음.
💰 3. 경제 정책: 물가 안정 → 폭발적 성장의 기틀 김재익 경제수석과 함께 공무원·노조 임금 동결, 해외 우수 상품 수입 개방으로 경쟁 유도, 물가 3년 만에 완전 진정시켰음. 1980~82년 세계 최악의 불황 속에서도 긴축과 구조조정으로 체력을 키워 83년 미국 금리 인하와 함께 수출 대폭발의 기반을 마련했음. 이재명조차 “전두환 대통령 경제는 성공이었다”고 인정한 바 있음. 이 모든 게 ‘강성 보수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당시 국민과 해외 언론이 체감한 객관적 사실이었음.
📜 4. 개헌과 점진적 민주화: 스스로 권력 제한 1980년 10월 국민투표로 7년 단임제 + 대통령 권한 대폭 축소(국회의원 해산권·비상조치권 제한) 개헌을 91% 찬성으로 통과시켰음. 현직 대통령 재선 금지 조항까지 넣어 ‘영구집권’을 원천 차단했음. 총선 2번 실시(80년, 85년), 투표율 80~85%, 야당 의석 증가, 국회 정상 운영, 심지어 종북 단체 민청련까지 전단지 배포가 가능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있었음. 서구도 여성·흑인 투표권 확대에 100년 걸린 점을 감안하면, 당시 안보·경제 위기 속에서 국민이 선택한 ‘점진적 민주화’였음.
🏗️ 5. 한강 종합개발과 88서울올림픽 한강을 더럽고 위험한 하천에서 시민 휴식공간·8차선 올림픽대로·수상택시·유람선이 다니는 친수공간으로 완전 탈바꿈시켰음. 1981년 바덴바덴에서 88올림픽 유치 성공 → 일자리 33만 개 창출, 외국인 투자 급증, 스포츠 산업(프로야구·K리그) 뿌리 내림. 3S 정책이 아니라 국가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음.
🤝 6. 외교 대성공: 주한미군 고정 + 일본 안보차관 40억 달러 1981년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원천 봉쇄하고, 일본의 ‘안보 무임승차’를 지적해 40억 달러 안보차관 + 반도체 생산설비 수출 승인을 받아냈음. 이 돈과 기술로 삼성 등 반도체 산업이 1983년부터 본격 도약, IMF 때 버팀목이 되었음.
🛡️ 7. 아웅산 테러와 안보 기강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 테러로 경제수석 김재익 등 17명 순직. 전두환 대통령은 4분 늦게 도착해 목숨을 건졌음. 국가 애도와 함께 북한 규탄 국민대회가 열리고, 한미일 공조를 더욱 강화해 북한 붕괴를 유도하는 기반을 마련했음. 전두환 대통령은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경제를 살리고, 미래를 열어준 지도자였음.
왜 어른들이 전두환 시절이 살기 좋았다는지 알겠다.
#모두가알아야하는이야기
#전두환대통령
난 지금부터라도 정치인들에게 교육자료로 쓰이길 빌면서, 고 이해찬 총리 사회장을 반대한다.
상식적으로 복기해 보자. 그는 평생 ‘국민’을 입에 올렸지만, 정작 그가 복무한 대상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진영이라는 울타리 안의 ‘강성 주주’들뿐이었다.
갈라치기로 지지율을 채굴하고, 증오를 연료 삼아 권력의 엔진을 돌리던 그 효율적인 기술. 반대편을 ‘토착 왜구’나 ‘청산 대상’으로 규정하며 혐오를 배양했던 그가, 떠나는 마당에만 ‘모두의 애도’라는 통합의 꽃다발을 받길 원한다면 그건 욕심을 넘어선 ‘도둑 심보’다.
정치인의 말로(末路)는 그가 평생 쌓아온 업보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반으로 쪼개고 서로 물어뜯게 만든 설계자가 받아들여야 할 최종 성적표는, 엄숙한 침묵이 아니라 ‘거부의 소음’ 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인과율(Causality)’이라는 우주의 법칙이 정치판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증명이다.
지금 여의도에 앉아 있는 300명의 배지들은 이 장면을 뼈에 새겨야 한다. 내 편만 챙기며 눈치 보고, 혐오를 팔아 권력을 유지한 자의 엔딩 크레딧에는 ‘존경’이 아니라 ‘조롱’이 흐른다는 것을.
��음이 모든 과오를 덮는 면죄부가 되던 시대는 끝났다.
당신들이 뿌린 증오의 씨앗은, 당신들이 떠나는 날 가장 화려한 가시덤불이 되어 상주(喪主)들을 찌를 것이다. 이토록 생생한 민주주의의 시청각 교재가 또 어디 있겠나. 그러니 부디, 이 소란을 불편해하지 말고 똑똑히 지켜보시라. 이것이 당신들의 미래일 수도 있으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왜곡 심각하다.
좌파들이 만든 영화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변호인, 1987)
영화로 역사를 배운 인간들 천지임 추가적으로
그저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전교조한테 배운 대로
우리는 학습했고 그렇게 배웠다. 북한처럼 선동 당한 거지.
직접 공부하고 알아보면 광주 518은 ㅍㄷ이 맞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국힘당 국회의원 107명에게 고합니다.
아직도 부정선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적들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도 부정선거가 계속된다면 필패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이미 울창한 부정선거의 생태계가 조성된 지금, 저들이 부정선거를 스스로 포기할 리는 만무합니다.
국힘당은 사전투표를 폐지하는 분명한 투쟁 노선을 확립하고, 국민의 든든한 지지를 지원군으로 삼아 불의하고 썩어빠진 민주당ㆍ선관위와 나라의 운명을 건 일전을 벌여야 합니다. 부정을 낳는 괴물인 전자개표기를 완전 수개표로 전환하고, 유명무실한 투표 참관인을 감시자의 자리로 제대로 복원하고, 사전투표 시 투표관리관의 도장을 직접 날인하며, 사전투표자의 신분증과 지문을 전자적으로 확인한 뒤에만 투표지를 지급하는 등, 현행 선거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절차부터라도 철저히 준수되도록 국회 안��에서 총력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서슬 퍼런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였기 때문에 적들이 위축된 상태에서 저강도 공격에 그쳤기에 가능했던, 단순한 행운이었습니다.
경고합니다. 현행대로라면 지방선거는 필패입니다. 속히 전열을 가다듬고, 선제적 부정선거 타파 전쟁에 즉각 참전해야 합니다.